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광용의 꺼삐딴리
소설 ‘소문의 벽’을 통해 죽음의 공포 앞에서 이데올로기를 강요 당하는 우리네의 비극적 현대사를 집어 봤습니다만 그 반대의 인간도 적지 않습니다. 변신의 귀재들이죠. 나라와 사회가 어찌되든 자신만 챙기는 부류의 사람들은 부유하거나 사회 지도층인 경우가 많은데요. 작가 전광용은 소설 ‘꺼삐딴리’를 통해 한국 사회의 단면을 고발합니다.
<줄거리>
의사 이인국은 잘 나가는 의사다. 그가 소유한 서울 중심가의 2층짜리 병원은 개인병원이라도 종합병원에 버금가는 수입을 올릴 정도다. 진료비가 두 배 비싸도 그의 병원은 환자들이 몰린다. 이인국은 소중하게 여기는 18금 회중시계를 바라보며 회상에 젖는다. 시계는 제국대학 졸업시 받은 상품인데 그가 월남할 때 가져온 단 두 개(왕진가방과 시계)중 하나였다.(당시 식민지 조선에는 대학이 경성제국대학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 민족지도자들을 길러낸 보성전문과 연희전문-각각 고려대와 연세대의 전신-도 전문학교였죠. 일본 본토에 7개, 조선과 대만에 1개씩 설치했던 제국대학 졸업생중 성적 우수자에게는 일본왕이 시계를 하사했답니다. 이인국은 제국대학 졸업시 시계를 받을 만큼 뛰어난 학생이자 의사로 묘사됩니다. 우수한 학생이 사회로 나가면 기회주의자로 변신하는 현실을 묘사하려는 설정 같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이인국은 떵떵거리고 살았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일본인 환자, 특히 힘 있는 일본인들을 극진히 모셔 그의 병원은 일본인들로 북적거렸다. 조선인 사상범 환자를 건성으로 치료하고는 아무런 가책도 없이 내쫓은 적도 있다. 일본인으로 살고 싶었던 그는 집안에서 아이들에게도 일본어만을 사용하도록 강요해 집 앞 대문에는 ‘국어 상용의 집’이라는 명패가 붙었다. 이인국은 이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잠꼬대마저 일본어로 할 정도로 그는 일본인보다 일본어를 잘했다.
해방은 그에게 위기였다. 소련군이 진주한지 얼마 안지나 그가 내쫓았던 조선인 사상범의 고발로 감옥에 갇혔다. 반민족 행위자들이 수감된 감옥에서 절대절명의 순간, 기회가 찾아왔다. 감옥에 이질이 돈 것이다. 이인국의 치료로 이질이 없어지자 소련군들로부터 신뢰를 얻게 된 그는 의료보조요원으로 비교적 자유롭게 지내며 러시아어를 열심히 익혔다. 얼마 뒤에는 처지가 완전히 바뀌었다. 소련군 지휘관 스뗀꼬프의 턱에 달린 거대한 혹을 제거하는 수술에 성공한 덕분이다. 감옥에서 풀려나 집에 돌아온 그는 또 다시 성공가도를 달렸다. 스뗀꼬프의 추천과 보증으로 아들을 모스크바에 유학 보내는 특전도 누렸던 그에게 위기가 또 다시 다가왔다. 6.25전쟁으로 미군이 진주한 것이다.
중공군의 개입으로 철수하는 미군을 따라 그는 왕진가방과 시계만을 들고 남으로 향했다. 서울에 자리 잡은 그는 열심히 영어를 익히고 미국인을 사귀었다. 미국 대사관의 브라운의 환심을 사기 위해 국보급 청자를 바친 적도 있다. 미국 국무성 초청으로 미국을 방문하게 됐다는 점에 그는 한껏 부풀어 올랐다. 초청케이스의 미국 방문을 한국사회에서 최상류층으로 인정받는 보증수표로 여긴 것이다. 회중시계를 어루만지며 미국 방문의 꿈에 기대에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토론 내용 및 생각해 볼 문제>
-정체성 결여, 기회주의적 행태가 비단 이인국 만의 문제일까.
-실은 우리 모두가 자유롭지 않다. 누구나 조금씩은 기회주의적이다. 살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소신보다 보신에 급급하다 보니 우리 사회가 이 모양이다.
-기회주의자의 전형이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그는 대구사범을 졸업하고 문경초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했었다. 당시에 그 정도 학력과 직업이면 엘리트로 인정받는데 별안간 ‘큰 칼 차고 돌아오겠다’며 학교를 떠난다. 그를 미화하는 책에는 일본인 교감과 민족 문제로 다퉜다고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출세하고 싶어 만주군관학교에 지원해 첫 시험에서 떨어졌다. 나이가 많다는 이유에서다. 두 번째 시험에 그는 ‘진충보국 멸사봉공(盡忠報國 滅私奉公)’이라는 혈서를 만주군관학교에 보내 일본인들을 감복시킨 끝에 입학할 수 있었다. 졸업성적이 좋아 일본 육사 3학년에 편입된 그는 소위 임관 후 독립군 소탕을 임무로 삼았던 간도특설대에서 근무했다. 작전에 나가기 전이면 ‘좋다, 토벌이다’를 혼자 외쳤던 그를 일본인 장교들마저 ‘조선인이면서도 신나게 조선인을 토벌한다’며 ‘이상한 놈’으로 여겼다고 전해진다.
일제가 패망 후 박정희는 광복군에 기웃거리다 거절 당했다. 고향에 돌아와 국군 장교로 옷을 갈아입은 그는 좌익 사상에 물들어갔다. 가장 존경했다는 둘째형 박상희의 영향을 받았다. 박상희가 1946년 대구 ‘10월 폭동’에서 경찰과 우익청년단의 죽창에 찔려 죽임 당한 뒤에는 국내 남로장 비밀조직의 2인자까지 올랐다.(죽은 박상희의 딸 박영옥을 아끼던 박정희는 총애하던 후배 군인에게 박영옥을 시집 보냈다. 박영옥의 남편이 바로 김종필이다) 1948년 여수와 순천에 주둔했던 국군 14연대가 제주 4.3사건 진압을 위한 출동을 거부하며 반란을 일으켰던 여순반란 사건의 배후로 체포돼 사형선고까지 받았으나 군내 남로당 조직의 모든 것을 밝히고 감형도 받고 풀려났다. 6.25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박정희는 영원히 군에 복귀하지 못했을 것이다. 군 복귀 이후에도 박정희는 한번도 요직을 맏지 못했다. 미군들로부터 ‘사단급 이상 부대의 작전도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한국군 장성’이라고 평가받으면서도 좌익 경력을 의심받았기 때문이다. 5.16 쿠테타 직후 북한은 박정희의 좌익 경력에 미뤄 자신들과 같은 편이라고 생각했는지 중앙방송을 통해 ‘군사혁명을 지지한다’고 밝혔었다. 교사와 일본군, 광복군 지망, 국군, 좌익으로 번갈아 옷을 바꿔 입었던 박정희야 말로 기회주의의 전형이다. 그런 그가 ‘반공’을 앞세워 자신을 위장하고 수많은 사람들은 탄압하며 죽음으로 내몰았다.
-작가 전광용이 박정희를 모델로 이 소설을 쓴 것은 아닐까.
-그럴지도 모른다. ‘꺼삐딴리’가 잡지 사상계를 통해 발표된 시점이 1962년 7월이고 5.16 쿠테타가 1961년이니까 시간적 배열상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박정희의 좌익 경력이 그다지 알려지지 않던 시기였다는 점에서 직접적 연관은 없지 않다고 본다.
-참고로 전광용은 소설가이며 서울대 국문과 교수였는데 ‘꺼삐딴리’말고도 여러 편의 사회성 짙은 소설을 발표했다. 읽어 보지는 않았지만 작가에 대해 알아보니 그의 첫 장편소설 ‘나신’(1963년)을 통해 전후 현실의 혼란과 인간 세태를 그려냈다. 젊은 소용돌이(1966년)에서는 4‧19 혁명의 과정을 통해 혼란기를 극복해 가는 젊은 세대의 의지를 담았고 ‘창과 벽’(1967년)을 통해 지식인의 현실참여 문제와 물질적인 유혹과 허명에 매달린 대학교수의 허위의식을 비판적으로 묘사했다고 한다. 철저한 현실참여주의자는 아니었으나 과장되지 않은 담담한 문체로 시대와 세태를 고발한 작가라고 평가할 수 있다.
-박정희말고 다른 기회주의자들은 없을까?
-무수히 많다. 일제에 붙어 일본 경찰이나 헌병으로 근무하며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이고 고문했던 자들이 해방후 미 군정에 의해 대부분 경찰이나 군인으로 다시 뽑혔다. 경험을 중시한 미 군정의 오판으로 민족반역자들이 권력을 누리게되자 사회의 가치관도 땅에 떨어졌다. 더욱 고약한 것은 이승만이 이들을 정권의 앞잡이로 삼았다는 점이다. 반민족행위자를 색출, 처벌하는 반민특위가 이승만의 주구로 전락한 경찰에게 습격 받고 무력화한 적도 있다.
‘길을 가다 진왜(일본인)와 트왜(친일 조선인)를 만나거든 트왜부터 돌로 쳐라’고 말씀하신 김구 선생은 이승만이 보낸 국군 소위의 총탄에 돌아가시고 이승만은 독재로 치달았던 한국 현대사는 민족의 불행이다. 그런 이승만을 ‘건국의 영웅’이라며 박정희와 더불어 성인화하려는 오늘날의 현실은 1960년대 초 ‘꺼삐딴리’, ‘소문의 벽’이 제기했던 문제를 하나도 풀지 못한 채 오히려 퇴행한 감이 있다. 이를 제대로 치유 못하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
-우리와 직접 연관이 있다면 비약 아닐까.
-소설 속에 이인국이 독백이 나오는 대목이 있다. 미국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인국의 중얼거림인데 내용이 이렇다.
“흥. 그 사마귀 같은 일본놈들 틈에서도 살았고, 닥싸귀 샅은 로스케 속에서도 살아났는데,양키라고 다를까...혁명이 알겠으면 일구, 나라가 바뀌겠으면 바뀌구, 아직 이 이인국의 살 구멍은 막히지 않았다. 나보다 얼마든지 날뛰던 놈들도 있는데 나쯤이야...”
우리가 다 기회주의자라는 뜻이 아니고 우리가 ‘나쯤이야’라며 스스로에게 관대하지 않았나를 생각해보자는 의미다.
-소설의 제목인 ‘꺼삐딴리’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영어 Captain의 러시아식 발음이 ‘까삐딴’이다. 캡틴은 육군에서는 대위, 해군에서는 함장을 의미하는 계급이기도 하며 최고라는 뜻도 있다. 자기의 혹을 떼어준 이인국에게 소련군 스뗀꼬프가 ‘까삐딴리’라고 불렀는데 작가가 꺼삐딴으로 바꾼 것으로 영어와 러시아어 일본어를 기이하게 섞으려는 의도가 담기지 않았을까 싶다. 제목 잘 지었다.
<결론>
소설 꺼삐딴리는 민족이 고난받는 격변의 시대 속에서 뿌리도 지조도 망각하고 다만 일신의 안위를 위해 상황에 적응하고 살기에 급급했던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과연 얼마나 떳떳할까.
----------------------------------------------------------------------------------------------------
붙임 : 전광용의 소설 ‘꺼삐딴리’는 매우 짧습니다. 인터넷에서 다운 받아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 때는 아니었지만 요즘에는 중 3 국어에서 배운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낸 독후감 중에는 ‘어떤 경우라도 살아남으려면 실력이 있어야 한다’거나 ‘이인국처럼 언어 습득 능력이 뛰어나면 성공할 수 있다’라는 독후감도 적지 않답니다. 아이들이 올바른 가치를 지닌 사회 속에서 커나가야 할텐데…. ㅠㅠ
|
첫댓글 유익한 정보를 쉽게 풀어서 올려주시니 손안대고 코풀고 있습니다~
토론에 참여 한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