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미술상 10주년 기념전에
이순구(학예연구사)
1.
이동훈 미술상은 한국 근ㆍ현대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대전미술계의 초석이 된 이동훈 화백의 작품세계와 높은 예술정신을 기르고자 지난 2003년부터 시행된 상이다. 이번 연도에는 이동훈미술상 제10주년 기념하여 특별전을 개최하게 되었다. 그동안 본상은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고 한국미술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 원로 작가를, 특별상은 대전ㆍ충남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하는 40~50대의 역량 있는 작가를 선정되었다. 역대 본상의 수상자는 장리석, 김형구, 정점식, 서세옥, 장두건, 전혁림, 강태성, 이종학, 변시지, 안동숙 화백이며, 특별상 수상자는 유근영, 이종협, 김영대, 가국현, 한인수, 박용, 백향기, 문정규, 이돈희, 김훈곤, 정재성, 김병진 작가 등이다.
2.
이동훈은 1903년 평북 태천군에서 태어났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 조혼으로 가정을 꾸리며 그는 의주공립농업학교와 평북사범학교를 수료 후 일본 동경 구마오가(熊岡)에서 서양화를 수학하고, 도오다시게오(遠田運雄)에게 4년간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서양미술을 사사하였다.
1924년 신의주에서 학교에 근무하기 시작하여 서울, 대전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면서 후학들을 가르쳤다. 1945년에는 8.15 광복과 함께 대전공업학교(현 국립 한밭대학교), 1947년 국립대전사범학교(후 충남고등학교)에서 근무하였으며, 1969년 45년간의 미술교육자로 정년퇴임 하였다.
이동훈은 1969년 다시 서울에서 수도여자사범대학(현 세종대학교)에 출강하면서 후진양성에 진력하였다. 1984년 골절상을 입고 입원가료 중 합병증으로 그 해 5월 25일 8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제자들은 그에게서 처음 느낀 근엄한 인상과는 반대로 따뜻한 인간미를 가지고 있으며, 일반적인 세상과는 타협을 싫어하는 진솔하고 정직한 인물로 기억한다. 관리자의 보직을 싫어했으며 오직 그림에만 몰입하는 성품이었다. 그의 화업 전반적으로 자연의 향토적 풍광에 빠져 소와 계룡산, 강과 언덕을 아끼면서 사생하여 화폭에 담았다. '알아야 할 것을 알고, 인지했으면 철저한 행동으로 실천한다'는 신념으로 예술가로써 또는 미술 교육자로 길을 가고자 했다.
이동훈은 서양미술의 도입기에 몇 안 되는 서양화가로 목가적이고, 향토적, 서정적 자연을 소재로 한 회화 세계를 개척한 작가이기도 하다.
1928년 처음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한 후 1940년까지 '풍경' '봄이 가까이 오다' '압록강 기슭' '강변풍경' '서대문밖 풍경' '좌상' '창밖 전망' '신록의 언덕' 등을 출품하여 한국인으로서 어려운 여건에서 연 입선을 하는 쾌거를 올렸다.
해방 후부터 ‘대한민국미술대전(국전)’ 창설 당시 제1,2회에 특선과 '목장의 아침'으로 문교부장관상을 수상한 그는 동 대한민국미술대전의 추천작가, 초대작가, 심사위원을 역임했으며, 초대작가상을 수상하였다. 1958년에는 세계미술의 흐름에 자극받아 구상미술의 새로운 태동을 위한 목우회 창립회원으로 참여하였으며 창작생활과 함께 미술교육계에 몸담아 활동하였다.
그의 작품세계는 자연과 묵시적인 교감을 통해 향토적 애착으로 완성한다. 당시 그의 회화세계가 추구한 서정적 풍경의 진수들은 유화의 진득한 고착력과 발색에 의해 강인하고도 우직한 정물과 풍경을 만들어내게 된다.
우리 근대미술에서 유화기법이란 실경산수를 토대로 한 사실주의적 화풍이 자리하게 된다. 더 나가 서구화에 따른 감정이입 법으로 나타난 사실적인 객관으로서의 자연주의적인 관점으로 정착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또한 인상주의적인 관점의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바탕에 두고 유화기법은 수용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향토적 소재의 활기가 띠었다는 것이다. 민족적 자각과 지역의 풍토를 반영한 대상들의 근근한 관찰과 이를 통해 민족적 자긍심을 끄집어내고 실천하려는 유형들이다. 물론 어쩌면 일제감점기의 정치수단으로 ‘목가적’이라는 수긍적인 이데올로기로서의 그림의 파급으로 몰고 갈수 있다. 그러나 전통적인 그림에서 유화(油畵)체계의 당시 그림을 받아들이는 태도로서는 당연한 듯 보인다. 한복을 입던 우리의 조상이 양복으로 갈아입으며 현실에 부합하게 변형시키는 과정, 근대회화사에서도 그 과정이 당시의 과제였으리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이동훈의 그림은 순간적인 감정에 의한 화법이 아니라 바르고, 반복해서 칠하고, 바르는 과정에서 우리의 일상과 풍경은 그만의 화법으로 순수하고 묵직한 여유로움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3.
장리석은 뭉텅뭉텅하게 점착(粘着)되는 마티에르의 기법으로 화려한 전면 보다 화려하지 않고 진실한 삶과 서민생활의 애환을 쫓는 그림을 그렸다. 토속적 기법의 강직한 그림은 한 사람의 시대적 증인으로서 예술가적 위치를 획득한다.
김형구는 처음 평범한 주변생활을 사실적으로 그렸으나 1970년대 후반부터 심상적인 표현의 원초적 요소와 구성적 표현을 강조하였으며, 사실주의의 생동감과 함께 단순함이 조화를 이루는 격조 높은 세계를 추구하였다
정점식은 이지적인 화면구성, 대상의 해체와 종합, 그리고 구상과 추상의 조화를 꾀하는 비구상 작업의 대가이다.
서세옥은 초기부터 전통적인 방식을 탈피하여 추상성과 단순성을 토대로 현대적 동양화를 개척했으며, 1950년대에는 점과 선의 파격적인 수묵 추상작업으로 한국현대미술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장두건은 선과 면에서 독자적인 조형성을 확보하는데 선은 거의 직선에 가까워 어찌 보면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의 직선적인 선묘만으로 형상을 조립 한다. 그러나 이 표현법의 근본은 자연물에 부여된 조형적인 질서 및 조화의 신비를 그 자신의 미감에 의해 재구성해 내어 자연물이 지닌 내적인 이미지의 형상화한다.
선과 면에서 독자적인 조형성을 확보하는데 직선적인 선묘만으로 형상을 조립 한다. 이 표현법의 근본은 자연물에 부여된 조형적인 질서 및 조화의 신비를 그 자신의 미감에 의해 재구성해 내어 자연물이 지닌 내적인 이미지의 형상화한다.
전혁림은 삶 전반에 걸친 화력을 통해 추상과 구상의 경계영역을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표현영역을 확대했다. 자유로운 구성과 형태, 향토성 짙은 색채의 초기 구상회화는 후기에 들어오면서 점차 추상화되었으며 단순화와 응집된 색감을 통해 한국적 미감을 밀도 있게 표출해냈다.
강태성은 바다와 같은 흐름이나 물결, 바람 등을 소재로 해서 순간을 형상화했다. 찰나에 소멸되는 흐름의 역동적인 것을 조각의 형상으로 아로새겨 표현하고자 했으며 돌의 재질감을 최대로 살려 유동하는 것을 돌에 형상화하는 작업을 했다.
이종학은 시(詩)와 서(書)와 그림(畵)이 한데 어울리는 화면을 만들고 있다. 부작지작(不作之作)이라는 말처럼 유희 자적한 드로잉적인 표현으로 명쾌한 한국적인 동양사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
변시지는 화면 전체가 장판지색이나 마른 듯 보이는 황토빛 바탕으로 이루어졌으며 갈필의 강약을 통한 그의 선은 힘차다. 풍경과 인물은 먹선의 고졸(古拙)한 맛과 역동성(力動性)이 함께 어울려 장대한 대자연의 율동으로 형상화된다.
안동숙의 공간성은 평면성의 강조, 여백의 처리, 선의 사용, 색채 등에서 전통적인 평면으로 파악하여 구성한 것이다. 이는 동양화의 공간감각을 파괴하기 위한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색채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동양화의 채색법을 무시하고 이미지를 위해 색채를 주관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이 지역을 연고로 활동하는 특별상 작가들은 독자적인 서정과 표현기법을 연구하여 창작하는 작가들이다.
유근영의 신농백초(神農百草)라는 글귀에 마음이 끌려 백가지 풀을 그려 보고 싶었던 <엉뚱한 자연>은 색채마다에 음악이 담겨있으며, 회화로의 희귀의 표본을 보여준다.
이종협의 자연미술적인 드로잉은 판화의 선연한 동백꽃이 되었다가, 시간과 빛과 식물이 빚어내는 회화가 되었으며, 끝내는 자연의 상태를 예술로 끌어들이는 생태미술의 호흡이 되어 자연을 그리는 <매화중독(梅畵中毒)>자가 되었다.
김영대의 조각과 회화의 오랜 관계를 함축한 조각그림은 3차원에서 2차원으로 회귀하며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녹여 조형미의 쾌활한 전이감(轉移感)을 가져다준다.
가국현의 단순 명료한 사물이나 인체는 조형의 이상향으로 조율되고, 사물 그이상의 심플한 아름다움을 우리에게 전해준다.
한인수의 빼곡한 붓 터치는 성실함과 올곧음이 전해진다. 그가 그리는 산과 들 그리고 우리들의 신화는 철저한 노력 속에 피어난 하나의 커다란 열매와 같다.
박용의 작품은 오래된 벽이 뜯어진 듯 준비된 화면에 비탈과 수평과 수직에 의해 화면이 분할되고 그 위에 소담하고 작은 마을들의 정경이 피어난다. 수백 년 전부터 우리가 살아오고 살아가야할 고향과 같은 그의 풍경은 그래서 언제든 향수를 불러온다.
백향기의 꽃들이 가득했던 화면은 스스로 그러한 자연처럼 형태는 잘게 부서져 아름다운 조각들로 변했다. 화사한 꽃으로서가 아닌 본질의 순수한 질서로 자리하며 이 편린들은 정연(整然)한 정신으로 화면에 남았다.
문정규는 전천후 아방가르드이다. 이러한 실험성은 회화에도 고스란히 투여되어 <안과 밖>의 작품을 통해 틀이 규정하는 공간을 파기하고 확장하는데 벽과 틀, 틀과 그림을 모두 소유하는 그의 모색은 계속되고 있다.
이돈희의 분할적인 화면구성과 집중적인 화면의 밀도, 그리고 자연의 소재들은 그의 단단하고 깔끔한 회화를 말하기에 적절한 것이다. 특히 화면의 밀도는 관람자를 사색하게 하는 예쁜 집중력을 우리에게 가져다준다.
김훈곤의 <무작위-작위>는 칠하는 행위의 우연과 필연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물감의 뿌림에서 발생하는 우연을 만다라적인 법칙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그의 필연적인 작업과정이다.
정재성의 인물이나 풍경은 따듯하다.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그러하고 섞여 칠해지는 색채가 그러하다. 그래서 누군가는 그의 그림을 사실과 추상을 양립시키지 않고 군더더기 없는 한편의 시(詩)라 했다.
김병진의 작업에는 '먹을 밀어 찍어내기'와 '바탕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여' 선묘 가까이 공간을 남게 하는 갈필의 흔적을 남기는 방법이 혼재한다. 또한 먹을 지면에 밀착시키듯 압착하는 방법으로 이른바 지면여백의 미라 일컫는 상황이 배제되고 검은 먹빛이 그 자리를 채운다. 하여 연약한 듯 보이는 들꽃들은 화병과 더불어 감상자의 시각에 오래 각인된다.
유월의 중순! 화가이자 이지역의 교육자였던 고 이동훈 화백의 예술 혼을 살리고자 마련된 미술상의 근본취지를 따라 이 글을 쓰며 그의 정신을 되새겨 본다. 20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