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수업 첫 과제로 이 영화보기를 내건 이유가 여기 들어 있답니다.
이야기는 삶의 진실을 먹고 사니까요.
...
<세 얼간이>,
얼빠진 세상에서 자신을 찾아가기
<세 얼간이>(라지쿠마르 히라니)를 뒤늦게라도 극장에서 보게 된 건 행운이다. 돈벌이 크기로 영화를 상대하는 자본 과잉사랑 영화판에서 <세 얼간이>는 두 가지 기록을 세웠다. 하나는 <아바타>가 할리우드가 침범한 지구촌 전역에서 역대 흥행지수를 갈아엎을 때, <아바타>를 이긴 유일한 인도영화란 점이다. 다른 하나는 인도영화가 거의 소개되지 않는 한국 수입영화판에서 네티즌의 지속적이고 폭발적 인기에 떠밀려 마침내 뒤늦게 수입된 점이다. 그런데 세 시간 가량의 러닝타임을 관객이 견디지 못할 것이라는 계산보다도 수익 감소만 생각한 영화장사꾼들이 40여분을 잘라낸 한국삭제판을 멀티플렉스 극장에 걸었다. 그런 작태는 영화모독이라는 의식을 가진 예술영화관에서 인도판 완본을 그대로 상영하면서 동시에 두가지 판본이 개봉되는 기록도 낳았다.
십년 후 재회한 대학 친구들의 회고담으로 현재 속 과거 에피소드 소개로 진행되는 서사구조는 그들의 이야기를 우리의 현실담으로 와닿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이들은 인도 최고의 명문 공대생들이다. 40만명 지원자 중에서 뽑힌 200명은 출중한 공학도로 키워져 미국 대기업에 진출할 엘리트 청년들이다. 신입생 앞에서 학장은 ‘뻐꾸기/레이스론’을 설파하며 승자독식론을 주입시킨다. 너희들이 여기 오느라 떨어트린 지원자들은 뻐꾸기 둥지에서 떨어져 깨진 알들이며, 인생 레이스경주에서 모든 이를 딛고 승자만 우뚝 솟는 경쟁력 향상에 매진하라고 격려한다.
기계가 좋아서, 부모가 원해서, 빈곤을 탈피하러 ...저마다의 이유로 공학도가 됬지만, 경쟁에서 밀려나 자살한 친구도 있고, 자살을 시도하는 친구들이 연이어 나온다. 그 속에서 란초와 파르완, 라주는 우정을 나누며 그런 학풍에 엇나가는 얼간이들이다. 처음부터 권위적 분위기의 주입식 교육에 반기를 든 란초는 매사에 저항하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학교생활을 하는 얼간이 친구들의 멘토이다. 신입생을 줄세워 팬티 벗기는 신고식에서도 란초는 그런 모욕적 의식을 홀로 거부하며 선배의 국부를 감전시키는 기발한 공학기술을 선보인다. 학생들을 주눅들게 하는 학장에게도 번번이 당혹스런 질문을 해서 엄숙한 분위기를 깨버린다. 기계에 미쳐 헬리콥터를 만들다 졸업 학점을 못따 자살한 선배 장례식에서도 그의 죽음은 자살이 아니라 당신이 죽인 것, 이라며 학장에게 항의한다. 그런 용맹한 란초는 파르완과 라주에게만 멘토같은 친구이지, 다른 학생들에겐 가까이해선 안되는 반항아에 불과하다. 하여 이 세 친구는 왕따 당하는 ‘세 얼간이’지만 십년 후 이들은 각자 자신이 원하는 길을 찾아가는 데 성공한 모습으로 만난다. 란초의 과거 출신의 비밀이 밝혀지고, 학장 딸인 의사와의 사랑도 끼어들어 우정과 사랑이 함께하는 푸근한 해피엔딩으로 영화가 풀려나간다.
우여곡절을 춤과 노래에 버무려 해피엔딩으로 마감하는 인도 마살라영화 양식을 갖춘 <세 얼간이>의 힘은 얼이 나간 승자독식 출세주의 세상에 맞서 자신을 발견하는 얼간이에게 용기를 주는데 있다. 란초가 곤경에 처할 때 가슴 한쪽을 두드리며 ‘알 이즈 웰 (all is well)’이라는 주문을 외우며 자신을 격려하는 법을 보여주는 장면은 영화의 힘을 요약한다. 신입생 신고식에서부터 숨을 못 쉬는 신생아에게 숨결을 불어 넣어주는 ‘알 이즈 웰’ 주문은 자신의 얼을 잃어버리면서까지 세상 눈치를 보며 두려움을 느끼는 얼간이에게 마음의 평화와 힘을 주는 주문으로 작동한다. 마살라영화 양식을 증명하는 뮤지컬 씨퀀스에서 ‘알 이즈 웰’을 주제곡 삼아 청년들이 수건 하나 두르고 샤워장에서 벌이는 퍼포먼스는 흥겨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 영화는 기록적 성공을 달성한 인도영화지만, 거기 담긴 영화세상은 인도의 카이스트 공대에 그치지 않는다. 학점과 등록금을 연결시키고 연쇄자살 사건을 낳은 카이스트 공대뿐만 아니라 한국의 모든 대학, ‘역사는 일등만 기억한다’, 를 내거는 기업, 심지어 자녀 명문대 입학에 사활을 걸며 ‘고 3 병’을 앓는 가족문화와 청소년 자살률 1위를 지속해가는 한국 사회전반에 적용 가능한 부조리한 얼간이 현실이다.
팁 1. 가능하면 인도판을 보실 것을 권한다. 이 글을 접하실 즈음 극장상영은 끝날지 모르지만 2009/2010 최고의 영화로 꼽힌 유명세를 타니 구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팁 2. ‘얼간이’는 얼이 맛이 간 자란 뜻일텐데, 자본중독 지구오염으로 돈벌이 출세주의자를 인생 성공으로 보는 세상이야말로 얼간이 인생길을 강요한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무엇이, 누가 얼간이일까?
2011/09/17 유지나
첫댓글 사실 란초라는 인물이 어찌보면 너무 비현실적이라서 한편으론 보면서 불편하기도 했답니다. 제가 갖고 있지 못한 용기와 그리고 그에 따른 능력을 그는 가졌기 때문일까요... 혹은 그의 자유로운 사고방식 때문일까요. 언제나 스스로 틀에 갇혀 생각하면서, 그것은 사회때문이라며 불평만 하는 제가 스스로 너무 못났기 때문일까요.. 우리 모두가 란초처럼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