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무병장수한방마을 원문보기 글쓴이: 마락
오늘날의 식물분류는 스웨덴의 식물분류 학자인 린네에 의해 체계적으로 확립되었다고 합니다.
린네는 이명법이라는 식물의 명명법을 고안하였는데 인위분류와 자연분류 두가지로 분류
■ 인위분류 - 인간의 실용적 이용본유로 분류
1. 식물의 용도 : 식용식물, 약용식물, 관상식물
2. 식물의 특징 : 일년초와 숙근초, 상록수와 낙엽과수
3. 이용하는 부위 : 근채류, 엽채류, 과채류
4. 생태적특징 : 호냉성과 호온성, 양지와 음지, 장일과 단일
5. 재배적 특성 : 춘파와 추파, 노지와 온실
■ 자연분류 - 식물의 형태나 생리 생태적 특성을 비교 상호간 유사성과 상이성에 의한 분류
○ 자연분류의 기본단위는
1. 계(Kingdom) --- 2. 문(Phylum) --- 3. 강(Class) --- 4. 목(Order) --- 5. 과(Family) ---
6. 속(Genus) --- 7. 종(Species)
○ 이름을 좀더 세분하고자 할때는 아(Sub) 라는 접두어를 붙여 아계, 아문, 아강 등으로 분류
○ 다육식물은 종(Species) 다음단계로
種(species)=sp. --- 亜種(subspecies)=ssp. --- 変種(variety)=var. --- 品種(forma)=f. ---
園芸品種(cultivated variety)=cv. --- 交配種(hybrid)=hyb. --- 二種間交配種=x
이명법(二名法)은 린네가 창안한 학명 명명법으로 생물의 속명과 종명을 나란히 쓰고, 그 다음에 그 학명을 처음 지은 사람의 이름(성)을 붙이는 방법이다.(명명자의 이름은 생략하기도 하며, 머리글자 하나만 쓰기도 한다).
인쇄물의 경우, 속명과 종명은 이탤릭체로 쓰며 명명자의 이름은 정체로 쓴다.
예를 들어, 벼의 학명은 Oryza sativa Linnie인데, 이 때 ‘Oryza’는 속명으로 대문자로 시작되는 라틴어 명사이며, ‘sativa’ 는 종명이고 소문자로 시작되는 라틴어 형용사이다. 그리고 ‘Linne’는 벼에 처음으로 학명을 붙인 명명자의 이름이다.
그러나 학명을 짓는 데는 대단히 까다로운 제약들이 있어서, 요즈음에는 식물과 동물 및 미생물의 명명 규약이 각각 별도로 만들어져 있고 새로운 분류군이 나타날 때는 이 규약에 따라 합법적으로 명명·발표하여야 비로소 인정받게 되어 있다. 이 규약에 의하면, 식물의 이명법은 린네가 1753년에 출판한 《식물의 종》을 출발점으로 하고 있다.
학명에 이명법을 처음으로 도입한 사람은 독일의 스토이델(1821)이지만, 린네는 《식물의 종》의 제10판(1753)에서 이미 학명을 사용하였다. 예를 들면, 3종의 칸나 학명이 다음과 같이 기재되어 있다.
(1) Canna foliis ovatis utrinque (잎을) (달걀 모양의) (양쪽 모두) acuminatis nervosis (뾰족하다) (맥이 많다)
(2) Canna foliis lanceolatis petiolaris nervosis (바늘 모양의) (자루가 있는)
(3) Canna foliis lanceolatis petiolaris enervosis (맥이 없다)
이 때, Canna는 '칸나'라고 하는 속명이며,
(1)은 달걀 모양으로 양끝이 뾰족하고 맥을 잘 알아볼 수 있는 칸나,
(2)는 바늘 모양으로 잎자루가 있고 맥을 잘 알아볼 수 있는 칸나,
(3)은 피침형으로 잎자루가 있고 맥이 보이지 않는 칸나라는 뜻이다.
한편, 린네는 각 학명의 끝 오른쪽 윗부분에
(1)에는 indica(인도산의),
(2)에는 angustifolia(가는 잎의),
(3)에는 glauca(청백색 자루가 있는)라는 약명을 붙였는데,
이 약명을 종소명으로 붙이는 것이 1868년 파리의 국제 식물학 회의에서 인정되어,
Canna라는 속명과 이 종소명으로 학명을 삼게 되었다.
호모 루덴스, 호모 에로티쿠스, 호모 스피리투스, 호모 에티쿠스….인터넷 서점에서 ‘호모’를 쳤을 때 나오는 책 제목들이다. 이들을 모두 라틴어로 굳이 번역하자면 놀이의 인간, 관능의 인간, 영적인 인간, 윤리적 인간 정도가 될 것이다. 이런 제목들은 모두 우리 인간의 학명, 즉 ‘호모 사피엔스’를 패러디해 각 책의 주제를 잘 나타낼 수 있게 한 신조어인 셈이다. 그렇다면 ‘지혜 있는 인간’이라는 뜻의 우리의 진짜 학명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는 누가 붙인 이름일까.‘현대분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본 린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28세 때인 1735년 동식물 분류학의 신기원을 이룩한 기념비적인 저작 ‘자연의 체계’(Systema Naturae)를 출판했는데, 1758년 펴낸 10판에서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로 명명했다.23일은 린네가 태어난 지 꼭 300년이 되는 날이다. 그의 조국 스웨덴을 비롯해 세계의 분류학자들은 ‘린네 탄생 300주년’을 맞아 그의 업적을 기리고 앞으로 분류학이 나갈 길을 모색하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분류학이란 생물의 종에 이름, 즉 학명을 부여하고 비교하여 분류하는 학문이다. 현재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종의 생명체가 살고 있는지 전문가들조차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4백만 ~ 1억 종 사이로 추정), 현재까지 약 180만 종이 학명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학명’이란 용어도 좀 낯선 데다가 기억하고 있는 학명이라야 바로 우리 자신의 이름인 호모 사피엔스 정도일 것을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숫자다.‘이명법’(binominal nomenclature)으로 불리는 린네가 고안한 명명법이 없었다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생명체를 오늘날처럼 체계적으로 나누어 정리하기는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이명법이란 한 종의 이름을 속명과 종명으로 표시하는 방법이다. 인간의 경우 속명은 ‘호모’, 종명은 ‘사피엔스’이다. 속명은 고유명사이고 종명은 보통명사나 형용사다. 이때 속명의 첫 글자는 대문자를, 종명은 소문자를 써야 하고 언어는 라틴어라야만 한다. 영어도 어려운데 라틴어이다보니 일반인이 학명에 친숙해지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학명이 우리 일상과 전혀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위궤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인 ‘헬리코박터 파이로리’(Hericobacter pylori)도 이 미생물의 학명이다. 학명을 많이 알아두면 상식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한다.최근 고급화 바람이 불고 있는 커피를 예로 들어보자. ‘향이 풍부하고 우아한 아라비카 커피원두만을 사용한...’라는 식의 광고문구가 종종 눈에 띈다. 커피원두는 두 종의 커피나무, 즉 ‘코페아 아라비카’(Coffea arabica)와 ‘코페아 로부스타’(Coffea robusta)에서 얻는다. 로부스타 종은 아라비카 종에 비해 향은 거칠지만 나무가 튼튼하고 잘 자라 원두 값이 싸다. 따라서 인스턴트 커피나 캔 커피에는 로부스타의 비율이 높다. 그런데 최근 소비자들의 입맛이 까다로와지면서 원두를 차별화하는 컨셉이 떠오르게 된 것이다.
린네가 활약했던 18세기는 유럽의 근대화가 시작되면서 외부로 눈을 돌리던 시기이다. 이때 세계 각지에서 수집한 동식물의 종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이런 폭증하는 정보량을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몰라 당황하고 있을 때 린네는 생물의 세계에 주소를 부여하는 방식을 고안해 단번에 문제를 해결했다. 그는 아래의 말로 스스로의 업적을 평가하고 있다.“사물의 이름을 모른다면, 그것에 대한 지식 역시 잃어버릴 것이다.”
Q1. 린네의 이명법은 실제로 어떤 것이었는가? 종명을 여백에 기재했다는 의미는 무엇?Q2. 수술과 암술의 수로부터 Class, Order 가 나왔다고 했는데 지금 사용되고 있는 Class 나 Order 의 내용과는 다른 것 같다. 린네의 Class 와 Order 는 어떤 것이었는지? (Croizat 의 논문을 보면 린네의 Class 는 현재의 Order, 린네의 Order 는 현재의 Family 에 해당한다는 이야기가 있다)Q3. Croziat 의 1945 년 논문을 보면 린네나 Adanson 등은 린네의 분류체계와 같은 인공적인 체계를 임시방편 정도로 보았고, 더 많은 지식이 축적되면 자연적인 체계를 제대로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본 것 같다. 린네의 체계가 실제로는 어떤 것이었는가?린네의 Systema Naturae 를 검색하려고 해보았으나 아마존에서 70달러 이상 하는 책들만 보이길래 일단 포기하고, 구텐베르크 프로젝트 홈페이지에 가서 린네의 저서를 찾아보았다. 1753 년에 발표된 Species Plantarum 의 스캔본과 텍스트가 같이 올라와 있었다. 첨부파일 1 은 Species Plantarum 의 본문 첫 페이지 스캔본이다. Systema Naturae 이후에 발표된 저서이므로 Systema Naturae 의 체계를 따랐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Classis I. MONANDRIA_MONOGYNIA_본문은 MONANDRIA 라는 CLASS 로 시작한다. andro 가 남성(male) 을 의미하는 단어라는 것을 안다면 MONANDRIA 가 수술이 하나 있는 식물을 뜻함을 알 수 있다. 그 밑에 있는 MONOGYNIA 는 암술이 하나 있는 식물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즉, 식물을 분류하는 데 있어 가장 기본적인 특성을 수술의 개수로 잡고, 이것을 Class 의 분류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그 하위인 Order 의 분류기준은 암술의 개수다. 몇 페이지 넘겨 보면 MONANDRIA DIGYNIA, MONANDRIA TRIGYNIA 와 같은 분류가 나타나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다분히 편의적인 분류기준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즉, 식물의 전체적인 형태라든가, 꽃이 아닌 다른 부분의 특징은 모두 무시하고, 꽃에서도 수술과 암술의 개수를 기준으로 전체 식물들을 크게크게 분류했다는 것은 얼핏 생각해 보아도 자연적인 질서를 찾아냈다기 보다는 분류하기 편한 기준을 잡아서 만든 인공적인 체계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CANNA.1. CANNA foliis ovatis utrinque acuminatis nervosis. (Indica.)...상세 설명인 듯한 부분...2. CANNA foliis lanceolatis petiolatis nervosis. (augustifol.) ...또 상세설명...3. CANNA foliis lanceolatis petiolatis enervibus (Roy. glauca.)... 상세설명 ...본문에 처음 등장하는 실제 식물은 칸나 (Canna). Canna 는 속명이고, 그 밑에는 세 개의 종이 나열된다. 네다섯 단어가 해당 종을 정확하게 기술하는 복명법 체계라고 생각되고, 괄호로 표시한 (실제 스캔 이미지를 보면 알겠지만, 책의 여백에 해당하는 부분에 이탤릭체로 쓰여있다) 단어가 이명법에서의 "종명" 에 해당하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 오늘날의 개념으로 보면 Canna 라는 속에는 Canna indica, Canna angustifol, Canna glanca 세 종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위키피디아의 http://en.wikipedia.org/wiki/Canna_(plant) 칸나 페이지에 있는 칸나 종 목록에서 Canna glauca 와 Canna indica 의 명명자가 L. (린네는 L. 이라고만 표기하는 듯..) 이라고 표기되어있는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Canna augustifol 은 없어졌거나, 다른 종으로 병합되었을 것 같다. http://en.wikipedia.org/wiki/Canna_species_synonyms 를 보면 Canna augustifolia 는 Canna glauca 의 synonym 으로 간주되고 있다.Q1. 에 대한 답: 린네의 체계는 상대적으로 길어지는 복명법을 기본으로 하되, 편의상 간단하게 부를 수 있도록 종명을 한 단어로 여백에 기재하는 방식이었다. 사실, 속명이 정해지면 그 안에 수십 개의 종들이 들어있지 않는 한, 그 특징을 길고 정확하게 기술하는 복명법보다는 가장 특징적인 것만 간단하게 한 단어로 표기하는 것이 더 경제적인 방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첨부파일 두 개를 살펴보면.. 실제로 종명이 "여백" 에 기재된 것임을 알 수 있다. Q2. 에 대한 답: 린네의 Class, Order 는 수술/암술의 개수를 기준으로 하는, 매우 편의적인 개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짐작에 현재는 이런 식의 분류는 사용되지 않을 것 같다. 린네의 Class, Order 가 각각 현재의 Order, Family 에 해당한다고 하면, 그런 전환은 언제, 누구에 의해, 왜 일어났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일 것 같다. (아마 Croizat 의 논문을 마저 읽어보면 나올 것 같긴 하다) 또한 현재의 Order, Family, 그리고 Class 에 대한 분류기준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하는 문제도 역시 재미있을 듯.Q3. 에 대한 답: 수술, 암술의 수에 기초한 분류가 편의적인 것이라면 이것은 자연의 질서(?)를 반영한 것이라기보다는 인공적인 체계일 것이다. 더불어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는, 린네나 Adanson 등이 생각했던, 언젠가는 알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던 분류의 자연적인 체계는 정말 발견할 수 있는 것일까? 하는 문제. 린네 등의 생각은 자연 체계에 분명한 질서가 있으며 조물주의 의도가 들어있다는 생각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10만 년이 흘러도 그런 질서있는 자연 체계같은 건 발견되지 않으리라는 쪽에 저녁 한 끼 정도 걸겠다
칼 폰 린네(Carl von Linné), 1707년 5월 23일 ~ 1778년 1월 10일), 스웨덴의 식물학자로서 생물 분류학의 기초를 놓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여 현대 '식물학의 시조'로 불린다. 귀족이 되기 전 이름은 칼 린네우스(Carl Linnæus)이고, 스스로는 라틴어 이름인 카롤루스 린나이우스(Carolus Linnæus)를 썼다.
웁살라 근교, 로스폴트의 목사 집안에서 태어났다. 룬트 대학교에서 의학을 공부했으나, 신학교수이자 식물학자인 셀시우스의 소개로 웁살라 대학교의 식물학자인 루드베크의 조수가 되었다. 1735년, 네덜란드의 하르더르베이크 대학교에서 의학 학위를 땄다. 이 곳에서 식물의 관찰, 분류학상의 문제에 대한 연구에 종사하다가 1738년 귀국, 《자연의 체계》, 《식물의 종》(種)을 저술하고, 약 4,000종의 동물, 5,000종의 식물을 다루었다. 속명 다음에 종명 형용사를 붙여서 두 말로 된 학명을 만드는 이명법을 확립하였다. 그리고 변종에 대한 개념도 제시했다. 투르느폴 밑에서 일하던 바이언의 저작에서, 수술의 중요성을 알고, 수술의 수로 강을 나누고 암술의 수로 목을 나누는 암수술 체계를 만들었다. 《자연 분류법 단편》을 초하여 식물 분류에 통일성 있는 원리를 만들려 했으나 미완으로 끝났다. 이것은 베르나르드 주쉬와 그의 조카인 앙트와느에 의해 계승되어 완성되었다.
1735년 발표한 《자연의 체계》에서 처음으로 식물과 동물을 체계 있게 분류하였는데, 이것은 동물과 식물을 닮은 것과 다른 것으로 나누어 정리한 것이다. 또 동식물의 속명과 종명을 기록하여 동식물을 나타내는 방법인 이명법을 확립하였고, 변종에 대한 개념도 제시하였다. 그는 식물의 일부 성질에만 열중한 나머지 정말로 닮은 점과 다른 점을 밝히지 못하였으나, 그 무렵의 식물은 거의 분류해 놓았다. 저서에 《식물 및 꽃의 신비성》, 《자연의 법칙》 등이 있다.
처음으로 생물의 종(種)과 속(屬)을 정의하는 원리를 만들었으며, 또한 이 생물들의 이름을 붙일 때 필요한 일정한 체계를 만들었다. 보좌신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려서부터 꽃을 좋아했는데, 8세가 되었을 때 이미 '꼬마 식물학자'라는 별명을 지니게 되었다. 룬드 및 웁살라대학교에서 공부했으며, 웁살라대학교에서는 의학 학위를 받았다.
그는 웁살라대학교에서 뛰어난 식물학자 올로프 셀시우스를 만났는데, 그는 린네가 계속해서 공부하는 데 심대한 영향을 미쳤다. 1730년 린네는 식물학 강사로 임명되었고, 2년 뒤 웁살라 과학 아카데미의 지원으로 라플란드 탐사를 지도했다. 여행 결과는 1737년 〈라포니카 식물상 Flora Lapponica〉이라는 제목으로 암스테르담에서 출판되었으며, 이 논문은 1811년 J. E. 스미스 경에 의해 〈라케시스 라포니카 Lachesis Lapponica〉로 영역되었다. 이 논문과 함께 1735년에 나온 〈자연의 체계 Systema Naturae〉·〈식물의 속 Genera Plantarum〉은 그의 평판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어주었다. 〈식물의 종 Species Plantarum〉은 1753년이 지나서 출판되었는데, 1판은 1754년에 출판된 〈식물의 속〉 5판과 함께 꽃피는 식물과 양치류에 대한 명명법의 출발점으로서 국제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그는 〈자연의 체계〉 사본을 식물학자인 얀 프레드리크 그로노비우스에게 보여주었으며, 감명을 받은 그로노비우스는 자기 돈을 들여 책을 출판했다. 린네의 체계는 주로 꽃의 기관을 바탕으로 세워졌는데, 꽃을 이루고 있는 기관들은 진화과정을 거치면서도 거의 변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다. 린네의 분류체계는 그 스스로가 인정한 것처럼 인위적이기는 하지만, 학생들이 빠르게 식물들을 지정된 범주 속에 넣을 수 있다는 최상의 장점을 지니고 있다. 세계에는 엄청나게 많은 식물들이 자라고 있음이 밝혀지고, 한가롭게 그 많은 식물들을 조사할 수 없게 되자 린네의 체계는 널리 쓰이게 되었다. 린네의 체계는 실제 사용에 있어 매우 뛰어나 생물에 적용하기가 쉽기 때문에 이를 없애고 보다 나은 자연 분류체계로 대신할 수가 없었다 (→ 분류학).
1736년 그는 영국으로 건너가 런던의 식물학자이자 의사인 한스 슬론 경과 옥스퍼드대학교 최초의 식물학 교수인 요한 야콥 딜레니우스를 만났다. 그는 네덜란드로 돌아와 유명한 〈클리포트 식물지 Hortus Cliffortianus〉에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했으며, 파리로 가서 식물학자로 유명한 쥐시외 집안의 3형제를 만나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그뒤 곧바로 스웨덴으로 돌아와 1738년부터 스톡홀름에 정착하여 개업 내과의로 일했는데 의사로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1739년 내과의사의 딸인 사라 모라에아와 결혼했으며 2년 뒤에는 웁살라대학교의 의학 정교수직에 임명되었으나, 1년 뒤 그가 진정으로 원했던 식물학 정교수가 되기 위해 자리를 바꾸었다. 무척추동물을 분류하기도 한 린네는 식물계와 동물계뿐만 아니라 광물계도 분류했으며, 질병의 종류에 대한 논문을 쓰기도 했다.
그는 말년에 교육과 저술에 열중했는데, 이때 쓴 책으로는 〈스웨이 식물상 Flora Suecica〉(1745)·〈스웨이 동물상 Fauna Suecica〉(1746), 스웨덴을 돌아다니면서 관찰한 결과들을 기록한 2권으로 된 〈Västgöta resa〉(1747)와 〈Skånska resa〉(1751)·〈웁살라 식물 Hortus Upsaliensis〉(1748)·〈식물철학 Philosophia Botanica〉(1751)·〈식물의 종 Species Plantarum〉(1753) 등이 있다. 이중 〈식물의 종〉 4판에서는 식물 학명이 완전히 정착되었다. 1755년 그는 스페인에 와서 살면 많은 월급과 완전한 정신적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스페인 국왕의 초청을 거절했다. 1761년 그는 스웨덴 귀족이 되었으며, 이보다 앞서 1757년부터 카롤루스 린네우스라는 이름은 칼 폰 린네로 불리게 되었다. 1774년 졸증 때문에 몸이 매우 약해져 4년 뒤에 죽었다. 1783년 스미스 경이 사들인 린네의 사본과 식물표본집, 곤충과 조개류의 채집품들은 런던 벌링턴 하우스에 있는 린네 학회에 조심스럽게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