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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꾼 바나바 (행 11:24-26)
오늘은 새가족사역팀 헌신예배입니다. 요즈음 새가족 사역팀을 보면 이제는 자리가 잡아가고 있지않나 그리 생각합니다. 팀장이신 허재숙권사님 이하 팀원들이 사명을 가지고 일하시는 것을 보면 참으로 감사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일한다는 것은 그리쉬운 일은 아닙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있기 때문에 자기를 내려놓지않으면 조화를 이룰 수 가 없습니다.하모니를 잘 이루는 일이 가장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머리로 인정하고 내가 그 지체인 것을 인정하기만 하면 조화를 이루어 건강한 교회를 이룰 수 있습니다. 요즈음 생명의 샘가에서 출애굽기를 묵상하고 있는데요, 참 은혜를 받습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모실 성막을 건축하게 됩니다. 가기에 필요한 것이 참 많은데 백성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아낌없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자기 것을 내어 놓습니다. 각종 귀금속입니다.
소중한 것이지만 주를 위한 마음으로 마음에 감동되는 대로 다 내어놓는 데 어떤 사람은 금은 보석을 어떤 사람은 기술을 어떤 사람은 몸으로 헌신하면서 다 같이 함께 성막건축하는 일에 힘씁니다. 그중에서 오늘 말씀은 브살렐과 오홀리압을 하나님이 지명하여 부르는데 그들은 총감독이고 실무감독입니다.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성령을 충만히 부어주시고 지혜와 총명과 지식의 은사를 부어주셔서 그일을 은혜로 하도록 이끌어 가십니다.
참 아름다운 모습니다. 저는 오늘 우리들이 여러 가지 다양한 은사를 가지고 주님을 섬기는데 무엇보다 성령충만한 사역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처음 기독교가 태동할 때는 참으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온갖 박해와 핍박, 당국자들의 위협과 회유, 예수를 전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위협을 하기도 하고 예수믿는다는 한가지 이유 때문에 가문에서 쫓겨나고, 그 사회에서 출교당하는 엄청난 고난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박해속에서도 교회는 믿는 자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면서 대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황폐한 세상 가운데서도 교회가 성장한 데는 몇가지 중요한 원인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교회가운데 성령이 내주하고 계시면서 이끌어 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성령행전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성령이 교회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워서 파송하고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다스렸습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영혼의 갈망으로 방황하던 사람들에게 빛을 던져주시고 진리로 이끌어 성령충만한 삶, 성령충만한 능력,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하는 능력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와같이 오늘도 우리 교회가 성장하는 길은 성령님의 역사를 인정하고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이 주관하는 교회, 사람의 생각과 사람의 힘만 가득한 교회가 아니라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민감하여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뜻대로 순종하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헌신된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사도들이 말씀과 기도하는 일에 전무할 수 있도록 평신도들이 일어섰습니다. 성령이 임하니까 가만히 있을 수 가 없습니다. 예수를 영접하고 나니 삶의 주권이 바뀌었습니다. 인생관이 바뀌었습니다. 삶의 목표가 바뀌었습니다. 이제 이 세상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내세를 보고 하나님의 나라를 보는 눈이 열렸습니다. 영원한 세계에 대한 확신이 생겼습니다. 일곱명의 집사가 세워지면서 교회조직이 정비되고 저들을 통해 교회의 실무는 다 보게 되면서 교회는 급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하게 된 것입니다.
초대교회가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굳건하게 서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좋은 일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성장하고 발전하는데 있어서 목사의 역량은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목사의 사역을 뒷밭침하는 훌륭한 성도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초대교회는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전적으로 생명을 걸고 가르치는 사도가 있었습니다. 뿐 만 아니라 그 사도를 돕는 좋은 일꾼들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생명의 샘가를 통해서 요즈음 묵상하는 말씀이 출애굽기인데 정말 새롭게 묵상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참으로 하나님앞에 나아가 40일 금식하면서 하나님앞에 목숨을 내어놓고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눕니다. 백성들은 두려워서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두려워하는데 모세는 마치 친구처럼 대화했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기도를 보면 하나님과 얼마나 잘통하는지 하나님과 대화가 되고 있다는 것이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물론 오늘의 우리도 그렇게 하나님앞에 날마다 나아와 기도하지만 그렇게 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막을 건축하는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백성들이 몸으로 기술로 물질로 가지고 오는데 누구하나 자기것을 아까와 하지않고 넘치도록 필요한 것을 아낌없이 다 헌물해주었습니다. 광야교회가 참으로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서로 잘난 체도 하지않고 자기들이 소중히 여기는 금은 보석 장식품을 아낌없이 다 내었습니다.
살아있는 교회, 하나된 교회를 보면서 참으로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초대교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것을 아까워 하지않고 공동체를 위해 자기 재산조차 하나님앞에 가지고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당장 먹을 것을 먹지못하는 지체들이 교회안에는 많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바나바입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에는 영적인 지도자들이 참 많았습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 여러분, 이러한 훌륭한 제자들을 제외하고 가장 이상적인 신앙인은 누구입니까? 저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바나바를 들고 싶습니다.
이 바나바는 오늘 우리가 흠모해야 할 좋은 사역자입니다. 우리 교회가 소그룹을 지향하고모든 성도들이 한결같이 자기에게 주신 달란트를 발견하고 계발하여 건전한 교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바나바와 같은 일꾼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예수님의 직접적인 제자가 아니면서도 사도와 같이 훌륭한 사역을 감당했던 평신도 지도자였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 나타난 바나바에 대해 상고하면서 은혜를 받고 우리 가운데도 바나바와 같은 좋은 사역자가 많이 나오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초대 교회의 역사를 보면 이름 없이 큰 일을 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일에 크게 쓰임을 받았음에도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훌륭한 신앙인이었으니 그가 바로 바나바라는 인물입니다. 바나바는 자기의 이름을 세상에 드러내지 않고 배후에서 다른 사람이 일을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격려하고, 용기를 주면서 하나님의 역사에 크게 쓰임을 받다가 조용히 사라져 간 위대한 사람입니다.
만약 바나바가 없었더라면 그 위대한 사도 바울도 없었을 것이며, 당연히 신약 성경의 13개 바울 서신도 없었을 것입니다. 바나바라는 인물이 그의 배후에 있었기에 사도 바울이 있었고, 소아시아와 유럽지역을 중심한 전 세계의 복음 사역이 가능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바나바 때문에 사도 바울이 있게 되었고, 사도 바울을 통하여 세계 선교가 이루어졌다면 바나바야말로 참으로 위대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 가운데서 바나바와 같은 인물을 찾고 계십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24) 이와 같은 칭찬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찬사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 영광스러운 칭찬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나바의 신앙 인격은 결과적으로 안디옥 교회가 부흥하는데 큰 일익을 담당했습니다.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26)
바나바와 바울이 함께 안디옥 교회에서 많은 무리를 가르쳤는데,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바나바와 바울에게 말씀을 배우고 그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그들의 변화는 안디옥 사회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습니다. 결국 안디옥 사람들은 안디옥교회 성도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된 것입니다. 안디옥 교회는 이방 땅에 최초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 성도들의 아름다운 신앙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아,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저런 것이구나!"하고 감탄했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제자가 여기에서 나옵니다.
이방 땅에서 제자가 나오는 것은 처음입니다. 안디옥에서 많은 무리를 가르쳤는데 그때 제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위대한 제자는 바나바에게서 나왔습니다. 위대한 제자의 모습을 바나바가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즉 바나바가 머무는 곳마다 많은 사람을 살려주는 위대한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지금도 바나바를 찾고 계십니다.
성경은 바나바에 대하여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 (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행4:32~37)
1. 교회가 부른 이름 바나바
바나바라는 이름은 사도들이 지어준 별명이고, 그 사람의 본래 이름은 '요셉'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지중해의 구브로 섬에서 태어난 유대인 레위지파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통하여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유월절 명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왔다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자기 재산을 다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갖다 놓았던 것입니다. 자신의 전 재산을 사도들에게 맡겨서 당시의 교회가 필요한 대로 쓰도록 한 것입니다.
사도들이 요셉에게 "바나바"라는 별명을 지어줬는데 곧 "권위자"(勸慰子)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한자로 즉 '권면하고 위로하는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분명히 많은 사람들을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베풀었기 때문에 본명보다도 '바나바'라는 별명으로 불려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바나바라는 이름은 한 개인의 이름이 아니라 누구든지 다른 사람을 살려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며, 격려해주는 사람을 모두를 지칭하는 이름입니다.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은 다 바나바인 것입니다. 본래 바나바는 사도가 아닌 평신도였으나 나중에는 사도라는 칭호로 불려지게 됩니다. (행14:14-15)"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 여기까지는 바나바라는 이름이 먼저 나옵니다. 그런데 15장부터는(2,35) "바울과 바나바"로 뒤바뀝니다. 바나바는 평신도입니다. 그는 특별히 신학공부를 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그는 사도라고 불려집니다. 그는 사도의 전승을 받아서 위대하게 살았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그를 바울과 함께 사도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2. 성령의 사람 바나바
바나바가 왜 이렇게 위대한 사람이 되었습니까? 그것은 성령의 능력 때문입니다. 바나바라는 이름을 얻게된 것은 그의 성품이나 성격 때문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 때문이었습니다.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성령과 믿음에 따라서 착한 사람이 되었고, 결국 바나바라는 이름을 얻게된 것입니다. "성령의 사람"이라는 말은 "바나바"라는 말과 같습니다. 성령의 사람은 바나바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14장)에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혜사"라고 소개하셨습니다.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 이 말은 "곁에서 도와 주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영어 성경에서는 "Comforter(위안자), Advocate(변호자), Teacher(선생), Helper(협조자), Counselor(상담자)" 등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이 곧 보혜사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위로해 주시고, 변호해 주시고, 상담해 주시며,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면서 다른 보혜사를 우리에게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보혜사"라는 말은 예수님이 처음 사용하셨습니다. 그런데 결국 요셉이라는 사람이 성령과 믿음이 충만하여 그의 생애가 바나바의 생애가 되었습니다.
바나바를 누가 쓰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쓰시려고 작정하셨을 때 바나바를 먼저 세우셨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있기 위해서는 바나바가 먼저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주셔서 바나바가 되게 하십니다. "네가 바나바가 되어라. 그래야만 바울과 같은 위대한 사도가 너 때문에 나올 것이다." 사울이 어떻게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까? (행9:26~27)을 보면, "사울이 예루살렘에 가서 제자들을 사귀고자 하나 다 두려워하여 그의 제자됨을 믿지 아니하니 바나바가 데리고 사도들에게 가서 그가 길에서 어떻게 주를 보았는지와 주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다메섹에서 그가 어떻게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였는지를 전하니라."
사도 바울은 본래 예수를 믿지 않던 사람이었고, 도리어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스데반을 돌로 쳐죽일 당시 옆에서 증인들의 옷을 맡아서 스데반을 죽인 자들과 함께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또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처형하려고 이웃 나라인 다메섹까지 쫓아가던 정말 잔인무도하고 무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변화되었습니다. 이 소식은 예루살렘 사도들에게도 전해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사도 바울을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은 본질적으로 무서운 사람이다. 그러니 가까이 할 수 없다."하여 그를 상대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때 바나바가 바울을 데리고 예루살렘까지 그 먼길을 걸어서 사도들에게 찾아갑니다. 그리고 사도들에게 "이 분은 이렇게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하고 그의 신원을 보증해 줍니다.
바나바는 자기 재산을 다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갖다놓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도들은 그를 인정하고, 존경하며 사랑하므로 바나바의 말은 그대로 신뢰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드디어 제자들과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놀라운 변화가 나타나게 됩니다. "사울이 제자들과 함께 있어 예루살렘에 출입하며"(행9:28)
드디어 바울이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함께 동행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과 함께 출입할 때 모든 사람들이 바울을 인정하게 됩니다. "또 주 예수의 이름으로 담대히 말하고 헬라파 유대인들과 함께 말하며 변론하니"(9:29) 본토 유대인들이 있고, 헬라파 유대인들이 있는데 이방 땅에서 태어나 거기서 살고있는 사람들이 헬라파 유대인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 헬라파 유대인들에게도 예수님을 증언하기 시작합니다. 이러한 일을 누가 했습니까? 배후에서 바나바가 다 했습니다. 사울이 바울이 되도록 만들어준 것입니다. 만약 바나바가 없었다면 사도 바울의 그 위대한 선교 사역도 있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3. 격려자 바나바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25~26)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의 목사로 파송받았습니다. 그는 얼마든지 안디옥 교회에서큰 사역을 이룰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롭게 있는 바울을 생각했습니다. "나보다도 바울이 와서 일하면 더 좋겠다" 그래서 바울을 찾아가서 그와 동역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것이 바나바의 위대한 사역입니다. 바나바는 함께 일하면서 다른 사람을 격려하고 도와주는 일을 하는데 하나님께서 함께 하는 놀라운 일을 이루어 놓은 것입니다.
목사가 바울처럼 목회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나바처럼 목회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교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감싸주는 목회가 되어야 합니다. 생각해보면, 성도는 바나바와 같은 성도가 되어야 하고, 목사도 바나바와 같은 목사가 되어야 합니다. 이 나라의 문제, 이 사회의 문제, 또한 교회의 문제는 서로 높아지려는 사람만 있지, 배후에서 남을 도와주고 높여주려는 바나바가 없다는 데에 있습니다. 모두가 다 대통령만 되려 하고, 다 반장만 하려고 하지, 뒤에서 보좌해 주고 도와주는 사람으로는 나서지 않습니다.
특히 우리에게 부족한 면이 바로 이 점입니다. 다른 사람을 높여주고, 남을 세워주는 일, 이것이 바로 주님께서 하신 일이고, 성령께서 하신 일이며, 성령께서 요셉을 변화시켜 바나바를 만들어 하신 일이고, 지금도 이 일을 할 수 있는 바나바를 찾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 교회에 절실히 필요한 사람은 바나바입니다. 바나바는 가정이나 직장, 사회나 국가에서 절대 필요로 합니다. 모든 아내들은 '내가 남편을 세워주고 격려해주는 바나바 아내가 되어야지'하는 마음을 가지시고, 모든 남편들도 '내가 아내를 위로해 주고 높여주는 남편이 되어야지'하는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직장에서도 다른 사람을 살려주는 바나바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가장 좋은 어머니는 바나바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식을 살려주는 일로 한평생을 삽니다. 그래서 어머니의 사역은 보혜사 성령께서 하시는 일과도 같습니다. 어머니는 일생동안 자녀를 낳아서 키우고, 보호하고, 도와주면서 일생을 마칩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선생님들은 다 바나바 선생이 되어야 합니다. 학생들을 격려하고 살려주는 일을 해야 합니다. 모든 성도들도 다 바나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4. 진정한 헌신자 바나바
바나바는 마음으로만 주님을 사랑하고 섬긴 것이 아닙니다. 교회안에 굶주린 형제와 자매를 돌보면서 가장 아쉬운 것이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교회에 필요가 무엇인지를 알았습니다. 사실 이렇게 교회의 필요를 안다는 것은 교회의 진정한 지체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알고 만것이 아니라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생각해 낸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가 가업으로 물려받은 땅을 팔아서라도 지금 굶주리고 고통받는 같은 지체들의 아픔을 도와주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나바의 마음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입으로만 하는 것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일에 관심을 갖고 있으면 교회의 필요가 무엇이며 교회가 할 일이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다음에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갖고 있는 달란트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달란트가 무엇인지 점검하고 그 일을 은사를 찾아 주님의 교회를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체의 사명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특권입니다. 내게 주신 물질이든지, 재능이든지, 환경이든지, 무엇이든지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영광입니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이방 땅에 살고 있던 헬라파 유대인들이 유월절 명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왔다가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받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은혜 받고 예수님을 믿게 되자 고향 땅에서 핍박을 받고 노숙자가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가정도 잃고, 직장도 잃게 되니까 무작정 예루살렘에 남아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나바가 이들을 보고 자기 재산을 다 팔아서 교회에 내놓은 것입니다. "이 사람들을 도와주십시오"
직장을 잃고, 가정에서 쫓겨나 예루살렘에 모여서 오로지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식량을 공급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자기 재산을 다 팔아 사도들 발 앞에 갖다 놓습니다. 자기 존재를 완전히 발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 물질을 가지고 당시 초대교회는 수많은 노숙자들을 먹여 살렸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가진 달란트를 바나바처럼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희생이 있습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바나바는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신 물질, 달란트를 하나님의 일에 온전히 바친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바나바는 사도행전의 한 성도일 뿐만 아니라 전 성도가 바나바가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나바가 있는 곳에 전도의 문이 열렸으며, 바나바가 있는 곳에서 위대한 인물이 나왔고, 바나바가 있는 교회가 부흥되었습니다. 모든 지역사람들이 교회를 우러러 보게 되었습니다. 이 세상을 향하여 우리가 들어가는 곳마다 바나바로 들어가야 합니다. 어느 직장, 어느 가정, 어느 사회든지 바나바가 들어가서 수많은 사람들을 살려 놓아야 합니다.
바나바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새 신자 사울을 찾아서 먼저 사도된 주님의 제자들을 소개했듯이 교회에 처음 나온 새 신자들에게 먼저 믿은 사람이 바나바가 되어 그를 찾아가서 격려해주고, 그에게 용기를 주면서 먼저 믿은 사람들과 교제를 이루게 해줍니다.
바나바는 새 가족에게 화목을 선사해주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있는 사람들은 사울을 아주 싫어했습니다. 그런데 그를 직접 데리고 와서 화목시켜 줍니다. 그리고 바나바는 사울에게 교회의 일을 맡깁니다. 저와 여러분의 생애에도 바나바같이 위대한 사역이 계속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