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오래살고 싶어한다.
이 오래된 염원은 칼로리가 풍부한 식사와 함께 의료체계의 발달로 이제 평균수명 100세를 바라보는 시대가 됐다.
말하자면 정년퇴직을 하고도 20에서 30년을 더 살아야 하는 장수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처음에는 모두가 평균수명이 늘어난것을 반가워 했지만 세상 모든일이 그러하듯
여기에도 빛과 그늘의 양면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정말 오래 산다는것은 축복인가, 아니면 재앙인가.
대답은 개인의 ‘환경과 조건’ 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축복이 되지만 또다른 사람에게는 길고긴 고통의 터널이 될수도 있다.
이제는 노후를 준비하는 ‘조건’에서 경제적인것 이외의 문제들이 있음을 간과하면 안된다.
어떤면에선 새롭게 부딪히는 문제들이 ‘돈’ 보다 더 중요할수도 있다.
그게 누구든 나이가 많아지면 다른 사람들에게 ‘짐’ 이 될수도 있는게 현실이다.
부부간이라 해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사회보건원과 사회통합위원회의 공동조사결과,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경우
나이많은 여성이 나이많은 남편을 돌봐야하는 기간이 길어져
부부사이에 ‘갈등’ 이 발생할수 있다는 대답이 나왔다.
여성의 71.9%가 그런 견해를 밝힌것은 이해할수 있지만 같은 항목에 대해 남성의 66.4%가 동의하고 있는것은
이 문제가 상당한 현실성을 가지고 있음을 반증하는 사례라고 할수있다.
말하자면 단순한 예측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 ‘문제’ 라는 뜻이다.
다른하나는 여성과 남성의 입장이 바뀌는 케이스도 나타날 수 있다.
이미 고령사회로 진입한 일본의 경우 이 문제는 아주 심각한 수준이다.
지난9월, 일본의 한 중소도시 주택가에서 아내의 간병에 지친 94세의 남편이 92세의 아내를 살해하고
자살한 사건이 있었으며,
20년동안 병중에 있는 아내를 간호하던 72세의 노인이 아내의 간청으로,
아내의 목을 졸랐고 검찰은 이 노인에게 징역4년을 구형했다.
모두가 너무 오래살았고, 너무 오래동안 병마에 시달려서 생긴 참사이며 재앙인 것이다.
일본의 나이많은 주부들은 정년퇴직하고 집에있는 남편들을 ‘젖은낙엽’ 이라고 부른다.
어딘가에 한번 달라붙으면 웬만해선 떼낼수가 없기 때문에 그만큼 골칫거리라는 뜻이다.
한국이라고 크게 다를것도 없다.
종일 거실에서 잠옷바람으로 빈둥거리는 거실남,
아내에게 걸려오는 온갖 전화에 귀를 세우고,
아내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는것은 물론, 하루세끼 밥상을 차려줘야 하는 삼식이 까지 행태도 다양하다.
남편과 아내가 하루종일 집에 같이 있어야 하는 사실은 두사람 모두에게 낯선일이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 방법에 대해 아는게 없기 때문에 더 어려운 문제가 된다.
말하자면 전혀 달라진 새로운 환경에서 서로에게 적응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일이 악화되는것이다.
불과 16년전인 1995년, 나이많은 부부들의 황혼이혼은 연간 138건이었다.
그러던것이 2010년엔 1734건으로 대폭 늘어났다.
황혼이혼은, 말하자면 부부모두가 그 인생이 실패로 끝났다는 얘기다.
그래서, 나이많은 부부는 그 나름대로 공부하고 준비해서 함께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지혜를 터득해야 한다.
우리부부가 사는법은, 상대적인 하나의 케이스일 뿐이다.
그래도 우리부부가 사는법을 얘기하려고 하는것은 앞에 지적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
비교적 지혜로운 대처를 했으며
그 때문에 지금의 ‘노부부의 생활’ 이 큰 문제없이 영위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참고용’ 은 되지않겠는가 하는 노파심에서 하는 얘기이기도 하다.
둘이만 사는 노부부라 해도 ‘생활’ 은 곧 경제(돈)를 의미한다.
돈이 없으면 반드시 불화가 생기는게 사람사는 세상이다.
평생을 해로했다해도 늙어서 궁핍하면 그 집안이 편할 수가 없다.
돈은 절대조건은 아니지만 필요조건임을 인정하고 준비해야된다.
하나의 기준을 설정한다면 노후가 되어도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면 안된다.
돈에서 독립할수 있어야 생활에서도 독립할수 있다.
한편, 노후를 위한돈은 그 돈을 벌고있을때 준비해야 한다.
돈에 쪼들리지 않아야 그 집안이 편할수 있고 부부의 일상도 원만할수 있다.
다음이 공간구획이다. 이점은 아주 중요하다.
은퇴한 남편이 종일 거실에서 서성거리는것은 ‘자기의 공간’ 이 없기 때문이다.
출퇴근하던 현역시절은, 직장의 사무실이 전용공간이었기 때문에
집안에는 아내와 애들의 공간은 있어도 남편의 공간은 없었다.
아무리 부부라해도 종일 얼굴을 맞대고 있을수밖에 없다면 그건 큰 고통이 아닐수 없다.
따라서 지금살고있는 집에서 ‘공간구획’ 을 새롭게 해야한다.
우리의 경우,
내가 은퇴하고 교외지역으로 이사했을때 제일큰방은 내 ‘서재’ 로 쓰기로 합의했다.
대신 거실은 아내의 ‘아뜰리에’ 로 쓰기로 했고, 작은방 2개중 하나는 아내의 방으로 쓰고
나머지를 침실로 쓰기로 했다.
따라서 식탁이 있는부분과 부엌의 공간만이 ‘공유공간’이 된 셈이다.
나는, 아침식사가 끝난후 내 서재에 들어오면 점심시간까지 거의 나가지 않는다.
화장실도 따로 쓰기 때문에 더 그렇다.
내 서재는 내가 일상을 사는데 필요한것들은 모두 갖추어져 있다.
책들을 읽으면서 공부하고, 블로그에 올릴 글을 쓰고, 대단히 전문적인 음악감상이 가능하고,
악기 연습과 컴퓨터하기 영화감상등, 내가 필요로 하는 조건은 다 갖추었고, 또 그렇게 꾸몄다.
고등교육을 받은사람이 자기서재가 없다면 그건 정신적으로 대단히 가난하게 살고있다는 뜻이다.
나이들어 서재는 필수조건의 하나다.
오후에는 매일 한시간씩 걷기운동을 나갔다 온다.
우리부부가 사는법중 ‘하일라이트’ 는 ‘식사준비’ 다.
우리집 ‘삼식이’ 는 내가 아니라 아내다.
나는 은퇴하기전부터 내가 퇴직하면 아내를 부엌에서 해방시키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특히 화가인 아내에게는 그런 ‘해방’ 이 절실한 것이기도 했다.
내가 식사를 준비하는 원칙은 아주 실용적이다.
밥과 국, 또는 찌개, 그리고 포인트가 되는 반찬 한가지가 그것이다.
쉽게 생각하고 간단하게 준비하기 때문에 크게 어렵다고 생각해 본적도 없다.
나는 미국사람들과 오래 일했고, 십여년을 집중적으로 해외여행을 하면서 여러곳에서 다양한 음식을 먹어봤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한식의 중심은 반찬이 아니라 ‘밥’ 이라는 점이다.
서양음식과 달리 우리음식은 어떤 한가지만 으로는 ‘식사’ 를 못한다.
반드시 밥과 반찬들을 함께먹게 돼있다.
따라서 무엇보다 ‘밥’ 이 맛 있어야 다른 반찬들로 맛있게 먹을수 있다.
지금은 며느리도 밥만은 내게 부탁하는 수준이다.
고시히까리에 맛좋은 서리태를 얹고, 거기에 찹쌀을 살짝 섞어 해 낸 밥은, 반찬없이 먹을수있을 정도로 감칠맛이 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제일 맛이있는 음식은 단연코 우리의 ‘잘익은김치’다.
다른 한가지가 ‘멸치볶음’ 이다.
이 반찬은 한번 먹어본 사람들은 그 맛을 잊지못하는 수준인데 과정이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걸리기 때문에
단지 두사람, 아내와 손녀를 위해서만 만든다.
지금 나는 20여가지의 반찬을 만들 수 있고 모두가 ‘손맛’ 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나는 거의 전적으로 ‘한복려’ 씨의 레시피를 사용한다.
그분의 음식은 ‘진짜토종한식들’ 이다.
며칠전에는 아내가 좋아하는 ‘코다리조림’ 을 만들었다.
아내의 표현은 ‘코도들지 못하고 먹는정도’ 다.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도라지나물도 만들었고 시원한 된장배추국도 끓였다.
장을 봐오는것부터 식사준비, 그리고 설거지까지 전부 나혼자 다 한다.
지금 우리집에서, 아내에게 있어 나이많은 남편은 젖은낙엽이나 짐이 아니라 ‘절대적인 존재’ 인 것이다.
요리하는 남자는 언제 어디서나 여성들에게 환영받게 돼 있다.
외출에서 돌아온 아내가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면서 하는말은 거의 비슷하다.
‘나 배고파.’
내가 만든 음식에 푹 빠졌다는 얘기가 아니겠는가.
모든부부는 나이가 들면 말수가 적어진다.
심하면 소 닭보듯 할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식탁에서의 화제를 늘 준비한다.
신문과 책에서 소재를 택해 아내와 얘기를 나누는 것이다.
대화는 곧 소통이다.
아무리 부부라 해도 늘 소통해야 된다.
그리고 부부에게는 함께 즐기는 시간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대학교회’ 에 출석하기 때문에 예배가 끝나면 세브란스병원 본관3층에 있는 식당가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즐비한 메뉴를보고 음식을 선택하는 재미, 배식을 기다릴때의 기대감, 그리고 매주 서로다른 음식을 먹는 즐거움,
모두가 필요한 일상의 조각들이다.
이런 평범한 일에 소홀하면 안된다.
행복은 작은 조각이 되어 일상안에 널려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영화관에도 가고, 음악회에도 가야한다.
무대또한 마찬가지다.
사정이 허락하면 해외여행도 해야된다. 여행은 부부를 더 가까이 다가서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나이많은 부부는 젊은이들이 가지지 못하는 프리미엄이 있다.
그게 ‘자유로움’ 이다.
무엇에도 구속받지않고, 어떤 책임도 지지 않으며 자기만의 일상을 살수있는 조건이 그것이다.
정년퇴직한 남편역시 마찬가지다.
파자마를 입은채 종일 거실에서 왔다갔다 할게 아니라 ‘자기의 공간’ 에 자리잡아야 한다.
아내에게 보다많은 자유시간을 줘야 상대적인 대접을 받는다.
최소한도 매끼 아내가 없어도 스스로 식사를 마련해서 먹을수 있어야 짐이 안된다.
그건 하나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마음먹기에 달린것이고 누구나 실행에 옮길수 있는 일들이다.
꼭하나 부탁하고 싶은것은, 컴퓨터에 익숙하라는 것이다.
이제 인터넷 쇼핑과 인터넷뱅킹은 일상적인 시대다.
나는 이메일은 물론, 블로그와 함께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계정까지 다 가지고있다.
혼자, 서재에 있어도 윈도우-창을 열면 거기에 전 세계가 있다.
대영박물관에서 미의회 도서관까지 섭렵할수있는 ‘길’ 이 그 안에 있다.
나이많은 부부도 생각을 제대로 하고 준비만 잘 하면 젊은부부들 보다 훨씬 질감있는 생활을 할수있다.
사실은 그게바로 노년의 ‘특혜’ 가 아니겠는가. (옮긴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