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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달마 스님의 인불사상
청정한 지혜는 미묘하고 원만하다
불교사에서 달마(達磨, ?~528) 스님보다 더 유명한 분이 있을까? 그는 인도의 향지국왕의 셋째 왕자였다. 양나라 보통 8년 정미(서기 527년)년 9월 21일에 중국에 건너와서 중국 선불교의 초조(初祖)가 되어 불교를 완성의 단계로 이끌어 올린 분이다. 그가 광주에 오자 광주 자사 소앙(蕭昻)이 주인의 예를 갖추어서 영접하고 나서 표를 올려 무제에게 알렸다. 무제가 그 보고를 받고 사신을 보내어 조서를 가지고 달마 대사를 맞이하여 10월 1일에 지금의 남경인 금릉에 도착하였다. 양무제가 물었다. “짐이 왕위에 오른 이후로 절을 짓고 경전을 쓰고 스님들을 양성한 일을 가히 다 기록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데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 달마 대사가 말하였다. “어찌하여 공덕이 없습니까?” “이러한 것은 다만 인간으로나 천상에 태어날 수 있는 작은 과보이며 모두가 빠져나가 버리는[漏] 원인일 뿐입니다.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아서 비록 잠깐 있으나 실다운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참다운 공덕입니까?”
양무제가 또 물었다. 달마 대사가 말하였다. “짐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양무제가 그 뜻을 알지 못하였다. 달마 대사가 갈대 잎 하나로 장강을 건너 위나라에 이르러 숭산 소림사에 머무시면서 얼굴은 벽을 향해 앉아서 종일토록 침묵하였다. 사람들이 그를 알지 못하고 ‘벽만 보고 있는 바라문’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진정한 공덕은 어디에 있으며 무엇이 성불의 바른 길인가? 달마 대사는 양무제가 그동안 해 온 불사로는 한갓 천상이나 인간에 태어날 수 있는 과보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무한한 생명과 무한한 광명의 대 해탈과 진여열반의 삶과는 그 거리가 십만 팔천 리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청정한 지혜는 미묘하고 원만하여 그 자체가 스스로 공적하니 이와 같은 공덕은 세상의 일로는 구할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은 본래부터 이미 해탈이 되어 있고 부처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말씀이다. 한량없는 복덕과 한량없는 신통을 다 갖추고 있어서 조금도 더할 것이 없는 그대로 완전무결한 존재라는 뜻을 설파한 것이다. 인간이 본래로 그렇게 위대한 존재거늘 하물며 양무제가 다시 물은 ‘성스러운 진리로서 제일가는 도리’가 따로 있을 까닭이 있겠는가. 역사적 만남의 두 사람의 대화는 자꾸 어긋나기만 한다. 그러나 그 어긋난 대화가 다행히도 먼 후대에까지 사람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바른 인식을 하게 하였으며, 불교를 바로 가르치고 수행을 바로 하게 하는 거울이 되고 지침이 되어 바른 견해[正見]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양무제와의 최후의 한마디 “모른다[不識].”라는 그 말은 달마 대사의 모든 저서와 주옥같은 말씀 중에서도 백미라고 할 수 있다. ‘모른다’보다 더 훌륭한 말이 어디에 있겠는가. 후대의 어떤 선사도 “오직 모를 뿐”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러고 나서 천하의 명화인 달마 대사가 갈대 잎 하나를 타고 양자강을 건너가는 일위도강도(一葦渡江圖)를 남기게 된다. 그 후 숭산 소림사에 와서 소림굴에 묵묵히 앉아 벽만을 쳐다보고 말없이 중생 제도의 세월을 기다린 것이다. 그것이 무려 9년의 세월이었다. 마치 강태공이 강가에 앉아 곧은 낚시를 드리우고 천하를 경영할 웅지를 품고 때를 기다리듯이.
황벽 스님은 자신의 저서 <완능록>에서 달마 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오신 이유를, “오직 한 마음의 이치를 전하여 일체 중생이 본래로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바로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하였다. 또한 “중생이 부처가 되는 데는 어떤 수행도 필요치 않다는 사실과, 다만 지금 자신의 마음을 바로 알아 자신의 성품을 볼 것이며, 달리 다른 곳에서 부처를 구하거나 찾지 말라.”라는 가르침을 남기기 위해서라고 정리하였다. 다시 내 식으로 간추리면 ‘사람이 부처님’, ‘당신이 부처님’ 이라는 인불사상(人佛思想)을 전파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
출처 :염화실 원문보기▶ 글쓴이 : 無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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