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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W : 믿음 BIW : 제물로 드리라 AG : 성도
TS : 믿음이란 자기 자신을 마치 제물이 된 것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하게 예배드리는 것이다.
엄마의 착각
고속도로에서 1차선은 추월 차선이고, 2차선은 주행 차선입니다.
추월 차선인 1차선에서 계속 운전하면 차선위반으로 걸릴 수 있습니다.
가능하면 2차선으로 운행해야 합니다.
엄마와 아들이 고속도로 추월 차선인 1차선에서 신나게 드라이브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바로 옆 2차선에서 승용차를 운전하고 있던 근사하게 생긴 남자가 엄마를 쳐다봤습니다.
그러고는 엄마에게 ‘V’자를 하더니 살짝 웃음을 흘리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엄마는 갑자기 흥분해서 아들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얘, 내가 아직 예쁘긴 예쁜가 봐. 저 아저씨도 엄마를 보고 승리의 V자를 보이고 가잖아?”
그 말을 듣고는 아들이 “엄마, 그건 1차선으로 타지 말고 2차선으로 운전하라는 신호였어.”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착각은 순간으로 행복을 안겨줍니다.
우리들은 순간의 행복을 주는 착각이 아니라 영원하게 지속적으로 행복을 주는 예수님 안에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영원한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영원한 천국으로 이끌어갑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그러기에 오늘도 우리 예수님을 잘 믿고 영원한 행복, 영원한 천국,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P4.
인정하거나 인정하지 않거나 상관없이 지구촌에 생존하는 모든 인류는 아담과 하와의 후손으로 형성되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서 흙으로 빚으시면서 사람을, 아담과 하와를 만들어주셨고, 그 후손들이 지구촌의 인구들로 번창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이래로 현재 지구촌의 인구가 87억 명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지구촌에 존재하는 나라는 200여 나라가 있다고 한다.
200여 나라가 존재하는가 하면 민족들은 너무나 다양한 민족들, 수백의 민족들을 형성하면서 존재하고 있다.
그러면 지구촌에 존재하는 범죄의 종류는 얼마나 될까?
또한 그 범죄를 다스리는 법의 종류는 얼마나 될까?
나라와 민족과 사회와 지역과 단체에 따라서 정해진 법과 규율이나 제도가 각각 다르다. 너무 많아서 헤아릴 수 없다.
어떤 정치적인 구조에 속한 국가인가에 따라서도 다르다.
왕정국가인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인가, 공산사회주의 국가인가에 따라서 법과 규율과 제도가 다르다.
민주주의 국가인가, 1인 독재국가인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종교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개신교 국가인가, 카토릭 국가인가, 이슬람국가인가, 불교국가인가, 흰두교국가인가, 토속종교국가인가에 따라서 다르다.
유럽인가, 아메리카인가, 아시아인가, 아프리카인가에 따라서도 다르다.
아시아 국가도 중동아시아인가, 중앙아시아인가, 극동아시아인가, 동남아시아인가, 서남아시아인가에 따라서 다르다.
어떤 기후권에 속한 나라인가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각각 위치한 형태와 나라와 민족과 종교와 문화에 따라서 범죄의 종류도 다르고, 그 범죄를 다스리는 법의 형태도 달라진다.
똑같은 모습이지만, 어느 지역에서는 전혀 죄가 되지 않는 반면, 어느 지역에서는 사형에 처할 만큼 중대한 범죄가 되기도 한다.
성경에서도 여러 다양한 종류의 죄가 존재한다.
그 여러 다양한 종류의 죄를 해결하기 위하여 드려지는 제사도 여러 종류가 있음을 소개하고 있다.
성경에서는 번제, 소제, 화목제, 속죄제, 속건제를 대표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번제는 모든 제사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번제가 없이 다른 제사가 존재할 수 없다. 번제가 있고 다른 제사가 함께 드려지는 것이다.
번제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폭풍이 부나 가리지 않고 매일매일 드려야 하는 제사이고, 아침저녁으로 드려져야 하는 제사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제사드릴 수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큰 은혜와 사랑을 받은 증표이다.
인간이라는 존재는 자신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어떤 신이든지 그 신을 의지하고 그 신에게 제사드리면서 살아가게 되어 있다.
각 가문, 가정, 민족마다 섬기는 토속신앙이 존재한다.
토테미즘이 되었건 샤머니즘이 되었건 고을마다, 가정마다 토속신앙을 가지고 그 토속신앙을 숭배하면서 살아간다.
본래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서 창조되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의 내면세계에는 신에 대하여 경외하며 제사드리는 행위를 통해서 위안을 받고, 그 신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중동지역에는 각 민족마다 섬기는 신이 따로 정해져 있다.
바알신, 아세라신, 아스다롯신, 그모스신, 몰렉신, 다곤신, 라신, 드라빔신 등등 다양한 신들이 각 민족의 대표성을 지니면서 숭배의 대상이 되어 있다.
그 유명한 헬라신화, 로마신화가 온갖 잡동산이 신들에 관한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지 않은가.
각 민족들은 각각 이름을 다르지만 일월성신, 곧 태양신과 달신과 별들의 신들을 섬기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일월성신을 섬기지 않고 살아가는 민족은 단 한 민족도 없다.
우리 한민족도 일월성신을 섬기면서 살아가는 민족이다.
신년이 되면 일출을 보러 먼 지역에까지 여행해서 일출을 보면서 한 해의 소원을 비는 행위도 태양신을 섬기는 모습이고, 정월대보름이 되면 보름달을 보려고 애쓰면서 보름달을 보면서 소원을 비는 행위도 달신을 섬기는 모습이고, 북두칠성이니, 샛별이니 하면서 각종 별을 보면서 소원을 비는 행위도 별신들을 섬기는 모습들 중에 하나이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특별히 선택하셔서 다른 민족들처럼 죽은 일월성신이 아니라 살아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고 섬기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민족으로 세워주시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생하게 살아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드리며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크나큰 은혜요 축복이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떻게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민족으로 살라고 말씀하시고 계실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드리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D4.
제사에는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성소가 있고,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제단이 있어야 한다.
지성소, 성소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에 임재하심을 상징하는 처소이다.
번제단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에 임재하시는 그 여호와 하나님을 향하여 제물을 드리면서 제사드리는 처소이다.
성소와 제단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불의 관계이다.
성소가 있으면 반드시 제단이 따라오게 되어 있다.
① 번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게 하라고 하시는 하나님.
9-13절에서 “번제물은 아침까지 제단 위에 있는 석쇠 위에 두고 제단의 불이 그 위에서 꺼지지 않게 할 것이요, 제사장은 세마포 긴 옷을 입고 세마포 속바지로 하체를 가리고 제단 위에서 불태운 번제의 재를 가져다가 제단 곁에 두고, 그 옷을 벗고 다른 옷을 입고 그 재를 진영 바깥 정결한 곳으로 가져갈 것이요, 제단 위의 불은 항상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 제사장은 아침마다 나무를 그 위에서 태우고 번제물을 그 위에 벌여 놓고 화목제의 기름을 그 위에서 불사를지며, 불은 끊임이 없이 제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할지니라.”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고고고고대 시대에는 꺼진 불을 일으키기가 용이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지금이야 얼마든지 아주 쉽게 불을 일으킬 수 있지만, 고고고고대 사회에서 꺼진 불을 다시 일으킨다는 것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번제는 상번제로서 매일매일 드려야 하는 제사이고, 하루에 두 번씩 오전 번제, 오후 번제로 드려야 한다.
다른 제사들도 번제단을 중심으로 제사를 드리게 된다.
제사는 제사를 올려드리는 정해진 시간이 있다.
그런데 번제단에 불이 꺼져 있으면 정해진 시간에 제사를 올려드릴 수 없게 된다.
이미 정해진 시간에 제사를 올려드리지 못하면 안 되는 것이다.
정해진 시간에 제사를 올려드리기 위해서는 번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고 항상 불씨가 살아 있어야만 한다.
만약에 번제단의 불씨가 꺼져서 정해진 시간에 제사를 드릴 수 없으면 제사장은 부정한 사람이 되어 죽게 되는 것이다.
번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제사장들이 순번제로 돌아가면서 책임을 지도록 한다.
번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기 위하여 제물의 기름이 계속 번제단에서 타고 있으면 쉽게 번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르게 되고 땔감을 넣어주면서 번제단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번제단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계속 타고 있어야 하는 것은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의미일까?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는 예배가 끊어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예배가 계속 드려져야 하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이라는 미명 아래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도록 금지시키는 것은 잘못된 일이다.
주님의 교회와 신앙인들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모습들이 멈추어지면 안 되는 것이다.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늘 성령의 인도하심과 감동케 하심을 따라서 살아야 한다.
생명체가 숨이 끊어지면 죽듯이, 신앙인들은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충만함이 끊어지면 영혼의 생명이 죽는 것이다.
영혼의 생명이 끊어지지 않고, 죽지 않고 생생하게 살아가기 위하여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와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서 성령의 감동하심에 민감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② 누룩으로 소제물을 변질시키지 말라고 하시는 하나님.
소제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갈 때, 기름과 유향과 소금은 반드시 가지고 올라가야 하지만, 누룩은 넣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누룩이란 존재는 발효하여 변질시키는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소제물을 발효시켜서 본래의 곡식을 다른 제품으로 변질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소제물에는 절대로 누룩을 넣지 말고 제사장에게로 가져오면 제사장은 한 움큼으로 번제물과 함께 번제단에서 태운다.
누룩이 나빠서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누룩은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이다.
누룩은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이지만, 누룩이 발효하여 변질시키는 특성 때문에 누룩을 넣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발효되지 않고 본래 모습 그대로 온전한 제품으로 제물을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빵을 만들든, 과자를 만들든, 부침개를 만들든지 온전한 고운 가루의 특성을 그대로 살려서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가야 하기 때문에 누룩을 넣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20절에서 말씀하시는 아론과 그의 자손이 기름 부음을 받는 날에 드릴 소제물에 대하야 말씀하고 계신다.
기름 부음을 받는 제사장은 일반 제사장이 아니라 대제사장을 가리킨다.
곧 아론이나 아론의 자손들 중에서 대제사장으로 기름 부음을 받을 때에는 반드시 고운 가루 1/10 에바의 소제물을 준비하여 하나님께 올려드려야 하는 것이다.
1/10에바의 소제물 중에서 절반은 아침 번제와 함께, 절반은 저녁 번제와 함께 번제단에서 태우면서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온전하게 여호와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하신다.
세상의 원리나 흐름에 따라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변하고 바뀌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향하여 일편단심으로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를 원하고 계신다.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이 신에게로 갔다가, 저 신에게로 갔다가 하면서 절개없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한 번은 절간에 갔다가 한 번은 교회에 갔다가 하면서 철새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요즘 정치인들처럼 한 번은 이 교회에 갔다가 한 번에 다른 교회에 갔다가 하면서 철새처럼 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서 여기 갔다가 저기 갔다가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올곧은 신앙인은 오직 한 길만을 고수하면서 꾸준하게 한 걸음 한 걸음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다.
이 교회에 갔다가 저 교회에 갔다가 하면서 신앙생활을 낭비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교회가 크든 작든 한 교회에서 꾸준하게 올곧은 신앙의 절개를 지키면서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과 복음만을 믿는 믿음으로 신앙생활하기를 원하신다.
③ 제물을 거룩하게 여기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소나 양이나 염소나 비둘기가 제물이 되어 하나님께 드려지기 전에는 짐승의 한 마리에 불과하다.
소제물도 하나님께 드려지기 전에는 다른 곡식과 똑같이 곡식에 불과하다.
그러나 제물로 선별이 되어서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지면 그 때부터는 하나님의 거룩함을 따라서 거룩한 제물이 되는 것이다.
성물이 되는 것이다.
일반적인 짐승에서 거룩한 제물로 승격되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제물로 드려지기 때문에 그 제물을 거룩하게 여겨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제사에는 제물을 온전히 불에 태워서 드리는 화제(火祭)가 있는가 하면 제물을 높이 들어서 드리는 거제(擧祭)가 있고, 제물을 흔들면서 올려드리는 요제(搖祭)가 있다.
화제는 제물을 불에 태우면서 그 냄새가 하나님께 향기로운 냄새가 되는 제사이지만, 거제나 요제는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들이 먹는 양식으로 허락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에 제사장들이 먹는 양식도 거룩한 지성물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범한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자신이 처한 위치에 따라서 각각 다른 제물을 준비하여 속죄제 제사를 드리는데, 일반적으로는 모든 제물을 불에 태워야 한다.
그렇지만 제사장이 먹어야 하는 제물도 따로 준비해야 한다.
제사장들이 먹어야 하는 속죄제 제물은 지극히 거룩하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번제물을 잡는 곳에서 속죄제 제물을 잡아야 하고, 제사장은 회막 뜰 거룩한 곳에서 먹어야 하고, 속죄제 제물의 고기를 접촉하는 자는 다 거룩하고, 속죄제 제물의 피가 묻은 사람은 거룩한 곳에서 빨아야 하고, 속죄제 제물의 고기를 토기에 삶았으면 그 토기 그릇을 깨뜨려야 하고, 유기 그릇에 삶았으면 그 유기 그릇을 정결한 물로 씻어야 한다.
제사장들은 속죄제 제물의 고기를 다 먹어야 한다.
거룩하신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 자체가 거룩한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의 삶 자체가 거룩한 삶이어야 하는 것이다.
신앙인의 삶 자체가 거룩하고 의롭고 정결하고 온전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신앙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 곧 언어나 행동이나 생각이나 마음가짐이 거룩한 삶이어야 하는 것이다.
신앙인이 가진 자존감, 정체성,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들이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저절로 하나님의 거룩한 삶에 위배 되는 삶을 차츰차츰 멀리하게 되는 것이다.
신앙생활하면서 처음부터 거룩한 삶으로 바뀌지는 않겠지만, 아주 천천히, 아주 느리더라도 서서히 자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거룩한 삶의 모양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삶이 성화(聖化)되어져 가는 삶이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으면서 하나님 중심으로, 말씀 중심으로 살아가는 길이 되는 것이다.
④ 피와 기름은 먹지 말라고 경고하시는 하나님.
23-27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소나 양이나 염소의 기름을 먹지 말 것이요, 스스로 죽은 것의 기름이나 짐승에게 찢긴 것의 기름은 다른 데는 쓰려니와 결단코 먹지는 말지니라. 사람이 여호와께 화제로 드리는 제물의 기름을 먹으면 그 먹는 자는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 너희가 사는 모든 곳에서 새나 짐승의 피나 무슨 피든지 먹지 말라. 무슨 피든지 먹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은 다 자기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라.”라고 말씀하신다.
피는 생명이기 때문에 사람이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짐승의 기름에는 온갖 질병의 근원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짐승의 기름을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어떤 종류의 피든지 피를 먹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에서 끊어진다고 말씀하신다.
곧 죽는다는 말씀이다.
피와 기름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죄를 범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될 자격을 상실하는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에게는 기름이나 피를 먹지 말라고 하시는 구약성경의 말씀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다 해방되어 자유함을 누린다.
피를 먹어도 되고, 기름을 먹어도 된다.
하지만 신앙인으로서 가릴 것은 가려야 하는 것이다.
가령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 하나님의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 된 육신에 담배, 마약, 술, 독약같은 것을 먹음으로 인하여 성령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을 파괴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또한 세상의 잡동산이 문화에 취하는 것도 주의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서 영혼이나 마음이나 육신에 해를 끼치는 것은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⑤ 제사장과 같은 사명자의 몫을 챙겨주시는 하나님.
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 중에서 제사장들이 살아갈 수 있는 몫을 허락해 주신다.
특히 화목제물 중에서 하나님은 제물의 일정부분을 제사장의 몫으로 챙겨주고 계신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는 특별한 기업을 주시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직임만을 수행하도록 하셨기 때문에 화목제를 비롯하여 하나님께 드려지는 제물들 중에서 일정부분을 제사장 가정이 먹을 수 있는 양식으로 허락해 주고 계신다.
세상의 기업을 갖지 않고 온전하게 주님의 복음, 십자가 보혈과 복음을 전하며, 영혼구원을 위하여 헌신하는 사역자들, 사명자들, 목회자들과 선교사님들의 생계를 교회가 책임져 주어야 하는 것이다.
신앙인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 주변에는 우리 신앙인들의 따스한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들이 너무 많다.
조금만 주변을 향하여 눈을 돌리면 따스한 한 마디, 따스한 커피 한잔으로 주님의 사랑과 복음을 나누고 베풀면서 따뜻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이들이 많다.
L4 & B4.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생하게 살아계시는 하나님께 제사드리며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입으면서 살았다면 우리 신앙인들은 어떻게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일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사드리면서 살아계시는 하나님께로 나아갔다면, 우리 신앙인들은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예배드리면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제사와 예배는 동일한 개념이다.
번제단에서 불이 꺼지지 말아야 하는 것처럼 주님의 몸된 교회에서는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예배가 끊어져서는 안 된다.
어떤 연유로도 주님의 몸된 교회가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상황이 되는 것은 안 되는 일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방역이라는 미명으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거나 축소시키는 일은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주님의 몸된 교회는 말씀과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예배에 집중해야 한다.
또한 제사는 반드시 제물이 동반되어야 하듯이 예배에도 반드시 헌금, 헌물이라는 제물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기본이 되고 가장 중요한 제사는 번제이듯이, 신앙인들에게는 주일낮예배가 가장 기본이 되면서 가장 중요한 예배가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번제를 제외하고 다른 제사를 말할 수 없듯이 신앙인들에게 주일낮예배를 빼고 다른 예배를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매일매일 아침저녁으로 올려드리는 번제를 중심으로 소제나 화목제나 속죄제나 속건제라는 제사를 드려야 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 그에 합당한 제사를 드리는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은 주일낮예배를 중심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면서 다른 예배들도 상황에 따라서 하나님께 예배를 올려드리는 것이다.
그러기에 신앙인들에게는 주일낮대예배가 대표가 되는 예배이다.
주일낮예배가 없이 다른 예배가 있을 수 없다.
주일낮예배가 가장 중요한 예배요 기본적인 예배이고, 저녁예배 또는 오후예배, 수요일예배, 금요일예배, 각기관 예배 등등 다양한 예배 형태가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일월성신을 섬기며 제사드리는 다른 민족들과 달리 생생하게 살아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드림으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고,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으면서 사는 민족이 되었듯이, 우리 신앙인들도 다른 잡동산이 신들에게 제사드리지 않고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향하여 예배드리면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어지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축복을 받으면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 신앙인들도 삼위 하나님을 향하여 예배를 올려드릴 수 있는 것 그 자체가 너무너무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다른 잡동산이 신들, 이단들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삼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다.
하나님 앞에서 정해진 정규 예배 시간뿐만 아니라 신앙인들의 삶 자체가 하나님께 온전히 올려드리는 예배의 삶이 되어야 한다.
로마서 12:1-2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신앙인들의 삶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지는 삶, 곧 생활예배자로 세워지는 삶을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요즘 세상살이가 그렇고 그러니까 우리들의 삶도 그렇고 그렇게 사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가 아니라 아무리 세상 사람들의 삶이 그렇고 그렇더라도 우리들은 삼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이기에 신앙인의 삶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신앙인으로서 부끄럽지 않게, 하나님 앞에서도 부끄럽지 않고,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거룩한 제물답게 살아가는 신앙인의 삶이 되기를 갈망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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