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과 부활은 하나 공통점을 보는 사람이 참된 종교인 불타사 현성 스님 어린아이처럼 눈이 초롱초롱하다. 일흔 살을 훌쩍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을 보고 있으면 총기가 느껴진다. 올해로 8년째 매년 5월 쯤 그를 만난다. 늘 같은 느낌이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지난 1993년, 60살이 되던 해에 입산한 현성 스님. 개인적인 삶이 아니라 종교적인 갈등에서 오는 해답을 찾기 위해 출가했다. “종교인들이 잘못하는데 벌을 받지 않는 거야. 자신들은 잘못한 일을 하며 다른 사람들에게는 하지 말라고 해. 그런 모습을 보며 종교가 점점 내게 멀어졌어. 목사, 신부님도 찾아갔어. 그런데 해답을 얻지 못했어. 그때가 55살쯤으로 갈등이 몹시 심했어. 그러던 어느 날 한 스님의 법문을 듣게 됐는데 순간 내 머리 속으로 ‘앗 그거다’라고 스쳐가는 것이 있었어. 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정확하지는 않았어. ‘그거’를 찾기 위해 출가한 거야. 그리고 61살 되던 해 동국대에 편입했어. 졸업 무렵 깨달았어. 인과 법이야. 그때 제대로 듣긴 들었던 거야(웃음)….” 불타사에서 현성 스님을 만났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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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사와 현성 스님의 인연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서부에서 동부로 여행 중이던 현성 스님은 지나가는 여정에 시카고에 들렀다. 당시 시카고에는 주지 스님이 없었다. 그런 불타사에 스님은 머물렀다. 그리고 시카고 한인들과 인연을 맺기 시작했다. 올해가 10년째다. 불타사는 창립 37주년을 맞이했다. 현성 스님과 인연이 닿은 지 8년 만에 처음 가족에 대해 여쭈어 봤다. 가족관계는 물어보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가족은 없으세요.
“그런데 가족 관계는 물어보는 것이 아니여. 물어보는 대상에 속하지 않아. 지금까지 얘기는 했지만 그쪽은 물어보는 대상에 안들어가는 거여. 개념 자체가 그 전의 인생에서 이쪽에서 새 인생이 시작하는 것이야. 연속으로 보지 않아. 끊어진 것이지. 그런데 내가 40대 접어들면 그당시 가족들에게 내가 없이도 살 수 있는 모든 것 정리하기 시작했다. 인식도 그렇게 시켰다. 그러고 보면 나라는 사람이 전생과 인연이 깊은 것 같다. 지금 어떻게 되는 가는 모른다. 나라는 것과 다 끊어졌다. 각오도 그렇게 시켰고…. 한참 하나님만 알고 있을 때.”
▶언제 출가하셨어요.
“1993년 60살이 되던 해 한국에 갔다. 그게 입산이야. LA에서 숭산 스님을 만났어. 55살쯤 갈등이 점점 심해졌어. 개인적인 삶 자체는 괜찮았어. 골프장 회원권, 좋은 차, 좋은 집, 친구 거기에서 이게 뭔가. 이게 뭐가 다른 가. 뭐가 다른지 모르겠어. 이게 도대체 뭔가 하는 생각을 했었어. 다른 종교에는 없었다.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의 잘못과 그에 대한 벌도 갈등이었어. 그런데 한 스님이 무슨 말 하는데 내 머리 속을 확 지나갔다.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어. 지금까지 왜 종교인들이 벌을 지었는데 벌을 안주는 가에 대한 답을 받았어. 근데 그게 뭔지를 몰랐어. 이해는 했다. 그 답을 찾으려고 절과 불교 교리를 찾았어. 그때 숭산 스님을 만났어. 참선하고 깨치면 다 안고 했어. 그래서 화계사로 가서 참선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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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으셨어요. “그래도 안 찾아져 동국대에 간 거여. 학사 편입으로 한 학기만 다니면 될 줄 알았어. 61살 때다. 그런데 졸업 무렵 ‘인과 법’이라는 것을 깨달았어. 하나님이 있어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하며 그 잘한 결과가 오고 악한 일을 하면 과오가 온다는 것이여. 그걸 알려고 돌아다닌 것이 5~6년이 걸린 거여. 그것도 한마음으로 가서 그 정도 걸린 거야. 결국 내가 한일은 내가 과오를 받는 것 야. 내가 잘못하면 내가 받고 네가 잘못하면 네가 받는 거여. 그걸 찾은 거야.” ▶모든 종교가 기도를 해요. 기도의 본질에 대해서요. “나도 옛날에는 기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어. 기도란 그동안에 있었던 것을 다 녹여버리고 본래 마음으로 돌아가는 거야. 진심으로 해야 해. 컴퓨터로 말하면 여러 가지 데이터가 많다. 데이터 속으로 하나하나 깊이 들어가야 원판에 도달할 수 있지. 원판에 가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할 수 있어. 다시 말하면 다 지워야 밑에 베이스만 남아 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 다 할 수 있다. 그거야. 밑에 있는 진심된 마음 그 참마음이 기도의 본질이야. 사회에서도 미술가, 사업가 등 어느 계통이든 역사적으로 큰일을 한 분들은 이 참마음에 닿은 사람들이다. 제일 밑으로 가면 새로운 것을 세울 수 있어.” ▶미주 한인사회에서 기독교 외에는 마이너 같은데요. “몰상식한 일이 있어. 그럼 내가 젊잖게 얘기하지. 근데 괜찮다. 그 사람이 기독교 대표하는 것 아니고 기독교를 바르게 배우지 않았다고 생각 해. 그런데 그건 큰 문제가 안돼. 믿음을 갖지 않은 사람이 더 위험해. 거기도 안가고 사회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야. 종교를 가진 사람은 그곳에 가면 도와줄 분이 있지만 그들에게는 없어. 어떤 종교도 괜찮다. 불타사는 그런 분들이 포교 대상이야. 그들에게 의지처로 불타사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중요해.” ▶그럼 종교적 갈등은 어떻게 보세요. “종교 문제는 차이점을 부각시키기보다 공통점을 보려고 노력해야 해. 좋은 점이 아니라 공통점. 예를 들면 서로 착하게 살아야 된다는 것, 죽이지 말라는 것이 공통점이야. 기독교는 부활절이 있어 예수님이 탄생했다. 우리는 성도절이 있고. 깨달음이 있어 부처님이 있다. 어떻게 부처님 위대하게 됐는가, 예수님이 유일하게 됐는가 부활과 깨달음이다. 어떻게 보면 공통점이고 어떻게 보면 차이점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서로 대립될 것 없다. 맛있는 것 맛있고, 피곤한 것 피곤한 것이 공통점이야.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큰 문제없어.” ▶한 집안에서도 종교가 틀린 경우가 있어요. “이기주의가 법적으로 보장된 사회가 미국이야. 민주주의 근본은 개인주의인데 지금 이기주의로 변했어. 개인 이기주의가 집단으로 그리고 국가 이기주의가 됐어. 그런데 그것은 근본은 종교 이기주의에서 비롯돼. 종교이기주의가 이것을 만들어갔어. 개인 이기주의의 뿌리는 종교 이기주의야. 즉 종교 이기주의가 있어 개인 이기주의가 용납됐어. 그래서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된 거고. 이를 대처할 수 있는 것이 불교에 있어. ‘무아사상’이야. ‘나는 없다’ 이 말은 내가 하늘에서 똑떨어져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부모 있어 내가 있는 것을 알아야 해. 인간적이 관계에서 본 것이야. 또한 세상에 나오면 숨을 쉬어야 하지. 여기 공기가 없으면 태어날 수 없어. 여기서 자연과 나의 관계가 성립돼. 그것 없이 내가 존재할 수 없다는 것. 인간관계, 자연 관계를 초월한 내가 없다는 것이 무아다. 이것을 인식 할 때. 내가 존재할 때 네가 귀중한 존재요, 너도 마찬가지고. 이 물건도 내가 존재하는데 귀중한 존재라는 거야. 이게 부처가 많은 이유다. 전부다 부처다. 모든 만물의 존중사상이 불교다. 이렇게 이기주의 사상에서 무아주의 사상으로 바뀔 때 가정과 사회 국가가 편안해져. 이것을 인식시켜주는 것이 불타사 현성 스님의 큰 과제여.” ▶지금 불타사에서 중점 두는 부문은요. “젊은이들이 인생의 갈림길에 서 있어. 늘 행복과 불행이라는 늘 갈림길에 있지. 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정신적으로 건강한 약을 줘 그때그때 자기에게 일어나는 일을 잘 해결하는 능력을 가질 까. 둘째는 어린이들에게 정신적인 인성교육을 잘 시켜 10대 청소년이 됐을 때 문제없이 잘 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해. 청소년을 위한 한국적인 문화행사 필요해. 그것을 제공하려고 해. 북, 장구를 치거나 한국적인 음악을 제공하는 것. 왜냐하면 음악에 한국적인 정서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적인 음악, 가사 안에 한국적인 정서가, 음률에는 혼이 들어가 있다. 그렇게 한국을 알려야 해. 한국역사를 통해 한국을 알리는 것을 참 어렵다. 한국 가사 외우면 한국어 공부하는 것이야. 그동안 내 생각이 5월7일 결정적으로 나타나는 것이야. 앞으로 더 확대할 거야. 현지인들에게도 똑 같이 들어가면 한국문화를 더 알릴 수 있어.” ▶처음 오셨을 때 불타사 모습은요. “노 보살들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었어. 스님도 안계시고…. 중추 세력이 없었지. 내가 잘 모셔야겠다고 생각했어. 첫 번째 문제가 건물이 노화돼 불사를 일으켜야겠다고 생각했고 뜻 밖에 신도들이 호응을 많이 했다. 5년 뒤 돈을 모았고 옮기느냐, 신축하느냐가 문제였어. 옮기자는 의견이 많았지만 있어야겠다고 판단했다. 2007년 문화행사와 교육을 위해 동방 교육관을 구입했다. 여기 살면서 느낀 것은 한인 동포들이 서로가 잘 모른다. 끈기가 없다. 유대관계가 너무 약해. 한민족은 끈기. 정이 있다. 정으로 통했다. 정은 없고 이해관계로 살고 있어. 이해관계로 살면 괴로운 일 많이 생겨. 정이 있어야 한다. 여기서 탈피해야겠다고 생각해 기도를 시작했다. 사람들이 불편할 때 불타사를 찾아 기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줬다.” ▶서버브로 이사 갔으면 포교가 더 커졌을 것 같은데요. “사고팔고 타이밍 어렵다. 그러다 보면 신도들의 마음이 어려워져. 어느 쪽으로 가도 덕 보는 사람이 있고 손해 보는 사람이 있는 거야. 그때 문제가 “서버브로 가면 우린 어떻게 해요”라고 말한 사람들이 노 보살들이었다. 불타사 경우 노 보살들의 경제적 지원은 약해도 명맥적으로는 그들이 지키고 있었어. 그들로 인해 버텨나갔다. 믿음 하나로 있었던 거여. 내가 와서 가면 배신행위다. 더 중요한 것은 위치가 아니다. 아무리 위치가 좋아도 스님이 마땅치 않으면 힘들지. 중요한 것은 스님이여. 내가 신도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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