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TV에서는 전주 덕진 연꽃이 만개한것 처럼 소게되고 있으
나 그 말 밑고 찾아 갔다가는 실망하기 알맞다.
꽃은 어쩌다 보일뿐 무성한 연잎만 온 연방죽을 뒤덥고 춤추고 있다.
우리 휴양지 건축 계약을 마치고 돌아오는길에 나도 연방죽에 들러
보았다.
방죽둘래를 한바쿠 돌고 카매라를 꺼내어 동산에 외로히 앉아계시는
석정님의 시비와 동상을 카매라에 담고 있자 옆에 한 젊은 아가시가
지켜보고 있기에 누군지 아느냐 물어보니 모른단다.
[슬픈 목가의 시인]이라 소개하니 그 아가시 노트를 꺼내어 시비에
있는 시를 적는다 .
하도 기특하여 그모습 시비와 같이 필름에 넣으려고 하니 아가시의
표정이 굳어저 자연스럽지 못하다.
그래서 작가들이 사람을 대상으로 촬영할 때에는 본인 몰래 촬영 하
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무슨 작가라고 NG를 낼수도 없고 동상뒤로 돌아 갔다.
동상두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다 이 동상을 스승님께 바칩니
다.
1986년 야린 배형식 시비가 세워진지(1976.7.6) 10년만에 한 조각가
의 개인적인 노력으로 세워진 이 동상은 왼발을 오른발위에 올려놓
고 왼손은 시비위에 놓고 오른 손에는 이름모를 시집을 말아 쥐고
계시는 이 모습, 그것도 사람들이 눈을 들어 우러러 보는 위치가 아
니라 평지에 있어 민초들이 손을 어루 만질수 있게 한 이 동상을 그
맞은펴 옆에 우람(?)하고 장엄(?) 하게 만들어저 사람들의 시선을
올려다 보게한 다른 인들이나 유명 인사의 동상에 비하면 나는 나는
백배 천배......... 야린 배형식씨는 이미 작고 하셨다.
일직이 혹익대학교 조소과(제1회)를 마치시고 서울에서 작품을 하시
다가 전주에 내려와서 작품활동을 하시며 후진(원광대학교 조소과교
수)들을 양성 하셨기에 다른 고장에 비하여 우리 고장에는 이 분야
의 예술인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석정님과 야린님이 어떻게 사제지간인지는 나도모른다. 년배로 보아
서는 아마 10여년 연하여서 충분히 사제지간 일 수도 있다 . 그러나
사제가 한듯이 학교에서 배워야만 사제지간인가? 두분의 공통점은
술을 좋아 하셨다.
지금처럼 룸싸롱에서 몇십 몇백만원하는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이집 저집 주막집의 포장을 걷고 들어가 나무 의자에 앉아서 주모가
솜씨있게 갖 만들어오는 맛갈스런 안주에 막걸리 한두사발 마시고
다시 어께동무하시고 또 다른 주막의 포장을 들치고 들어가시는 두
분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저승은 아직 개발이 덜 되어서 당신들이
좋아하시는 주막들이 아직도 꼐?있는지..........................
.삼가 두분의 명복을 빕니다
......... 손잡고 이야기할 즐거운 나날이 오고 있다 하시면서 어찌
그리도 빨리 가셨는지 어둠속에서 입을 봉하고 살아야 했던 그 시절
에 멀리 떠나간 [네 눈망울에 희망을 잃지 않고 기두려보지 못하시
고 즐거운날이] 오고 있는데도 어찌 그리 일찍 가셨는.........
삼가 님의 명복을 빕니다.
자료출처 : 영월신씨 일옹공 종회 홈페이지
첫댓글 전 전주 삽니다~~~여긴 종친회 없는거 같아요~~~96년까지는 참석하고 했는데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