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오월이 시린 아이들이 있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이십 년이 넘은 예비교사 시절을 생각하면 어린이날 행사가 떠오른다. 3월부터 지역의 시민사회단체, 교육대학교 총학생회가 주축이 되어 미래세대 어린이들이 한껏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만들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몸을 쓰던 기억이 때문이다. 전쟁 장난감을 가져오면 고추 모종으로 바꾸어주고, 체육과 학생들은 손수레에 아이들을 태워주고, 과학과는 실험실 체험을, 미술과는 캐리캐쳐나 페이스페인팅을, 국어과는 어린이책 나눔을 진행하고, 전통놀이를 알려주기도 했었다.
모두, 옛날 일이다. 요즘 교대 어린이날은 돈을 받고 체험행사를 진행한다는 말에 깜짝 놀랐던 기억이 벌써 십 년 전이니 말이다. 90년대 중반의 낡고 낡은 고랫적 이야기라 이런 지면이 아니면 어디 가서 꺼내기도 민망하다. 그럼에도 2022년 5월 5일은 어린이날 제정 100주년이 되는 날이다.
거창한 기념행사가 곳곳에서 열리겠지만, 100년의 역사만큼 어린이날이 깊어지고 새로워지고 있는지 각자의 자리에서 묻고 답을 찾아보는 날이 되면 좋겠다. 특히 2022년은 코로나 팬데믹의 기세가 가라앉으면서 지난 2년의 상처를 드러내고 보듬는 새로운 작업을 시작해야 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일선에서 그런 일을 지휘하고 실행해야 할 지방자치단체장과 교육감을 선출하는 날이 6월 1일이다.
자사고와 특목고의 부활, 정시 확대, 교육특구 지정 등 나오는 뉴스가 벌써부터 시끄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로나 3년의 생채기가 어떻게 미래세대에게 흔적을 남기고 있는지 알리기는 해야 할 거 같아 좀 무거운 이야기를 꺼낸다.
우울증에 자해하는 아이
수업 중 보건실에 가고 싶다는 아이에게 무슨 일 때문이냐고 물었더니 소매를 살짝 들어서 딱지가 앉은 팔을 보여준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다녀오라고 하고, 보건실에 메시지를 보냈다. 아이 팔에 상처가 심한 거 같으니 학대 징후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안타깝게도 보건 선생님은 메시지를 뒤늦게 확인했고 아이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증거를 수집해야 할 거 같아서 열심히 관찰을 했지만 두드러지는 징후는 없었다. 학부모 상담에서도 특이점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교사는 아동학대를 의심했다. 며칠 후 또 다시 보건실에 가겠다는 아이에게 다녀오라고 하고 보건실로 전화를 했다. 결과는 아이가 말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는 것.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쪽지나 문자를 보내서 상담 약속을 잡을 수 있으니 연락하라는 말을 전체에게 하고 반소매 옷을 입는 시기가 되길 기다렸다. 그러나 그 후 상처를 볼 수는 없었다. 학대가 아이라 가짜 상처였나, 싶기도 했다.
한 달쯤 지나 아이의 어머니가 보낸 문자가 심상치 않았다. 아이들이 모두 하교하고 교실 뒷정리를 하고 난 뒤에야 무거운 마음으로 전화를 했다. 우울증에 자해가 심해서 상담 중이라는 이야기를 힘겹게 꺼내셨다. 순간 뒤통수를 맞는 듯했다. 초등학생이 우울증에 자해를 하고, 자살 징후까지 있다는 이야기가 가슴을 후벼 팠다. 학교생활에서 그런 낌새가 보였다면 충격이 덜했을지도 모른다. 언제나 쾌활하고 유쾌한 모습으로 장난도 잘치고 놀기도 잘하는 아이였다. 여러 사정이 얽혀있지만 긴 팬데믹 기간 동안 집에 홀로 고립되어 생활하면서 겪은 여러 어려움들이 우울감을 증폭시켰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가짜 싸인을 해 오는 아이
교실 안에서나 밖에서나 어디서든 친구들을 건드려서 소란을 일으키고, 수업 시간이나 쉬는 시간이나 누가 한 마디를 하면 열 마디를 해서 이야기를 삼천포로 끌어가는 아이가 있다. 하고 싶은 말은 따박따박 다 하지만 그 말의 논리적 허점을 파고 들면 제 분을 못이기고 화를 낸다. 보호자의 싸인이 필요한 이런 저런 동의서에는 아이가 쓴 것 같은 흔적이 보인다. 응답은 너가 하더라도 싸인은 부모님이 하셔야 한다고 해도 그렇다.
학교생활 문제로, 학습지도 문제로 보호자와 몇 번 통화를 하면서 알게 되었다. 아버지가 사고로 거동을 하지 못하는 한부모 가정이고, 가정에서 해야 할 일 대부분을 지원센터에 맡기고 있는 형편이라는 거다. 싸인을 하기도 힘든 아버지를 대신해 사인을 하면서 사정을 밝히지 못하는 아이는데 사인은 아버지가 직접 하셔야 한다고 하고, 알파벳 파닉스를 아직 해득하지 못했으니 눈높이 같은 방문형 영어 학습지라도 해서 맞춤형 교육을 해야 한다고 보호자에게 조언을 했던 교사 자신이 부끄러워졌다는 이야기다.
고립이 만들어낸 학습부진 혹은 지적 장애
걸음걸이가 조금 이상한 것 외에는 별다른 특이점이 없어 보이는 아이가 수업시간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3월인데 책가방에는 새학년 교과서는 한 권도 없고 지난 학년말에 받은 통지표 등이 그대로 들어있다. 글은 읽는데 발음이 부정확하고 내용에 대한 이해력이 낮다. 무슨 말을 하는데 교사가 이해하기 어렵다. 맥락에서 이탈하는 말이라 더욱 그렇다. 수학 시간은 더 괴롭다. 곱셈 구구가 되지 않는 상황임을 눈치 채고 2학년 2학기 문제를 주었다. 곱셈 구구가 문제가 아니라 받아올림이 있는 덧셈은 손가락의 도움이 있어야 하고, 받아내림이 있는 뺄셈은 손가락의 도움으로도 해결하지 못하는 상태다.
5학년 교실에서 수학시간에 1학년 2학기 수학 공부를 하는 아이는 태어나면서부터 경계선 장애 혹은 지적 장애가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누적된 미학습으로 인지발달이 이루어지지 않아 지적 능력이 떨어지게 된 것일까? 이런 사실을 보호자에게 알렸을 때 무척 당황해하셨다.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하시면서. 학교 복지사에게 연락을 하니 보호자 동의가 없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복지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은 이력이 없다하고, 학습 부진 담당자에게 연락하니 보호자 동의가 없어서 단 한 번도 학습 지원을 받은 적이 없다고 한다. 특수교사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몇 차례의 관찰과 진단을 거치고, 보호자를 설득하여 특수교육대상자 여부를 확인하는 진단검사를 받기로 했다.
수시로 바뀐 등교지침이 만든(?) 잦은 지각과 잦은 결석
새학년 등교 첫날 결석했다. 이유는 코로나 유증상, 별다른 증빙자료 없이 또 그 다음 주에 하루 결석, 등교하는 날은 매일 5-10분 지각이다. 중학교 교실이 아니라 초등학교 교실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다. 지각을 하지 말라고 했더니 지각할 거 같아서 학교를 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린다고 한다. 그래서 그 후엔 지각을 하더라도 학교에는 보내달라고 했다.
작년, 제작년에는 이렇게 지각을 하거나 학교에 오지 않아도 챙길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띄엄띄엄 등교였으니 교사도 정신 없고 학생들도 정신 없기는 매한가지였을 거다. 그런데 갑자기 매일 등교가 되니 이건 집에서 줌 수업하면서 게임하고 놀 수 있는 여유를 빼앗긴 기분이 드는 것일까, 학교 가기가 귀찮아진 아이들이 생긴 거다. 한 학급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학급에서 일어나는 문제라면 어떻게 해야 하나? 학교를 갈만한 곳, 즐거운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무엇이 이 아이들에게 학교를 가고 싶은 곳으로 느끼도록 해줄 수 있을까?
지금까지 기술한 몇 가지 사연은 빙산의 일각일 것이다. 이보다 더한 사연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 포진되어 있을 거다. 오늘은 어린이날, 어린이들의 세상이지만, 이 땅에는 새처럼 푸른 하늘을 날기에는 너무 무겁고, 냇물처럼 푸른 벌판을 달리기에는 너무 버거운 아이들이 아직도 여전하다. 그 아이들이 자랄 수 있도록 각자의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궁구해보고 그에 적합한 사람을 지방자치단체장으로, 교육감을 선출할 수 있게 지혜를 모으는 5월이 되길 바란다. 자기 자식에게 대물림해주기 위해 온갖 꼼수를 동원해 호의호식하는 자들에겐 제발 부끄러운 5월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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