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하 7:1-17, 다윗 언약, 25.1.15, 박홍섭 목사
다윗은 왕이 된 이후, 왕권과 나라를 안정시키는데 필요한 초기 전쟁들을 끝내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여호와의 궤보다 더 좋은 거처에 사는 것에 대한 송구함으로 백향목 성전을 지어 여호와의 궤를 모시고자 합니다. 선지자 나단도 이런 다윗의 생각에 동조하여 성전 건축에 찬성합니다(1-3).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다윗과 나단에게 반문하십니다. 4-7을 보십시오. “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나니 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다니는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하나님은 다윗에게 “네가 정말 나를 위하여 내가 앉아 있을 신전을 지으려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우리 말 번역은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라고 했는데 원문은 “내가 앉아 있을 신전을 지으려느냐”가 더 가깝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신전에 앉아 있는 신이 아니라 장막과 성막 가운데를 다니는 하나님이라고 가르치십니다. 신전과 장막이 대조되고 ‘앉아 있다’와 ‘다니다’가 대조됩니다. 이방의 우상은 신전에 앉아 사람들의 공양을 받기 때문에 신전이 없는 신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방 신들처럼 신전에 앉아 사람들의 공양과 대접을 받는 신이 아니라 장막과 성막 가운데를 다시고 거니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까지 장막과 성막 가운데 계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를 다니셨습니다. ‘다니다’는 이전 번역에서는 ‘거닐다’로 번역했고 창 3:8에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거니셨다고 할 때 ‘거닐다’와 같은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거닐었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한가로운 산책의 거님이 아닙니다.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통치하는 통치의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이방 신과 같이 신전에 앉아 있지 않고 이스라엘의 장막과 성막 가운데 다니면서 자기 백성의 삶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은 한 번도 자신을 위해 백향목 집을 지어달라고 요구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묻습니다. “내가 언제 너희들에게 왜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지어주지 않냐고 말한 적이 있느냐? 오히려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지도자들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하지 않았느냐?”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에게 한 번도 자신을 위해 집을 지어달라고 요구한 적이 없습니다. 줄곧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하셨습니다. 먹이라는 말은 목양하라는 뜻입니다. 목양은 이상적 왕, 이상적 지도자의 통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에게 언제나 공의와 정의를 베푸는 목양을 요구하셨지 집을 지어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이방의 죽은 우상과 다른 살아계셔서 자기 백성을 다스리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왜 이 말씀을 하십니까? 지금 하나님은 다윗에게 “내가 너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운 본질적인 이유는 내 백성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먹이는 목양이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다윗은 말씀으로 백성들을 잘 다스려서 그들이 공의와 정의로운 삶을 사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의 지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의 가장 본질적인 사명은 말씀으로 교인들을 먹이는 목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먹여서 교인들이 공의와 정의의 삶을 살도록 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들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윗은 아직 하나님을 다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직 이방인의 관습을 따라 크고 화려한 성전을 지어야만 하나님의 격에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성전을 짓겠다는 다윗을 생각을 교정시키기 위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11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를 심고 그를 거주하게 하고 다시 옮기지 못하게 하며 악한 종류로 전과 같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게 하여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무슨 뜻입니까? 한 마디로 “네가 내 집을 짓겠다고? 됐고 내가 너의 집을 지어 준다!”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돌봄’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마치 자신이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짓고 하나님의 궤를 거기 모셔야 하나님이 위신이 서고 하나님으로 대접을 받는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다윗을 향하여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다윗아, 너는 마치 네가 나를 위하고 네가 나를 위해 집을 지어주는 것처럼 말하는데 그렇지 않다. 내가 너를 위하고 내가 너를 위하여 굳건한 집을 지어 주겠다. 네가 나를 돌보지 않는다. 내가 너를 돌본다. 네가 들판에서 양 떼의 꽁무니를 쫓을 때 너를 불러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은 분이 누구냐? 바로 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다윗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돌보아주었고 그와 동행하면서 그의 대적들을 물리쳐주셨고 그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주셨습니다.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가나안을 정해 그들을 그곳에 심고 안식을 준 분도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지어준다고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이런 다윗의 생각을 “네가 뭔데 나를 위해 집을 지어준다는 거냐? 내가 너를 위해 집을 지어주겠다”라고 교정시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지어준다고 한 집은 건축물이 아닙니다. 이미 다윗은 백향목 궁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지어준다고 한 집은 ‘왕조’ ‘나라’입니다. 다윗만 아니라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이스라엘의 왕 노릇 하게 해주겠다는 약속입니다. 바로 ‘다윗 언약’입니다. 12-16을 보십시오.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나님은 ‘영원히’를 두 번이나 반복하면서 다윗의 왕국이 절대로 망하지 않는다고 약속하십니다. 아시다시피 다윗 왕국은 이 약속 후에 400년 만에 바벨론에 의해 망합니다. 그럼 이 약속은 무엇입니까? 영원하다고 한 다윗의 왕국은 다윗의 후손, 다윗의 씨를 통하여 세워질 왕국, 곧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워질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이 나라의 백성들은 비록 죄를 범해도 사울처럼 은총을 빼앗거나 버리지 않고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때려서 징계하면서까지 아버지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된다고 하십니다. 이것이 다윗에게 주신 언약입니다. 곧 신약의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영원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우리가 연약하고 모자라도 하나님이 버리지 않으십니다. 죄를 지으면 징계를 받을지언정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우리의 복된 신분이 제거되지 않습니다. 회초리로 맞아도 하나님의 헤세드는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다윗의 왕국은 영원히 지속됩니다.
백향목으로 지은 성전은 무너져도 다윗 언약으로 약속된 주님의 교회는 영원히 무너지지 않습니다. 누가 주님의 교회입니까? 어떤 어려움과 고난이 있어도 그리스도와 말씀의 통치를 받는 공동체입니다. 이들은 연약해서 실수하거나 범죄할 때 징계를 받을지언정 돌이켜 다시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서 헤세드의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고 말씀 앞에서 의와 공도의 삶을 살아냅니다. 그들이 참 교회이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그런 교회 그런 성도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