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삿갓골재]
무룡산과 삿갓봉 사이에 위치하며, 삿갓봉의 이름을 따온 명칭으로 보인다.
◆[무룡산] 1492m
백두대간상의 남덕유산과 북덕유산(향적봉)을 이어주는 산. 용이 춤추는 듯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는데, 삿갓재 대피소에서 내려가는 길인 황점마을은 용의 꼬리에 해당한다. 황점은 옛 이름이 삼천동(三川洞)으로, 조선조 때 쇠가 많이 나던 곳이라 한다. 유황을 많이 구웠다는 데서 황점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유독 ‘봉’이 아니라 ‘산’이라는 이름을 가졌다.
◆[동엽령] 1320m
덕유산의 옛 고개 중 동엽령(冬葉嶺)은 깊은 산중에 있는 덕에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겨울 잎'으로 해석되는 그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이 일대에서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듣기가 어렵다. 무주와 동엽령을 마주하고 있는 거창군에서 동엽령을 '동업이재'로도 부르는 것을 보면 이런저런 짐작을 해볼 수는 있다. 거창군이 발간한 '거창군사(居昌郡史)'는 동엽령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경상도와 전라도 지방의 토산품을 교역하기 위해 넘나들던 재이다. 재로 오르는 병곡 대하골(현재 거창군 북상면 병곡리)에는 옛날 동업이재를 넘나들던 나그네를 위해 술을 빚어 팔았다고 하는 주막터가 있다.'
◆[백암봉] 1503m
덕유산의 최고봉이다. 안성방면으로 하얀 암봉을 내리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안성 방면으로 피라밋처럼 삼각형으로 솟아오른 가새봉이 그 아래 망봉까지 지능선 꼬리를 늘어뜨리고 서있다.
향적봉과 중봉, 덕유평전의 남쪽에 있는 봉우리로서 덕유산의 한가운데이다. 대간은 이곳에서 동쪽으로 꺾어졌다가 북향하고, 남쪽으로는 지리산으로 뻗어 내린다. 구천동으로 내려가려면 중봉 못 미쳐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오수자굴을 경유한다. ‘흰바위봉’이란 뜻인데, 바위의 색이 엄격하게는 회색에 가깝다.
◆[귀봉] 1390m
횡경재에서 백암봉에 오르기 위해 거쳐야 하는 봉우리다. 구천동계곡의 끄트머리에 올라붙은 산이어서 계곡 전체를 내려다보기에 좋은 위치다. 오수자굴이 북쪽 발아래에 위치한다. 모습이 기괴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일종의 ‘귀신봉’이다.
◆[횡경재]
백련사에서 대간을 넘어 송계사와 교통하던 고갯마루다. 대간 상으로는 지봉과 귀봉 사이에 위치한다. 편편한 덕유평전이 눈앞으로 펼쳐지는데 키 큰 나무는 없고 군데군데 잡목군락만 뭉쳐지고 흐트러진다. 이름은 ‘가로 자르는 고개’라는 뜻이며, 대간에서의 시각이다.
[송계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원효와 의상이 652년(진덕여왕 6) 영취사(靈鷲寺)를 창건한 뒤 5개의 부속 암자를 세우면서 송계암이라고 이름 지어 창건했다. 임진왜란 때 영취사를 비롯하여 5개의 암자가 모두 불탄 뒤 폐허로 있다가 숙종 때 진명(眞溟)이 송계암만을 중건했다. 6·25전쟁 때 다시 전소된 것을 1969년 중창했으며, 1995년에 원정(圓靜)이 1969년 중창 때 건립한 영취루가 기울어진 것을 해체하여 다시 짓고 문각(門閣)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지봉(못봉)] 1342.7m
지봉 정상에는 못봉으로 표시되어 있다. 지봉(池峰)의 연못 ‘지’를 따서 우리말로 못봉으로 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
월음재과 횡경재 사이에 솟아 있는 봉우리로 옛날에 연못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움푹 패인 곳이 있지만 규모는 크지 않다. 서쪽 200m 지점에 있는 전망 좋은 봉우리와 혼동하는 경우가 흔하다. 향적봉이 서쪽 건너편으로 손에 잡힐 듯 버티고 서 있고, 그 아래 백련사가 울창한 송림 사이에 모습을 드러낸다. ‘연못이 있던 봉우리’다. 국토지리정보원 지도에는 ‘지봉’ 덕유산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서는 ‘못봉’으로 소개하고 있다.
◆[월음재(달음재)]
대봉과 지봉 사이의 가늘고 긴 능선의 끄트머리에 위치한다. 북쪽의, 신대(덕유산)휴게소가 있는 구천동 구월담에서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과 만나는 갈림길이다. 남쪽 소로를 따라 내려가면 송계사계곡이다. ‘달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고개’라면 필시 지봉의 그림자인데, 이것이 관찰되려면 백련사의 위치다. 아마도 백련사의 스님이 지어 붙인 이름인 것 같다. 우리말로는 ‘달음재’다.
◆[대봉]1263m
대봉에 아르는 길에는 싸리나무 군락이 있다. 서쪽으로 향적봉 주릉이 보인다.
◆[갈미봉] 1211m
덕유산의 정상인 향적봉에서 구천동계곡 건너 동쪽의 가장 끝봉인데 대봉에 가려 보이지는 않는다. 정상과 능선의 동쪽 경사면이 목장의 초지로 조성되어 있다. 갈미봉은 ‘가리(미)봉’이 변한 말이다. 노적가리를 쌓아놓은 것처럼 우뚝하다는 의미다. ‘미’는 이름꼬리말(어미)이다.
◆[빼봉] 1039.3m
갈미봉에서 빼재까지 가는 길에 있는 봉우리다. 갈미봉에서 빼봉으로 가는 길은 비교적 경사가 급한 편이다. 빼봉은 표지석이나 표지판도 없는 아주 평범한 봉우리다. 이곳에 측량의 기준이 되는 삼각점이 있어 이곳이 빼봉임을 알 수 있다. 안내문에 따르면 전국에 1만 6000군데 삼각점이 설치돼 있으며, 이들은 지도 제작, 지적 측량, 건설공사, 각종 시설물의 설치 및 유지 관리 등의 기준점으로 쓰인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 빼봉 삼각점은 ‘무풍 438’호로 동경 127.4911, 북위 35.5146에 위치한다. 내려가다 보면 옛날에 집안에 심어 자손의 번창을 기원했다는 만지송을 만날 수 있다.
◆[빼재] 920m
빼재(수령 또는 신풍령)에 세워져 있는 <백두대간 안내비> 적힌 빼재의 유래.
<빼재>는 삼국시대부터 각 국의 접경 지역이었기에 전략적 요충지로서 수많은 민관군이 이곳에 뼈를 묻어야만 했고 임진왜란 시 이곳의 토착민들은 산짐승들을 잡아 먹어가며 싸움에 임했다. 그 산짐승들의 뼈가 이곳저곳에 널리게 됐다고 해서 “뼈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지며 뼈재가 경상도 방언으로 빼재가 되었다고 한다.
험준한 산길을 넘나들던 시절 고개를 넘던 사람들의 재물과 목숨을 빼앗아 죽은 사람의 뼈가 산을 이루어 뼈재요, 이 고개를 넘나들던 주민, 사냥군 혹은 산적들이 동물 및 가축들을 잡거나 약탈하곤 하면서 뼈를 버려 둔 곳이라 하여 뼈재.
‘빼재’는 ‘추풍령’을 본뜬 ‘신풍령’이라는 휴게소가 고개 아래쪽에 들어서면서 ‘신풍령’이라고도 불리기도 하나, 일제강점기에 고개 이름을 한자로 바꾸는 과정에서 ‘빼’를 ‘빼어나다’로 해석하는 바람에 지금은 어울리지 않는「수령(秀嶺)」즉 빼어난 고개라는 뜻의 표지석이 세워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곳 주민들은 옛 이름인 ‘빼재’로 불려지기를 원하고 있고 앞으로 이곳을 관통하여 뚫리는 터널 이름 또한 ‘빼재터널’로 불려지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한다.
[향적봉] 1614m
덕유산의 최고봉으로, 높이는 1,614m이다. 향적봉에 오르면 중봉·삿갓봉·무룡산 등 덕유산의 준봉들은 물론 멀리 지리산·가야산·기백산·적상산 등의 준봉들이 장쾌하게 펼쳐진다. 향적봉에서 중봉에 이르는 등산로에는 주목과 구상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향적봉에서 중봉을 거쳐 덕유평전, 무룡산까지 이르는 등산로에는 철쭉이 군락을 이룬다. 철쭉이 피는 계절의 풍경도 일품이지만 눈이 특히 많이 내리는 향적봉 일대의 설경은 감탄을 자아낼 만큼 아름답다.
향적봉에 오르는 등산로는 덕유산국립공원 삼공탐방지원센터(삼공매표소)를 기점으로 무주구천동 계곡을 거쳐 오르는 코스(8.5km)를 비롯해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에 내려 향적봉까지 등산하는 최단 코스(0.6km), 송계사와 안성지구(안성탐방지원센터)를 기점으로 오르는 코스 등이 있다. 향적봉은 무주구천동 33경 중 제33경이며, 2.5km 떨어진 곳에 제32경인 백련사(白蓮寺)가 있다.
[무주 리조트]
향나무가 군락을 이루어 향적봉이라 불렸다는 덕유산의 주봉 향적봉에는 무주 리조트가 들어서 있다. 덕유산 해발 1520m까지 곤돌라로 오를 수 있어, 이곳에서부터 정상 향적봉(1614m)까지는 20분 만에 갈 수 있다.
무주리조트는 무주군 설천면 심곡리 일대 그야말로 덕유산 국립공원 심장부에 들어서 있다. 1989년 이곳을 집단시설지구 및 국민체육시설지구로 용도를 변경한 후 대규모 리조트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1990년 개장한 후, 1992년 당시 대선후보가 이곳에 동계유니버시아드 대회 유치를 공약한 후 이듬해인 1993년 덕유산 주봉인 향적봉(1,614m)인근 무려 90,000m²에 대해 자연보존지구에서 국민체육시설지구로 변경되었으며 그 해 4월 대통령이 동계유니버시아드 유치 약속을 하고 이에 따라 ‘국제경기지원에 관한 특별법’으로 이곳 국공유림 임대를 허가 했으며 국제대회 기준의 스키슬로프 확장을 위해 추가로 자연보존지구를 해제했다.
1995년부터 본격 공사를 시작 한 스키슬로프로 인해 총 200만m²가 훼손되었다. 이 슬로프 공사과정에서 이식 대상이었던 나무들 가운데 주목과 구상나무의 이식 후 현재의 실태를 보면 얼마나 무성의한 이식이었으며, 그로인해 얼마나 귀중한 산림이 훼손되었는가를 알 수 있다.
당시 해발 1,000m 이상의 고지에서 자생하던 수령 300~400년 이상의 주목과 구상나무 256주와 70~80년 수령의 나무 113주 등 총 369주가 이식되었으나 대부분 생존하지 못했다.
이와 같이 보호수종의 이식이 실패한 이유는 스키장 건설에 눈이 멀어 이식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7년 1~2월에 동계유니버시아드 개최에 맞추어 최소한의 이식준비 기간(토양안정, 충분한 복토, 기후 등)을 고려하지 못한 채 서둘러 바로 옮겨 심은 결과 이같이 실패하고 만 것이다. 현재 죽은 나무는 제거하지 않은 채 고사목을 빙자한 횡사목으로 그대로 남아있으며 5~6년생 주목을 보식하는데 그치고 있는 현실은 우리가 얼마나 자연자원에 대해 무심하며, 덕유산이 스키장건설 하나 때문에 덕유산의 주요 식생대가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루었으며 앞으로도 훼손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가림봉]
남덕유8.6km/향적봉(대피소)6.2km 지점. 돌탑모양의 큰돌과 돌무리가 쌓여 있어 흔히 돌탑봉이라 하는데 누군가 이정표에 가림봉이라 표시를 해 놓은 뒤 가림봉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 자료에는 대기봉이라는 말도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