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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씨 종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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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 경 스크랩 주역전의대전권지이십일 -?離上坎下 火水未濟 (리상감하 화수미제)
신선 추천 0 조회 61 11.02.18 14:0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離上坎下 火水未濟 (리상감하 화수미제)

?傳? 未濟는 序卦에 物不可窮也라 故受之以未濟하여 終焉이라하니라 旣濟矣면 物之窮也니 物窮而不變이면 則无不已之理하니 易者는 變易而不窮也라 故旣濟之後에 受之以未濟而終焉하니라 未濟則未窮也니 未窮則有生生之義라 爲卦 離上坎下하여 火在水上하니 不相爲用이라 故爲未濟라.

미제는 서괘에 물불가궁야라. 고수지이미제하여 종언이라하니라. 기제의면 물지궁야니 물궁이불변이면 즉무불이지리하니 역자는 변역이불궁야라. 고기제지후에 수지이미제이종언하니라. 미제즉미궁야니 미궁즉유생생지의라. 위괘 리상감하하여 화재수상하니 불상위용이라. 고위미제라.

 未濟卦는 <序卦傳>에 “事物은 다할 수 없으므로 未濟卦로 받아서 마쳤다.” 하였다. 이미 이루면 사물이 다한 것이니, 사물이 다하였는데도 변치 않으면 그치지 않을 리가 없으니, 易은 變易하여 다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旣濟卦의 뒤에 未濟卦로써 받아 마친 것이다. 아직 이루지 않았으면 다하지 않은 것이니, 다하지 않으면 낳고 낳는 뜻이 있다. 卦됨이 離가 위에 있고 坎이 아래에 있어 불이 물 위에 있으니, 서로 쓰임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未濟라 한 것이다.

未濟는 亨하니 小狐?濟하야 濡其尾니 无攸利하니라.

(미제는 형하니 소호흘제하여 유기미니 무유리하니라.)

未濟는 亨通하니, 어린 여우가 건넘에 용감하여 그 꼬리를 적시니, 이로운 바가 없다.

?傳? 未濟之時엔 有亨之理요 而卦才復有致亨之道하니 唯濟愼處라 狐能度(渡)水로되 濡尾則不能濟하나니 其老者多疑畏라 故로 履?而聽하니 懼其陷也요 小者則未能畏愼이라 故勇於濟라 ?은 當位?이니 壯勇之狀이라 書曰??勇夫라하니라 小狐果於濟면 則濡其尾而不能濟也라 未濟之時에 求濟之道를 當至愼이면 則能亨이요 若如小狐之果면 則不能濟也니 旣不能濟면 无所利矣라.

미제지시엔 유형지리요 이괘재부유치형지도하니 유제신처라. 호능도(도)수로되 유미즉불능제하나니 기노자다의외라. 고로 리빙이청하니 구기함야요 소자즉미능외신이라 고용어제라. 흘은 당위흘이니 장용지상이라. 서왈흘흘용부라하니라 소외과어제면 즉유기미이불능제야라. 미제지시에 구제지도를 당지신이면 즉능형이요 약여소호지과면 즉불능제야니 기불능제면 무소리의라.

 未濟의 때에는 亨通할 이치가 있고 卦의 재질이 다시 亨通함을 이룰 道가 있으니, 오직 신중히 처함에 있을 뿐이다. 여우는 물을 건너갈 수 있으나 꼬리를 적시면 건너가지 못하니, 늙은 여우는 의심과 두려움이 많기 때문에 어름을 밟으면서 물소리를 들으니 빠질까 두려워해서요, 어린 여우는 두려워하고 삼가지 못하기 때문에 건넘에 용감한 것이다. ?은 마땅히 ?이 되어야 하니, 壯勇한 모양이다. <書經>에 “??勇夫”라 하였다. 어린 여우가 건넘에 과감하면 꼬리를 적시어 건너지 못한다. 未濟의 때에 이루기를 구하는 방도를 마땅히 지극히 신중히 하면 亨通할 것이요, 만일 어린 여우처럼 과감히 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니, 이미 이루지 못하면 이로운 바가 없는 것이다.

? ; 용감할 흘, 거의 흘   ?(氷) ; 얼음 빙   ? ; 날랠 흘


?本義? 未濟는 事未成之時也라 水火不交하여 不相爲用이요 卦之六爻 皆失其位라 故爲未濟라 ?은 幾也니 幾濟而濡尾는 猶未濟也라 占者如此면 何所利哉리오.

미제는 사미성지시야라. 수화불교하여 불상위용이요 괘지육효 개실기위라 고위미제라. 흘은 기야니 기제이유미는 유미제야라. 점자여차면 하소리재리오.

 未濟는 일이 이루어지지 못한 때이다. 물과 불이 사귀지 못하여 서로 쓰임이 되지 못하고, 卦의 여섯 爻가 모두 제자리를 잃었기 때문에 未濟라 한 것이다. ?은 거의이니, 거의 건너가서 꼬리를 적심은 건너가지 않음과 같다. 占치는 자가 이와 같으면 어찌 이로운 바가 있겠는가.

彖曰 未濟亨은 柔得中也요.

(단왈 미제형은 유득중야요.)

<彖傳>에 말하길 “未濟가 亨通함은 柔가 中을 얻었기 때문이요,

?傳? 以卦才言也라 所以能亨者는 以柔得中也니 五以柔居尊位하고 居剛而應剛하여 得柔之中也라 剛柔得中하니 處未濟之時하여 可以亨也라.

이괘재언야라. 소이능형자는 이유득중야니 오이유거존위하고 거강이응강하여 득유지중야라. 강유득중하니 처미제지시하여 가이형야라.

 卦의 재질로 말하였다. 亨通할 수 있는 까닭은 柔가 中을 얻었기 때문이니, 五가 柔로서 尊位에 거하고 剛에 거하여 剛과 應하여 柔의 中을 얻었다. 剛柔가 中道를 얻었으니, 未濟의 때에 처하여 亨通할 수 있는 것이다.


?本義? 指六五言이라.

지육오언이라.

 六五를 가리켜 말하였다.

小狐?濟는 未出中也요

(소호흘제는 미출중야요)

‘小狐?濟’는 험한 가운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요,

?傳? 據二而言也라 二以剛陽居險中하니 將濟者也요 又上應於五하니 險非可安之地요 五有當從之理라 故果於濟를 如小狐也라 旣果於濟라 故有濡尾之患하니 未能出於險中也라.

거이이언야라. 이이강양거험중하니 장제자야요 우상응어오하니 험비가안지지요 오유당종지리라. 고과어제를 여소호야라. 기과어제라 고유유미지환하니 미능출어험중야라.

 二를 근거하여 말하였다. 二가 剛陽으로 험한 가운데 거하였으니 장차 건너야 할 자이며 또 위로 五와 應하니, 험함은 편안한 위치가 아니요 五가 마땅히 따를 이치가 있다. 그러므로 건넘에 과감하기를 어린 여우와 같이 하는 것이다. 이미 건넘에 과감하기 때문에 꼬리를 적시는 근심이 있으니, 험한 가운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濡其尾无攸利는 不續終也라.

(유기미무유리는 불속종야라.)

꼬리를 적셔 이로운 바가 없음은 계속하여 끝마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傳? 其進銳者는 其退速하니 始雖勇於濟나 不能繼續而終之하니 无所往而利也라.

기진예자는 기퇴속하니 시수용어제나 불능계속이종지하니 무소왕이리야라.

 나아감이 빠른 자는 물러감도 속하니, 처음에는 비록 건넘에 용감하나 계속하여 끝마치지 못하니, 가는 곳마다 이로움이 없다.

銳 ; 날카로울, 예민하다, 빠르다 예

雖不當位나 剛柔應也니라.

(수부당위나 강유응야니라.)

비록 자리가 마땅하지 않으나 剛柔가 서로 應한다.”

?傳? 雖陰陽不當位나 然剛柔皆相應하니 當未濟而有與하니 若能重愼이면 則有可濟之理나 二以?濟故로 濡尾也라 卦之諸爻나 皆不得位라 故爲未濟라 雜卦云 未濟는 男之窮也라하니 謂三陽皆失位也라 斯義也를 聞之成都隱者로라.

수음양부당위나 연강유개상응하니 당미제이유여하니 약능중신이면 즉유가제지리나 이이흘제고로 유미야라. 괘지제효나 개부들위라 고위미제라. 잡괘운 미제는 남지궁야라하니 위삼양개실위야라. 사의야를 문지성도은자로라.

 비록 陰陽이 자리에 마땅하지 않으나 剛柔가 모두 서로 應하니, 未濟를 당하여 應與가 있으니 만약 신중히 하면 이룰 수 있는 이치가 있다. 그러나 二는 건넘에 용감하기 때문에 꼬리를 적시는 것이다. 卦의 여러 爻가 모두 제자리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未濟라 한 것이다. <雜卦傳>에 “未濟는 男子의 궁함이다.” 하였으니, 세 陽이 모두 제자리를 잃었음을 이른 것이다. 이 뜻을 成都의 隱者에게 들었노라.

象曰 火在水上이 未濟니 君子以하여 愼辨物하여 居方하니라.

(상왈 화재수상이 미제니 군자이하여 신변물하여 거방하니라.)

<象傳>에 말하길 “불이 물 위에 있음이 未濟이니, 君子가 보고서 신중히 사물을 분별하여 方所(제자리)에 거하게 한다.”

?傳? 水火不交하여 不相濟爲用이라 故爲未濟라 火在水上은 非其處也라 君子觀其處不當之象하여 以愼處於事物하여 辨其所當하여 各居其方하나니 謂止於其所也라.

수화불교하여 불상제위용이라. 고위미제라. 화재수상은 비깅처야라. 군자관기처부당지상하여 이신처어사물하여 변기소당하여 각거기방하나니 위지어기소야라.

 물과 불이 사귀지 못해서 서로 구제하여 쓰임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未濟라 한 것이다. 불이 물 위에 있음은 제자리가 아니다. 君子가 처함이 마땅하지 않은 象을 관찰하여 신중히 사물에 대처해서 그 마땅한 바를 분별하여 각기 그 方所에 거하게 하니, 제자리에 멈춤을 말한 것이다.


?本義? 水火異物이 各居其所라 故君子觀象而審辨之하나니라.

수화이물이 각거기소라. 고군자관상이심변지하나니라.

 물과 불의 다른 물건이 각기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그러므로 君子가 象을 관찰하여 살펴 분별하는 것이다.

初六은 濡其尾니 吝하니라.

(초육은 유기미니 린하니라.)

初六은 꼬리를 적셨으니, 부끄러우니라.

?傳? 六以陰柔在下하고 處險而應四하니 處險則不安其居요 有應則志行於上이라 然已旣陰柔요 而四非中正之才니 不能援之以濟也라 獸之濟水에 必揭其尾하나니 尾濡則不能濟니 濡其尾는 言不能濟也라 不度其才力而進하여 終不能濟면 可羞吝也라.

육이음유재하하고 처험이응사하니 처험즉불안기거요 유응즉지행어상이라. 연이기음유요 이사비중정지재니 불능원지이제야라. 수지제수에 필게기미하나니 미유즉불능제니 유기미는 언불능제야라. 부도기재력이진하여 종불능제면 가수린야라.

 六은 陰柔로서 아래에 있고 험함에 처하여 四와 應하니, 험함에 처하면 거처를 편안히 여기지 못하고, 應이 있으면 뜻이 위로 가려 한다. 그러나 자신이 이미 陰柔이고 四가 中正의 재질이 아니니, 구원하여 구제하지 못한다. 짐승이 물을 건너갈 적에는 반드시 꼬리를 드는데 꼬리가 젖으면 건너가지 못하나, 꼬리를 적셨다는 것은 건너가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재주와 힘을 헤아리지 않고 나아가서 끝내 건너가지(이루지) 못하면 부끄러울 만한 것이다.

吝 ; 아낄, 부끄러울 린   揭 ; 들 게


?本義? 以陰居下하니 當未濟之初하여 未能自進이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이음거하하니 당미제지초하여 미능자진이라. 고기상점여차하니라.

 陰으로서 아래에 거하였으니, 未濟의 초기를 당하여 스스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 象과 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濡其尾亦不知極也라.

(상왈 유기미역부지극야라.)

<象傳>에 말하길 “꼬리를 적심은 또한 알지 못함이 지극한 것이다.”

?傳? 不度其才力而進하여 至於濡尾는 是不知之極也라.

부도기재력이진하여 지어유미는 시부지지극야라.

 자신의 재주와 힘을 헤아리지 않고 나아가서 꼬리를 적심에 이름은 이는 알지 못함이 지극한 것이다.


?本義? 極字는 未詳이라 考上下韻컨대 亦不?하니 或恐是敬字니 今且闕之로라.

극자는 미상이라. 고상하운컨대 역불협하니 혹공시경자니 금차궐지로라.

 極字는 未詳이다. 上下의 韻을 上考해도 맞지 않으나, 혹 敬字일 듯하니, 이제 우선 빼놓는다.

九二는 曳其輪이면 貞하여 吉하리라.

(구이는 예기륜이면 정하여 린하리라.)

九二는 수레바퀴를 뒤로 끌 듯 急速히 하지 않으면 貞하여 吉하리라.

?傳? 在他卦엔 九居二 爲居柔得中하여 无過剛之義也로되 於未濟엔 聖人深取卦象以爲戒하여 明事上恭順之道하시니라 未濟者는 君道艱難之時也라 五以柔處君位하고 而二乃剛陽之才로 而居相應之地하니 當用者也라 剛有陵柔之義하고 水有勝火之象이라 方艱難之時하여 所賴者는 才臣耳니 尤當盡恭順之道라 故戒曳其輪則得正而吉也라 倒曳其輪하여 殺(쇄)其勢하고 緩其進이니 戒用剛之過也니 剛過則好犯上而順不足이라 唐之郭子儀, 李晟이 當艱危未濟之時하여 能極其恭順하니 所以爲得正而能保其終吉也라 於六五則言其貞吉光輝하여 盡君道之善하고 於九二則戒其恭順하여 盡臣道之正하니 盡上下之道也라.

재타괘엔 구거이 위거유득중하여 무과강지의야로되 어미제엔 성인심취괘상이위계하여 명사상공순지도하시니라. 미제괘는 군도간난지시야라. 오이유처군위하고 이이내강양지재로 이거상응지지하니 당용자야라. 강유릉유지의하고 수유승화지상이라. 방간난지시하여 소뢰자는 재신이니 우당진공순지도라. 고계예기륜즉득정이길야라. 도예기륜하여 쇄기세하고 완기진이니 계용강지과야니 강과즉호범상이순부족이라. 당지곽자의, 이성이 당간위미제지시하여 능극기공순하니 소이위득정이능보기종길야라. 어육오즉언기정길광휘하여 진군도지선하고 어구이즉계기공순하여 진신도지정하니 진상하지도야라.

 다른 卦에 있어서는 九가 二에 거함이 柔에 거하고 中을 얻음이 되어 지나치게 剛한 뜻이 없으나 未濟에 있어서는 聖人이 깊이 卦象을 취하여 경계해서 윗사람을 섬김에 공손히 하는 도리를 밝히셨다. 未濟는 君主의 道가 艱難한 때이다. 五가 柔로서 君位에 처하였고, 二가 剛陽의 재질로 서로 應하는 위치에 처하였으니, 마땅히 쓰여질 자이다. 剛은 柔를 능멸하는 뜻이 있고 물은 불을 이기는 象이 있다. 艱難한 때를 당하여 의뢰할 것은 재주 있는 臣下이니, 더욱 마땅히 恭順한 도리를 다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수레를 뒤로 끌듯하여 급속히 하지 않으면 正을 얻어 吉하다고 경계한 것이다. 수레바퀴를 뒤로 끌어 그 勢를 줄이고 그 나아감을 늦춰야 하니, 剛을 쓰기를 지나차게 함을 경계한 것이니, 剛함이 지나치면 윗사람을 범하기 좋아하여 순함이 부족하다. 唐나라의 郭子儀와 李晟은 어렵고 위태로운 미제의 때를 당하여 恭順함을 다하였으니, 이 때문에 正을 얻음이 되어 끝내 吉함을 보존한 것이다. 六五에 있어서는 ‘貞吉光輝’를 말하여 君道의 善함을 다하였고, 九二에 있어서는 恭順히 할 것을 경계하여 臣道의 바름을 다하였으니,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도리를 다한 것이다.

殺 ; 죽일 살, 빠를, 줄일 쇄


?本義? 以九二應六五而居柔得中하니 爲能自止而不進하여 得爲下之正也라 故其象占如此하니라.

이구이응육오이거유득중하니 위능자지이부진하여 득위하지정야라. 고기상점여차하니라.

 九二로서 六五에 應하고 柔位에 거하여 中을 얻었으니, 스스로 멈추고 나아가지 않음이 되어 아랫사람이 된 바름을 얻었다. 그러므로 그 象과 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象曰 九二貞吉은 中以行正也일새라.

(상왈 구이정길은 중이행정야일새라.)

<象傳>에 말하길 “九二의 貞吉함은 中으로서 正을 행하기 때문이다.”

?傳? 九二得正而吉者는 以曳輪而得中道乃正也라.

구이득정이길자는 이예륜이득중도내정야라.

 九二가 正을 얻어 吉한 까닭은 수레바퀴를 뒤로 끌 듯하여 中道를 얻음이 바로 正이기 때문이다.


?本義? 九居二는 本非正이로되 以中故로 得正也라.

거구이는 본비정이로되 이중고로 득정야라.

 九가 二에 거함은 본래 正이 아니나 中이기 때문에 正을 얻은 것이다.

六三은 未濟에 征이면 凶하나 利涉大川하니라.

(육삼은 미제에 정이면 흉하나 이섭대천하니라.)

六三은 未濟에 가면 凶하나 大川을 건넘은 이롭다.

?傳? 未濟征凶은 謂居險하여 无出險之用하니 而行則凶也니 必出險而後可征이라 三以陰柔不中正之才而居險하여 不足以濟하니 未有可濟之道出險之用而征은 所以凶也라 然未濟는 有可濟之道요 險終은 有出險之理라 上有剛陽之應하니 若能涉險而往從之면 則濟矣라 故利涉大川也라 然三之陰柔豈能出險而往이리오 非時不可요 才不能也라.

미제정흉은 위거험하여 무출험지용하니 이행즉흉야니 필출험이후가정이라. 삼이음유부중정지재이거험하여 부족이제하니 미유가제지도출험지용이정은 소이흉야라. 연미제는 유가제지도요 험종은 유출험지리라. 상유강양지응하니 약능섭험이왕종지면 즉제의라. 고이섭대천야라. 연삼지음유기능출험이왕이리오. 비시불가요 재불능야라.

‘未濟征凶’은 험함에 거하여 험함을 벗어날 用(도구)이 없으니, 가면 흉함을 말한 것이니, 반드시 험함을 벗어난 뒤에야 갈 수 있다. 三은 陰柔이고 中正하지 못한 재질로 험함에 거하여 구제할 수 없으니, 구제할 수 있는 방도와 험함을 벗어날 수 있는 用이 없으면서 감은 흉한 所以이다. 그러나 未濟는 구제할 수 있는 道가 있고, 험함이 끝남은 험함을 벗어날 이치가 있다. 위에 剛陽의 應이 있으니, 만약 험함을 건너고 가서 따른다면 구제할 것이다. 그러므로 大川을 건넘이 이로운 것이다. 그러나 三의 陰柔가 어찌 험함을 벗어나 갈 수 있겠는가. 때가 不可한 것이 아니요, 재주가 능하지 못한 것이다.


?本義? 陰柔不中正으로 居未濟之時하니 以征則凶이라 然以柔乘剛하고 將出乎坎하니 有利涉之象이라 故其占如此라 蓋行者可以水浮요 而不可以陸走也라 或疑利字上에 當有不字라.

음유부중정으로 거미제지시하니 이정즉흉이라. 연이유승강하고 장출호감하니 유이섭지상이라. 고기점여차라. 개행자가이수부요 이불가이륙주야라. 혹의이자상에 당유불자라.

 陰柔이고 中正하지 못함으로 未濟의 때에 거하였으니, 그대로 가면 흉하다. 그러나 柔로서 剛을 타고 장차 坎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니, 利涉의 象이 있다. 그러므로 그 占이 이와 같은 것이다. 길을 가는 자는 水上으로 떠갈 것이요 陸地로 달려가서는 안된다. 혹자는 利字 위에 마땅히 不字가 있어야 한다고 의심한다.

象曰 未濟征凶은 位不當也일새라.

(상왈 미제정흉은 위부당야일새라.)

<象傳>에 말하길 “‘未濟征凶’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傳? 三이 征則凶者는 以位不當也니 謂陰柔不中正하여 无濟險之才也라 若能涉險以從應이면 則利矣리라.

삼이 정즉흉자는 이위부당야니 위음유부중정하여 무제험지재야라. 약능섭험이종응이면 즉이의리라.

 三이 가면 흉한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니, 陰柔로 中正하지 못하여 험함을 구제할 수 있는 재주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 만약 험함을 건너 應을 따른다면 이로울 것이다.

九四는 貞이면 吉하여 悔亡하리니 震用伐鬼方하여 三年에야 有賞于大國이로다.

(구사는 정이면 길하여 회망하리니 진용벌귀방하여 삼년에야 유상우대국이로다.)

九四는 貞하면 吉하여 뉘우침이 없어지리니, 진동하여 鬼方을 정벌해서 3년에야 大國에 賞을 내리도다.

?傳? 九四는 陽剛으로 居大臣之位하고 上有虛中明順之主하며 又已出於險하고 未濟已過中矣니 有可濟之道也라 濟天下之艱難은 非剛健之才면 不能也라 九雖陽而居四라 故戒以貞固則吉而悔亡하니 不貞則不能濟니 有悔者也라 震은 動之極也라 古之人用力之甚者는 伐鬼方也라 故以爲義하니 力勤而遠伐하여 至于三年然後에 成功而行大國之賞이니 必如是라야 乃能濟也라 濟天下之道는 當貞固如是니 四居柔라 故設此戒하니라.

구사는 양강으로 거대신지위하고 상유허중명순지주하며 우이출어험하고 미제이과중의니 유가제지도야라. 제천하지간난은 비강건지재면 불능야라. 구수양이거사라 고계이정고즉길이회망은 부정즉불능제니 유회자야라. 진은 동지극야라. 고지인용력지심자는 벌귀방야라. 고이위의하니 역근이원벌하여 지우삼년연후에 성공이행대국지상이니 필여시라야 내능제야라. 제천하지도는 당정고여시니 사거유라 고설차계하니라.

 九四는 陽剛으로 大臣의 지위에 거하고 마음을 비운 밝고 순한 君主가 있으며 또 이미 험함에서 벗어났고 미제가 이미 中(반)을 지났으니, 구제할 수 있는 방도가 있다. 天下의 艱難을 구제함은 剛健한 재질이 아니면 능하지 못하다. 九가 비록 陽이나 四에 거했으므로 貞固하면 吉하여 뉘우침이 없어진다고 경계하였으니, 바르지 못하면 구제하지 못할 것이니, 뉘우침이 있는 것이다. 震은 動하기를 지극히 함이다. 옛사람이 힘쓰기를 심히 한 것은 鬼方을 정벌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뜻으로 삼은 것이다. 힘이 수고롭고 멀리 정벌하여 3년에 이른 뒤에야 성공하여 大國의 象을 행하니, 반드시 이와 같이 하여야 구제할 수 있는 것이다. 天下를 구제하는 道는 마땅히 貞固함이 이와 같아야 하니, 四가 柔에 거했으므로 이 경계를 베푼 것이다.


?本義? 以九居四는 不正而有悔也로되 能勉而貞이면 則悔亡矣라 然以不貞之資로 欲勉而貞인댄 非極其陽剛, 用力之久면 不能也라 故爲伐鬼方三年而受賞之象이라.

이구거사는 부정이유회야로되 능명이정이면 즉회망의라. 연이부정지자로 욕면이정인댄 비극기양강, 용력지구면 불능야라. 고위벌귀방삼년이수상지상이라.

 九로서 四에 거함은 正이 아니어서 뉘우침이 있으나 힘쓰고 바르게 하면 뉘우침이 없어진다. 그러나 바르지 못한 자질로 힘써 바르게 하고자 할진댄 陽剛을 지극히 하고 힘쓰기를 오래함이 아니면 능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鬼方을  정벌한 지 3년 만에 賞을 받는 象이 된 것이다.

象曰 貞吉悔亡은 志行也라.

(상왈 정길회망은 지행야라.)

<象傳>에 말하길 “貞하면 吉하여 뉘우침이 없어짐은 뜻이 행해진 것이다.”

?傳? 如四之才 與時合而加以貞固면 則能行其志하여 吉而悔亡이라 鬼方之伐은 貞之至也라.

여사지재 여시함이가이정고면 즉능행기지하여 길이회망이라. 귀방지벌은 정지지야라.

 四와 같은 재질이 때와 합하고 貞固함을 가하면 능히 그 뜻을 행해서 吉하여 뉘우침이 없어질 것이다. 鬼方을 정벌함은 貞固함이 지극한 것이다.

六五는 貞이라 吉하여 无悔니 君子之光이 有孚라 吉하니라.

(육오는 정이라 길하여 무회니 군자지광이 유부라. 길하니라.)

 六五는 바르므로 吉하여 뉘우침이 없으니, 君子의 빛남이 진실함이 있다. 吉하다.

?傳? 五는 文明之主로 居剛而應剛하고 其處得中하여 虛其心而陽爲之輔하니 雖以柔居尊이나 處之至正至善이니 无不足也라 旣得貞正이라 故吉而无悔라 貞은 其固有니 非戒也니 以此而濟면 无不濟也라 五는 文明之主라 故稱其光이라 君子德輝之盛而功實稱之는 有孚也라 上云吉은 以貞也니 柔而能貞은 德之吉也요 下云吉은 以功也니 旣光而有孚면 時可濟也라.

오는 문명지주로 거강이응강하고 기처득중하여 허기심이양위지보하니 수이유거존이나 처지지정지선이니 무부족야라. 기득정정이라 고길이무회라. 정은 기고유니 비계야니 이차이제면 무부제야라.오는 문명지주라 고칭기광이라. 군자덕휘지성이공실칭지는 유부야라. 상운길은 이정야니 유이능정은 덕지길야요 하운길은 이공야니 기광이유부면 시가제야라.

 五는 文明의 주체로 剛에 거하고 剛에 應하며 그 처함이 中을 얻어서 마음을 비워 陽이 보필해 주니, 비록 柔로서 尊位에 거하였으나 처하기를 지극히 바르게 하고 지극히 善하게 하니, 부족함이 없다. 이미 貞正함을 얻었기 때문에 吉하여 뉘우침이 없는 것이다. 貞은 固有한 것이니 경계함이 아니니, 이와 같이 하여 구제하면 구제하지 못함이 없을 것이다. 五는 文明의 주체이기 때문에 그 빛남을 말한 것이다. 君子가 德輝가 성하고 功이 실제로 이에 걸맞음은 진실함이 있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吉함은 貞하기 때문이니 柔하면서 貞함은 德의 吉함이요, 아래에 말한 吉함은 功 때문이니, 이미 빛나고 진실함이 있으면 당시를 구제할 수 있는 것이다.


?本義? 以六居五는 亦非正也나 然文明之主 居中應剛하여 虛心以求下之助라 故得貞而吉且无悔하고 又有光輝之盛하여 信實而不妄하니 吉而又吉也라.

이육거오는 역비정야나 연문명지주 거중응강하여 허심이구하지조라. 고득정이길차무회하고 우유광휘지성하여 신실이불망하니 길이우길야라.

 六으로서 五에 거함은 또한 正이 아니나 文明의 주체로 中에 거하고 剛에 應하여 마음을 비워 아랫사람의 도움을 구한다. 그러므로 貞을 얻어 吉하고 또 뉘우침이 없으며, 또 光輝의 성함이 있어 신실하여 망녕되지 않으니, 吉하고 또 吉하다.

象曰 君子之光은 其暉吉也라.

(상왈 군자지광은 기휘길야라.)

<象傳>에 말하길 “君子의 빛남은 그 빛이 吉한 것이다.”

?傳? 光盛則有暉니 暉는 光之散也라 君子積充而光盛하여 至於有暉는 善之至也라 故重云吉하니라.

광성즉유휘니 휘는 광지산야라. 군자적충이광성하여 지어유휘는 선지지야라. 고중운길하니라.

 빛남이 성하면 暉가 있으니, 暉는 빛의 발산이다. 君子가 쌓고 충만하여 빛남이 성해서 暉가 있음에 이름은 善이 지극한 것이다. 그러므로 거듭 吉하다고 말한 것이다.


?本義? 暉者는 光之散也라.

휘자는 광지산야라.

 暉는 빛의 발산이다.

上九는 有孚于飮酒면 无咎어니와 濡其首면 有孚에 失是하리라.

(상구는 유부우음주면 무구어니와 유기수면 유부에 실시하리라.)

上九는 믿음을 두고 술을 마시면 허물이 없지만 머리를 적시듯 지나치면 유부에 옳음을 잃으리라.

?傳? 九以剛在上하니 剛之極也요 居明之上하니 明之極也라 剛極而能明이면 則不爲躁而爲決이니 明能燭理요 剛能斷義라 居未濟之極하여 非得濟之位면 无可濟之理니 則當樂天順命而已라 若否終則有傾은 時之變也요 未濟則无極而自濟之理라 故止爲未濟之極이니 至誠安於義命而自樂이면 則可无咎라 飮酒는 自樂也니 不樂其處면 則忿躁隕穫이니 入于凶咎矣요 若從樂而眈肆過禮하여 至濡其首면 亦非能安其處也라 有孚는 自信于中也요 失是는 失其宜也니 如是則於有孚爲失也라 人之處患難에 知其无可奈何而放意不及者는 豈安於義命者哉리오.

구이강재상하니 강지극야요 거명지상하니 명지극야라. 강극이능명이면 즉불위조이위결이니 명능촉리요 강능단의라. 거미제지극하여 비득제지위면 무가제지리니 즉당락천순명이이라. 약비종즉유경은 시지변야요 미제즉무극이자제지리라. 고지위미제지극이니 지성안어의명이자락이면 즉가무구라. 음주는 자락야니 불락기처면 즉분조운확이니 입우흉구의요 약종락이탐사과예하여 지유기수면 역비능안기처야라. 유부는 자신우중야요 실시는 실기의야니 여시즉어유부위실야라. 인지처환난에 지기무가내하이방의불급자는 기안어의명자재리오.

 九는 剛으로서 위에 있으니 剛함이 지극하고, 밝음의 위에 거하였으니 밝음이 지극하다. 剛함이 지극하면서도 밝으면 조급함이 되지 않고 결단함이 되니, 밝으면 사리를 밝힐 수 있고 剛하면 義理로 결단할 수 있다. 未濟의 極에 거하여 구제할 수 있는 지위를 얻지 않으면 구제할 수 있는 이치가 없으니, 마땅히 하늘을 즐거워하고 命을 순히 할 뿐이다. 否가 끝나면 기욺이 있는 것은 때가 변했기 때문이요, 未濟는 極이 되었다고 하여 스스로 구제할 이치가 없다. 그러므로 다만 未濟의 極이 되니, 至誠으로 義와 命을 편안히 여기고 스스로 즐거워하면 허물이 없을 수 있다. 술을 마심은 스스로 즐거워함이니, 그 처함을 즐거워하지 않으면 분하고 조급하여 隕穫(곤궁)할 것이니, 흉함과 허물에 들어갈 것이요, 만약 방종하여 즐거움을 따라 즐기고 방사하여 禮를 지나쳐서 머리를 적심에 이르듯 한다면 이 또한 처함을 편안히 여기는 것이 아니다. ‘有孚’는 스스로 마음 속에 믿는 것이요 ‘失是’는 그 마땅함을 잃는 것이니, 이와 같으면 유부에 잃음이 된다. 사람이 患難에 처함에 어찌할 방도가 없음을 알고서 뜻을 방탕히 하고 돌아오지 않는 자는 어찌 義와 命을 편안히 여기는 자이겠는가.

燭 ; 촛불, 등불, 밝힐 촉   否 ; 아닐 부, 막힐 비   隕 ; 떨어질 운   穫 ; 거둘 확   耽 ; 즐길 탐


?本義? 以剛明으로 居未濟之極하여 時將可以有爲而自信自養以俟命하니 无咎之道也라 若縱而不反하여 如狐之涉水而濡其首면 則過於自信而失其義矣라.

이강명으로 거미제지극하여 시장가이유위이자신자양이사명하니 무구지도야라. 약종이불반하여 여호지섭수이유기수면 즉과어자신이실기의의라.

 剛明으로 미제의 極에 거하여 때가 장차 일을 할 수 있으며 스스로 믿고 스스로 기르면서 命을 기다리니, 无咎의 道이다. 만약 방종하고 돌아오지 아니하여 여우가 물을 건너다가 머리를 적시듯이 한다면 스스로 믿기를 지나치게 하여 義理를 잃을 것이다.

象曰 飮酒濡首 亦不知節也라.

(상왈 음주유수 역부지절야라.)

<象傳>에 말하길 “술을 마셔 머리를 적심은 또한 절제를 모르는 것이다.”

?傳? 飮酒至於濡首는 不知節之甚也라 所以至如是는 不能安義命也니 能安則不失其常矣리라.

음주지어유수는 부지절지심야라. 소이지여시는 불능안의명야니 능안즉부실기상의리라.

 술을 마셔 머리를 적심에 이르는 것은 절제할 줄을 모름이 심한 것이다. 이와 같음에 이른 까닭은 義와 命을 편안히 여기지 못해서이니, 편안히 여긴다면 그 떳떳함을 잃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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