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공서(官公署; 행정기관)
가. 동로면 역대 면장 약력(광복 이전)
① 초대 : 임 영 수(林永洙)
1878년 5월 13일 동로면 석항리 457번지에서 출생, 1907년 3월 8일 동로면 약장(約長; 조선시대 향약의 수장)으로 피선, 1910년(명치 41년, *1910.9.27 한일합방) 12월 12일 10일 동로면 초대면장으로 취임하여 1914년 3월 31일까지 3년간 재임.
② 2대 : 권 우 연(權瑀淵)
1882년 4월 9일 동로면 노은 2리 454번지에서 출생, 1914년 4월 10일부터 1917년 10월 11일까지 4년간 재임.
③ 3대 : 이 면 화(李冕和)
기록에 의한 상고가 어려우나 갈평 출신인 것만은 전언으로 증명된다. 본면 시성(詩聖) 김창수(金昌洙)씨의 이면화 면장 이임 기념 10폭 병풍(동로 9개 리동과 동로 전경)에서도 면장으로 재임했던 사실만은 확실하다.
1917년 10월 13일부터 1921년 10월 19일까지 4년간 재임.
④ 4대 : 변 용 직(邊用稷)
1899년 2월 18일 동로면 마과리에서 출생, 1921년 10월 20일부터 1924년 7월 10일까지 3년간 재임.
⑤ 5대 : 장 대 영(張大永)
1889년 4월 19일 동로면 적성리 656번지에서 출생, 1924년 7월 11일부터 1941년 1월 28일까지 17년간 재임. 산양에서 동로에 이르는 신작로(新作路) 개설, 누에고치 판매소 개소.
⑥ 6대 : 한 복 현(韓福鉉)
1909년 6월 29일 동로면 적성리 696번지에서 출생, 1941년 1월 29일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5년간 재임.
나. 동로지서
1896년(建陽 원년) 8월 4일 칙령 제36호에 의하여 전국을 13도로 나눌 때 예천군에 속하고, 1906년(光武 10년) 9월 21일 칙령 제45호의 행정구역조정계획에서 동로면(東老沼面)과 사북면(花庄面)이 예천군에서 문경군으로 넘어오면서 일제(日帝)를 맞게 된다.
그 이전까지는 치안 업무가 군수 관장하에 있었다. 1910년부터 함창 일본 헌병파견대가 처음으로 동로 적성리 큰마 김석환(金石煥)씨 집 앞 정원영(鄭元永)씨 소유 전답 자리에 사옥(舍屋)을 마련하여5년 동안 치안 업무를 관장했다. 1915년 헌병대가 함창으로 복귀와 동시에 적성리 565번지(현 위치)에 목조 단층 건물을 신축하여 문경군 동로 경찰관주재소(警察官駐在所)로 개칭되었고,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때를 같이 하여 문경경찰서 동로지서(聞慶警察署東魯支署)로 바뀌었다. (동로파출소 소장 자료)
다. 동로우체국
동로우체국은 1944년 3월 28일 적성리 513-4번지(현 林鍾文씨 집터)에서 개국하여 당시에는 우편국(郵便局)으로 불리다가 1949년 12월 1일 동로우체국(東魯郵遞局)으로 개칭되었고, 1970년 12월 20일 노은리 166번지로 청사 신축과 동시에 이전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동로우체국 소장 자료)
초대 국장 : 星田吉平 1944.3.28 ~ 1945.10.31
2대 국장 : 이종인(李鍾仁) 1945.11.1 ~ 1961.7.27
2. 동로 학교 교육의 연혁(태동에서 1945년 광복시까지)
문경군지(우리 고장의 교육사 - 조선시대의 향토 교육 - 서당의 교육)를 참조하면 동로에는 ‘덕봉서당’(德峰書堂)이 노은리에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아마도 적성2리 큰마가 오기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왜냐하면 벌재 큰마에 서당으로 이용되었던 집 주인이 면 사무소에서 서기로 근무했으며, 왜정 때에는 지도원으로 근무했던 장병훈(張秉勳)씨의 택호(宅號)가 ‘덕봉’(德峰)어른이었기 때문이다.
1925년 경부터 그 마을의 토호(土豪)이자 학자였던 김만호(金晩浩)씨가 훈장(訓長)이 되고, 접장(接長)으로는 장성환(張盛煥)씨를 영입하여, 두 분이 현 적성2리 박동구(朴東龜)씨 집(그 당시는 장병훈씨-덕봉어른- 집)에 글방을 차려 한문, 산수 등을 가르치기 시작하여 학생 수가 40여명으로 늘어났다.
그 후 극히 제한된 공간에서는 수용에 한계를 느껴 당시 면장이던 장대영(張大永)씨와 부면장 한복현(韓福鉉)씨, 훈장, 접장 등이 상급 요로에 실정을 호소하여 1928년 12월 8일(*동로 홈페이지에는 1929년 2월 28일 : 편집자 주) 동로보통학교(4년제) 설립 인가를 받아 다음 해인 1929년 3월 31일 초대 교장으로 손을인(孫乙仁)씨가 부임하였다.
1929년 4월 15일 2학급으로 편성된 상황에서 적성리 덕봉서당(德峰書堂)에서 개교 행사를 완료하고, 동년 9월 24일 교무실을 포함 3개 교실이 완공될 때까지 그곳에서 수업을 계속하다가 신축 교사(현 동로초등학교 자리)로 옮겨 왔다.
그리고 학교 부지는 덕봉서당에서 훈장으로 종사하던 김만호(金晩浩)씨가 희사하였다.
♦ 동로 초등교육의 약사(태동에서 광복시까지)
- 1929.4.15 : 적성리 큰마을 덕봉서당(德峰書堂)에서 동로보통학교(東魯普通學校) 개교(4년제)
- 1929.9.24 : 노은리 현 위치로 3개 교실 신축 이전
- 1931. : 2개 교실 증축
부지 헌납으로 향토 교육에 공헌한 동로인들
♥ 김만호씨 동로초등학교 부지 약 6,000평 희사
1925년 경부터 1929년 초까지 덕봉서당(德峰書堂) 훈장을 역임하면서 동로 학교 교육 개척의 토대를 닦으신 김만호씨(적성리 출신, 작고)는 당시 초등학교 부지를 물색할 때 현 동로초등학교 부지 6,172평(20,402평방m)의 대부분을 기꺼이 희사하여 동로 교육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아들 김정태씨(69세, 서울 거주, 6,70연대 초 동로면내 초,중학교에서 약 20년간 교사 역임)의 증언에 의하면 동로초등하교 개교 30주년(1959년) 기념 때 선친께서 교육청으로부터 감사장과 기념품을 받았다고 한다.(면적은 교육청 자료)
♥ 고문환씨, 김동철씨, 이용규씨 생달초등학교 부지 2,269평 희사
1947년 생달초등하교가 개교하기 전 학교 부지를 물색할 때 당시 생달리 거주 고문환씨(작고)는 1731평을, 그리고 적성 거주 김동철씨(작고)와 이용규씨는 함께 538평을 각각 내놓아 총 2,269평을 희사하여 향토 교육 발전에 이바지하였다.(박현규씨의 증언, 면적은 교육청 자료)
♥ 적성2리, 적성3리 동민들 동로중학교 부지 3,224평 희사
현 동로중학교 부지는 전기 동로중학교 개교(1955년) 이전 학교 부지를 물색할 때 적성2리와 적성3리 주민들이 각각 동리 공유지를 팔아 현 중학교 소재지에 있던 밭 3,224평(10,658ⁱ평방m)을 매입하여 학교에 희사하여 동로중학교 교육 발전에 공헌하였다.(적성2리 황재영씨의 증언, 면적은 교육청 자료)
♥ 고돌석씨 석항초등학교 부지 900여평 희사
1971년 석항초등학교가 개교하기 전 학교 부지를 확보할 때 당시 석항리 거주 고돌석씨(작고, 문경공고 행정실 근무 고성수씨 선친)가 자기 소유의 밭 900여평을 보상을 받지 않고 희사하여 향토 교육에 공헌하였다.(안재호씨 및 고성수씨의 증언)
♥ 신정명씨 수평초등학교에 부지 300여평 희사
1983년 경천댐 공사로 수평초등학교가 수몰될 때 수평초등학교는 현 학생야영장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학교 부지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3,000평 이상의 땅이 필요한데 확보한 땅이 약 300여 평 부족하였다. 마침 신정명씨(수평 출신, 작고, 동로면 직원으로 오래 근무)의 가족 소유 땅이 인접해 있는지라 제씨인 신봉수씨(69세, 서울 거주, 법무사무소 소장)의 주선으로 보상을 마다하고 기꺼이 희사하였다.(장대식씨의 증언, 당시 수평초등 동창회장)
- 1938.04.01 : 동로공립심상소학교(東魯公立尋常小學校)로 개명
- 1939.04.01 : 6년제 소학교로 승격
- 1939.09.12 : 동로소학교 부설 수평간이학교(水坪簡易學校, 2년제, 수평초등학교 전신)개교
- 1941.04.01 : 동로공립국민학교(東魯公立國民學校)로 개명
- 1941. : 1개 교실 증축 - 1943. : 1개 교실 증축
- 1944.04.15 : 동로남부공립국민학교(東魯南部公立國民學校, 수평초등학교) 개교
- 1945.04.01 : 수평공립국민학교(水坪公立國民學校)로 개명
♦ 1945년 8월 15일 광복 전까지의 동로초등학교 역대 교장
초대 : 손을인(孫乙仁) 1929. 3. 31 - 1941. 4. 1
제2대 : 배용찬(裵容璨) 1941. 4. 2 - 1943. 3. 29
제3대 : 김명갑(金明甲) 1943. 3. 30 - 1945. 3. 29
제4대 : 권태훈(權泰熏) 1945. 3. 30 -1946. 3. 31
♦ 동로의 중등교육 태동의 약사(*편집자 주)
동로의 중등 교육기관의 태동은 6.25 다음 해인 195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20대 말, 30대 초반의 청년이었던 장인덕 선생님(84세, 서울 거주), 백인흠 선생님(작고), 김학한 선생님(작고), 김남규 선생님(작고) 등 몇 분이 동로초등학교 김진태 선생님(작고, 당시 동로초등 교장)을 교장으로 모시고 초등학교 교실 한 칸을 빌려서 ‘동로고등공민학교’(東魯高等公民學校, 전기)라는 이름으로 국어, 영어, 수학, 과학, 사회 등 중학교 대부분의 과정을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다음 해부터는 초등학교 교사(당시는 지금과 반대쪽에 있었음) 뒤에 있는 누에고치 판매소 헌 창고를 얻어 수리하고 세 칸으로 막아 1,2,3학년이 사용하였다. 동로고등공민학교는 4년간 지속하다가 1955년 동로중학교(전기)가 적성리 현 위치에서 개교되면서 폐교되고, 동로중학교도 1년후 곧 산북중학교에 통합되고 말았다.
그 후 한 동안 중등 교육기관이 공백 상태로 있다가 1963년 12월 말 하정국 선생님이 당국의 허가를 얻어 현 중학교 자리에서 동로고등공민학교(후기)를 개교하고 교장에 취임하였다. 이후 8년 동안 동로의 중학 과정 교육을 담당하다가 1971년 3월 1일 현 동로중학교가 개교되면서 모든 시설과 교재 교구를 양도하고 간판을 내렸다.
**** 하정학 프로필 ******************************
• 1930년 동로면 간송2리 출신
• 동로초등학교 12회 졸업, 한학(漢學) 수학
• 육군보병학교 28기 졸업
• 육군 대위 전역(1967년)
• 동로면 예비군 중대장 역임(8년간)
• 농업협동조합 동로단위조합장 역임(6년간)
첫댓글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