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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릎의 헌신(1594. 2014.2.16.드보라 여선교회 헌신예배)
롬12:1-3
할렐루야!
성경은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을 받았으면 우리들의 삶도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다시 말하면 그 삶이 변화되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이 맞는지 한번 다시 확인해 보아야합니다. 신구약 성경의 말씀은 구원을 얻는 길을 제시하는 것 보다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삶은 어떠해야하는가를 더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자의 삶은 그저 감상적으로 좋아하고 기뻐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우리 몸으로 뛰는 우리의 모든 생활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헌신하는 삶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헌신으로 구원을 얻게된 것은 아니지만, 은혜로 구원을 얻은 자면 반드시 구원하신 주님을 위하여 헌신하는 행동이 있다는 것입니다. 3절부터의 말씀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를 드려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생활, 또 가정생활, 사회생활을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가정생활, 교회생활, 사회생활 모두 충실하게 해야 합니다. 사회생활 하다가 보면 동창들의 모임에 갈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는 서로가 뽐내려고 합니다. 자존심 상해서 안나간다고 합니다. 요고 동창회에서 그런다고 하지요. 학교 다닐 때에는 못난 것이 신랑잘 만나서 고급 승용차를 몰고오고 손에 가락지를 끼고는 잘난척 한다고 합니다. 그날도 마찬가지로 잘난척 하는 여고 동창생이 한 동창에게 오며 너는 차를 그런 것 몰고 왔니..소나타가 뭐니 적어도 그 위에 것은 타야지 하면서 깐죽거려서 소나타를 타고 온 동창이 그랬다고 하지요. 저거 안타고 다닐려고 해도 공짜로 생겨서 타고 왔다고..우리 남편이 벤츠를 사니까 공짜로 끼워준 거라고...
우리 여선교회 성도들은 어디가서 겸손하게 삽시다. 하나님을 위하고 이웃을 위하는 섬김의 생활, 즉 봉사의 생활이라고 함께 생각했습니다. 이와같이 섬김의 생활을 바로 하려면 이 세대를 본 받지 말 것과 시간 시간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뜻이 무엇인지 늘 살피고 기도를 통해서 확인한 다음에 그 뜻대로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내용을 보면 3-13절까지는 교회 안에서 내 몸을 하나님이 기뻐 하시는 산제사로 드려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4절부터 14장 끝까지는 세상에 나가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우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전 생활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져야하는데, 그러나 순서적으로 볼 때에는 교회 안에서 먼저 하라는 것입니다. 당연히 봉사의 우선 순위가 교회 쪽에 먼저 와 있다는 것을 우리가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제대로 못하는 봉사를 세상에 나가서 잘할 수 있다는 것은 좀 어렵지 않겠습니까?
절대 헌신! 오늘날에 찾아보기 힘든 덕목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사회는 이기주의는 있고 헌신이 없는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헌신이 없는 사람에게는 진정한 복은 찾아오지 않습니다. 드리는 것이 없고야 받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무엇인가를 드리기 전에 취하려고 아둥바둥대어 보십시오. 그렇게 아둥바둥대면 그 아둥바둥대며 찾는 것은 얻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이상의 복은 다가오지 않습니다. 헌신의 강도, 즉 버리는 강도가 강할수록 은혜의 크기도 더불어 커집니다. 그러므로 복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계급장 신앙이 아닌 절대 헌신의 신앙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는 드보라여선교회 헌신예배로 모였습니다. 여러분 헌신이 무엇입니까? 회장님이 한번 대답해 보실까요? 헌신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바로 알고 헌신하면 하나님 더욱 기뻐하실 것입니다. 헌신의 의미를 바로 알고 진정한 헌신을 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 여러분과, 여선교회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헌신은 자신을 제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헌신을 바로 이해하려면 구약의 제사 개념부터 이해해야 합니다. 구약에서 제사시에 제물을 드립니다. 그 제물은 나를 대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 제물을 드림은 곧 오늘날 나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제물을 드리는 방법으로부터 오늘 우리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방법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깨끗해야 합니다. 이것은 절대 정결, 헌신의 순수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그것으로 헌신해야지, 다른 불순한 동기가 게재되어서는 않됩니다. 자신의 낯을 내거나 교회안에서 인정받기 위한 헌신은 그 근본 목적과 동기가 다시 설정되어야 합니다.
온전해야 합니다. 구약시대에는 불완전한 짐승은 제물로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가 반성할 것이 있습니다. 중고품을 교회에 가져다 놓는 행위입니다. 버리자니 아깝고 집에 두자니 마땅챦고 그래서 교회나 기증하자, 만에 하나 이런 마음이라면 회개해야 합니다. 내게도 필요하지만 하나님의 교회에 먼저 필요한 것이기에 드리는 마음 그것이 온전한 헌신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의 종은 가장 건강하고 가장 똑똑하고 가장 잘난 아들을 바쳐야합니다. 이도 저도 안되니 신학교가서 목사나 해라. (교우들 웃음) 물론 하나님은 건축자의 버린 돌로 모퉁이 돌을 만드시지만 그것은 하나님 차원의 일입니다. 우리는 온전한 것을 최고의 것을 드려야 바른 헌신입니다. 십일조도 마찬가지입니다. 온전하게, 귀뚱이 짜르지 말고 드려야 합니다. 저는 온 교인이 십일조 드림을 감사합니다. 이제는 온전한 십일조 드리기를 해야합니다.
전부를 드려야합니다. 구약의 제사에서 반마리나 3분의 1마리는 없습니다. 황소 반 마리보다는 비둘기 한 마리를 온전하게 드리는 것. 이것이 헌신의 정신입니다. 주일을 반쪽만 지키기, 예배를 반쪽만 드리기(지각)등등은 모두를 드리는 헌신의 정신에 위배 되는 것입니다. 죽여서 드려야 합니다. 산채로 드리는 법은 없습니다. 나를 죽여서 드려야 헌신입니다. 내가 죽는 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우리 성도님 여러분들이 더 잘 아실 것입니다. 태워서 드렸습니다. 헌신의 흔적이 남아서는 안됩니다. 내가 이렇게 헌신했는데,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이런 마음은 진정한 헌신의 마음은 아닐 것입니다. 온전한 헌신을 드리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헌신은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여러분 너무 잘 아시지요. 오늘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것은 바로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십자가 하나에서 답을 얻고 그 안에서 힘을 얻고 위로를 받으며 또 우리의 모든 교회의 출발은 언제나 십자가에서 출발하여 십자가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우리의 고항입니다. 어디를 갔다가도 다시 십자가 앞에 나아와 우리는 주님을 이곳에서 만나고 그 안에서 은혜를 받습니다. 기독교의 힘은, 우리 성도의 힘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교회가 2천년 동안 제려올 수 있었던 것도, 이 세상의 모든 힘과 능력이 다 무너져도 연약한 교회가 오늘날까지 온 것은 어떤 재정적으로 든든한 배경이 있어서, 권력이 있어서 제려온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은총이, 십자가의 능력이 우리를 여기까지 이끌어 주시고 앞으로도 새새 무궁토록 십자가의 깃발이 있는 곳, 십자가를 자랑하고 높이는 곳에는 끊임없는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 하게 됩니다. 해수욕장에 가면 모두 해수욕장에서 장사하는 분들은 그런 말을 합니다. ‘한 달 벌어서 일 년 먹고 살아요.’ 우리 성도들은 그렇습니다. 이 고난주간,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고난주간, 부활주간에 우리가 받는 이 은혜가 지난 일 년 동안에 우리가 흐트러졌던 모습들, 추하고 잘못된 우리의 모습들을 바로 잡고 소생하고 치료받고 회복하게 되는 주간이 바로 이 주간입니다. 그리고 앞으로 일 년 동안 우리가 어떻게 영적으로 얼마나 우리가 건강하게 살 수 있느냐? 이것도 이번 한 주간이 우리가 얼마나 십자가 앞에 새로운 은혜를 받고, 바로 서고, 십자가를 바로 바라보고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아가느냐에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잘 해 나갈 때 여러분의 앞으로의 가는 길은 분명히 형통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저마다 자기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가 다 있습니다. 그 크기와 무게는 다를 수 있으나 십자가가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버지 되시는 분은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지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어머니가 되시는 분은 어머니가 되시기 때문에 지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자녀가 되는 사람은 자녀이기 때문에 지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대통령은 대통령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여러분은 지금 어떤 십자가를 지고 있습니까? 어떤 십자가 때문에 힘들어하고 계십니까? 그러나 명심하십시오. 어떤 십자가일지라도 질 수 있는 십자가입니다. 질 수 없는 십자가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모두는 십자가를 통해서 하나님께 헌신을 해야 합니다. 각기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구약에서 제물을 드려 헌신했다면 신약에서는 자신의 몸을 드림이 헌신입니다. 신약성서중에서 가장 완벽한 헌신의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의 헌신은 어떤 헌신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헌신입니다. 자기자신을 온전히 십자가의 희생제물로 드리는 헌신입니다. 자신을 죽여 붉은 피를 뿌리는 헌신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의 헌신이 진정한 헌신이 되기 위해서 내 몸을 죽여 하나님의 제단에 붉은 피를 뿌릴 때 헌신입니다. 그렇지 못한 우리의 헌신은 다 헌신 흉내내기입니다. 하지만 그 흉내라도 바르게 내야 합니다.
중국집 주방장을 보면 음식을 후라이팬에 넣고 볶다가 뒤집을 때면 정교한 손놀림으로 금 음식물이 공중에서 한바뀌 회전한다음 다시 후라이 팬으로 받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어떤 학생이 이 주방방 흉내를 낸다고 뜨거운 음식을 볶다가 공중에까지 띠웠는데 그만 그 음식물이 후라이 팬으로 떨어지지 않고 얼굴위로 떨어졌습니다. 그만 얼굴에 화상을 입고 말았습니다. 위험한 흉내를 내다가 정말 큰일 날뻔 했습니다. 흉내도 제대로 내야지 잘못내면 문제입니다. 주님의 헌신을 따라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헌신은 자신의 몸을 온전히 주께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그의 피로 사신 것임을 알아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사용하시도록 온전히 드릴 때에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더 큰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인디언 추장하나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고 예수님을 그의 구세주로 모셨습니다. 그는 너무나 감사하여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바치고 싶었습니다. 그는 소중히 간직하고 있던 신발을 선교사에게 드리며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선교사는 고개를 저으며 ‘하나님은 추장의 신발을 원치 않으신다’라고 했습니다. 추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가장 훌륭한 말 한 필을 끌고 와서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역시 선교사는 고개를 저으며 하나님께서는 말을 원치 않으신다고 했습니다. 당황한 추장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천막으로 들어가더니 추장의 지위를 상징하는 깃털이 달린 모자를 들고 나왔습니다. 선교사는 여전히 머리를 흔들었습니다. 더욱 당황한 추장은 ‘선교사님, 제가 가장 아끼던 것은 다 내놓았습니다. 이제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제 몸뿐입니다’라고 하자 선교사는 ‘네,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몸을 원하고 계십니다’그 순간 추장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고 자신의 생명을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헌신하기로 서약했습니다.
물론 오늘 우리는 예수님 처럼, 바울 처럼, 베드로처럼, 야고보처럼, 주기철 목사님 처럼 십자가위에서 자신을 죽여 붉은 피를 뿌리는 그런 큰 헌신은 드리지 못합니다. 하지만 작은 헌신은 드릴 수 있습니다. 헌신은 글자 그대로 몸을 드리는 것인데 어떻게 몸을 바칠까요?
몸중에서 우선 입술을 바치시기를 바랍니다. 어떤 분은 말로만 하는 헌신은 소용없다고 하는데 저는 입술의 헌신이 가장 귀한 헌신이라고 봅니다. 여러분의 입술을 덕을 세우는데 사용한다면 그것이 바로 입술의 헌신입니다. 입술로 찬송, 입술로 위로, 입술로 증거, 입술로 격려, 입술로 용기를 줌니다.
한 젊은 여성도가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었습니다. 가히 그 슬픔을 달랠길이 없었습니다. 그 누구도 쉽사리 위로한다고 나서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때 그 교회의 나이 많은 노 권사님이 그 여성도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말해줍니다. ‘사실은 나도 50년간 과부로 살아왔다오. 결혼하고 보름만에 남편이 징용끌려갔는데 2달만에 전사통지설가 왔다우.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지. 하지만 살다보니 살아지더라구. 산 사람은 살아야지 용기를 내요’ 그래서 위로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입술로 낙심을 성도를 위로하고 입술로 낙망한 성도를 위로 할수 있다면, 입술로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을 전할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입술의 헌신입니다.
귀를 드려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귀의 헌신은 곧 말씀을 경청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은혜받고 빠져든다고 하는 것은 귀의 헌신의 결과입니다. 발을 드려 헌신합시다. 예배드리러 나오는 발걸음은 헌신의 발걸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주를 위해 내 발걸음을 사용하십시오. 돈 받고 움직이는 발은 헌신의 발이 아닙니다. 천국에서 목사의 상급이 제일 적을 것입니다. 돈받고 일했으니 어떤 의미에서 헌신이 아닙니다. 직업적으로 한것입니다. 참 헌신의 발걸음은 아무런 댓가없어도 드리는 그런 헌신입니다. 발로 주님께 헌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무릎드리는 헌신을 하기기를 바랍니다. 영국 최대의 설교가였던 스펄전 목사님 교회에는 할머니 기도 군단이 있었습니다. 매일 같이 교회와서 교회와 목사님의 사역을 위해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스펄젼 목사님은 자신의 영력의 원천은 바로 그 기도군단 할머니들에게서 나온다는 말을 했습니다. 여러분도 교회를 위해, 목회자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선교위해서 무릎드려 헌신하는 성도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1820년대 영국의 한 시골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위해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자고 목사님이 호소하였습니다. 드디어 헌금시간이 되어 모든 교인들이 특별헌금을 드릴 때입니다. 그 때 한 소년이 갑자가 제단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나오더니 제단위 헌금바구니 위에 털썩 주저앉았습니다. 교회엔 갑자가 소란이 벌어졌습니다. 경건치 못하게 버르장머리 없이 어린 아이가 헌금함을 깔고 앉았다는 것입니다. .소년을 끌어 내리려 했으나 그는 자리서 일어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 소년이 하는 말입니다. 어른들은 모두 헌금을 드리는데 난 돈이 없어요. 다른 것은 드릴 것이 없어서 저는 제 몸을 하나님께 드리려해요. 저는 지금 헌금함을 깔고 앉은게 아니라 저의 몸을 하나님의 헌금함에 바친 거예요? 그 소년이 곧 후일 ‘암흑대륙 아프리카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빙스턴 선교사였습니다.
진리는 단순합니다. 헌신도 단순한 것입니다. 여러분의 몸, 여러분의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목적을 위해서 사용치 말고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사용하십시오. 그것이 헌신입니다. 입술을 주께 드려 복음을 전하십시오. 귀를 주께 드려 말씀을 경청하십시오. 무릎을 주께 드려 기도하십시오. 두 발을 주께 드려 복음증거의 길을 걸어가십시오. 온 몸을 주께 드려 주를 위해 일하십시오. 말씀을 맺으면서 오늘 갈라디아서와 로마서의 말씀을 다시 한번기억하시기바랍니다. 딤후 2:15절‘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롬12:1절‘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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