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름-여호와 엘 게물로트(제 6 일.2026.3.21.토)
나1:2-3절 찬송:380장
하나님의 이름-여호와 ‘엘 게물로트’입니다. 뜻은‘보복의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본문에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보복을 해주시는 분으로 소개를 하는데 억울한 일을 당하셨습니까? 직장에서 열심히 충성했는데 돌아오는 것은, 교회에서 열심히 헌신.봉사.충성했는데 억울한 말을 들을때가 있습니다. 그때에는 내가 보복하려고 하지말고 오늘 ‘엘 게물로트’ 하나님 보복의 하나님에게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근데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하고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셨는데 정말 보복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은 어제도 오늘도 영원토록 말 그대로 힘이 세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은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 하나님은 그 능력으로 반드시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훔서는 요나서와 같이 니느웨의 멸망을 선포하라는 내용입니다. 요나가 니느웨 멸망을 선포할 때 니느웨 백성들은 회개하고 금식하며 재앙을 건너 띄어서 니느웨 백성들에게 긍휼과 용서를 베푸셨습니다. 그후 150년이 지난 니느웨는 또다시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리라는 말씀이 임합니다. 그 이후 하나님의 긍휼과 용서를 체험하고 나서도 이 니느웨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삶의 태도를 변화 시키기는 커녕 점점 더 오만해져 가기 시작했고 그들은 그들의 통치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었던 절정에 달했던 약 200년 동안 말 그대로 전세계를 제패하면서 그들의 힘을 발휘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영토는 세계 최대에 달했으며 그들이 점령하는 나라마다 피 정복민들을 비 인간적으로 학대하면서 그들의 영토를 확장시켜 갔습니다.
그 당시 앗수르는 말 그대로 공포와 전휼의 대상 이었습니다. 바로 이들이 북방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 시켰습니다. 그러더니 남유다까지 넘보았습니다. 그들은 점차 유다의 변두리 지역을 점령하더니 드디어는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기에 이르셨습니다. 이때 군대를 이끌고 왔던 앗수르의 왕이 산헤드립입니다. 산헤드립 대제가 군사를 거느리고 예루살렘 성을 포위했습니다. 그때 유다 백성들이 이 성을 지키리라는 보장이 없었습니다. 니느웨 백성들은 나훔이 전하는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을 믿지 않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아무리 힘들어도 교회를 떠나가나, 하나님을 떠나면 안된다는 교훈입니다. 힘들어도 견디어 내시면 ‘여호와 엘 게물로트’하나님이 대신 보복해주실 날이 올 것입니다. 오늘은 그날이 오기를 놓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나훔에서 포인트는 앗수르 백성들은 멸망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하며, 시간이 지나면 회복해주시는 하나님, 보복해주시는 하나님, 당장은 힘들고 어려워 뛰쳐나가고 싶지만 순종하고 의지하고 믿는 믿음을 보시는 주님께서 반드시 회복시켜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편이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도와주십니다.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기억하고 계십니다. 느니웨 사람들에가는 나훔이 전한 그 멧세지가 ‘멸망’이며 ‘심판’이지만 유다 백성들에게는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아마 하나님께서 ‘위로’라는 의미를 지닌 ‘나훔’이라는 선지자를 쓰셨다고 봅니다. 그러면 ‘여호와 엘 게물로트’하나님은 누구에게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까?
1.하나님을 거스르는 자에게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니느웨 백성들이 멸망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강력했던 앗수르 제국이 멸망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앗수르 백성, 그들의 수도인 니느웨 성에 보복하셨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니느웨 백성들을 용서하시고, 복을 주신 이후에 그들에게 보복하셨습니까? 나훔1:2절에 니느웨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스렸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여기 ‘거스르는 자’(오웨브)는 ‘무장한 적’, 특히 적군의 일원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보복하다’는 뜻은 ‘보응하다, 갚다’, ‘벌 받다, 복수하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행한 악할 일을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으로 보시고 그에 따라 보복하셨습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누군가 약한 사람들을 괴롭힌다면, 그것은 곧 하나님께 적대적인 행동을 한 것입니다. 약한 자를 괴롭히라고 권력과 힘과 재물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그 약한 사람처럼 약해 보이고 철저히 무시됩니다. 그럴 때 신앙인들조차도 하나님은 아니 계신 것처럼 행동을 합니다.
니느웨 백성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래서 앗수르 제국이 되어서는 북 이스라엘을 멸망시켰습니다. 북 이스라엘 백성들을 뿔뿔이 흩어지게 했습니다. 북이스라엘 땅에는 다른 민족들을 정착시켜서 혼혈민족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니느웨 백성들에게 보복하신 것입니다. 힘이 있다 하여 연약한 자를 괴롭히는 것은 그들보다 더 힘이 세신 하나님을 거스르고 도전하는 무모한 짓이기에 보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그 약한 자와 같이 여기는 이런 악행에 대해서 하나님은 언제든지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약한 자들은 이런 보복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의 죄값을 지불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실 때 얼마나 연약한 자였습니까? 그런데 그 십자가가 부활의 능력이 되었습니다. 연약한 십자가가 부활의 능력이 된 것입니다.
2.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보복하실 때에 어떻게 보복하십니까? 하나님은 진노로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냥 적당하게 보복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나훔1:2절‘진노를 품으시며’,‘진노’는 ‘열, 분노, 진노, 독, 원한’이란 뜻으로 ‘강렬한 분노의 감정’입니다. ‘독’이라는 단어로 사용될 때에는 ‘짐승을 통해 분비되는 독소’(특정한 뱀과 독충을 통해 분비되는) ‘독이나 독액’이란 뜻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사람들이 산에 들어갈 때에 장화 같은 긴 신발을 신지 않아서 살무사 같은 독뱀에 물려서 죽었다는 이야기 들어보신 적이 있을 것입니다.
‘진노를 품으시며’라고 했을 때, ‘품다’(바알)은 ‘소유자, 주인, 남편’이란 뜻으로 하나님을 진노의 소유자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누구에게 진노를 품으시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대적하는 자’(자르)는 (무장한)‘적’이란 뜻입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흉기나 무기로 무장한 적의 일원이나 개인의 적이나 반대하는 사람에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사람들이 힘이 약해서 자기를 대적하고 거스르는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할 때, 포기하고 비굴해지기 쉽습니다. 그런데 그런 약한 자들을 괴롭히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품으시고 계십니다. 결국 하나님이 진노하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누가 하나님의 진노 앞에 설 수가 있겠습니까? 나훔1:6절‘누가 능히 그의 분노 앞에 서며 누가 능히 그의 진노를 감당하랴 그의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니 그로 말미암아 바위들이 깨지는도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 힘이 있다해서 누군가를 괴롭혀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노를 품으셨다가 결국 진노하시는 날이 닥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이 진노가 불처럼 쏟아지는 형벌이 일어나고 말 것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우리는 악인이 득세하고 오히려 의가 짓밟히는 부조리한 역사의 현장을 바라볼 때 마다 ‘하나님, 왜 이렇게 세상이 어둡습니까? 왜 부조리가 판을 찹니까’라는 질문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가 이르렀을 때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역사 속에 간섭하기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멸망의 대상인 자들에게는 이것이 진노입니다. 저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기를 바랬던 주의 백성들에게는 이것이 곧 위로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 괴롭힘을 당한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위로가 있습니다.
나1:7절‘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의뢰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주의 심판이 앗수르 제국에 임하고 일는 동안에 주의편에 선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멧세지가 선포되고 20년만에 기원전607년 바벨론에 의해서 앗수르는 멸망을 합니다. 나훔서는 니느웨에 대한 경고일뿐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고 있는 유다 백성들에 대한 멧세지이기도 합니다. 앗수르의 강성, 악인의 득세, 악인의 번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이 부조리와 어두움이 언제까지 계속됩니까’라는 탄원의 기도를 드리는 유다백성들에게는 니느웨에 대한 심판의 소식과 그들을 보호하시겠다는 위로를 선포하십니다. 의뢰 하는자에게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3.벌 받을 자를 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나라에는 대통령에게 ‘사면권’이라는 엄청난 권한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정치범들이 대통령이 새로 당선되면, 국민화합의 차원이라는 미명 하에 그런 정치범들을 사면하는 관례가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은 그런 사면을 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라고 선포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죗값을 반드시 물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 그 죗값을 물으시기 전에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신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노하시기 전에 그래서 죗값을 물으시기 전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 행위를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을 거스르고 하나님을 대적했던 모든 악한 행동을 버려야만 합니다.
나훔1:3절‘하나님이 노하기를 더디하신다’, 심판이 임하기 전에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부지런히 보내시고, 말씀을 주셔서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더디하다’(아렉크)는 ‘느리게 하다’는 뜻입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닥쳐 오는데, 하나님께서 아주아주 느리게 다가오게 하셔서, 그 진노를 피할 길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하나님을 거스르고 하나님께 대적하는 사람들의 일원이 되어서는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면 그 벌을 사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인격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이며, 사랑입니다. 가정에서도 아비가 회초리를 들면 어머니는 다독이고 어미가 회초리를 들면 아비가 다독여야 합니다. 물론 다른 방법이 있으며, 하나님이 이끄시는 방법이 최고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를 보호하시고 지키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자녀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우상숭배하면 멸망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어느 누구 하나 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을 부르시기도 했지만 나훔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보복하심의 심판이 너무나 확실하다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심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돌아오는 자들은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오늘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듣기를 거절하고 거듭하여 악에 속하면 하나님은 심판의 도구들을 통하여 우릴 징치하십니다.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징치한 자들에게 대해서 보복하십니다. 상주감리교회 성도여러분은 하나님의 보복하심의 대상이 되는 도구가 되지말고 하나님이 보복하시는 날에도 하나님은 하나님께 피하여 보호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