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George Street
“Andrew! 일찍 나오셨어요. 날이 화창해서 좋은 느낌인데요.”
“John! 활기 넘치는 얼굴을 보니 나도 기운이 나요. 아, 저기 R0bert가 기다리고 있네. 어이! R0bert!”
Andrew의 친구 R0bert 변호사 사무실에서 셋이 만났다. 아래층엔 사무실로 위층엔 가정집으로 쓰는 2층 건물이었다.
서글서글해 보이는 R0bert도 Andrew와 결이 같아 보였다. 모닝커피를 R0bert가 커피머신에서 한잔 씩 주문받아 내놓았다.
민재는 라떼, Andrew는 카푸치노 그리고 R0bert는 롱블랙을 들었다. 커피를 내리는 R0bert의 정성 어린 손길과 얼굴을 보면서 민재가 더욱 친밀감을 느꼈다.
“아, 훌륭한 바리스타시네요. 홈 메이드 커피라 유달리 맛이 독특하고 좋은데요.”
민재의 칭찬에 R0bert가 머리를 긁적이며 예의 좋은 미소를 지었다. Andrew도 흐뭇한 얼굴로 사발 머그잔을 두 손으로 바쳐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R0bert! 어제 잠깐 말했다시피 여기 유능한 젊은이를 소개하네. 어제 웰링턴 출장 다녀오다 공항에서 만난 택시 운전사, John이야.
아니지. 5년 후, 미래 택시 사장님, John이네. 10년 후면 문화 버스 사장님, John이셔. 그동안 안 팔리던 내 집을 샀어. 안목이 아주 뛰어나.
나야 물론 엄청 고맙지. 나도 John에게 보이지 않는 도움을 주려고 R0bert를 만나는 걸세. 앞으로 비즈니스 관련 일 하다 보면 알 거야.
향후, 자네의 법률적 도움도 긴요할 거고, 자네도 많은 영업 수익을 받을 거야. 사업가적 기질이 남달라 보이는 John을 잘 부탁하네. 난 웰링턴에 이사 가서 거기서 자리 잘 잡을 테니까.“
Andrew의 깊은 관심과 정성 어린 도움 의지에 민재 가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R0bert가 Andrew로부터 받은 부동산 계약서를 확인하고, 필요사항을 기재 후 서명하였다.
R0bert가 계약서를 복사한 후 한 부씩 민재와 Andrew에게 주었다. 민재에게 R0bert 명함도 한 장 건넸다. 셋이서 약간의 담소를 나누고 일어섰다.
근처에 있는 민재 거래은행, ANZ에 들렀다. 은행에서 별도의 융자를 받는 게 아니어서, 양도받을 상대 은행 계좌를 확인 기록 후 진행하게 하였다.
미리 확보된 자금에서 날짜별로 계약금과 잔금을 주기로 한 대로 하면 됐다.
은행을 나오며 민재와 Andrew가 진한 악수를 했다. 타카푸나 허스트미어 로드에 있는 카페에 들러 간단한 브런치를 시켰다. 민재는 샌드위치를 Andrew는 반숙 달걀 요리를 들었다.
Andrew가 민재에게 서류 하나를 건넸다. 가지런하게 트리스트램 집에 관한 생활 정보가 담긴 안내서였다.
살면서 요긴하게 필요한 사항들이 정갈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관공서 관련 일들, 쓰레기 수거 관련 사항, 주방 싱크대와 화장실 문제시 어떻게 하는가.
집 수리 관련 도움받을 업체, 이웃집 사람 소개, 필요하면 연락하고 일할 회계사, 경찰, 패밀리닥터 소개까지 자상하게 적어 놓았다.
뒤쪽 터 코너에 지어놓은 창고. 그 안에 보관중인 집 가드닝 잔디깎이와 사다리 발판 대, 그리고 텃밭 가꿀 때 쓰는 농기구도 두고 가니 잘 활용하라고. 매우 감동적이었다.
참 좋은 분 만났다고 감사한 마음을 민재가 Andrew에게 전했다. 그냥 헤어지기가 그래서 옆 가계, 한국 가게에서 홍삼 선물 세트를 사서 드렸다.
***
민재가 든든한 마음으로 출근했다. 새로 마련한 노스쇼어 트리스트램 주택에서 나오는 기분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남의 집에 세를 사는 렌트 생활 청산 후, 내 집을 갖는다는 게 얼마나 자유로운가. 거기다 몸채는 다른 사람에게 렌트까지 준 상태니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민재가 거주하는 독립적 공간인 사랑채와 렌트수입이 나오는 투자처인 몸채를 가졌다. 여태껏 느껴보지 못한 풍족함에 마음이 저절로 여유로워졌다.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게 복이라 여겨졌다. 그런 출근길에 택시 잡이 쉬지 않고 이어졌다. 소변보러 갈 시간도 없을 정도였다.
모든 날이 다 그런 건 아니다. 안 되는 날은 지루하기 그지없다. 민재가 택시 운전하며 터득한 것이 있었다. 잘 될 때는 고삐 늦추지 말고 그대로 이어가는 거였다.
오전에만 오클랜드 공항을 두 번 다녀왔으니, 좀 쉬어갈 생각이었다. 스카이 타워, 스카이 시티 호텔 앞에 손님을 내려놓자 콜잡이 울렸다.
빅토리아 스트리트 힐튼 타워에서 온 콜잡이었다. 택시를 부른 손님 이름이 Sunny로 떴다. 손님을 태우러 바로 택시를 돌렸다.
서둘러 힐튼 타워 앞에 이르자 현관에서 기다리고 있던 팔등신 미녀가 캐리어를 끌고 올라탔다.
“Good afternoon. Sunny. Where would you like to go?"
"Lovely today. Could you go to 18 George Street!"
민재가 화들짝 놀라며 옆에 탄 Sunny를 슬쩍 훑어봤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어디 가느냐 물으니 대뜸 한다는 말이 18 죠지스트리트! 라니?‘
아무리 영어 발음이래도 민재에겐 한국말로도 들렸다. 시침 뚝 떼고 딴청부리는 듯한 미녀에게 민재가 눈을 흘겨보며 언뜻 생각이 스쳐 갔다.
‘커리어 우먼이 어찌 그렇게 노골적으로 발음을 하는가?’
민재가 다시 물었다. 어떤 죠지 스트리트냐, 오클랜드에는 죠지스트리트가 여러 개 있다.
가까이는 파넬 죠지, 아래로는 엡섬 죠지, 저 북쪽 멀리는 오레와 죠지가 있는데.
Sunny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중 하나를 골라 자신 있게 외쳤다.
“Panel George!”
무슨 퀴즈 문제 푸는 것도 아닌데도 정답 말하듯 당당하게 말하는 모습이 활달해 보였다. 민재도 Sunny 대응에 약간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전 John이라고 해요. Sunny는 커리어 우먼 같으신데요.”
“네, 비즈니스 우먼으로 일하고 있어요. 지금 그 일로 손님 집에 찾아가는 거예요.”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호주에서 온 유명한 비즈니스 우먼이었다. Sunny가 대시보드에 놓인 민재 명함을 한 장 뺐다.
“John은 고국이 어디예요?”
“알아 맞춰보세요.”
“저팬?”
“아니요.”
“그럼 차이나?”
민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민망했던지 Sunny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조심스레 말했다. 이번에는 비즈니스 우먼 촉을 살려야 한다는 표정이었다.
“코리아?”
‘네. 서울에서 왔어요.“
“아. 지난주 서울에 다녀왔는데요. 엄청나게 발전하는 생동감이 넘쳤어요.‘
“그렇지요. 전 서울 떠나온 지 오래돼서 지금 가보면 생소할 거라 봐요.”
민재가 파넬 지역으로 택시를 몰았다. 18 죠지스트리트에 이르렀다.
“Here we are! 18 George Street Panel"
"No. This area."
18 죠지스트리트에 다 왔다고 하는데, 여기가 아니라고? Sunny가 안 내렸다.
대뜸 한다는 소리가 또 가관이었다. 민재가 듣기에는 민망스러웠다.
“이 죠지스트리트가 아녜요. 예전에 한번 와 본 적이 있는데요. 달라요. 혹시 딴 죠지 스트리트가 있나요?”
라고 묻는 게 아닌가? 민재가 잠시 주춤하며 생각하다가 바로 직구를 던졌다.
“아따, 딴 George Street라니요? 예. Judge Street가 있기는 한데요.”
“그럼 그 쟈지 스트리트로 가 봐요.”
민재가 기선을 바꿔 Judge Street 쪽으로 달렸다. Judge Street 시작점부터 주춤주춤 확인하다 18번지 Judge Street에서 택시를 세웠다.
민재가 18 번지 Judge Street에 다 왔다고 하자, Sunny가 또 고개를 저었다.
이 18 쟈지도 아닌데요. 기억에 분명히 18 죠지가 있었는데요. 하는 바람에 민재가 택시에서 내려 하늘을 한번 쳐다봤다. Sunny도 따라서 내렸다. 조금은 미안한 기색이었다.
“그럼. 18 George Street에 사는 분한테 전화 한 번 해봐요. 어떤 게 맞는지 물어 보세요.”
Sunny가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걸었다. 응답이 없었다. 그러더니 다시 민재에게 물었다.
“정말 미안한데요. 혹시 18 죠지와 비슷한 다른 18 죠지는 없을까요?”
“내가 무슨 18 George를 만드는 요리사도 아닌데, 또 다른 비슷한 18 George를 어떻게 만들어내요?”
민재가 한참 땅을 쳐다보다가 언뜻 생각난 듯 반가운 표정으로 Sunny를 쳐다봤다.
“혹시 모르는데요. 18 George와는 상당히 다른 게 하나 생각났어요. Saint Georges Bay Road예요.”
“그래요? 그럼 마지막으로 Saint Georges Bay Road로 가 봐주세요.”
민재가 택시에 올라타며 한국말로 중얼거렸다.
“Saint Georges면 성(聖)죠지인데 성스러운 죠지라니? 별일이 다 있네.”
“무슨 말 하는 거예요?”
“참 희한한 일도 다 본다고요. 오클랜드에서 택시 운전 오래 해왔는데요. 오늘 같은 날은 처음이라서요. 18 George는 아니다. 18 Judge도 아니다.
마지막으로 18 Saint Georges Bay Road라도 됐으면 좋겠어요. 부디 이번에는 Sunny가 찾는 곳이길 기대할게요.”
민재가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부디 이곳이 Sunny가 찾는 George이길 바랬다. 드디어 18 Saint Georges Bay Road에 도착해 시동을 껐다.
“John. 맞아요. 이 18세인트 죠지스베이 로드가 맞아요. 수고하셨어요.”
택시 요금이 $25 나왔는데, Sunny가 미안했던지 $20을 팁으로 얹어주었다. 동시에 지갑에서 비즈니스 명함을 한 장 꺼내 주었다.
혹시 나중에 관련되는 일 있으면 Sunny 자신한테 연락하라고 했다. 자기도 택시 부를 일 있으면 John을 부르겠단다.
민재가 부트(트렁크)에서 캐리어를 꺼내 Sunny 손에 들려주었다.
얼굴이 환해진 Sunny가 야수를 향해 손을 흔들며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미녀와 야수의 엄마 찾아 삼만리 여정(?)도 우여곡절 끝에 잘 끝났다.
파넬에 죠지 비슷한 이름이 셋이나 되다니. 겨우 찾았다. 미녀와 죠지 스트리트?! George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질 않고 계속 이어졌다.
민재가 다음 달, 호주 시드니에 다니러 갔다. 거기서 그만 졸도하고 말았다. 세상에 그렇게 큰 것은 처음 봤으니까. 거기 가니 엄청나게 큰 George가 있었다.
그 이름 앞에 King이 붙어있었다. 이름하여 King George Street! 크기가 1차선인 오클랜드 파넬 죠지 스트리트와는 비교가 안 됐다.
무지무지하게 거시기했다. 놀라지 마시라. 무려 8차선이나 되는 대왕 죠지 였으니까.
외국 나와 살다 보면 우리말과 영어 발음에서 오는 묘한 뉘앙스에 웃을 일이 많았다.
***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빠!!!~”
클론의 신나는 노래가 택시 안에 울려 퍼졌다. 오클랜드 남단 오타라에 진상같이 학을 떼는 인색한 손님을 내려준 뒤였다.
빈차로 돌아오는 길에 민재가 이 노래를 부르며 경직된 몸을 흔들었다. 마침 눈에 들어오는 미션 베이 해변가에 택시를 세웠다.
다소 기분이 업로드되는 느낌이었다. 택시 안에 켜둔 CD에서 계속 클론의 힘찬 목소리가 경쾌한 반주에 신나게 퍼져 나왔다.
“누구나 세상을 살다 보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어
그럴 땐 나처럼 노래를 불러봐 바다를 찾아가 소릴 질러봐!!!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빠!!!~~~~~“
만재가 택시에서 내려 바다 멀리 보이는 랑기토토 섬을 향해 두 팔을 높이 올리며 소리쳤다. 파도치는 미션베이 미네랄 기운이 민재를 휘감고 돌았다.
“야~호!” *
6화 끝(5,4525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