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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뫼재~부례고개~청룡산~화산덤~용머리산~대봉산~객기리(종착지)
경북 고령군 서부에 있는 읍으로서,2015년 읍의 명칭을 고령읍에서 대가야읍으로 변경을 한
대가야읍은 옛 가야의 중심지로서 지산동의 당간지주(보물 제54호)와 고분군(사적 제 79호)을
비롯하여 장기리 암각화(보물 제 605호),주산성(사적 제61호) 그리고 고아동의 벽화고분(사적
제165호) 등의 유물과 유적이 두루 산재해 있는 지역이다.고령(高靈)이라는 종전의 이름에서
대가야라는 이름으로 읍의 명칭이 바뀐 것은 역사적 사실에 비춰보면 일견 타당성이 있어보인
다.그러한 이력의 대가야읍에서 해가 떠오르는 동쪽으로 낙동강의 지천인 회천이 흐르고 있는
데,회천을 건너 다닐 수 있는 다리인 회천교를 넘어 고령군 개진면 쪽으로 이십릿쯤 발품을 더
보태면 닿게 되는 고개가 오늘 산행의 들머리 열뫼재다(10시20분).
열뫼재는 고령군 개진면의 면소가 자리하고 있는 개포리 마을을 1km가량 남겨둔 고개다.
언덕배기의 남쪽 방면 어느 공장 건물의 울타리 곁의 숲으로 지맥의 산객들은 물 만난 기러기
처럼 기어든다.바람 한 점 없는 오뉴월 뙤약볕이 참따랗게 쏟아져 내리는 성하의 숲은 잡목과
덩굴로 발디밀 틈이 없다.숲의 그늘은 다소 뙤약볕의 열기를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무더운
기운은 천지사방에 가득하다.파란색의 대형물탱크가 자리하고 있는 곳을 지나고 앞을 막아서
는 잡목들을 헤쳐나가면 양회임도로 들어서게 되는데, 이 양회임도는 들머리의 공장건물 정문
쪽에서 숲 쪽으로 향하는 임도인 것이다.애시당초 그 길을 따랐더라면 초행길은 다소 부드러
웠을 게다.내처 양회임도를 따르면 머지않아 임도 좌측으로 원통형의 대형 물탱크를 만나게
된다.우곡배수지의 원통형 스텐레스 다수격벽물탱크라는 다소 복잡한 이름의 물탱크다.
우곡배수지를 뒤로하고 수렛길처럼 널찍한 숲길을 따르면 거대한 송전철탑을 지나게 된다.
송전철탑은 오늘 산행내내 여러 차례 만나게 되는데,송전철탑만 겨냥해서 무작정 길을 따르
더라도 지맥의 방향과는 별반 차이가 없을 것이다.'팔만대장경 이운순례길'이라는 명칭의
산길안내 이정표가 세워져 있는 갈림길,수렛길에서 2시 방향쪽으로 나있는 산길을 가리키는
이정표 화살표시에 '해인사37.9km'와 '대가야수목원5.7km'라고 적혀있다.해인사 갈림길을
지나면 송전철탑을 또 만나게 되고,송전철탑을 지나면 조금 전의 '팔만대장경 이운순례길'
이정표를 다시 만나게 된다.쉼터용의 긴 의자 두 개가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쉼터를 지나면
골리앗 덩치의 송전철탑이 곁을 지키고 있는 해발220m봉이 기다린다.220m봉 정수리 한복판
에는 가랑잎으로 뒤덮혀 있는 납작한 봉분의 묵묘1기가 자리하고 있다.
송전철탑이 곁에 자리하고 있는 220m봉을 뒤로하면 입때까지 만나본 것 중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돼지들의 목욕장을 만나게 된다.잡목더미나 가랑잎더미 같은 묵묘를 서넛 가로지르면
또 다른 가랑잎더미 같은 납작한 봉분이 자리하고 있는 해발227m봉을 오른다.이 멧부리에서
지맥은 좌측의 10시 방향으로 꼬리를 잇는다.산길은 다소 밋밋하고 부드럽게 이어진다.
오뉴월 뙤약볕의 열기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후끈함이 가득한 헬기장을 가로지른다.군사용의
참호 같은 직사각형의 콘크리트 구덩이를 지나고 완만한 비탈을 올려치면 닿게 되는 봉우리가
2000년에 이설된 삼각점(창녕410)이 자리하고 있는 해발287m봉이다.287m봉 한켠에는 산불
초소도 세워져 있다.
해발287m봉의 산불초소
산불초소와 삼각점이 자리하고 있으며, 가야산에서 발원을 하여 고령군을 남북으로 가로지르
며 산과 들을 적시는 유유자적의 희천이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처 해발287m봉을 뒤로하면 잡초
더미나 가랑잎더미 같은 묵묘들을 거푸 지나게 된다.아름드리 활엽수목들이 깊은 그늘을 드리
우고 있는 붕긋한 멧부리를 넘어서고 맨땅이 고스란히 드러난 납작한 봉분이 넉살스레 차지하고
있는 언덕 같은 멧부리를 차례로 넘어선다.그런 뒤에 오르게 되는 봉우리는 크고 작은 돌들의
멧부리인데, 정수리 주변은 돌성의 잔해로 여겨지는,무너져 내린 돌성의 외양을 띄고 있다.
봉우리를 축으로 성을 구축하는 퇴뫼식의 돌성으로 여겨진다.그러한 행색의 성터를 뒤로하고
내리받잇길을 따르면 거대한 송전철탑의 곁을 지나게 된다.널찍한 강 폭에 비하면 터무니 없는
수량(水量)의 실배암처럼 구불거리는 회천이 부감이 되고, 회천을 따라 옹기종기 터전을 마련한
인총들의 주거와 전답들이 그림같다.
부례고개로 내려서는 산객들
송전철탑이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지맥의 줄기를 따라 길을 선도하는 등대처럼 줄을 잇는 철탑
들은 저멀리 청룡산을 넘어서까지 아스라하게 꼬리를 잇는다.진초록의 산줄기는 흑록의 거죽
으로 한차례 변화를 준다. 이윽고 흑록의 산줄기는 검보랏빛을 띠면서 서서히 옅은 기색으로
사위어진다.그러더니 슬그머니 산객의 시야를 하나하나 벗어나곤 한다.내리받잇길이 잡목들과
덩굴식물 등으로 잔뜩 뒤덮혀 있다.잡목들만의 내리받잇길이라면 그다지 어려움은 없을 텐데
잡목들 외에도 덩굴식물 등의 저항이 이동을 어렵게 하고, 자칫하면 곤두박질이라는 횡액을
당할 수도 있는 형극의 가시밭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산길은 다시 송전철탑과 산불초소가 공존하는 붕긋한 멧부리로 산객을 안내한다.이번에는
좌측의 10시 방향으로 시야가 열려있다.파란 코발트빛의 하늘빛을 고스란히 걸터듬한,회천보다
는 강 폭이 넉넉하고 둔중하며 유장한 몸매의 낙동강 물줄기가 눈에 들어온다.잡목들과 덩굴
등의 허섭한 내리받잇길을 도망치듯이 빠져 나오면 꺽다리 소나무 숲이 산객을 기다린다.
꺽다리 소나무 숲을 지나고 잡풀더미 같은 묵묘 대여섯 기를 차례로 가로지르면 삼거리 양회
임도로 지맥은 꼬리를 드리운다.회천변의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우측) 쪽과 낙동강변의 예곡리
(좌측) 방면을 잇는 부례고개다.부례고개 삼거리에서 우측의 도진리 쪽 어귀에 커다란 감나무
주변에 네모진 검은 빗돌이 하나 세워져 있다.
'城隍(성황)'이라는 제목 아래에는 빼곡하게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그 내용은 이곳은 도진(桃
津) 마을에서 부례(扶禮;부례는 예를 도운다는 뜻,도진마을의 동편 낙동강 나루터로,배를 타고
오는 손님을 마중하며 예를 취하던 곳)로 넘나드는 고갯길을 지날때마다 작은 돌맹이를 3번
던지며 그날의 무사와 안녕을 빌었다는 서낭으로 불려지는 도진의 성황지 이다.또 이 감나무
는 수령이 약 300년이 넘었다고 전하나 예나 지금이나 나무 성장 후 큰 변화가 없고 부례정(扶
來亭;낙동강에 배가 떠온다는 지명.임난시 개산포 전투의 승첩을 회상하며 1602년 학암 박정건
이 낙동강변에 지은 정자)을 내왕할 때 이정목(里程木)으로 심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부례관광지(2.0km)와 들꽃마을(3.2km)를 가리키는 흑갈색 바탕의 이정표도 세워져 있는 부례
고개에서 지맥은 맞은 편의 양회임도를 따르면 된다.
'MTB정상'이라고 써있는 입간판이 세워져 있는 곳에서 30여 미터쯤 발걸음을 하면 양회임도
우측으로 두어 기의 묘가 자리하고 있는 지점에서 지맥의 등성이로 붙는 게 힘이 덜 든다.송전
철탑 두 곳을 지나서 완만한 비탈을 올려치면 오르게 되는 다소 밋밋한,봉우리 같지 않은 멧부
리가 해발296.4m의 청룡산 정상이다.신록의 연두빛 그늘이 드리워진 정수리 한복판에는 삼각
점도 자리하고 있는 삼각점봉이기도 하고 정수리 한켠에는 송전철탑도 멋없이 서있기도 하다.
해발296.4m의 청룡산 정상을 지나면 산길은 다소 밋밋하다.그러한 행색의 부드러운 산길을
700여 미터쯤 발걸음을 하면 오르게 되는 접시를 엎어 놓은 것 같은 붕긋한 봉우리가 기다리고
있는데,이 봉우리가 해발311.3m의 화산덤 정상이다.
해발311.3m의 화산덤을 박봉규 대장은 이 봉우리가 청룡산 정상이라고 말한다.그렇다면
조금 전의 해발296.4m의 청룡산은 고도차이로 구분을 한다면 작은 청룡산이 되고 이곳의
해발311.3m의 봉우리는 큰 청룡산이 되는 셈이다.그러나 어쨌든 현재의 정수리에는 서울
청산수 산악회에서 걸어 놓은 정상을 알리는 팻말에는 화산덤이라고 분명하게 적혀 있다.
그리고 정수리 한복판에는 다갈색의 솔가리가 뒤덮혀 있는 청주한가의 묵묘만이 넉살도
좋게 자리하고 있다.해발311.3m의 화산덤을 뒤로하면 지맥은 좌측의 9시 방향으로 급선회
를 하며 이어진다.완만하고 다소 밋밋한 산길을 따르다가 슬그머니 솟구친 넙데데한 꺽다리
소나무들만의 해발246m봉,화산덤이라고 이름을 붙인 서래야님의 정상표시물이 굵직한
꺽다리 소나무 몸통에 걸려있다.
다갈색의 솔가리가 푹신한 산길이 꼬리를 물고 덩달아 그윽한 솔향이 가득한 숲길이 꼬리를
잇는다.산길 한복판으로 이장을 하고 뒷마무리를 하지 않은 서너 기의 파묘를 가로지르게
된다.묘지를 이장하고 난 뒤라면 구덩이를 메우고 덮은 흙을 고르고 다진 뒤에 나무 한 두
그루쯤은 심어두는 게 우리들의 문화 양식인데, 묘지 이장 뒷마무리가 너무 몰상식스럽다.
신갈나무를 비롯한 참나무들과 꺽다리 소나무들 그리고 잡목들이 그들먹하게 얽혀있는 해발
210m봉을 넘어서 한차례 슬그머니 솟구쳐 있는 접시를 엎어 놓은 것 같은 멧부리가 해발
203.8m의 깃대봉 정상이다.이 봉우리에도 서울 청산수산악회의 정상 표시물이 굵직한 꺽다리
소나무 몸통에 걸려있으며 정수리 한복판에는 삼각점(창녕327)도 자리하고 있는 삼각점봉
이기도 하다.
해발203.8m의 깃대봉을 넘어서 밋밋한 산길을 700여 미터쯤 발걸음을 하면 오르게 되는
봉우리가 지도상의 해발179m의 용머리산 정상인데,정수리 일대는 납작한 접시를 엎어 놓은
것 같은 넙데데한 멧덩이 인데, 주변에는 온통 잡목들과 덩굴식물 등이 장악을 하고 있으며
산악회나 선답자들의 정상표시물이 전혀 눈에 띠지 않는다.그야말로 잡목과 덩굴의 밀림 속이
나 다름없는 꼴이니 그들 역시 그러한 표시물을 걸어놓을 여유가 없을 터이다.이름만이 그럴
듯한 용머리인 게다.이런 모양의 용머리가 과연 있기나 한지 모르겠다.잡목과 덩굴들이 장악
한 용머리산에서 그들을 헤쳐나가느라 가시에 찔리고 긁혀가며 어렵사리 허섭한 곳을 애면
글면 빠져 나오면 꺽다리 소나무 숲길이 기다린다.
꺽다리 숲은 잡풀더미 같은 대여섯 기의 묘지가 자리하고 있는 묘역을 가로지르게 되고
그 묘역을 뒤로하면 포산곽가의 종중묘역을 지나기도 한다.그런 뒤에 지맥의 산길은 지맥을
가로지르는 왕복2차선의 도로로 꼬리를 드리운다.고령군 우곡면의 연리(우측)와 봉산리(좌측)
사이를 잇는 고개,연동고개다.연동고개를 곧바로 가로질러 가파른 오르막 비탈을 올려치면
해발107m봉에 이르게 되는데 정수리 한복판에는 솔가리가 수북하게 덮혀있는 묵묘가 차지
하고 있다.그리고 굵직한 꺽다리 소나무 몸통에는 서래야님이 달아놓은 '연동봉'이라는 정상
표시물이 걸려있다.연동봉을 뒤로하면 산길은 밋밋하고 부드러운 꺽다리 소나무 숲길이다.
꺽다리 소나무 숲길에 폐 심마니터로 소용이 되었을 차광망과 철구조물 등이 널부러져 있다.
넙데데한 접시를 엎어 놓은 것 같은 멧부리,솔가리가 뒤덮고 있는 납작한 봉분의 1기의 묘지
가 자리하고 있는 대봉산 갈림봉,좌측으로 200~300미터쯤 지맥에서 떨어져 자리하고 있는
해발121m의 대봉산으로 발길을 돌린다.산길은 부드럽고 밋밋하며 비교적 널찍하다.해발120.9
m의 대봉산 정상은 붕긋하며 정수리 한복판에는 자헌대부 진가의 묵묘가 자리하고 있다.조금
전의 갈림봉으로 되돌아와 지맥의 산길을 따르면 지맥을 크게 가로지르는 차도를 만나게 되는
데,절개지 부분이 매우 가파르고 높직하다.절개지 가운데쯤에 관리자용 철계단이 마련이 되어
있는데 그것의 도움으로 도로로 내려서기에는 너무 위험하다.그러한 까닭에 절개지에서
우측으로 20~30미터쯤 이동을 하면 비교적 안전하게 도로로 내려설 수가 있다.
차도를 곧장 가로질러 가파른 오르막 비탈길을 기어 오른다.팥죽땀을 줄줄 흘려가며 가파른
비탈을 올려치면 크고 작은 나무들이 여기 저기 쓰러져 있는 넙데데한 멧부리에 오르게 되고
잡풀더미나 가랑잎더미 같은 묵묘들을 지나서 다소 잘록한 말안장 같은 안부를 지나면 잡목
들이 다소 헐거운 해발108m봉이 산객을 기다린다.상석이 꺼멓도록 이끼와 물때로 얼룩이 진
오래 묵은 묘지를 지나서 망주석까지 갖춘 잡풀더미 같은 묘지를 지나면 금령김가의 다소 최근
의 묘지를 차례로 지나게 된다.지맥의 줄기는 눈에 띠게 가라앉아가고 등줄기는 사위어 드는
데 각양각색의 묘지들은 그러한 허약한 틈새를 노리고 줄을 잇는다.묘지 순례길 같다.
회천
진양강가의 묘지를 지나서 굴참나무들의 붕긋한 멧부리를 넘어서면 흙더미나 다를 게 없는
봉분의 묵묘의 곁을 지나기도 한다.포산곽가의 묘역을 지나서 흰풀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개활지를 지나면 잡풀더미 같은 서너 기의 묘지를 지나게 된다.그런 뒤의 지맥은 개간지
를 가로지르게 되고 지맥의 등성이까지 일궈놓은 자드락 사이를 따르게 된다.뙤약볕이 지글
지글 끓는다.후끈거리는 뙤약볕에서 숲으로 들면 다갈색의 가랑잎이 수북한 언덕 같은 봉우리
를 오르게 되고 그곳을 넘어서면 왕복2차선의 아스콘 차도로 지맥은 꼬리를 드리운다.고령군
우곡면 객기리 신기마을과 후동마을 사이를 잇는 도로다.왕복2차선 차도를 곧장 가로질러
완만한 오르막 비탈을 올려치면 이르게 되는 붕긋하고 아담한 봉우리가 해발45.6m봉이다.
45.6m봉 한복판에는 비록 나지막한 멧부리지만 삼각점(창녕447)이 암팡지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지막한 지맥의 등성이 좌측으로 객기리 신기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현풍곽가의 묘지를
지나고나면 지맥은 왕복2차선의 차도(객기나루길)로 접어드는데,객기리 새터 마을 한복판을
지나는 왕복2차선 도로다. 좌측으로 이어지는 도로의 어귀에 '객기리 새터'라고 새겨진 빗돌
이 세워져 있다.도로를 가로질러 산기슭에 일궈놓은 자드락 사이를 지나서 뙤약볕을 가릴 수
있는 나지막한 숲으로 기어든다.봉우리라고 부르기도 멋적은 해발48m봉을 넘어서면 나지막한
산줄기를 가로지르는 수렛길을 만나게 되는데, 좌측의 수렛길을 따라 완만한 비탈을 내려서면
객기리 정터마을이고,우측 방면의 수렛길을 따르면 희천과 낙동강이 한데 합쳐지는 두물머리
를 찾아갈 수가 있는 수렛길이다.좌측의 수렛길을 따른다.그 길을 따라 200~300미터쯤 발걸
음을 보태면 마을 입구 우측의 길가에 커피색 타일로 치장을 한 2층 건물 객기리 마을회관이
지친 산객을 기다리고 있다(15시).
낙동강
-칠봉지맥의 최종 날머리인 회천과 낙동강의 합수머리는 마치 장화 모양의 지세를 띠고 있다.
장화의 장딴지와 밑바닥은 낙동강이 차지하고 있으며, 장화의 정강이와 발등은 회천의 차지가
아닌가.우곡면 연리에서 남쪽 방면의 객기리 쪽으로의 회천변은 연동제방이 구분을 세웠으며
낙동강변은 우곡면 답곡리에서 봉산리와 포리의 강변 들판을 거쳐 역시 객기리를 잇는 우곡
제방이 물과 뭍의 경계선을 그었다.우곡제방과 연동제방이 맞닿은 곳,그곳이 두물머리다.회천
의 물살을 보태서 더욱 덩치를 불린 난바다를 염원하는 낙동강은 덩치가 불어난 만큼 아등바등
함이 없이 침착하고 서두르는 기색이 전혀 없다.
객기리 마을회관 뒤쪽에 수돗가가 기다리고 있다.찬물을 두어 차례 온몸에 뒤집어 쓰니 시원
하기 이를 데 없고 기진맥진이 어느 틈에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리지 않았는가.객기리에서
는 객기를 부리지 말아야 한다.합수머리를 좀더 가까이까지 접근을 하려면 그늘 한점 없는
제방을 따라야 한다.그러려면 뜨거운 뙤약볕을 견뎌야 하고 그 열기를 감수하려면 그에 걸맞
는 팥죽땀을 각오해야 한다.그러한 행위는 이런 폭염의 날씨라면 호기롭다고 할 수는 있다.그
러나 이 동네가 어딘가? 객기리 아닌가.꺼드럭거리며 뽑내는 호기(豪氣)도 마땅치 않아보이는
데,항차 객쩍게 부리는 혈기나 용기 같은 객기는 객기리에서 부리면 안 된다.주민 한 명 없는
마을회관 주변을 마치 통째로 세나 낸 듯이 북새를 부리다가 그곳을 훌쩍 떠난 것은 아직도
태양의 열기가 지글지글 끓고 있는 한낮이다. (2018,6/2)
칠봉지맥 4구간[담밑재-기산고개(88고속도로)-열미재(2차선도로)-부례고개].지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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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봉지맥 4구간[담밑재-기산고개(88고속도로)-열미재(2차선도로)-부례고개].지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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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봉지맥 5구간[부례고개-청룡산(311m)-용머리산-79번도로-객기리합수점](終).지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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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봉지맥 5구간[부례고개-청룡산(311m)-용머리산-79번도로-객기리합수점](終).지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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