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 한승호 님이 <언론자유의 경전 아레오파기티카>에 대한 서평을 보내주셨습니다. 제가 번역에 공은 들였다고 하나 결코 읽기에 쉽지 않은 책인데 아주 꼼꼼하게 읽고 정확하게 분석해 주셨습니다. 이런 독자를 만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책을 쓴 사람으로서 보람을 느낍니다.
박상익 교수님 이제야 <아레오파기티카>를 읽게 되었습니다. 감상문이 늦어져서 죄송합니다. 저자 앞에서 이런 글을 보이다니 부끄럽네요. 늘 건강하시고 앞으로의 연구에도 계속 진전이 있으시길 바라겠습니다.
Part 1.
이 책은 <실락원>의 저자 ‘존 밀턴’이 검열 없는 출판의 자유를 위해 잉글랜드 의회를 상대로 작성한 연설문입니다. 이 <아레오파기티카>는 검열 없는 출판의 자유를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상 그 이후 출판, 언론, 종교, 양심 등 거의 모든 ‘표현의 자유’를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논거로 늘 인용되는 ‘언론자유의 경전’으로 칭송 받는 책입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관용하는 가치를 역설하는 자유주의 사상의 또 다른 백미인 ‘존 로크’의 <관용론>이나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조차도 이 아레오파기티카의 확대재생산에 불과하다는 평을 듣고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가 반드시 텍스트로 삼아야 할 시대의 고전이 20C 끝에 이르러서야(1999년 초판 간행) 출판되었다는 사실은 우리 인문학의 토대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증거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제라도 이렇게 꼼꼼히 번역되고 각종 논점이 잘 정리된 번역주석연구서를 읽게 되었다는 사실은 또 하나의 기쁨입니다. 이 글은 쉽게 읽히는 글이 아닙니다. 아니 무척 난해한 연설문입니다. 그렇지만 번역자의 상세한 주석과 책 후반부에 다시 연구논문 형태로 제시되는 글을 따라가다 보면 이해에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일단 이 책의 번역자이자, 저자이신―이렇게 쓴 이유는 이 책의 1부는 번역과 주석을, 2부는 아레오파기티카에 대한 저자의 연구논문이 수록되어 있기 때문―박상익 교수님을 소개합니다(전에도 한번 잠시 말씀드린 적이 있지만). Daum칼럼 중 ‘박상익의 역사 읽기(http://column.daum.net/civilization)’라는 칼럼을 아시는지요? 다음칼럼 중 지성과 재미가 골고루 배합된 몇 안 되는 인문칼럼입니다. 교수님은 대학에 몸담고 계시면서도 사이버 지면을 통해 대학이라는 울타리 밖에 있는 분들과 교류하고 계십니다.
그 분은 서양사를 전공하셨고 무엇보다 신앙과 자신의 학문을 일치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시는 분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는 기독교인은 아닙니다만 혹 보면 많은 종교인들께서(종교인뿐만 아니라 모든 ‘-ism’을 믿는 분들이) 자신이 내뱉는 말과 그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어찌 보면 잉글랜드 민족에게 순수하고 청교도적인 종교개혁이 완성되길 너무나 강렬히 원했고, 그 신념에 따라 자신의 지식과 실천을 다한 ‘밀턴’을 박 교수님이 자신의 연구과제로 정하신 건 바로 밀턴이 한 지식인으로써 박 교수님이 따르고픈 모델이었기 때문 아닐까요?
만약 박 교수님의 신앙에 다소 거부감이 있으신 분들이라도(종교선택은 분명 개인의 자유이니까요) 박 교수님의 ‘번역’에 대한 소신만큼은 꼭 공유해 주셨으면 합니다. 교수님의 칼럼에 가보시면 여러 편의 인문시평에 교수님의 설득력 있는 주장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여러분! 과연 우리가 ‘머리가 모자라서’ 인문고전을 접하기 어려운 것일까요? 물론 우리말도 아니고, 게다가 현대어도 아닌 중세나 고대 언어가 태반이므로 거칠긴 하겠지만요. 정말 너무나 이상한 번역물들을 지금까지 읽으며 무슨 소리인지 몰라 자신의 머리를 탓했던 적이 한 두 번이었던가요?
하지만 제가 대학원생이 되고 보니 이른바 ‘지성의 전당’이라는 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지성적 작태’에 너무나 놀랐습니다. 명망 있는 교수님들 중 과연 얼마나 손수 그 분의 땀과 열정으로 우리 아이들 누구에게나 읽혀도 좋을 만큼 자신 있는 번역물을 생산해 내고 계신지요. 혹 그 밑에 도제(徒弟)식으로 생사여탈권이 쥐여져 있는 박사급 연구원들과 영어독해가 곧 번역인지 알고 있는 석사급 대학원생들의 초벌 번역에 대충 가필만 하고 계신 건 아니신지요.
박 교수님이 저의 칼럼 회원이라는 점을 미리 밝힙니다. 그래서 그런지 너무 지나치게 아부하는(?) 것 아니냐고 비판하셔도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 제가 박 교수님에게 무슨 덕(?)을 보겠다고 이런 글을 쓰겠습니까? 제대로 된 번역본 하나 없다고 비분강개하는 이는 많으나 그 분함의 정도만큼 실천해서 제대로 된 텍스트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분은 드뭅니다. 제가 박 교수님을 존경하고 여러분에게 홍보 아닌 홍보를 하는 이유는 벌써 여러 권의 훌륭한 번역물과 연구서를 내놓으신 그 언행일치 때문이라는 점을 꼭 밝히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는 제대로 하고 있는 사람은 배가 아파서 그런지 혼자 튀지 말라며 끌어내리고, 제대로 안하고 있는 사람은 인정에 끌려 그리고 의리상인지 매섭게 비판 안 하는 아주 이상한 사회입니다. 그래서 모두다 시간이 지나면 고만고만해지는 사회입니다. 우리 대학사회가 그리고 한국사회가 제대로 변하기 위해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고 있는 분들에게 많은 격려가 필요합니다. 이런 격려가 무조건적인 칭찬은 절대 아닙니다. 칭찬인 동시에 당신이 타협하거나 매너리즘에 빠지는지를 계속 지켜보겠다는 무언의 압력인 것입니다. 박상익 교수님의 계속되는 훌륭한 연구 성과를 기대해봅니다.
Part 2.
아레오파기티카는 1644년에 출판 되었습니다. 근 360여년전의 글인 셈이죠. 그런데 이 책을 읽어보십시오. 2001년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담론의 장이 고스란히 펼쳐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잉글랜드라는 한 섬나라에서 거의 400년전에 불붙은 논쟁이 한국에서는 21C초입에서야 현재진행형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아니 이제야 막 출발했다고 보는 게 더 적당하겠습니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제기되고 있는 수많은 논의들을 한번 정리해보죠.
1. 국가 보안법을 어떻게 폐지하란 말이냐? VS 그럼 내 양심에 따라 공부하고 생각해 머릿속에 자리잡은 내 나름의 사상을 국가의 강요에 의해 바꾸란 말이냐?
2. 남북이 이렇게 살벌하게 대치하고 있는 마당에 국가의 공적인 직책을 맡은 교수란 작자가 (빨간색 비슷한) 글을 써도 되남? 우리가 검증해야겠다.
3. 목사님들 김정일이 사탄의 제자 맞죠?(월간 조선 설문조사 중)
4. 우리 조선, 중앙, 동아는 언론 탄압을 받고 있습니다. VS 무슨 소리. 당신들은 지금껏 당신들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잘도 붉은색의 덧칠을 해오더니 이제 와서 웬 언론자유 타령!
5. 아이들에게 순수한 몸 그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을 뿐입니다(김인규 미술선생님). VS 애구 망측해라. 선생이란 사람이 이게 무슨 추태요?
6. 등급 외 전용관을(포르노 상영관) 세워야 하나 말아야 하나?
7. 지금 언론개혁을 주장하는 시민단체와 몇몇 언론 홍위병 사회주의자들이 지금까지 자유민주주의를 금과옥조로 여기며 언론발전과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힘써온 우리 조중동을 매도하고 있습니다―조중동이 주장하는 자유주의는 진짜 자유주의 본령에 충실한 자유주의일까?
여기에 대해 여러분 나름의 기준과 해답을 얻고 싶으신가요? 아레오파기티카를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물론 밀턴의 출판자유에 대한 신념은 자신의 종교개혁을 향한 열정의 부산물입니다. 그래서 혹 어떤 평자는 밀턴의 反카톨릭적인 입장을 문제 삼아 그를 평가절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대의 아들일 수밖에 없는 한 사상가의 부분적 결함을 가지고 그 전체를 매도하는 건, 아무것도 없던 어둠의 시대에 새로운 등불을 밝힌 선구자의 노력을 지나치게 폄하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 그런데 글방지기는 자기 얘기를 왜 안하는 거죠?’ 라고 물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하는 것으로 저의 편향성을(?) 밝히겠습니다.
요즘 조선일보 직원들은 부지런하더군요. 각계에 포진하고 있는 조선일보에 우호적인 인사들을 설득해 자사에 유리한 기고를 받아 내려고 열심입니다. 해외에서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듯싶습니다(대표적인 예로 국제언론인협회를 들 수 있겠습니다. 한국의 언론개혁을 지지하는 국제기자연맹의 얘기는 쏙 빼놓기는 했지만). 오늘 아침에도 조영남 아저씨가 조선일보가 요즘 갑자기 발행하기 시작한 간지인 ‘독자와의 대화(실은 안티조선 공격하기이지만)’에 출현하셨더군요.
조선의 대표적인 문화(문학) 담당 칼럼니스트라면 이규태 선생, 홍사중 선생이시겠죠. 이 분들도 뭐 한 건 해야 할테니 부지런히 자사를 변호해줄 꺼리를 찾고 있을 겁니다. 어! 언론자유의 경전-아레오파기티카! 이거 좋네. 밀턴! 음. 예전부터 읽고 싶었는데 제대로 된 번역이 없어서. 열심히 읽고 내일 칼럼 써야지. 하지만 책장을 덮고 나면(아마도 똑똑한 분들이라 박 교수님의 서문만 읽고 나서도) 잘못 샀다 싶을 실 겁니다. 아직 조선일보에 아레오파기티카 얘기가 없는걸 보면... 만약 정말로 조선일보에서 자사를 옹호하기 위해 아레오파기티카를 인용하는 날이 온다면 그건 두 가지 이유 중 하나일 것입니다. 제대로 안 읽었거나 그 속뜻이 뭔지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왜곡하거나 말입니다.
부록 1―아레오파기티카의 머리말 중에서
해방 이후의 한국 지성사에서 자유주의는 사실상 존재한 적이 없었다. 극우 파시즘이 자유주의의 옷을 걸치고 활개 쳤을 뿐이다. 대한민국 헌법의 근간이 되는 자유 민주주의의 원리에 입각한 ‘사상의 자유’를 부정하는 극우 파시스트들이 헌법의 수호자 노릇을 자임하는 희극적 상황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자유주의의 적들이 자유주의의 수호자 노릇을 하는 뒤집어진 현실 속에서 밀턴의 아레오파기티카가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350년전에 밀턴이 말한 ‘나의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알고 말하고 주장할 자유를, 다른 어떤 자유보다도 그러한 자유를 나에게 달라’는 절규가 우리에게 철학적 동시대성으로 와 닿는다는 것은 실로 비극적이다.
부록 2-빨리 찾기
1. 아니 학자의 인신을 구속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 까짓 책 좀 출판을 정지시키는 게 뭐 큰 대수라고.―p. 28을 읽으세요.
2. 국가보안법을 고안한 이들의 의도는 나쁜 거라도 나중에 나름대로 선한 역할을 할 수 도 있지 않나요?―p. 43을 보세요.
3. 오로지 정통만이 진리일 뿐 이단은 뿌리 뽑아야 한다. + 우매한 대중인 너희들은 국가가 안전하다고 공인한 유익한 읽을거리만 읽어야 해!―p. 49-50을 읽으세요.
4. 우리가 다 골라 줄 테니 선과 악, 참과 거짓을 구분하는 수고는 너희들이 안 해도 된다.―p. 52꼭 보세요.
5. 좋다. 사회주의, 뭐 진보적 신념! 그래 그걸 다 풀어주면 우리의 용광로 속에서 섞여들어 우리를 더 살찌울 거라는 거 우리도 안다. 그러나 그 중엔 진짜 골수 빨갱이 되는 놈이 생긴다. 그래서 우리를 역으로 위협할 텐데, 그땐 어쩔래?―p. 55 읽으세요.
6. 몇 살 이하 등급으로 할 것인지, 어디를 가위질 할 것인지 우리 명망 있는 심의위원들이 몇몇만 모여서도 다 알아서 해결할 테니 걱정 마세요.―p. 59부터 읽으시길.
7. 일단 청계천 포르노는 그냥 두고 개봉관부터 단속합시다.―p. 63 보셔야겠네요.
8. 아이구! 너무 많아서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