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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불갈비 띵호와
(신6:1-25)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 근거로 해서 <숯불갈비 띵호와>라는 제목으로 하나님 말씀 증거합니다.
너무나 유명한 귀절이지요. 이 귀절을 신앙인이 하나님으로부터 매일매일의 삶을 허락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천국밥상을 허락받는 것과 같다라는 뜻으로 비유적으로 숯불갈비 띵호와 라고 하는 제목을 붙이며 함께 말씀을 생각해봅니다.
여러분, 밴쿠버에서 한국 음식점들을 가끔 이용하게 되지 않습니까? 그러면 갈비를 주메뉴로 해서 파는 한국 식당에 들어가게 되면 어떨 때는 한국 사람보다도 중국 사람이 더 많이 몰려올 때가 있습니다.
중국 사람들의 음식이 대부분 만두 아니면 기름에 볶는 거 아닙니까? 기름에 볶아 먹는 건데 직접 숯불을 피워서 불이 타서 익혀지는 고기를 그 사람들은 잘 안 먹는 것 같아요. 전 모르겠습니다. 중국 음식이 어떤 것이 있는 건지. 그래서 그런지 숯불갈비 집을 많이 옵니다.
근데 중국 사람들의 이야기를 직간접으로 전해들은 바로는 왜 그렇게 숯불갈비를 좋아하냐 물어보면 숯불갈비 자체가 직접 불이 닿아서 익힌 고기라 맛이 독특하기 때문에 좋아하기도 하지만 많은 중국인들이 숯불갈비 하나 시키면 따라 나오는 반찬이 일곱 여덟 가지가 되지 않습니까? 그것을 좋아한다는 거예요. 그 반찬이 나오는 것을.
그 반찬 나오는 것이 뭐가 그렇게 좋으냐 물어보면 중국 사람들의 식당에서는 하여간 접시에 담겨진 모든 것은 다 주문을 해야 됩니다. 따로 따로 갑이 매겨지는 것이에요.
근데 우리나라 숯불갈비를 시키면 1인분에 제가 살던 밴쿠버는 제 기억으로는 17불 했던 것 같아요. 카나다 달러로 17불정도 했던 것 같은데 그 돈 내면 어차피 스테이크 집에 가도 양식을 먹을 때 그 정도 안 내고서는 스테이크를 못 먹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1인분 숯불갈비를 17불을 주고 시키면 김치, 동치미, 거기다가 각종 나물에, 또 생선조림 같은 거, 생선구이 같은 거, 하다 못해 고추조림, 덴뿌라 볶은 거 이런 것 조차도 이렇게 반찬이 풍성하게 나온단 말입니다.
그거 하나하나가 그 사람들은 따로 주문을 해야 되는 것들인데 그냥 17불 주고 숯불갈비 하나만 시키면 그게 다 따라 나오니까 그 사람들은 너무너무 신기한 거예요. 그렇기도 하겠다 생각이 들지 않아요? 여러분?
제가 뉴욕에 갔을 때 아주 유명한 뉴저지 포틀리에 있는 한국 식당에 들어갔는데 아주 으리으리해요. 허드슨 강이 보이는 자리에다가 만들어놓은 아주 명소입니다. 거기서 음식을 먹는데 저쪽에 백인 네 명이 한 상을 차지하고 밥을 먹어요. 근데 아직 주메뉴인 숯불갈비가 안 나왔어요. 안 나왔는데 거기 김치 같은 여러 반찬들을 내놓지 않습니까? 난 깜짝 놀랐어요. 백인 아저씨가 김치를 먹는데 짜잖아요. 밥하고 같이 먹어야 되는데 김치를 젓가락으로 한 움큼씩 먹는 거예요. 그 사람들한테는 그게 다 요리입니다. 우리처럼 반찬이라는 개념이 없고 한 접시 한 접시가 다 요리에요. 그래서 그냥 김치도 그 매운 것을 맛있다고 그렇게 한 움큼씩 집어 먹는 것을 보면서 혼자 킥킥 대면서 웃은 적이 있었거든요.
근데 여러분, 한국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갈비를 시켰어요. 그러면 배가 고프면 그저 조금씩 입을 다시고 있다가 진짜 갈비가 나와서 다 익어가면 그 다음에 반찬 쳐다보지도 않잖아요. 거들떠보지도 않잖아요. 그러니까 어떤 반찬은 젓가락 한번도 안 나가고 싸늘하게 식고 굳어서 도로 나가는 반찬이 너무나 많아요. 그것 때문에 우리가 개탄을 하잖아요. 1년에 그런 음식 쓰레기를 처리하는 게 몇 조원이라고 그런 말도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음식 문화를 개탄하는데 이게 하나님이 매일 매일 차려주시는 하늘 밥상을 우리가 받는 것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이라고 한다면 그런 삶을 살아라. 하늘 밥상을 받고 살아가는 신앙인의 태도로는 이러한 한국 사람들의 음식 문화 습관이 훨씬 더 비유적인 의미에서 더 알맞고 부합한다 이겁니다.
하늘나라의 밥상을 대하는 매일매일 하나님이 섭리의 밥상을 차려주시는 그 밥상을 맞이할 때의 자세는 이렇게 메인 메뉴 하나 나오면 다른 반찬은 거들떠도 보지 않는 한국 사람들의 식문화 습관이 훨씬 더 맞는다 이거예요.
오늘 본문에 보면 그 유명한 귀절이 나옵니다. 여러분. 뭐가 나오지요?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이스라엘아 들으라.’(4절)
뭘 듣느냐?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5절)
마음과 뜻. 뜻이라고 하는 말은 ‘네페쉬’ 라고 하는 단어인데 목숨이라고 번역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사실 여러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한다고 그러지마는 이게 따로 갈 수가 있겠습니까? 마음도 다를 수 있고 뜻도 구분이 가고 힘도 구분이 가지만 그러나 마음이 다 가면 거기에 뜻도 따라가고 힘도 따라가게 되어 있지요. 근데 강조하는 거예요. 히브리어에서는 같은 말을 세 번 반복하게 되면 최상급의 표현이 되거든요. 같은 말은 아니지마는 마음 다 갔는데 뜻은 어디다 따로 쓰겠습니까? 마음은 다 갔는데 힘을 따로 쓰겠어요? 다 마음 가는 곳에 가게 되어 있지요. 그러니까 최상급의 표현을 써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정말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만을 사랑해라.
그러면 어떻게 되냐? 10절 이하에 보니까 이런 말이 있잖아요. 그렇죠?
‘네가 건축하지 아니한 크고 아름다운 성읍을 얻게 하시며, 네가 채우지 아니한 아름다운 물건이 가득한 집을 얻게 하시며, 네가 파지 아니한 우물을 차지하게 하시며, 네가 심지 아니한 포도원과 감람나무를 차지하게 하사 네게 배불리 먹게 하실 것이다.’
이게 무슨 말입니까? 여러분?
내가 파지 아니한 우물, 내가 세우지 아니한 성읍, 내가 짓지 아니한 집을, 내가 농사짓지 아니한 포도와 감람나무 열매를 얻게 하게 하실 것이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서 사랑하면.
이게 바로 하늘 밥상을 받는 방법이라는 겁니다.
근데 오늘 이 한국 땅에는 추석이 되니까 집집마다 음식이 굉장할 거예요. 궁금해요. 하늘에서 하나님이 내려다 보시면 이 집은 무엇이 주메뉴일까, 저 집은 무엇을 잘 하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아름답겠어요. 가족들끼리 모여서 천국을 이루며 지내는 이 명절날 음식을 보면서 생각해봅니다.
자, 여러분!
숯불갈비 집에서 돈을 지불합니다. 1인분에 3만원이다, 1인분에 17불이다. 이렇게 하면 그 돈은 숯불갈비에만 다 지불되는 겁니다. 숯불갈비에만 다 지불되는 것인데 거기에 따라 나오는 일곱 여덟 가지 반찬이 주어지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오늘 성경에 네가 세우지 아니한 성읍을 내가 너에게 준다, 파지 아니한 우물을 준다. 다시 말해서 마음을 들이지 않고 힘을 들이지 않은 것입니다. 내가 세운 게 아니니까. 포도원 열매와 감람나무를 준다. 이게 다 내가 짓지 아니한 겁니다. 그런데 따라 나온다는 거예요.
마음을 어디다 지불하면? 하나님에게로 다 지불하면. 하나님에게 다 지불하면 반찬처럼 따라 나오는 것들이 성읍 건축에 우물 파기에 포도원을 가꾸고 감람나무 농사짓는 것이 다 반찬처럼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게 바로 하늘 밥상을 받는 방법이에요.
그럼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느냐?
그렇게 할 때에 너희가 마음을 다른 데 주지 말고 배불리 먹게 되었을 때 다른 데 주지 말고 오직 하나님 사랑을 지속시키기만 하면 너희에게 이런 복이 계속 올 것이다.
그런데 우린 어떻게 살아갑니까?
성읍 건축하는데 힘을 다 들이는 거예요. 우물 파는데 힘을 다 들이는 겁니다. 포도원 가꾸고 감람나무 열매 소출을 위하여 우리의 힘과 뜻과 정말 마음을 다 들이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은 중국 사람이 사는 방식이라는 겁니다. 이방인인 중국 사람이 한국 밥상을 받을 때 그저 숯불갈비가 나오기도 전에 그 한 그릇 한 그릇 나온 반찬이 너무 소중하고 귀중해서 다 먹어요.
여러분, 식문화 자체 안에서는 그런 태도가 좋을 수가 있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비유적으로 성읍 짓기라는 반찬, 우물 파기라는 반찬, 사업하기라는 반찬, 아이들 양육하고 좋은 대학 들어가야 된다는 그런 반찬들은 다 하나님이라는 주메뉴,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먹어야 되는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이라는 주메뉴에 마음을 다 지불하면 따라 나오는 반찬이라는 겁니다.
서양 식당에 가면 여러분 이런 게 없어요. 주메뉴 하나에 돈을 다 지불한다고 해서 음료수가 따라 나오고 이러지 않아요. 물 한 잔 시키는 것도 돈을 내야 되고 반찬 시킬 때마다 스프 하나 뭐 하나 뭐 하나 다 돈을 내야 되지 않습니까? 그래서 만든 게 코스라는 게 있기는 하지요. 그건 코스 전체에 돈을 지불하는 거예요. 그렇죠? 맨 처음에 스프가 나온다, 샐러드가 나온다, 그리고 메인 디시가 나오지마는 그 모든 것을 다 돈을 골고루 지불해서 코스가 되는 거지요.
그런데 한국 음식은 안 그렇다는 겁니다. 숯불갈비 하나 값만 지불하면 다 따라 나오는 것처럼 신앙의 밥상을 맞이하는 것도 이런 식이 되어야 된다는 것이에요. 감자 볶음이 나왔다고 해서 감자 볶음에 따로 돈을 지불하는 건 잘못되는 거라는 겁니다.
지불해야 될 마음은 하나님에게만 다 지불하시면 되고 그리고 하나님께 다 지불했을 때 따라 나오는 반찬들 사업이라는 반찬, 양육이라는 반찬,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한 모든 과제나 업무나 일이나 이 세상 모든 필요한 그러한 반찬들은 조금 덜 거들떠보는 그런 마음가짐으로 대해도 우린 된다 이거에요. 마음을 다 하나님께로만 드릴 수만 있다면 그냥 숯불갈비 띵호와! 또 다른 의미에서.
그래서 오늘 모세가 계속해서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읽지 아니한 부분인데 16절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는 것은 맛사라고 하는 광야 들판에서 하나님이 진짜 살아계실까?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우리가 이렇게 목마르고 우리가 이렇게 맛있는 고기도 못 먹고 뭐 이런 불평을 하게 되지 않습니까. 이런 시험에 빠지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어떨 때 우리가 시험에 빠집니까? 반찬에 마음에 둘 때. 사업이라는 반찬에 마음을 다 쏟았는데 사업이 안 될 때 어떤 시험이 드느냐? 하나님이 진정으로 살아 계신다면 내 사업을 이렇게 안 되게 하실까? 이렇게 시험에 들어요. 자녀 양육에 내 마음을 다 지불해버리지 않습니까? 자녀 양육이라는 반찬에는 돈을 지불하면 안 됩니다. 근데 거기다 다 지불해버리지 않습니까? 그러면 자녀가 안 될 때 어떻게 되느냐?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실까? 이렇게 마음이 돌아간다는 거예요. 뿐만 아닙니다. 어떤 일이든지 그 일에 마음을 딱 지불하고 있으면 그 일이 안 될 때가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반드시 하나님이 정말 살아 계실까? 이런 의심이 생기리 수밖에 없다는 얘기입니다.
이런 의심에 빠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하나님을 먹어야 돼요. 메인 디시이신 하나님을 먹고 그러니까 마음을 다 지불해서 마음을 다 하나님께로 지불하면 하나님께로 다 지불된 그 마음 안으로 하나님이 들어오신다는 거예요.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우리가 다 드리기 전 까지는 우리 안으로 오시지 않아요.
하나님이 내 안으로 들어오는 이것이 뭡니까?
하나님을 먹는 것이지요. 매일매일의 삶에 차려지는 하늘 밥상, 하나님의 생사를 주관하시고 화복을 주관하시는 섭리 안에서 매일매일이 진행되지 않습니까?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되는 그런 세상 속에서 매일매일이 하늘 밥상으로 주어집니다. 이때 이 밥상을 받고 먹는 방식이 무엇입니까? 메인 메뉴에 마음을 집중하라는 겁니다. 중국 사람들처럼 서양 사람들처럼 한국 밥상 받아서 반찬에 열을 올리지 말라는 겁니다.
하나님 다 먹기 위해 마음을 다 지불하면 언제나 반찬은 풍성하게 주어지는데 그런 주어지는 반찬들 미리 집어먹고 거기에 마음을 미리 지불하느라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아주 소원해지고, 뭐 그렇잖아요. 여러분. 중국 사람들이 그 반찬 일곱 여덟가지 반찬을 다 먹었어요. 그럼 어떻게 됩니까? 고기를 싸가더라구요. 왜? 배가 부르니까.
결국 우리가 하나님을 다 못 먹는 거예요. 돈에 마음을 다 주고, 사업에 마음을 다 주고, 자녀에게 마음을 주고 그랬다가는 마음을 다 드려야 하나님을 온전하게 다 먹을 수 있는데 하나님을 다 못 먹어. 하나님을 부분만 먹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이 숯불갈비 싸가지고 가서 집에서 데워 먹으려고 그러면 식당에서 그 불에 닿을 때 직접 먹는 것 하고는 맛이 완전히 다르잖아요. 근데 일곱 여덟 가지 반찬을 더 달라면 얼마든지 더 주니까 이 사람들이 공짜니까 그것도 또 신가한 거야. 감자 더 주세요, 김치 더 주세요, 동치미 더 주세요... 숯불갈비 나오기도 전에 다 먹어 버려. 다 먹어 버려. 공짜라고. 그러니까 숯불갈비는 먹지도 못하고 싸가지고 가더라구.
이런 식으로 기독교인이 살아서는 안 된다고 하는 이야기지요. 숯불갈비 띵호와 라고 하는 이유가 숯불갈비 때문이 아니라 달려나오는 반찬 때문이라면 이건 잘못된 신앙이라는 겁니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을 먹습니까? 여러분?
다시 말씀 드립니다. 십자가를 마음에 붙잡고 기도하는 겁니다.
어떻게요? 십자가를 마음에 붙잡고 기도하는 기도의 방법.
내 마음을 빼앗아가는 반찬들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성읍을 세워야 된다, 우물을 파야 된다, 포도원을 잘 가꿔야 된다, 이렇게 내 마음을 빼앗아가는 일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 일에다 대고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하는 거예요. 일과 나 사이에, 마음을 빼앗아가는 사람과 나 사이에 십자가 예수님을 모셔들이는 겁니다.
그래서 그 일보다 먼저 십자가를 보면서 ‘저 일에 대해서 하나님 내가 이천년 전에 죽었는데 저 일에 지불되고 있는 마음 다 회수해서 하나님께만 지불되게 해주세요. 마음을 다 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게 해주세요.’ 이런 기도를 드리라는 거예요.
좀 시간을 드리라는 겁니다. 여러분. 아침에 시간을 드리고 오후에 조금이라도 시간을 내서 다만 20분이라도 30분이라도 아니면 15분만이라도 좀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들을 가져보세요. 그러지 않고 아니 여러분, 식사할 때에 계속 타자치면서 식사합니까? 아니잖아요. 식사할 때 다 누구나 하던 일을 멈추지 않습니까? 아니 근데 그까짓 밥 먹는 것도 다 멈춰야지 먹는데 하나님 먹는데 식사 시간 만큼도 하나님 먹는 시간을 안 드리면 어떻게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서 먹기만 하면 메인 디시에 마음을 다 지불하면 나머지 반찬은 다 따라 나온다니까요. 이런 삶이 경험이 되어야 이게 비로소 기독교인이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이런 상태가 바로 기독교인의 참된 모습의 상태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여러분!
세 끼 먹느라고 세 끼 밥을 위해서 시간을 내지 마시고 오늘 하루 삶에 메인 디시는 하나님이시다. 내가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먹으면 오늘 하루 삶에서 필요한 성읍 건축, 우물 파기, 포도원 가꾸기, 감람나무 농사짓기, 이런 모든 것들은 다 반찬으로 따라오게 되어 있다. 이 믿음을 가지고 오늘 추석 아무리 명절의 분위기가 내 마음을 흔들어 놓을지라도 좀 시간을 내셔서 밥 먹는 시간 1시간 걸릴 거 아닙니까? 추석 밥상에 앉아가지고... 그 시간의 얼마만이라도 하나님께 할애를 해서 특별히 시간을 내서 하나님을 먹는 그런 추석이 되실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07.09.25)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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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헤, 그러기에 우리들의 마음의 다함은 당연하겠지요.
이 신앙의 당연성을 간과하지 않게 하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