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화산 화장산 휘도는 13.5㎞ 구간 - 도화꽃 전설·못안못 잉어잡이 등 흥미 - 언양지석묘·김취려 장군묘등 유적 즐비 - 바람바위에서 본 영남알프스 능선 장관 - 쓰레기 안 버리는 '착한 걷기' 실천을…
영남알프스의 동부 또는 북부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곳. 바로 울산 울주군 언양 땅이다. 영남알프스 자락의 어느 고장이라도 역사적 인물과 그들에 얽힌 이야기, 숨은 전설과 설화 풍습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유물유적이 없지 않지만 언양에는 특히 이야깃거리와 볼거리가 많다. 여기에 먹을거리까지 풍부하니 금상첨화라 할 만하다. 영남알프스 둘레길 제2코스는 유서 깊은 고장 언양이 들려주는 옛 이야기를 따라 가는 길이다.
영남알프스 둘레길의 재미거리 중 하나가 멀리서 주능선을 감상하는 것이다. 개척단원들이 서 있는 울주군 언양읍 화장산 바람바위는 동부영남알프스가 한눈에 들어오는 최고의 전망대다. 낮지만 높은 곳이다. 김성효 기자
제1코스 종착점 작천정 인근 '인내천바위' 앞에서 출발, 봉화산(350m)과 언양의 주산인 화장산(花藏山·271m)을 지나 울주군 상북면 지내리 신광사에서 끝낸다. 구체적으로 요약해보면 인내천바위~대머리바위~봉화산 정상~342봉(돌탑)~경동교~언양지석묘~바람바위~화장산 정상~굴암사~김취려장군묘~못안못~지내리 지석묘~신광사 순. 총거리 13.5㎞에 걷는 시간만 4시간 걸린다.
태화강 줄기를 건너는 길이고, 화장산 바람바위에서 바라본 동부 영남알프스 능선이 그려내는 장쾌한 풍광에 넋을 잃을지도 모르는 길이다. 게다가 영남에서 가장 큰 지석묘(고인돌)와 고려시대 호국대장군인 김취려 장군의 묘, 가슴 아픈 도화꽃 전설이 서려 있는 화장산 굴암사, 잉어잡이 풍습이 수백 년째 전해져오는 못안못에 이르기까지 언양이 품고 있는 이야기들을 처마 밑 곶감 뽑아먹듯 맛보며 걸을 수 있다.
작천정 200m 못 미친 곳에 작은 돌탑과 장승, 인내천바위 안내판이 서 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혁명의 사상을 표현한 인내천(人乃天) 글씨가 새겨진 이 바위는 1915년 상북면 출신 김영걸 씨가 쓰고, 삼남면 출신 함석헌 씨가 음각했다고 한다. 30m 인근의 3·1운동사적비와 함께 암울했던 시대 희망을 갈구했던 언양 사람들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바위다.
잘 정비된 길을 따라 계속 오르막을 타면 곧바로 대머리바위. 언양 남부지역 일대가 훤히 드러나고 남쪽으로는 둘레길 제1코스 막바지에 거쳤던 백암산(일명 옥산) 자락과 작괘천이 시야에 들어온다. 또 영축산 정상과 신불산 간월산 천길바위 배내봉까지 확인 가능한 훌륭한 전망대다. 대머리바위는 울산지역의 암벽등반 기초 훈련장으로도 애용되는 바위다.
1분 후 쌍무덤 앞에서 자연석으로 다듬은 석물(石物)을 쓰다듬고 작은 언덕을 넘으면 T자 갈림길. 왼쪽으로 가면 운치 있는 대숲 길을 지나고, 파평 윤씨묘 우측 갈림길에서도 왼쪽으로 틀어 오른다. 3분 후 길이 확 넓어지는 삼거리에선 왼쪽 길을 택한다. 손수레도 지날 수 있을 정도의 넓고 편한 흙길이다. 소나무가 빼곡해 삼림욕장으로도 손색이 없는 길이다. 15분 후 봉화산 정상. 고산자 김정호 선생의 대동여지도에는 '부로산(夫老山)'으로 표기돼 있는 산으로 울산시기념물 제16호인 부로산봉수대가 있던 곳이다. 왜적 침입 등 국가적 위기 때 부산 천마산과 금정산 계명봉, 원적산(현 천성산) 봉수대를 거친 봉화를 받아 경주 소산 봉수대로 이어주던 이 봉수대는 울산의 내륙 봉수대로는 유일했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안내판과 터만 남아 있다. 마땅히 복원돼야 하며, 최근 그 필요성을 주장하는 여론이 일어 다행스럽다.
둘레길 개척단원들이 김취려 장군 묘를 참배하고 있다.
TV 중계안테나 옆으로 내리막을 타면 작괘천과 등억온천단지 그리고 그 뒤로 신불산 가지산 능선이 보인다. 안부사거리에선 직진해 능선길을 탄다. 5분 후 돌탑 2기 서 있는 342봉에 선다. 언양읍이 훤하다. 왼쪽 내리막으로 10분쯤 걸으면 계곡 약수터를 만난다. 100m쯤 더 내려서면 20m쯤 되는 서어나무를 만나면서 산을 벗어난다. 인근 주민들이 신성시한다는 이 나무의 기운이 범상치 않다.
곧바로 작은 다리를 건너 우측으로 휘돌아 경동청구아파트 주차장을 통과한다. 태화강에 놓인 경동교를 건너 왼쪽 횡단보도를 지나면 음식점 '기러기칼국수' 왼쪽 길을 따라 JCI(청년회의소) 건물을 거친다. 도로에서 우측으로 200m쯤 가면 울산시기념물 제2호인 언양지석묘. 언양읍 서부리에 위치한 이 고인돌은 길이 8.5m 너비 5.3m로 영남지역 최대 규모의 지석묘다. 언양이 선사시대부터 번성했던 땅이었음을 보여준다. 서부리 주민들은 '용바우'로 부르며 치성을 드렸다고 한다.
영남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언양지석묘.
지석묘에서 앞서 왔던 도로로 나와 횡단한 후 '송대리 표지판' 옆 비스듬한 오르막 콘크리트길로 진입한다. 상수도시설 정문 앞에서 왼쪽으로 틀어 숲길을 지나 10분이면 잇단 전망대가 나오고, 여기서 살짝 돌면 언제나 바람이 거세다고 명명된 바람바위 앞에 선다. 영축산에서 신불산 간월산 가지산 쌀바위 상운산 문복산과 언양의 진산인 고헌산에 이르는 영남알프스 동부능선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
10분 후 공동묘지가 조성돼 있는 화장산 정상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향한다. 차량 통행이 가능할 정도의 넓은 길. 도화정(桃花亭)을 지나 체육시설 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서면 굴암사(窟岩寺). 신라 제21대 소지왕이 중병을 앓던 중 이곳 굴 속에 핀 복숭아꽃으로 치유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봉화산 기슭의 수백년 된 서어나무를 지나는 개척단.
체육시설 앞 삼거리까지 되돌아가 우측 길을 택한다. 간이화장실을 지나 정자가 위치한 사거리까지는 20분쯤 걸린다. 너비 3m 안팎의 오른쪽 흙길로 200m쯤 가면 임도에서 우측으로 빠져나가는 샛길이 있다. 길 찾기 유의할 지점이다. 리본을 참고하자.
키 큰 산죽 사이로 5분만 가면 위열공 김취려 장군묘와 만난다. 고려 고종 때인 1216~1219년 거란의 공격을 물리친 호국대장군으로 이후 최고위직인 문하시중까지 오른 언양의 대표적 위인이다. 언양 김씨 후손들이 매년 가을 이곳에서 추모제를 지낸다고 한다. 왔던 길로 30m쯤 되돌아가면 우측으로 내려서는 반듯한 길이 보인다. 수령 100년은 넘었을 아름드리 소나무들 사이로 걷는 운치 있는 길이다.
5분후 '김취려 장군 태지유허비'를 지나면 송대리 능골 마을로 들어선다. 장군의 묘가 있다고 해서 능골이라고 불렸을까. 첫 갈림길에서 왼쪽 대숲이 있는 마을 쪽으로 진입해 노란색 길상사 안내판 앞 삼거리까지 간 후 우측 24번 국도 쪽으로 튼다. 굴다리 앞에서 왼쪽으로 꺾어 곧장 10분쯤 더 가면 오른쪽에 또 다른 굴다리가 있다. 여길 통과한 후 갈림길에서 논두렁길을 지나 정면 야트막한 언덕 밑 포장로에 오른다. 우측으로 200m쯤 가면 파란색 철제 울타리가 있는 대풍농장 건물을 만난다.
언양 화장산 굴암사에서 김취려 장군 묘 방향으로 가는 길. 여러명이 얘기 나누며 걸을 수도 있는 넓은 길이다.
대풍농장 정문 왼쪽 묘지 쪽으로 산길을 탄다. 이번 코스에서 가장 묵은 길이다. 5분 정도 오르면 새터마을 상수도배수지 옆을 통과하고 7분이면 글씨가 음각된 너럭바위를 지난다. 동래 정씨묘까지 통과하면 길은 다시 반듯해진다. 100m쯤 가다가 왼쪽으로 살짝 비켜서면 전망대. 발아래 조선시대 이전부터 있었다는 못안못이 보이고 고헌산 가지산 등 영남알프스 줄기도 여전하다. 능선을 따라 못안못 옆 갈림길까지 5분이면 내려선다. 오른쪽으로 50m만 가면 왼쪽 포도밭에 지내리지석묘가 있다. 조금은 방치된 느낌. 지석묘를 지나 제2코스 종착점인 신광사 주차장까지는 4분 걸린다.
※ 잠깐!
제발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 둘레길과 지역 주민들 가슴이 모두 멍든다. 지난주 제1코스를 따라간 이들은 쓰레기를 많이 버렸다.
◆ 시민개척단 참가-김수원 씨
- "자연사랑 인간사랑 담아 영남의 자랑 되길"
"국제신문에서 영남알프스 둘레길을 연다는 기사를 접하고 얼마나 반갑던지. 꼭 참여하고 싶어 이렇게 나섰지."
이번 둘레길 제2코스 취재답사에 시민 개척단원으로 참여한 김수원 씨(71·울산 울주군 상북면 지내리). 그는 영남알프스가 고향인 사람이다. 제1코스 구간이었던 삼남면 가천리 신불산 자락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교사로 부산에서 45년간 봉직한 후 귀향, 91세 노모를 봉양중이다. 하지만 그의 진면목은 걷고 달리는 데서 찾아야한다. 김 씨는 울트라마라토너다. 이미 100㎞ 울트라마라톤 완주를 96회나 했다. 또 2007년 9월에는 18박19일에 걸쳐 전국 일주 마라톤 2030㎞를 완주했고, 이듬해 가을에는 거리를 더 늘려 24박25일 동안 2500㎞를 완주해 낸 괴력의 소유자이기도하다.
그는 "국제신문 주최 부산 5산 종주 산악마라톤도 이미 몇 차례 참가, 완주했다. 완성된 영남알프스 둘레길에서 꼭 달려보고 싶은 것이 꿈이다. 자연사랑 인간사랑이 합일되는 둘레길로 조성돼 영남의 자랑으로 발전됐으면 좋겠다"라며 포부와 당부를 밝히기도 했다.
◆ 교통편&먹을 곳
- 도시철도 명륜동역서 언양행 버스 이용
부산도시철도 1호선 명륜동역 앞에서 언양행 12번 버스를 타고 작천정 입구에서 하차한다. 1시간 소요. 자가용을 이용할 경우 경부고속도로 서울산IC 요금소를 통과한 후 35번 국도 신불산군립공원 작천정 방향으로 간다. 3분쯤 가면 작천정 입구 표지판이 나오는데 작천정 방향으로 우회전 2분쯤 더 가면 오른쪽에 인내천바위 안내판이 있다. 인근에 넓은 무료 주차장이 있다. 코스 걷기를 마치면 울주군 상북면 지내리 신광사에서 대리꽃마을 산책로를 따라 왼쪽으로 고개를 넘으면 24번국도 지내교차로까지 갈 수 있는데 교차로 직전 버스정류소에서 언양행 버스를 탈 수 있다. 다만 막차가 오후 7시30분이고 배차간격은 192분이어서 시간 맞추기가 쉽지 않다. 차라리 지내교차로에서 향산리 방향으로 15분쯤 걸어서 향산초등학교 앞까지 가는 편이 났다. 향산리지석묘도 둘러볼 수 있다. 언양터미널행 시내버스가 20분 안팎 간격 운행.
제2코스 중간 경동교 인근 음식점인 '기러기칼국수(052-264-0076)'에서 점심 식사를 할 수 있다. 충남 예산에서 황토를 먹여 키운 기러기로 우러낸 육수에 기러기 수육과 파를 곁들인 칼국수가 별미다. 담백하고 구수한 국물이 입맛을 돋운다.
◆ 화장산 남매-도화 스님 전설
- 가엾은 남매의 혼 송대마을 이름으로 환생 - 신라왕 병 고친 도화 이야기도 흥미 - 이후 화장산을 언양 주산으로 대접 - 소설가 오영수 선생 묘도 들러볼 만
언양 사람들은 해발 271m에 불과한 화장산(花藏山)을 주산으로 삼고 있다.
도대체 화장산은 어떤 산일까. 우선 전설부터 한 번 보자. 때는 신라시대 어느 엄동설한. 산 밑에 사냥꾼 부부가 남매를 키우며 살았다. 그런데 산 위 바위굴에 살던 곰이 다른 짐승들을 잡아먹는 등 행패를 부렸다. 부부는 곰을 잡으려 했지만 오히려 곰에게 역습을 당해 죽고 말았다. 기다려도 오지 않는 부모를 찾으러 나섰던 남매도 산을 헤매다 기진맥진해 눈 속에서 얼어 죽었다. 가엾게 죽은 오빠의 혼은 대(竹)가 되고 여동생의 정령은 소나무(松)가 됐다. 산의 동쪽 마을 이름이 송대리가 된 유래다. 그래서 지금 산 위와 아래에는 소나무와 대나무가 무성하다.
전설이 또 있다. 이 즈음 신라 제21대 소지왕이 중병에 걸려 치유되지 않고 있었다. 하루는 관세음보살이 꿈에 나타나 "남방에 도화(桃花)가 있으니 그 꽃을 3일간 달여 먹으면 병이 나을 것"이라고 전해주었다. 왕은 엄동설한에 어떻게 도화를 구할지 걱정하면서도 신하들을 풀어 꽃을 찾게 했다. 한 신하가 헌양성(언양성의 옛 이름)에 이르러 가까운 산의 남쪽 바위에서 서기가 어리는 모습을 보고 달려가니 꽃은 없고 도화라는 법명을 가진 스님이 바위굴에서 수도중이었다. 서라벌로 간 도화 스님앞에서 소지왕은 3일간 기도했고 병은 보란듯이 나았다.
크게 기뻐한 소지왕은 직접 언양에 가서 도화 스님이 머물던 산의 이름을 '꽃을 감춘 산'이라는 뜻으로 '화장산'이라 하고 석굴 속 샘물을 염천이라 불렀다. 또 화장암(굴암사의 전신)이란 절을 지어 매년 8월16일을 관례일로 삼았다. 이후 언양의 관민들은 해마다 이곳에서 제례를 올렸다. 화장산은 언양의 주산이 됐다.
또 화장산 정상 기슭에는 천지(天池) 또는 세이지(洗耳池)라고 불리는 작은 연못이 있다. 이는 언양 사람들이 '더럽고 좋지 않은 말을 들었을 때는 이 물에서 귀를 씻는다'는 의미로 명명된 이름이다. 올곧은 삶을 영위하고자 했던 언양 사람들이 중국 요나라 때 인물인 소부와 허유의 고사를 따서 그렇게 부르게 됐다고 전해진다. 동국여지승람에는 화장산이 언양 김씨의 시조인 고려 대장군 김취려가 태어나 무예를 익힌 산으로 기록돼 있고, 현재 그의 묘가 있다.
산아래 남쪽 자락에는 '갯마을'로 유명한 언양의 소설가 난계 오영수 선생의 묘(사진)가 있다. 그의 묘비에는 '작가 오영수 여기 잠들다'라는 글귀가 단촐하게 적혀 있다. 둘레길을 걷다가 한 번쯤 들러보자.
# 못안못 잉어잡이 풍습
- 500여년 전통…과욕금물 교훈
둘레길 제2코스의 종착점인 상북면 지내리에는 '못안못'이라는 큰 저수지가 있다. 이 못은 조선 예종 원년(1469년)에 편찬된 '경상도속찬지리지' 언양현조에 초산제(草山堤)란 이름으로 나온다. 500년은 된 못이다. 이 못의 잉어잡이 풍습은 예부터 제법 유명했다.
워낙 크고 깊은 못이지만 10년에 한 번 정도 큰 가뭄이 들면 주민들이 주야로 며칠간 고기를 잡았다고 한다. 특히 밤에 횃불을 들고 불야성을 이루며 잡는 '못안못 잉어잡이'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고 한다. 간혹 어린애 키보다 큰 황금빛 찌꿈잉어가 잡히면 성스럽게 예우해 놓아주었다고 한다. 이 찌꿈잉어를 잡으면 대풍이 든다는 속설도 있었지만 동네 어른들은 "욕심이 과하면 오히려 화를 당한다"며 젊은이들을 달래 놓아주게 했다는 것이다. 족함을 알고 욕심을 부리지 말며 살라는 교훈이 깃든 이야기다.
지내리(池內里)라는 지명은 못의 안쪽 마을이라는 의미다. 못안못 서쪽 들에는 오리농법으로 벼를 재배하는 경작지가 있다. 주황색 지붕을 한 소형 오리장이 이색적이다. 제2코스를 마무리하고 버스를 타기 위해 향산초등학교 쪽으로 걷다보면 향산리지석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