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여울의 문학 멘토링
“이 책은 문학 참고서와 문학 이론서 ‘사이’에 위치하고자 한다. 문학 참고서처럼 맘먹고 ‘학습’하는 문학이 아니라, 문학 이론서처럼 전문가들 위주의 고차원적 접근이 아니라, 지금-여기의 우리 일상 속에서 문학과 친구가 되는 법을 고민하고자 한다. 문학은 씹을수록 맛있는 음식이고, 만날수록 새로운 장점을 발견하게 되는 멋진 친구다. 문학은 다가갈수록 아름다운 풍경이고, 즐길수록 더욱 사랑스러워지는 음악이다. 문학 속에 숨겨진 각종 ‘코드’를 제대로 이해할 수만 있다면, 문학과 친구가 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P. 22 “사춘기의 방황을 어떻게 견뎌 내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은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 있다.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로 가득 찬 문학 작품을 10대에 읽는 것이 어렵고 힘든 일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잠깐의 괴로움을 통과하면, 우리는 예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삶을 경험할 수 있다. 문학은 깊이와 넓이를 알 수 없는 동굴을 닮았다. 그 신비로운 동굴에서 빠져나오면 힘겹게 통과의례를 거친 뒤의 짜릿한 환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인생은 고해(苦海)다’라는 말들을 많이 하지만, 이 고난의 바다를 헤쳐 갈 수 있는 상상의 열쇠를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문학이 아닐까.”
P. 122 “지칠 줄도 모르고 끝없이 펼쳐지는 인생의 아이러니 때문에 우리는 매순간 갈팡질팡하지만 아이러니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이토록 난해한 인생의 눈부신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수학공식처럼 가지런히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는 삶에 대한 경의, 정답은 없지만 영원히 풀리지 않는 운명의 난제에 도전하는 인간의 용기에 대한 경의가 바로 아이러니의 원동력 아닐까.”
P. 132 “알레고리는 ‘다르게 말하기’를 통해 시대의 환부를 건드리면서 동시에 그 풍자와 비난의 책임을 완화시키는 측면도 있다. 그러나 알레고리는 단지 작가가 풍자의 대상에 대하여 직접 말하기 껄끄러울 때, 그 파장과 책임을 완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알레고리로 문학과 삶이 좀 더 풍부한 은유와 상징으로 빛날 수 있을 때, 삶의 진실이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게 드러날 수 있을 때 그 힘을 발휘한다.”
P. 145-146 “악역은 단순히 ‘나쁜 사람’이 아니라 우리 안의 또 다른 자아, 숨겨진 인격을 대변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악당, 악마, 악녀들의 온갖 악행들은 우리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의 목록에 포함시키는 ‘금기’를 거침없이 깨뜨린다. 악역은 그저 ‘가까이 해서는 안 될 존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악역 자체가 우리 마음의 어두운 그림자를 형상화한다. 그들의 악행은 우리 마음의 ‘뒷문’ 혹은 ‘지하실’ 같은 역할을 한다. 악역들의 성격은 곧 어떤 특정한 사람들만의 ‘희귀한’ 욕망이 아니라, 인간 본성의 일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P. 221-222 “집을 떠난 주인공들이 흔히 겪는 고난은 의식주의 불안에서 오는 공포다. 이런 공포보다 더 극복하기 어려운 것은 바로 사방에서 검은 손길을 뻗어 오는 치명적인 ‘유혹’이다. 집을 떠나 모험을 감행하는 주인공들에게, 각종 ‘유혹’은 오히려 깊은 ‘깨달음’과 직결된다. 유혹에서 단지 ‘위험’만을 본다면 얻을 것은 순간의 쾌락뿐이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위대한 가출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치명적인 유혹에서 생의 결정적인 진실을 발굴해 낸다. 그 배움의 열정이, 발견의 혜안(慧眼)이, 그들을 ‘누군가의 아들딸’이 아니라 ‘내 인생의 진정한 주체’로 거듭나게 만든다.”
P. 248 “사랑에는 일상적인 제도나 질서를 뒤흔드는 혁명적 힘이 깃들어 있다. 사랑은 신분이나 혈연, 인종이나 국경까지 뛰어넘는 전복의 에너지를 품고 있다. 사랑에 빠졌을 때 사람들은 전에 없던 엄청난 활기나 초인적인 힘을 지니게 되기도 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서 이제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했던 청년 라스콜리니코프가 구원의 빛을 보는 것도 바로 자신을 조건 없이 사랑해 주는 여인, 소냐의 힘 덕분이다. 모두가 나에게 등을 돌릴 때조차도, 나의 손을 잡아 주는 단 한 사람의 온기가 있다면 인간은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사랑은 그렇게 ‘혹독한 현실’을 ‘구원의 기적’으로 탈바꿈시키기도 한다.”
P.14 문학은 흑과 백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이 세상의 수많은 다른 색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문학은 ‘예/아니오’로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이 세상의 수많은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는 존재다. 나아가 문학은 ‘좋음과 나쁨’으로만 판가름할 수 없는 세상의 수많은 가치들을 사랑하는 존재다. 문학은 인간이 꿈꿀 수 있는 그 모든 ‘만약’을 향하여 ‘정답은 없다’고 대답한다. 문학은 단 하나의 정답으로만 존재할 수 없는 우리의 다채로운 삶을 담아내는, 크기도 모양도 일정하지 않은 그릇이다.
P.59 훌륭한 패러디는 원작에 새 생명을 부여할 뿐 아니라 스스로 독창적인 작품이 된다. 고전은 끊임없이 개작되고 당대의 관객과 소통함으로써 부활한다. 고전이 새롭게 부활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만약 고전이 ‘원전’으로만 남아 있기를 고집한다면, 극소수의 엘리트 또는 전문가들만 향유하는 배타적 산물이 되어 버리기 쉽다. 우리 시대, 우리 세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목소리로 끊임없이 패러디될 때, 고전은 더 오랜 시간,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다.
"문학은 예/아니오로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이 세상의 수많은 가능성을 고민하는 존재다." 흔히 문학의 필요성을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서 체험할 수 있는 경험엔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책을 통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삶을 간접 체험함으로써 삶에 대한 경험치를 높여가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하지만 문학이 단지 그런 기능만 한다면 문학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우리는 영화로도, 게임으로도 삶을 얼마든지 간접 체험할 수 있으며 책을 읽는 수고보다 더 재미있고 단순하다. 따라서 문학은, 간접체험이라는 기능을 넘어서 우리에게 또 다른 삶의 진실을 알려준다. 그것은 세상에 대한 작가들의 가치관이다. 어떠한 작품이든, 그 책엔 작가가 바라보는 세계관이 녹아있기 마련이다.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 그런 시선을 통해 우리는 세상에 대해 알아가기도 한다. 책을 통해 알아가는 작가들의 가치관 "문학은 '좋음과 나쁨'으로만 판가름할 수 없는 세상의 수많은 가치들을 사랑하는 존재다."
문학은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작가의 말이 꼭 정답은 아니지. 그렇다고 해서 너만의 생각도 꼭 정답은 아니고. 세상은 흑백논리처럼 뚝 잘라 예/ 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적고, 우리는 문학을 통해 "정답은 없다"는 것을 배워가는 것이다. 세상엔 좋은 것과 나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문학은 개인의 고통을 공동체의 문제로 고민하는 예술적 소통행위다."
한편 문학에겐 중요한 역할이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은 바로 타인의 슬픔에 공명하는 것. 즉, '공감의 기능'이다.
문학 속엔 보통 멀쩡한(?) 주인공들이 등장하진 않는다. 어딘가 일그러지고 결함이 있어 보이는, 그런 아픔을 가진 주인공들이 등장하며 우리는 그들의 아픔 역시 우리가 예전에 겪었던 아픔과 동일함을 느끼곤 그 마음을 느낀다. 즉, 문학을 통해 치유 받는 것이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 치유 받기도 한다
"타인의 고통이 머물렀던 자리에 내 몸을 겹쳐보는 것. 그곳이야말로 문학이 탄생하는 자리다."
프리드리히 실러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만이 지닌 매력을 "희망이 없는 사랑을 하고 있는 자만이 사랑을 알고 있다."라고 예찬했다.
문학은 씹을수록 맛있는 음식이고, 만날수록 새로운 장점을 발견하게 되는 멋진 친구이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성 작가분들이 쓰신 책들을 보면 참 재미있다. 나와 비슷하지만,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훨씬 더 많이 것을 생각하며 느끼며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 존경하면서도 닮고 싶은 마음에 좀 더 열심히 읽어야겠다는 각오를 다잡게 된다.
하필이면 '실용성'을 찾기 힘든 문학을 선택해 마음 고생이 컸던 부모님께 늘 감사드린다. 이 일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이 일을 내가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늘 존중해 주시는 부모님 덕분에 나는 외롭지 않았다. 가끔은 월급의 절반이 훌쩍 넘는 돈을 딸들의 책값에 써 주신 아버지 덕분에 나는 아무리 책을 읽어도 질리지 않는, 행복한 '책 읽는 바보'가 되었다. 나의 소울메이트 이승원, 그와 나는 문학이 우리를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우리가 굳이 문학을 선택했다는 사실에 무작정 감사하며 살아간다. 우리의 사랑스런 문학은 팜파탈처럼 모든 이의 짝사랑을 거부한다.
*윤동주, 병원 : 살구나물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에서 금잔화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본다.
- 바로 여기, 타인의 고통이 머물렀던 자리에 내 몸을 겹쳐 보는 것, 타인의 슬픔을 단지 동정하거나 연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의 심연에 자신의 몸을 던져 넣는 것. 그곳이야말로 문학이 탄생하는 자리다.
*이형기, 낙화 :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 봄 한철 / 격정을 인내한 /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 분분한 낙화.... /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 지금은 가야 할 때 /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 머지않아 열매 맺는 / 가을을 향하여 /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 헤어지자 /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 나의 사랑, 나의 결별 / 샘터에 물 고인 듯 성숙하는 / 내 영혼의 슬픈 눈.
*유치환, 바위 :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될라 /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 / 회로에 움직이지 않고 /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 억년 비정의 함묵에 /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 흐르는 구름 / 머언 원뢰 / 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로버트 프로스트, 정현종 옮김, 걸어보지 못한 길
'1인분'의 삶을 넘어 / 단풍 든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더군요 / 몸이 하나니 두 길을 다 가 볼 수는 없어 / 나는 서운한 마음으로 한참 서서 / 잣나무 숲속으로 접어든 한쪽 길은 / 끝간 데까지 바라보았습니다 / 그러다가 또 하나의 길을 택했습니다 먼저 길과 똑같이 아름답고 / 아마 더 나은 듯 했지요 / 풀이 더 무성하고 사람을 부르는 듯했으니까요 / 사람이 밟은 흔적은 / 먼저 길과 비슷하기는 했지만 /서리 내린 낙엽 위에는 아무 발자국도 없고 / 두 길을 그날 아침 똑같이 놓여 있었습니다 / 아, 먼저 길은 다른 날 걸어 보리라! 생각했지요 / 인생 길이 한번 가면 어떤지 알고 있으니 / 다시 보기 어려우리라 여기면서도 /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 나는 한숨 지으며 이야기하겠지요 / 두 갈래 길이 숲속으로 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 사람이 덜 밟은 길을 택했고 / 그것이 내 운명을 바꾸어 놓았다라고.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문학을 통해 우리가 꿈꿀 수 있는 세계를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 윤선도는 '사람'인 친구를 하나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외로워진 순간, 비로소 자연이라는 소중한 벗들의 의미를 알아채지 않았을까. 그는 자연 속에서 사람보다 나은 것, 사람을 뛰어넘는 자연의 속성을 발견했다. 인간을 뛰어넘은 자연과 만나는 일은 곧 인간 본연의 아름다움을 되찾는 일이기도 하다. 윤선도는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자연과의 아름다운 커뮤니케이션을 꿈꿀 수 있었다. 우리는 어쩌면 동물의 목소리, 인산이 아닌 다른 생물체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주변의 화려하고 떠들썩한 미디어의 전원을 가끔 꺼놓을 필요가 있다.
*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앟은 것처럼. /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 은유는 우리 삶을 더욱 풍요롭고 아름답게 가꾸는 '언어의 비료'이기도 하다. 어떤 은유를 얼마나 창조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매번 다른 빛깔과 향기로 거듭난다.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은유가 가진 창조적 힘을 이렇게 예찬했다.
"은유는 아마도 인간의 가장 다산적인 잠재력일 것이다. 은유의 효력은 마술에 접해 있다. 그것은 신이 인간을 만들었을 때 그의 피조물의 몸속에다 깜빡 잊어버리고 놓아둔 창조의 도구처럼 보인다."
* 조지프 켐벨, 신화와 인생 :
발랑하는 시간은 긍정적인 시간이다. 새로운 것도 생각하지 말고, 성취도 생각하지 말고, 하여간 그와 비슷한 것은 절대 생각하지 마라. 그냥 이런 생각만 하라. "내가 어디에 가야 기분이 좋을까? 내가 뭘 해야 행복할까?"(....) 룰렛 공은 결코 '아, 여기 내려앉은 것보다는 차라리 저기 내려앉아야 사람들이 나를 더 좋아할 거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남들이 날 어떻게 생각할까?'하는 생각을 치워 버려야 희열이 온다.
*황선미, 마당을 나온 암탉:
"엄마, 내가 떠나길 바래?" 잎싹은 초록머리의 눈을 들여다보며 고객을 끄덕였다. "물론 가야지. 네 족속을 따라가서 다른 세상에 뭐가 있는지 봐야 하지 않겠니? 내가 만약 날 수 있다면 절대로 여기 머물지 않을 거다. 아가, 너를 못 보고 어떻게 살지 모르겠다만, 떠나는 게 옳아. 가서 파수꾼이 되렴. 아무도 너만큼 귀가 밝지 못할 거야." "나는 안 떠나."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초록머리가 잎싹의 날갯죽지에 머리를 묻었다. "하고 싶은 걸 해야지. 그게 뭔지 네 자신에게 물어봐." "나는 괜찮아. 아주 많은 걸 기억하고 있어서 외롭지 않을 거야." 초록머리가 소리를 죽여 울었다. 잎싹은 가만가만 등을 어루만져 주었다. (...)"엄마는 나랑 다르게 생겼지만, 그렇지만, 엄마 사랑해요."
*조지 오웰, 1984 :
"윈스턴, 자네는 도안에 나타난 하나의 결점과도 같아. 자네는 지워버려야 할 얼룩 같은 거야. 우리는 과거에 박해를 일삼던 무리들과는 현격하게 다르다고 일러주지 않았나? 우리는 소극적인 복종에 만족하지 않아. 그렇다고 철저하게 비굴한 순종도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라네. 자네가 우리에게 항복한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자유의지에 의한 것이어야 하네. 우리는 이단자가 우리에게 단지 저항한다고 해서 그를 제거하지는 않아. 사실 그가 우리에게 저항을 계속하는 한 우리는 절대로 그를 제거하지 않는다네. 우리의 목표는 그를 전향시키는 것이라네. 우리는 그의 속 마음마저도 빼앗아버려 그를 교화하지. 그의 모든 사악한 생각과 모든 환상을 태워 그를 우리 편으로 만드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