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왕 장보고 이야기
아들아..거의 3년이 다되어 가는구나.
추운 한겨울에 뜬금없이 먼 여행길에 나서..찾았던 완도(莞島)를 기억하느냐?
사실..아빠는 한번씩 갑자기 머릿속에 떠오른 곳이 있거나 찾아보고 싶은 곳이 있으면
그렇게 무작정 나선 여행길이 한두번이 아니라..그때 완도를 찾을 때도 그랬단다.
그때..아빠가 정말 빠져서 보던 드라마가 있었단다. 미생(未生)이라고.
그 마지막회를 하는데..거기서 본 요르단이란 나라에 있는 페트라 유적지를 보고,
반했단다. 깊은 인상을 받았지.
페트라는 고대 중동과 유럽을 잇는 향신료 교역의 중심지로 번성했었다는 도시란다.
그런데 지금은 쇠퇴해서 흔적만 남았지.
길게 이어지는 절벽길과 그 속에 있던 신비감도는 사원의 모습이 어찌나 인상적이던지.
아빠는 그걸 보고 갑자기 그런 생각을 했어.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있을까?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데가 있더구나.
그게 바로 완도에 있는 장도 청해진유적지였지.
그래서 아빠는 이번엔..네게 청해진(淸海鎭)과 그 청해진을 있게한 장보고란
인물을 한번 얘기해 볼까해.
아들아, 아빠는 옛날에 학교에 다닐때 정치와 외교를 공부했단다.
그 시절에 아주 인상깊게 와닿은 말이 있었지.
미국의 알프레드 마한이라는 사람이 쓴 '해양력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이란 책에서
뭐라고 했냐면...바다를 지배하는 자, 세계를 지배한다고 했어.
지금의 미국이 그렇고, 그 전의 영국이 그러했으며, 스페인과 네덜란드 또한 그랬지.
유럽의 로마도 본격적으로 대제국으로 성장한 것은..카르타고란 해상강국을 밀어내고
유럽의 지중해 해상권을 장악한 것도 중요한 요인이기도 해.
우리나라도 고구려와 백제도 신라도 수군이 강했고, 고려부터 조선까지 수군이
막강했단다. 우리 해군은 한반도 주위의 바다를 확실히 지배했어.
그리고 충무공 이순신 제독은 세계사에서도 알아주는 전설이란다.
청해진 대사 장보고(?~846)
충무공 이순신 제독 이전에 한반도의 바다를 지배한 한국인이 있었단다.
아니.. 한반도가 아니라 동아시아의 바다를 지배한 한국인이 있었다.
그 지배력 그리고 역사에서의 영향력은 충무공 이순신 제독 이상이었던 분이시지.
그가 바로 신라 말, 청해진 대사(淸海鎭 大使)였던 장보고였단다.
그럼 장보고란 인물에 대해 알아볼까?
장보고(張保皐, ?~846)는 원래 이름이 궁복(弓福) 또는 궁파(弓巴)라고 해.
이름에 활 궁(弓)이 들어가는 걸 보면..활솜씨가 특출났던 모양이지?
삼국사기 등 옛 기록에 전하는 것을 보면, 해도인(海島人)이라 하는데..
아마도 그는 이곳 완도 혹은 완도 주변 어디쯤 출신이고,
그의 신분은 귀족이 아닌 일반 평민 정도로 추정하고 있지.
이것은 해도인이란 그의 출신과 원래 그가 성(姓)은 없이
이름만 있는 것으로 보아 짐작할 수 있단다.
장보고가 살았던 때는 한마디로 말해 난세였지. 우리 한반도의 신라도 그렇고..
중국 대륙을 지배하던 당나라도 정치가 어지럽고 반란이 끊이지 않고 백성들은
살기 힘든..그런 험난한 시대였다는 말이란다.
신라는 엄격한 신분제의 나라였어. 아무리 특출한 능력이 있어도 신분에 따라
출세할 수 있는 한계가 너무나 엄격했지.
그것은 천민과 평민 뿐만 아니라 귀족들 사이에서도 그 신분제의 벽은 높았어.
그래서 그런 신분제를 뛰어 넘고자 중국의 당나라로 건너가는 사람도 많았단다.
당나라는 신라보다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였거든.
능력이 있으면 출세도 하고 신분상승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니까.
심지어 외국인이라 할지라도.
고운 최치원이나 최승우, 최언위같은 신라의 천재라 불리던 학자, 문인들이
그래서 어린 나이에 당나라 유학길을 갔던 것이란다.
궁복은 능력있고 가슴에 품은 뜻도 높아 신라를 떠나 당으로 건너갔어.
귀족도 아닌 평민이었으니,그의 당나라 가는 길은 다른 이들보다 더 험난했을거야.
그리고 낯선 타국인 당나라에서 그가 겪었을 고초도 상상을 초월했겠지..
그런데 그때 당나라는 지금의 산동성 일대를 지배하던 평로치청의 난으로
큰 혼란에 빠졌단다.
그 난을 일으킨 사람이 이정기, 이사도..고구려 유민이야.
그 난을 진압하고자 용맹한 군인들이 많이 필요했는데..이 진압군에 지원하여
공을 세우고 무령군 소장(武寧郡 小將)이란 지금의 중국 쉬저우(徐州)일대의 군대를
관할하는 중간급 지휘관에 해당하는 벼슬에 올랐지.
아마 이 시절부터 궁복이란 이름을 버리고 그는 장보고란 이름을 썼던것 같아.
사실 장보고는 정년(鄭年)이란 동료와 함께 당나라로 갔고 함께 출세했지.
정년은 장보고 보다 수영과 잠수에 능했고, 무예도 더 뛰어났던 것 같아.
그런데 그 정년을 부하로 삼았던 것을 보면..장보고가 사람을 알아보고 쓰는
능력도 대단하고 인품도 뛰어났던 모양이지.
아들아 그런데 당나라에서 출세한 장보고가 갑자기 무령군 소장이란 벼슬을 버리고
신라로 돌아와.
828년경이었는데..장보고는 귀국해서 당시 신라왕이었던 흥덕왕을 알현하고
중국땅에 해적에게 끌려가 신라인들이 노예가 되어 고초를 겪고 있으니
그에게 군사를 주면 청해에 진을 설치하고, 해적을 소탕하며..바다의 교역길을
열겠다고 간청했고, 흥덕왕은 장보고의 제안을 받아들였단다.
흥덕왕은 장보고를 청해진 대사로 삼고 군사 1만을 내려 청해진을 설치하게 했지.
그 청해진이 바로 지금 완도에 딸린 작은 섬, 장도(將島)에 설치되었단다.
청해진 장도 유적지
아들아, 아마도 장보고가 그의 낮은 신분에도 흥덕왕을 알현할 수 있었던 것은,
당의 무령군 소장을 역임했었던 그의 위치가 있었기에 가능했을거야.
그리고 그냥 개인으로 오진 않았을지도 모르겠어. 그냥 타국의 전직 관료에게
그런 엄청난 특권을 줄리는 만무하니까.
장보고는 아마도 그가 활약하던 지금의 중국 강소성 일대를 중심으로 재당 신라인들
사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던 위치에 있었을 가능성이 크지.
그리고 흥덕왕이 실제로 장보고에게 1만이나 되는 군사를 내려줄 여력이 되었을까
그것도 의문이구나. 왜냐하면 그때 신라도 정말 어려웠거든.
서남해 지역으로 그렇게 해적이 날뛰는데 그들을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여력이 없는 신라가 어떻게 1만이나 되는 대군을..그냥 줄 수 있겠느냐.
아마도..그 지역의 주민과 일부 지방군을 다스릴 수 있는 권한 정도가 아닐까 싶어.
아들아..청해진이란 한자를 풀어보면..맑을 淸, 바다 海, 진압할 鎭.
鎭은 곧 군사가 주둔한 요새를 뜻하는데 바다를 맑게 한다는 것은 곧 해적을 없앤다는
뜻이야. 말 그대로..장보고의 능력은 엄청났어.
머지않아 강력한 군대를 만들고, 또 강력한 함대를 편성해서..
오래지 않아 흥덕왕에게 말한대로 그는 정말로 서남해 지역에서 날뛰던
해적을 모두 소탕해 버렸단다.
그리고 청해진은 강력한 해군기지이면서..신라와 당 그리고 일본을 잇는
해상무역의 중심지가 되었단다.
중국 배가 신라로 오거나..아니면 거쳐서 일본으로 가거나.
일본이 신라로 오든..거쳐서 중국으로 가든
반드시 중간지점에 있는 청해진을 거쳐가야하고, 또 청해진 해군의 보호를 받아야 했지.
그리고 머무르며 우리 서남해안의 복잡한 해안과 해류 때문에 이 지역 신라사람들이
배를 인도해 줘야 했어.
청해진은 해군기지 뿐만 아니라 큰 무역시장이 섰고, 뱃사람들을 위한 숙박시설과
선박 정박지, 선박 수리소 등이 있어 수많은 사람들과 배로 넘쳐나고 북적였지.
한국,중국,일본..그때 동북아 세계무역의 중심이었단다.
청해진의 우리 신라 선단은 중국과 일본 뿐만아니라 저멀리 동남아 그리고 인도,
아라비아 상인과도 교역을 했었다고 해.
강력한 청해진의 해군과, 선진적인 조선술과 항해술을 보유하고
또 중국과 일본에 있는 신라인들의 거대한 네트워크를 하나로 묶어낸
청해진 대사 장보고의 인물됨, 그 그릇의 크기는 상상 이상이지.
아마 한중일, 3국의 사서 모두에서 상당한 비중으로 다루어지며 그 영향력을 전하는
사람은 장보고가 유일할 걸?
그의 탁월한 능력과 그의 시야 그리고 큰 꿈이 만들어낸 청해진은 8백년 후에 창설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이전에 세계의 바다를 지배한 세계 최초의 국제무역상사였단다.
그래서 청해진 대사 장보고 장군을 일러 해상왕(海商王)이라고도 부르지.
청해진 장도 유적
아들아..그런데 이 청해진은 강력한 군사력과 무역으로 쌓은 엄청난 부(富)가 있었지만,
오래가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져갔단다.
이때 신라는 진골귀족들간의 왕위다툼으로 나라가 기울어져 갔어.
장보고는 이 왕위다툼에 뛰어들어 그가 후원한 김우징이란 사람을
신라의 왕에 세우니 이가 바로 신무왕이었어.
신무왕은 장보고에게 그의 아들과 장보고의 딸의 혼약을 맺었지.
그런데 신무왕이 1년을 못채우고 죽고 그의 뒤를 이은 문성왕은 혼약을 지키려 했지만,
여전히 강력한 귀족들의 반발과 높은 신분제의 벽으로 그 혼약이 깨어졌고..
당연히 장보고는 분노했겠지.
그 장보고와 청해진의 힘이 두려운 신라 조정은 장보고의 옛 부하였던
염장이란 사람을 보내 장보고를 암살했고, 곧바로 청해진을 폐지해 버렸단다.
장보고는 섣불리 왕위 계승다툼 같은 정치적 야심을 부린 대가를 너무도 비싸게
치루었구나.
장보고가 청해진이며, 청해진이 곧 장보고인데..
장보고가 없으니 청해진의 영화는 한순간에 끝이 나고..
신라의 영화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지.
우리가 지배하던 바다, 세계로 향하는 길을 스스로 닫아버린 그 대가는 엄청났어.
아들아, 지금 우리나라는 세계 1,2위를 다투는 조선대국이며 세계에서 알아주는
해운과 무역대국이란다. 우리나라의 선박이 세계의 바다를 누비고 있지.
하지만 지금 그러한 우리나라의 모습도 청해진 대사 장보고가 이룩한 청해진의 번영을
다시 재현했다 하기엔 아직도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아들아, 너도 그렇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역사속에서 어이없이 잃어버린 청해진과
청해진의 역사를 만든 장보고란 사람을 기억해야 해.
그리고 그가 걸어갔던 그 길을 떠올려야 해.
지금도 나라가 어려울 때..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를..
장보고, 그에게 끊임없이 물어야 해.
아들아 기억하거라.
동아시아의 바다를 지배했던 청해진과 청해진 대사 장보고를.
세계 최초의 국제상사 청해진.
바다를 지배하는 자, 세계를 지배한다.
청해진 대사, 해상왕 장보고는
우리 한민족 최고의 국제인이자
세계 최초, 당대 최고의 국제무역상사 청해진의 CEO,
동아시아 최강의 함대를 건설하고 이끌었던 훌륭한 해군 제독,
그리고 견고한 신분제의 벽에 도전했던 야심 많았지만 혁명적인 정치가였단다
------작성자:방랑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