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부 <최우수상>
벚나무
안양예술고등학교 2학년 최예성
찬바람이 빰에 스미는 겨울날
엄마의 잠꼬대에 잠은 달아나고
달콤한 꿈을 꾸는지 엄마는
실실 웃으며 내 이름을 부른다
텅 빈 공기만이 맨도는 병실 안
옆자리는 모두 비워진 지 오래
3년 전 사라진 아빠 대신 곁을 지켜준
창문 밖 벚나무 한 그루
아빠가 제발 돌아오게 해달라고
밤마다 나무에 소원 빌었던 열한 살의 나
대답 대신 꽃잎 흩날리던 나무에
자그마한 위안 얻곤 했었지
병상 위 형광등이 엄마를 비출 때
겨울날 메마른 나뭇가지처럼
부쩍 야윈 엄마의 모습에
몰래 몸을 웅크리고 눈물을 흘린다
시침과 분침이 빨리 감기를 하는지
엄마의 흰머리는 늘어가고
앙상했던 나뭇가지에 피어난 벚꽃
가느다란 창살을 비집고 들어오는 햇살에
금방 식던 병식이 제 온기를 찾는 계절
나는 하얀 꽃이 핀 나무에 소원을 빈다
나무야
꽃잎 한 장마다 엄마의 시간을 적어서
조금만, 조금만 더 가득 피어줘
하얗게 피지 말고 까맣게 피어서
꽃잎 한 장 떨어질 때마다
엄마의 머리카락을 까맣게 물들여줘
고등부 <우수상>
염원
서울 대진고등학교 2학년 이수형
맑은 향이 방을 가득 메웠다
고운 향나무 고르고 골라 둥글게 둥글게 깎아댄다
염주를 깎을 때에도 정갈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며
할머니는 매일 아침 단정하게 씻으시고 눈을 감으셨다
눈을 뜨면 할머니의 손에서 사각사각 나리는 나무눈
생각을 비우며 염주를 만든다지만
고요한 시간에 어찌 번뇌가 들지 않으랴
이따금 비치는 할머니의 눈의 반짝임은
철없던 손자라도 외면해두기로 한다
창호지문의 어스름빛이 집 앞 나무 사이로 숨어들고
빠알갛게 빛나는 붉은 염주 하나 떠오르는 시각
할머니의 염주깎이가 끝난다
백개하고도 여덟 알의 염주를 만드느라
백일하고도 여덟 날의 아침을 맞이한 할머니
아가 이제 일어나야지
나에게 하는 듯 염주에게 하는 듯
나지막한 목소리에 잠이 깨면
아직 길이 들지 않아
밝은 빛 동그랗게 모은 염주
할머니는 조용히 합장을 하고 무릎을 꿇는다
이 경건한 의식에 어린 나도 덩달아 고요해진다
부처님 앞에 절을 올릴 때마다 천천히 돌아가는 나무염주
할머니의 염원이 한 알 한 알 모아져 담긴다
염주가 돌아갈 때마다 향이 퍼진다
할머니의 마음이 퍼진다
이윽고 맑은 향이 방을 가득 메운다.
고등부 <장려상>
나무의 안부
부산 동여자고등학교 3학년 임서윤
아버지의 손가락은
계절을 껴입은 나뭇가지였다
손끝은 오후의 볕을 삼키며 버석해지고
메시지 입력창 위에서 흔들거렸다
오르는 이 하나 없는 숲의 귀퉁이처럼
잠잠한 거실에 앉아 계신 아버지
저 멀리 언니에게 보낼 말들은
두터운 엄지 끝자락에 맺힌 나이테처럼
끝끝내 안쪽으로 굽어버리고 말았다
아버지에게 스물 넘은 언니는 아직도 유목
엊그제 보낸 안부 문자에는 답장이 없고
서울로 올라간 언니의 이력서에는
새빨간 불씨가 떨어져
초조한 마음으로 번져갔을 테지
니 언제 내려올 건데 묻는 아버지의 문자
메시지 입력창에서 홀로 울창해졌다
가시덤불처럼 자라나 언니를 쿡쿡 찔러댈까
한 마디 보내는 데에도
나이테 새겨지듯 여러 계절이 필요했다
위쪽이 아니라
안쪽으로 자라나는 나무가 있을까
바람에 산들거리는 나뭇가지처럼
메시지를 썼다 지우는 아버지
휴대폰을 붙잡고 굽어가는 등이 마치 고목 같았다
베란다에 놓인 시들한 화분처럼
집집마다 휘어져 가는 나무가 있는 걸까
날려 보내지 못한 말들을 대신해서
매미가 울어대는 늦여름
상처 같은 나이테 속에서 울창해지는
나무들의 안부를 묻고 싶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