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봉된 돌과 부활의 약속(2024.3.30.토요일)
마27:62-66
이 날은 예수님은 무덤속에 있고 제자들과 여인들은 슬픔에 잠겨있는 날입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다시 부활할 것이라는 소리를 들은지라, 빌라도 에게 가서 무덤을 굳게 지켜줄 것을 요청합니다. 무덤은 큰 돌로 막히고, 인봉을 하고 그리고 경비병들이 지키게 되었습니다. 이제야 비로서 원수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부활하시는 예수를 막을수는 없었습니다. 이 시간에는 무덤속에 있는 예수님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져 합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무덤속은 어두컴컴한 곳입니다. 아무런 빛도 들지 않는 캄캄함이 바로 무덤 속입니다. 어두운 곳에 예수님은 계셨습니다. 무덤속은 차가운 곳입니다. 차다 찬 냉기운이 있는 곳이 무덤입니다. 따듯한 기운이라고는 하나도 없습니다. 차디 찬 무덤 속에 예수님은 계셨습니다. 그리고 무덤 속은 인간 세상과는 완전히 단절된 곳입니다. 전혀 인간세상과 내통할수 없는 단절된 곳에 예수님은 계셨습니다. 역사상 가장 비애의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가 어둡고 차고 전혀 단절된 무덤속에 있던 날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고통과 무덤속의 비애를 삼위일체의 하나님이 모두 함께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부활의 약속이 말씀대로 성취되었음을 함께 짚어보고, 우리 신앙을 새롭게 해야겠습니다.
1.주님의 원수들은 주님의 부활 약속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60-63절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의 몸(body)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는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말씀이시며, 성삼위일체 중 제2위이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우리와 같은 육체를 가지시고 우리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탄생하셔서 마리아의 품에 안겨 구유에 뉘이신 때부터 십자가의 참혹한 고통을 받으신 때까지 우리와 동일한 연약한 육체를 가지신 분이셨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십자가 위에서 마침내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하나님께 영혼을 부탁하시던 예수님, 그는 이제 싸늘한 시신이 되어 누군가의 손에 의해 장사되어야만 했습니다. 만일 장사할 사람이 없으면 시신은 쓰레기 소각장인 힌놈의 골짜기로 던져질 운명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측근에서 따르던 제자들은 모두 도망치고 없었고, 주님의 시신을 돌볼 사람이 없던 때에, 하나님께서는 뜻밖의 인물을 준비하셨습니다. 마 27:57-61절에 아리마대 요셉입니다.
한편 예수님의 원수들은, 비록 예수님이 죽어 무덤에 장사되었지만, 여전히 호흡이 끊긴 시체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부활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본문 62-63절‘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이 약속은 전부터 주님께서 여러 번 주신 것입니다. 요2:22, 마12:39-40, 마 17:9절에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님의 원수들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이 단순히 영적 부활이 아니라 육체적 부활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으로서, 자신들의 가장 중요한 절기인 유월절에 이방인을 만나는 것이 법에 맞지 않는 줄 알면서도 떼를 지어 로마의 총독을 찾았습니다. 사안이 워낙 중대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빌라도에게 무엇을 요청했는지, 그것이 얼마나 비상식적인 일이었는지, 그리고 그 일 덕분에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이 더욱 견실한 증거를 갖게 되었다는 역설적인 내용들이 성경에는 꾸밈없이 담담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63-64절. 어느 누가 영적 부활을 막기 위해서 경비병을 요청하고 무덤의 돌문을 인봉하려고 하겠습니까? 도대체 어떤 사람이 영을 굴속에 인봉할 생각이나 하겠습니까?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이 주님의 제자로 부름 받은 자들에게 주시는 엄숙한 경고의 음성으로 받아 우리의 부활 신앙을 더욱 굳게 다지시기 바랍니다.
2.주님의 원수들은 주님의 부활 약속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조치를 취하고자 했습니다.
64절‘그러므로 분부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유혹이전보다 더 될까 하나이다’ 그들은 무덤을 단단히 인봉하고 사흘까지 경비병을 보내어 지키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체를 옮긴 후에 백성들에게 그가 부활하셨다고 선동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들이 무서워했던 것은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다는 말이 백성들 간에 미칠 영향력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도 마찬가지이고 누구나 죽음에 대해 불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그 죽음을 생명으로 정복하기를 원합니다. 사람이 죽은 후 다시 살아났다면, 그것은 세상의 모든 소식 중 가장 영향력 있고 능력있는 뉴스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예수께서 다시 사신 부활의 날로부터 정확히 그대로 일어났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부활은 신약 성경의 모든 말씀 선포의 핵심 주제가 되었습니다.
사도들의 메시지로부터 시작하여 교회사 2000년 동안 건강한 교회의 메시지는 우리 주님의 부활의 소식이었습니다. 부활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들은 이른바 ‘천하를 어지럽게 하는 자들’이 되었고, 그 결과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이제 뒤덮여 가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사망 권세를 이기시고 영원한 새생명을 얻으셨을 뿐 아니라, 이 사실을 믿는 상주감리교회 성도들에게도 사망 권세를 이기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은혜를 주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 이것은 우리가 부를 영원한 찬양의 제목이며, 이것은 또한 우리가 세상을 향해 외칠 영원한 선포의 주제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원수들이 막으려할 수록 더욱 뻗어 나오는 생명의 원천이며, 이것은 우리에게 고난과 시련이 올수록 더욱 붙잡고 의지해야할 주님의 약속입니다.
3.주님의 원수들은 주님의 부활 약속이 성취됨으로 정복되어졌습니다.
주님의 원수들인 유대 지도자들의 청원을 받고 빌라도는 그대로 허락했습니다. 65-66절‘돌을 인봉했다’는 말은 ‘돌에 도장을 찍었다’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의 무덤이 동굴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체의 도굴이나 이동을 방지하기 위하여 인봉은 에로부터 널리 사용되어 온 방법입니다. 무덤을 인봉하는 작업은 먼저 무덤의 입구를 큰 돌로 막고, 그 돌을 밧줄에 매어 무덤과 연결한 후 밧줄의 양끝을 밀랍으로 칠해 그 위에 인을 찍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를 통해 무덤에 조그마한 이상이 있더라도 즉각 발견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이 일을 한 목적은 단지 예수의 제자들이 시체를 가져가지 못하도록 막는 데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3일이 지나도록 무덤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음을 이 인봉을 통해 일반 민중들에게 보임으로써 예수를 사기꾼으로 몰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돌문을 굳게 닫았습니다. 그리고 돌문에 로마제국의 봉인을 하고, 경비병들이 무덤을 ‘굳게’ 지켰습니다. 물리적으로는 아무도 무덤을 열고 들어가거나, 시신에 접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원수들은 이제 발을 뻗고 잠잘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흘 후에 일어날 자신들의 확실한 승리의 모습을 꿈꾸었을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빌라도의 군사들이나 로마제국의 봉인이라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대로 부활하시게 된 것을 막을 도리가 없었습니다.
로마제국의 봉인이 떨어져나가고, 굳게 닫혔던 돌문이 열려지고, 예수님의 시신이 뉘었던 무덤이 빈무덤이 된 것은 약속된 부활이 실제로 일어났다는 확실한 증거가 되었습니다. 무덤을 지키던 로마 군인들은 졸지 않았습니다. 군인들이 경비를 서다가 졸았다면 그것은 군법으로 자신들의 생명을 내어놓아야 하는 무서운 군율위반행위입니다.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주님의 부활을 거짓으로 돌리려는 저들의 음모를 쉽사리 간파할 수 있는 많은 증거를 우리는 갖고 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그리스도는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이 무덤 속에 누워 있는 오늘, 우리도 함께 무덤 속에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옛사람이 우리의 죄가 예수와 함께 죽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가 죽었을 때에 우리의 근본적인 죄도 죽었습니다. 예수가 장사지내셨을 때에 우리의 죄도 장사지냈습니다. 예수가 무덤 속에 있을 때에 우리의 죄도 무덤 속에 있었습니다. 믿음은 바로 이 예수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가 부활할 때 우리도 함께 부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슬픔이 기쁨으로 우리의 절망이 희망으로 죄로 인 한 죽음이 생명과 구원으로 뒤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간 무덤 속의 그리스도를 기억하면서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무덤은 바로 나의 죄를 위함입니다. 그렇게까지 아니하셨으면 도저히 구원 얻을수 없다던 바로 나 때문입니다’하고 기도하시는 아침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