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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서초동에 있는 서울고등학교 교정은 마치 현충원을 방불케 한다. 국가(보훈처)가 지정한 현충(顯忠) 시설이 4개나 있다.
독립운동가 이갑성 옹의 친필 휘호인 ‘대한독립만세(大韓獨立萬歲)’가 새겨진 삼일탑(三一塔), 6·25 당시 학도병(學徒兵) 전사자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표충탑( 表忠塔·이승만 대통령의 휘호), 훈련 중 중대원 한복판에 떨어진 수류탄에 몸을 던져 중대원을 구하고 산화(散花)한 故 강재구 소령 흉상, 그리고 2010년에 건립된 6·25 전쟁 참전 기념비가 그것이다. 이 외에도 학교 본관 건물 복도에는 참전용사들 전원의 이름이 새긴 명패가 걸려 있다. 서울고 재학생들은 특별한 날이 되면 이들 현충시설에 헌화행사를 가진다.
서울고총동창회는 6·25 전쟁 60주년을 맞아 2010년 서울고 출신 참전 동문들을 기리기 위한 6·25 전쟁 참전 기념비를 건립했다. 서울고는 서울지역에서 가장 많은 학도병 참전자와 전사자를 냈다. 기념비에는 참전자와 전사자 전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당시 기념비 제막식 후 생존 참전 용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
서울고 제18대 총동창회장을 역임한 강대신(姜大信) (주)케이티엠파트너스 대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의 명문인 이튼스쿨과 일본의 귀족학교인 학습원(學習院)의 20%대에 불과한 참전율과 비교했을 때 단일 학교에서 이러한 참전율을 기록한 것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예를 찾아볼 수 있는 경이적이고 자랑스러운 호국(護國)의 역사”라고 말했다.
서울고동창회는 모교(母校)의 호국 역사와 선배들의 애국심을 기리기 위해 2010년 10월 6·25 전쟁 60주년에 맞추어 서울고동문참전기념비를 건립한 것이다. 기념비에 새겨진 ‘자유민주주의수호’라는 휘호는 이명박 대통령의 친필이다.
강 회장은 참전기념비 건립 배경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제가 서울고 동창회장을 맡기 얼마 전 국립 서울대에 6·25 참전 기념비가 없다는 어느 교수의 신문 기고 칼럼을 읽고, 참담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습니다. 마침 제가 동창회장이 되었을 때가 6·25 전쟁 발발 60주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저는 이를 계기로 호국과 현충(顯忠)의 교풍(校風)을 이어온 우리 서울고가 모범적인 기념비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온 서울고 동문들의 힘을 모아 기념비건립을 추진했습니다.”
서울고총창회는 모교 출신 참전자들의 수기를 모아 <경희궁의 영웅들>이라는 기념문집 편찬했다. |
강 회장은 아울러 서울고 출신 참전자들의 수기(手記)를 모아 기념문집 편찬사업을 진행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경희궁의 영웅들>이라는 서울고 동문 참전기념문집은 2010년 10월16일 참전기념비가 준공되는 날 기념비 앞에 헌정되었다. 강 회장은 “참전기념비 준공식에 참석한 서울고 출신 노병(老兵)들은 저마다 감격에 겨워 눈시울을 붉혔다”고 전했다.
아울러 서울고총동창회는 6·25 발발 60주년이 되던 2010년 한 해 동안 모교의 참전 영웅들을 기리기 위한 다양한 기념행사를 열었다. 참전 선배들과 함께한 서울고 가족 마라톤대회, 육군사관학교 내의 강재구 소령 동상 헌화 및 추모 테니스대회, <6·25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나>라는 주제의 학술대회, 재학생들의 6·25 관련 백일장, 호국가을운동회, 6·25 전적지 참배 산행 및 전투기념비 헌화, 동문 참전기념비 건립과 호국예술제, 참전동문 기념문집 발행 등이 그것이다.
2013년 6월, 정전 60주년을 맞아 국방부는 서울고 동문 참전용사의 이름을 새긴 명패를 전달했다. 명패에는 서울고 1~6회 출신 참전용사 450여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명패는 서울고 본관 건물 복도에 걸려 있다. |
국군의 간성(干城)을 길러온 호국의 요람
김원규 서울고 초대교장의 흉상. |
서울고 출신의 많은 동문들은 광복 후 생긴 신생학교가 10년이라는 이른 시일 안에 명문고로 우뚝 서고, 호국의 전통을 이어온 배경에는 김원규(金元圭) 초대 교장의 역할이 컸다고 증언하고 있다.
김원규 교장은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일제 때 함흥고보를 거쳐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현 경기여고의 전신)에서 교편을 잡았다. 그는 서울시 교육국장 시절 6년제 중학교를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분리하는 등 우리 교육계에 큰 발자취를 남긴 교육자다.
재학생 절반 이상이 이북 출신
강대신 회장은 “서울고 출신의 남다른 애국심과 호국 정신 이면에는 이북 출신이 많았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며.
백마고지 전투에서 독립포병 대대로 활약했던 서울고 출신의 유인준(3회) 중위 '경희궁의 영웅들'에서 발췌. |
“죽기 아니면 살기로 계속 총을 쏘라”
6·25에 갖혀버린 어느 전쟁 영웅의 삶
6·25 전쟁 당시 입은 부상으로 평생 후유증에 시달리며 외롭게 살아온 목진홍씨와 그를 한평생 간호하며 헌신해 온 부인 방순이 여사. |
※목진홍씨는 6·25 전쟁의 부상으로 극심한 언어장애, 기억력 쇠퇴, 뇌 퇴행성 파킨슨씨병,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 급격한 노화 등 악성 질환에 시달리며 60년을 고독 속에서 보냈다. 목진홍씨는 서울고 동문에서 수기를 편집할 당시 80세였다. 그는 후배들이 찾아와 서울고 모표가 새겨진 벨트를 선물을 받고, 북받쳐 오르는 감동을 억누르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의 수기는 부인과 장남의 구술로 재구성되었다.
천석꾼 집안에 태어난 나는 부친이 최상의 교육을 시키기 위해 서울고에 진학시켰다. 전쟁이 나자 나는 “학업도 좋지만, 조국을 위해 작은 힘을 보태겠다”며 아버지께 입대하겠다고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입대가 아니라도 나라에 이바지할 길이 있지 않겠느냐”고 말렸지만, 나는 결국 포병 소위로 입대했다.
통한과 눈물의 포로생활 2년 7개월
첫댓글 선배님 저도 이기사 보고 정말 자랑 스러웠습니다
그러게, 줄줄이 고관대작 배출한것보다 더 자랑스럽습디다.. 우리 시절 입었던 엄청더웠던 카키색 하복.. 전쟁나면 군복같던 그 복장 그대로 총만 들고 나갈 수 있게 김원규 교장선생님이 만드셨다 하더구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