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일보
아파도 말못하는 그들
“병 보다 불법체류 알려지는 게 더 무서워”
입력 2008년 01월 14일(월) 안현주기자
‘광주 외국인노동자건강센터’ 최선필(51·피부과 전문의·사진) 소장은 매주 일요일 ‘희망’과 ‘절망’의 현장에 나선다.
“외국인 노동자라는 이유로 최소한의 의료혜택도 받지 못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지난 2005년 6월 첫 진료를 시작한 센터는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 매주 일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간 동안 ‘무료진료’를 하고 있다. “센터를 찾는 이들 중 절반가량은 불법체류자로 위험한 현장에서 일을 하는 경우가 많아 사고 위험이 큽니다. 또 낯선 이국땅에서 불안정한 생활을 하는 만큼 위장질환도 많습니다.”
대부분이 즉각적이고 꾸준한 진료가 필요한 환자들이지만 병원을 찾을 수 없는 불법체류자들은 아픔을 참는 수밖에 없다. 합법적인 노동자들도 회사 눈치 보느라 병을 키우기도 한다.
“손이 찢어져서 센터를 찾은 외국인 친구가 있었는데, 칼로 인한 상처였습니다. 불법체류자 신분이라 출혈이 심해도 병원도 못 가고 센터가 문 열 때까지 며칠 동안 기다리고 있었다는데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2년 전부터 큰 질환의 경우 신분에 상관없이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받아 기독병원과 전남대·조선대 등 인정기관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지만, 홍보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데다 신분에 대한 불안감으로 불법체류자들이 쉽게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있다.
센터는 광주·전남지역의 유일의 외국인 노동자 무료 진료소로 의학·한의학·치과 분야에서 의료인 40명과 간호사, 학생 등이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광주시와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지원을 받고 있지만 의료비에만 한정돼 있어 임대료 등은 센터 가족들이 십시일반 모아 내고 있다.
지역에서 유일하게 치과에서 보철 치료까지 하는 등 진료수준이 높아 해마다 환자가 늘고 있지만 자체적으로 비용을 감당하고 있는 실정인 것이다.
최 소장은 인권보호뿐만 아니라 외교적인 측면에서도 모든 외국인 노동자들이 쉽게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민·관이 함께 관심을 가지고 꾸준한 지원과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국으로 돌아가도록 한다는 것은 외교적으로 큰 우를 범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관광비자로 들어올 경우 에이즈, 성병, 간염 등의 질환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만큼 우리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손쉽게 의료 서비스를 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관심과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광주 외국인노동자건강센터 진료 및 후원문의 062-954-2292/안현주기자 ahj@kwangju.co.kr
입력 2008년 01월 18일(금) 안현주기자
지난 11일 광주시 광산구 하남산업단지에서 만난 베트남 출신 W(35)씨. ‘코리안드림’을 안고 3년 전 한국으로 건너온 그는 지난해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독감에 걸렸지만 선뜻 병원을 찾아갈 수 없었다. 자동차부품공장에 취업해 있던 그는 병원을 찾았다가 일을 할 수 없는 학생신분이 발각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결국 한국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동료가 사온 약을 먹고 이틀을 더 누워있어야 했다. 그에겐 유학생 비자기간이 만료되는 내년이 더 큰 걱정이다.
방글라데시 국적의 K(42)씨는 올해로 한국생활 6년째다. 산업연수생 비자로 입국해 불법체류자 신분을 산지도 벌써 3년째. 그는 광주의 한 축산물가공공장에서 무거운 자재를 나르고 뜨거운 기계를 다루는 위험한 일을 하고 있다. K씨는 항상 근육통 등 질환을 달고 살지만 지금껏 병원을 찾은 적은 없다. 합법적인 신분으로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던 시기에는 직장 상사의 눈치를 보느라, 지금은 불법체류 사실을 알려질 것이 두려워 병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만만치 않은 병원비 부담도 큰 것이 사실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에는 외국인은 합·불법체류에 상관없이 모두 산재보험은 적용받을 수있다. 그러나 일상적 의료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건강보험은 외국인등록 등 신고를 한 외국인 가운데 직장가입자 적용사업장에 근무하는 사람만이 대상이다.
이때문에 사실상 절반이상이 불법체류자 신분인 광주·전남지역 외국인 노동자들은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셈이다.
광주·전남지역에서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는 6천437명. 하지만 광주 외국인노동자센터 등의 전문기관들은 불법체류자 등을 포함, 1만여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광주 외국인노동자건강센터(이하 건강센터)가 지난해 6월 ‘100회 진료기념’을 맞아 내원환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비합법적 체류자는 전체 46.9%으로, 내원환자 2명 중 1명은 건강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불법체류자로 조사됐다.
합법체류자도 경영이 어려운 중소기업이나 막노동 현장에서 일하는 일용직 근로자가 많아 의료·산재보험을 모두 적용받는 경우는 드물었다.
진료환자 1천78명을 질환별로 살펴보면 보면 근골격계 질환이 전체 내원환자 중 40%로 가장 많았고 ▲호흡기 20% ▲소화기 18% ▲피부 10% ▲안과 6% ▲신경계 4% 순으로 나타났다. 증세가 심해 입원을 했던 사람도 29%나 됐다.
또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질병에 두려움은 많지만 진료비용 등의 문제로 병원 방문을 꺼리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들은 2명에 1명꼴로 질병에 대한 두려움이 컸지만 건강센터에서 치료를 받기 전 일반병원을 찾은 경우는 38%에 불과했고, 54.4%는 한 번도 병원을 방문하지 않았다.
병원비는 ‘많이 부담된다’는 대답이 40.5%로 높았고, ‘약간 부담된다’라는 답까지 합하면 10명 중 7명 이상은 ‘의료비가 부담된다’고 답했다.
특히 외국인 근로자들의 1일 평균 근로시간은 10∼12시간(59.5%)인 경우가 가장 많았고, 12시간 이상도 20.3%에 달했다. 근로환경에 대해서는 32.9%가 ‘조금 좋지 않았다’라고 답했다.
건강센터는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외국인 노동자들은 중소기업에서 플라스틱 제품제조와 프레스 사출 등의 단순노동에 장시간 종사함으로 인해 근골격계 질환 비율이 높고, 열악한 작업환경 때문에 호흡기 질환 발생이 잦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은 그들의 차지가 됐지만 막상 몸이 아파도 신분이나 비용 때문에 병원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주시의 한 비닐공장에서 일하는 아하마다(37·파키스탄)씨는 “한국에 오면 처음에는 공사판 등 힘든 곳에서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며 “몸이 아파 일을 못하면 당장 먹고사는 것도 힘들어지기 때문에 아파도 참고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