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재능은 있다.
드문 것은 그 재능이 이끄는 암흑 속으로
따라 들어갈 수 있는 용기다.
_에리카 종
인생을 살다 보면 꽤나 폼 나고 멋져 보이고 일반인이라면 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일들이 있다. 하지만 막상 해보면 아무것도 아님을 알게 된다. 해보지 않아서, 지레 겁부터 먹지 않았다면 누구나 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글쓰기가 그러하고 책 쓰기도 매한가지다.
책을 쓰는 데는 특별한 능력이 요구되지 않는다. 평범한 사람도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글을 쓰고 책을 내는 일을 특별한 사람만 하는 줄 안다. 이것은 명백한 오해이자 착각이며 자기 의심이다. 누구나 글을 쓸 수 있고 책을 출간할 수 있다.
얼마 전 속리산 문장대를 4시간의 악전고투 끝에 올랐다. 정상에 오르자 그 벅찬 감정은 이루 표현할 길이 없었는데, 막상 정상에 서니 초등학교 1,2학년 될법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그때 느끼는 그 비장감이란.
글쓰기나 책 쓰기도 별반 다를 바 없다. 중학생 정도의 교양과 학습 능력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마치 양사언의 시조 중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여라’와 비슷한 상황이다.
그럼 왜 중학생이라는 기준을 두었을까? 이 말에는 3가지 함의가 있다.
1. 중학생 정도의 어휘 구사력이면 글쓰기에 충분하다.
2. 중학생이 이해할 정도로 쉽게 써야 한다.
3. 중학생도 집중할 수 있게 재미있게 써야 한다.
나도 중학생 시절을 거쳤고 중학생 시절이 어떤 상황인지 잘 안다. 외계인들이 지구를 쳐들어오지 못하는 이유가 대한민국 중학생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맞는 말이다. 중학생 정도 되면 자신의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자기만의 가치관이 형성되면서, 글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다만 부족한 것은 경험일 뿐이다. 그것도 결국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지만.
* *
중학생 정도 수준이 되면 누구나 쓸 수 있다. 재능이 결여되어 있고, 능력이 부족하고, 자질이 없다는 말은 모두 틀린 말이다. 나도 주위에 어느 한 분야에 정통한 사람이나 남들보다 뛰어난 자질을 보이는 사람을 보면 그걸 책으로 써보시라고 권유한다. 그러면 다들 책을 어떻게 쓰냐고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충분히 쓸 수 있음에도 스스로의 감옥에 가둔다. 이래서는 쓸 수 없다. ‘나는 할 수 있다’고 외쳐도 될까 말까인데, ‘내가 되겠어?’하면서 자기 의심을 하는 순간 작가의 길에서 멀어진다. 작가로서의 자질이 충분함에도 마음대로 재단하고 결론지어 버리는 거다.
쓰기는 특출난 재능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쓰기의 자질은 중학교 교육을 이수한 정도면 충분하다. 요즘 중학교를 나오지 않은 사람은 없으므로 결국 누구나 쓸 수 있다. 간혹 글을 쓰기 위해서는 통찰이 오고, 영감이 오고, 아이디어가 샘솟는 그런 상태가 되어야 한다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은 많지도 않거니와 그런 재능은 문학 할 때 필요한 재능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재능은 아니다.
* *
중세에 만들어진 유럽 교회에 가보면 성화가 있다. 성화는 성경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당시 유럽에서 글자를 알고 성경을 읽는 것은 성직자를 포함한 고위층의 특권이었다. 일반 대중들은 성경을 읽는 것이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었다. 그들은 성화를 통해 성경을 배웠으며, 글을 읽고 쓰고 배우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후 구텐베르크의 활자가 나오면서 성경이 대중화되고 시민들이 글자를 알게 되면서 종교개혁과 시민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래서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을 ‘구텐베르크의 활자’로 뽑는데 누구도 주저하지 않는다.
이처럼 과거에는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이 극히 한정적이었다. 배운 사람만 썼다. 소위 지식인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 아무나 쓸 수 있다. 누구나 쓸 수 있다.
브런치나 블로그, SNS를 통한 글쓰기는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 책을 출간하는 방식 또한 유래 없이 발전하고 있다. 지금은 쓸 내용이 없어, 쓸 장소가 없어, 쓸 도구가 없어 쓰지 못하는 시대가 아니다. 누구나 작가의 길로 속속 진입하고 있다. 바야흐로 출판의 대중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 *
소위 ‘글발’이 없다는 한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나도 책을 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그 친구는 내가 책을 쓴다고 하자 그런 걸 써서 뭐 하냐고 핀잔을 주던 친구였다. 내가 책을 몇 권 출간하자 질문이 달라졌다. 쓴웃음이 나왔다. 내 대답은 ‘그냥 부담 없이 편하게 쓰라’였다. 무슨 거창한 대답을 듣기 원했는지 그 친구는 허탈하게 웃었다.
무슨 대단한 답변을 기대했는지는 모르지만, 정답은 본래 단순한 법이다. 어깨에 힘을 빼고 부담 없이 편하게 쓰면 된다. 왜? 내 글에 아무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내 글에 별 기대를 하지 않는다. 나도 블로그에 하루에 한두 개씩 꾸준히 올리지만 정작 읽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가 조회 수나 반응에 구애받지 않고 꾸준히 한 이유는 이걸 모아서 책으로 출간하자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축적의 힘을 믿었기 때문이다.
결혼 주례사를 진지하게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정작 주례를 의뢰받은 사람은 밤을 새워서 연습한다. 글쓰기도 매한가지다. 내가 쓴 글에 대해 유심히 읽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러니 편하게 쓰면 된다.
글을 쓸 때 필요한 건 오로지 자신감과 뻔뻔함이다. ‘뭐 어때?’를 외치며 과감하게 써보자. 처음부터 우리는 헤밍웨이가 될 수 없다. 김훈이 될 수 없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 그리고 약간의 테크닉, 꾸준함이 더해지면 글쓰기는 하루가 다르게 성장한다. 앞에서도 말한 스템(STEM)공식이다. 이런 공식이 말장난 같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동기부여의 좋은 수단이 되기도 한다. 강인한 멘탈로 꾸준하게 노력하면 못 이룰 일이 없다. 한때 화제가 된 <1만 시간의 법칙>도 이와 다르지 않다. 누구나 노력하면 쓸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