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
서울특별시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해 있으며 1966년 전형필(全鎣弼:1906~62)의 수집품을 바탕으로 한국민족미술연구소 부설 미술관으로 발족했다.
전형필은 1929년부터 우리나라 전적·서화·도자기·불상 등의 미술품 및 국학자료를 수집하여, 1936년 지금의 미술관 건물인 보화각(保華閣)을 지어 보관해왔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의 태평양전쟁과 8·15해방, 남북분단 등 국내외의 격동 속에서 미술관을 일반에게 공개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후 아들인 성우(晟雨)·영우(暎雨)가 유업을 이어 1965년 가을부터 한국 고미술품 및 전적 정리작업을 시작, 〈고간송전형필수집서화목록 故澗松全鎣弼蒐集書畵目錄〉 상·하권을 간행했다.
1966년 정리작업 진행중에 한국민족미술연구소와 간송미술관이 발족되었다.
미술관은 연구소의 부설기관으로 미술품의 보전·전시업무를 맡고 있으며 연구소는 이를 바탕으로 미술사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1층과 2층에 전시실이 있으며 소장품은 전적·고려청자·조선백자·불상·불구(佛具)·부도·석탑·그림·글씨·와당·전 등 다양하다.
그중 〈훈민정음〉(국보 제70호)을 비롯하여 10여 점이 국보로 지정되었으며 많은 유물들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1971년의 개관전시회 '겸재전'(謙齋展)을 시작으로 매년 봄·가을 2회에 걸친 수장품 전시회와 함께 논문집 〈간송문화 澗松文華〉를 발간하고 있다 (출처: 백과 사전)
간송미술관 정문
공작
미술관 역사를 말해주듯한 향나무가 고고하다
미술관 벽 담쟁이, 가을 빛이 아름답게 채색되어 간다
간송 전형필(1906-1962)은 한국의 문화재 수집, 보존, 연구가이며 교육가이다.
그가 수집한 대부분의 문화재들은 매우 가치가 높아 국보나 보물 등으로 지정됐다.
1942년 훈민정음 원본을 찾아내고 간송미술관을 세웠다.
대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1926년 휘문고등보통학교, 1929년 와세다대학 법학부를 졸업했다. 졸업 후 1932년 서울 관훈동의 한남서림을 인수하고 한국의 문화재들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기 위해 문화재들을 수집했다.
1934년 서울 성북동에 북단장을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문화재를 모았다.
1938년에는 자신의 소장품으로 북단장 안에 한국 최초의 사립 박물관인 보화각을 세웠고 이것이 1966년 간송미술관으로 확대됐다. 간송미술관은 한국의 국보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미술관 중의 하나이다.
안동에서 당시 2000원의 큰돈을 주고 산 훈민정음 원본에 관한 일화와 존 개츠비의 소장품인 고려청자의 수집에 대한 일화는 유명하다.
1940년 보성고보를 인수했으며 1945년에는 1년 동안 보성중학교 교장을 맡았다.
1960년에는 이전부터 그를 돕던 김상기, 김원룡, 최순우, 진홍섭 등과 함께 '고고미술 동인회'를 만들고 '고고미술'이란 동인지를 발간했다.
1962년 그의 사후에 문화훈장이 추서됐고 1966년 보화각은 간송미술관으로 바뀌었다. 북단장에는 한국민족미술연구소가 설립됐다.
1936년에 건축된 미술관은 건축적으로도 높은 가치
600년 시공을 담은 간송미술관
간송미술관은 한국 최초의 사립 미술관이다.
대지가 4,000평으로 도시 속에 있다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주위가 한적하고 조용하다.
미술관의 중심건물인 보화각에는 전형필 선생이 평생동안 수집한 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는데 소장 유물이 대다수 국보급들이다.
우리나라 제일의 고서화 소장처로서 한국민족미술연구소로서 발족한 이래 1971년 10월 부터 매년 5월과 10월에 각각 2주씩 소장문화재를 전시하고 있으며 상설 전시(개방)은 하지 않는다. 간송 미술관의 전시는 수준높고 품격높은 전시회로 유명하다.
우리보고 싱긋 웃는다. 왜 벌써 왔냐는듯이..^^
하루 먼저 찾아가게 되었다. 작품들을 못보고 외부만 돌아보고 왔다.
아래는 각 언론사및 네티즌들의 생각을 옮겨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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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필의 정신이 깃든 간송 미술관을 찾아서
출처 - 머니 투데이
◇간송미술관에 가려면=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에서 10분쯤 걷다가 서울 성북동 성북초등학교 샛길로 들어서면 감춰졌던 조그만 쪽문이 모습을 드러낸다. 우리나라의 최초 사립박물관인 간송미술관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왼쪽 길로 올라가다보면 간송 전형필 선생의 조각상과 미술관이 있다.
이곳은 장마를 피해 1년 중 5월과 10월 각각 2주씩 전시회를 연다. 때문에 미술관이 열리는 봄, 가을이면 김홍도, 신윤복 등 조선시대 최고의 예술품을 보기 위해 매년 10만 명 이상의 관람객이 모여든다. 관람자들은 적어도 한두 시간은 미술관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고.
간송미술관의 소장품은 질적인 면에서 국내 국·공·사립을 불문하고 명실 공히 최고라는 평을 받는다. 삼국시대부터 조선말 근대에 이르기까지 전 시대에 걸쳐 있으며 서화는 물론 조각과 공예 등 조형미술 모든 분야를 아우른다. 국보 12건, 보물 10건 등 22건의 국가 지정문화재를 비롯해 뜰에 전시된 석탑, 부도, 불상 등 서울시 지정문화재 4건도 보관돼있다. 전문가들은 간송미술관 소장품만으로 한국미술사를 서술할 수 있으며 이를 제외한 한국회화사는 상상할 수 없다고 말한다.
간송미술관에 방문하려는 관람객은 전시일정 확인이 필수다. 전시기간이 짧은데다 전시일 외에는 출입이 통제돼 허탕을 칠 수 있어서다. 미술관 공식 홈페이지가 없어 전화나 미디어를 통해 문의해야한다. 미술관 규모가 작아 주차가 불가하며 대중교통을 이용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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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 가을전시 '화훼영모대전'
출처 : 연합뉴스
매년 봄.가을 두 차례만 문을 여는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올가을에는 동.식물을 소재로 한 '화훼영모'(花卉<令+羽>毛)를 화제로 내세웠다.
미술관이 소장한 화훼영모화 중 가장 오래된 그림인 공민왕(1330~1374)의 작품부터 이당 김은호의 작품까지 600여년의 세월 동안 각 시기를 대표하는 100점의 화훼영모화로 시대정신의 변화에 따른 기법 차이를 한눈에 살필 수 있도록 한 전시다.
여말선초의 화훼영모화에서는 우리 땅에서는 자라지 않는 중국의 동물들이 발견된다. 양(羊) 두 마리가 걸어가는 모습을 그린 공민왕의 이양도(二羊圖) 속 양은 터럭 한 올까지 정교하게 표현됐지만 당시 우리나라에 양이 들어오지 않았던 점을 생각하면 실제 양의 모습이 아닌, 양에 대한 고정관념으로 그린 것이다.
소가 들판에 누워있는 모습을 그린 김시의 '야우한와'(野牛閒臥)나 이경윤, 이영윤의 그림에 등장하는 소 역시 우리에게 친숙한 소가 아닌 당시 중국에서만 서식하던 물소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김시, 野牛閒臥
주자성리학이 지배하던 전반기가 지나고 조선성리학이 통치 이념으로 등장하면서부터 화조화 역시 변화를 겪기 시작한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 동물들이 주인공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정선 시대에 이르면 본격적으로 '우리의 것'을 사생하기에 이른다. 동시에 심사정처럼 실제 사생보다는 중국 남종화의 화보를 묘사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정선의 '추일한묘'(秋日閑描)와 심사정의 '패초추묘'(敗蕉秋描)는 모두 가을날의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하지만 사생의 정교함이나 배경이 되는 꽃의 구도에서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왼쪽) 정선, 秋日閑描 (오른쪽) 심사정, 敗蕉秋描
이 시기 동물 그림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한 명의 작가가 변상벽이다. 고양이를 워낙 잘 그려 '변고양이'라고도 불렸던 변상벽이 터럭 하나, 수염 한 올까지 정교하게 묘사한 고양이 그림도 볼 수 있다.
김홍도 대에 이르러서는 정교한 사생에 회화성이 더해진다. 귀여운 강아지 두마리를 바라보는 어미개를 그린 '모구양자'(母狗養子)나 홍련 위에서 짝짓기하는 한 쌍의 고추잠자리를 포착한 '하화청정' 같은 작품은 화훼영모화라기보다는 한 편의 풍속화나 초상화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경향은 이인문과 김득신, 신윤복 대까지 이어지다 추사 김정희 이후로는 청나라 문인화의 영향이 더해지면서 다른 양상으로 발전한다. 실제 모습을 묘사하기보다는 대상의 본질을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이다.
김홍도, 母狗養子
조선 말기에 이르면 그 시대 대부분의 그림이 그랬듯 화훼영모화에서도 중국화의 영향과 전통화의 영향이 뒤섞여 장식성이 두드러진다.
이 시기 화훼영모화 특징 중 하나는 묘사에는 충실하지만 생동감은 부족하다는 것이다. 조석진의 '수초어은'(水草魚隱) 속 쏘가리는 정교하긴 하지만 마치 죽은 물고기인 듯 생기가 느껴지지 않는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연구실장은 11일 "이념(뿌리)이 바뀌면 예술양식도 달라진다"며 "지배이념이 주자성리학에서 이를 심화 발전시킨 조선성리학으로 바뀌면서 그림도 확연하게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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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성북초등학교 옆 간송미술관은 우리 문화유산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사립 미술관이다.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1906-1962)이 일본 와세다 대학 법과를 졸업한 뒤 귀국해 위창 오세창과 교우하면서 1930년부터 우리의 문화재를 수집하고, 이를 토대로 민족 문화의 자존심을 되찾기 위해 1938년에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이 현 간송미술관의 전신인 '보화각'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간송미술관 건물은 한국 최초의 건축가로도 불리는 박길용(1898-1943)이 설계한 보화각 건축물로, 당시 모습을 거의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만 전시하는 간송미술관이 올해 가을에는 '보화각 설립 70주년 기념 서화전'을 마련했다.
간송미술관의 최완수(66) 한국민족연구소 연구실장은 "조선시대 서화사를 살펴볼 수 있게 조선의 대표작들로 꾸몄다"고 설명했다.
세종 때 문신 유자미(柳自湄), 이경윤(1545~1611) 등 중국 화풍의 영향이 컸던 조선 초중반 시기부터 독자적인 성리학 이념의 달성에 힘입어 겸재 정선(1676-1759)으로 대표되는 진경 산수화가 만개했던 시기를 거쳐 감필미(減筆美)를 추구한 추사 김정희(1786~1856)의 화풍에 이르기까지 한자리에서 볼수 있다.
겸재의 그림으로는 진경산수를 이미 완성한 64세때 그린 '청풍계(淸風溪)'와 중국의 고사를 토대로 그린 그림이지만 초가집과 선비의 의복까지 조선의 모습을 담은 '여산초당(廬山草堂)'이 전시된다.
겸재의 제자이면서도 남종화풍의 그림을 그린 심사정(1707-1769)의 여산유서(廬山幽棲)를 겸재의 여산초당과 함께 비교해 볼수 있다.
인물화로 유명한 윤두서(1668-1715)의 말 탄 사람의 모습을 담은 그림, 자신의 세계를 고집하기 위해 스스로 눈을 찔러 외눈박이가 됐다는 최북(1712-1786)의 풍경화, 사실적인 닭과 고양이 그림으로 유명한 변상벽(1730-?)의 닭 그림도 등장한다.
버드나무위 꾀꼬리 한쌍을 쳐다보는 선비의 모습을 담은 김홍도의 '마상청앵(馬上廳鶯)이나 신윤복의 '미인도' 등 교과서에서 봤음직한 그림들도 여러 점 선보인다
최근 드라마로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신윤복의 화첩인 국보 135호 '혜원전신첩'에 실린 그림 중 '주유청강', '유곽쟁웅', '월하정인' 등도 전시한다.
추사풍의 그림으로는 김정희와 함께 한용간(1783-1829), 김유근(1785-1830), 신의(1813-?), 전기(1825-1854) 등의 그림이 내걸리는데 추사풍의 그림들은 처음 공개되는 작품들이 적지 않다고 최 실장은 설명했다.
그는 "이번에 전시되는 추사풍 그림 중 전기의 '매화서옥'은 개인적으로 조희룡의 '매화서옥'보다 훨씬 더 좋아한다"고 말했다.
서예 작품도 안진경체, 왕휘지체, 동국진체 등 시대별 흐름을 볼수 있게 꾸몄다.
한석봉(1543~1605), 이광사(1705-1777), 강세황(1713-1791), 김정희, 정약용(1762-1836), 이하응(1820-1898) 등의 글씨뿐 아니라 영조(1694-1776)가 83세때 쓴 글, 한글 궁체로 써진 혜경궁(1735-1815)의 편지 등도 전시된다.
입장료는 무료이지만 관람객이 많아 1-2시간 줄을 서 기다리는 경우가 다반사인 점은 유의해야 한다.
전시는 12-26일 문의는 ☎02-762-0442.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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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민왕 등 선조들 동·식물화 한 곳에 간송미술관 ‘화훼영모대전’ 17일 개막
출처 -서울신문
화훼(花卉)는 꽃과 풀, 영모(翎毛)는 새와 짐승을 그린 그림이다. 해마다 봄, 가을 두 차례 전시회를 여는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올 가을 전시 주제로 화훼영모를 택했다. 오는 17일 개막하는 전시는 미술관이 소장한 동식물 그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고려 공민왕(1330~1374)의 그림부터 이당 김은호(1892~1979)의 작품까지 600년의 세월 동안 각 시기를 대표하는 그림 100점을 추렸다.
공민왕의 ‘이양도’(二羊圖)는 배경 없는 비단 바탕에 얼룩 무늬 양 두 마리가 걸어가는 모습을 그렸다. 터럭 한올의 질감까지 살린 섬세한 필치는 전문 화가의 솜씨 못지않지만 당시 우리나라에 양이 들어오지 않았던 점을 감안하면 실제 양이 아닌 상상 속의 양을 그린 셈이다.
조선 전기 김시(1524~1593)의 ‘야우한와’(野牛閒臥)를 비롯한 소 그림 역시 우리나라에 없는 남중국의 물소를 그리고 있다. 여말선초 주자성리학의 도입 시기에 중국 남방 화풍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퇴계와 율곡이 조선 성리학을 완성하면서 우리 주변의 새와 짐승, 꽃들을 그리려는 변화가 시작됐다. 겸재 정선의 진경 시대에 이르면 독자적 사생기법이 틀을 갖추는 한편, 심사정처럼 실제 사생보다 중국 남종화의 화보를 묘사하는 경향도 드러난다. 가령 정선의 ‘추일한묘’(秋日閑猫)와 심사정의 ‘패초추묘’(敗蕉秋猫)는 모두 가을날의 고양이를 그렸지만 묘사의 정교함이나 배경의 구도에서 뚜렷한 차이를 엿볼 수 있다.
겸재 풍의 사생기법을 계승한 조선 고유의 화훼영모 화풍은 변상벽, 김홍도, 김득신 등에 의해 절정을 이루다 추사 김정희 이후로는 청나라 문인화의 영향이 더해지면서 함축적 생략기법의 추상적 표현으로 점차 생기를 잃게 된다. 최완수 간송미술관 연구실장은 “시대이념의 변화에 따라 반복기멸하는 문화현상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31일까지이며, 관람료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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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미술 대가 작품 다 모였다 [중앙일보]
간송미술관, 12일부터 ‘조선서화전’
사임당 신씨·단원·겸재·안평대군·추사 …
일본서 되찾아온 혜원의 풍속도도 나와
보화각(?華閣)’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이다. 일제강점기 10만석 재산을 모조리 털어 우리 문화재를 모은 간송 전형필이 1938년 서울 성북동에 설립했다. 위창 오세창(1864~1953)이 이에 ‘보배를 두는 집’이라 이름 짓고 현판을 썼다. 서양식 2층 건물은 서울 종로통에 화신백화점을 설계했던 박길룡(1898~1943)의 작품이다. 62년 간송이 타계한 뒤 3남 영우씨가 보화각을 이어받았다. 66년엔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직이었던 최완수 씨가 보화각에 영입되면서 이름이 간송미술관으로 바뀌었고, 한국민족미술연구소가 설립됐다. 71년 ‘겸재 정선전’으로 시작, 오로지 소장품만으로 연 2회 전시를 연 게 75회째다. 봄·가을 딱 2주간의 무료 전시 외에는 소장품 연구에 골몰한다. 소장품 수는 한사코 공개하지 않는다.
보화각은 이름 그대로 보물창고다. 보물을 들고 오는 이에게 흥정하지 않고, 대가의 명작은 100점 이상씩 수집한다는 게 간송의 원칙이었다. 간송미술관은 덕분에 여기저기서 작품을 빌리지 않고도 겸재·단원·추사·오원의 전시를 열 정도의 소장품을 확보했다. 보화각은 문화재 연구자들의 필수 코스다. 이원복 국립전주박물관장은 “베일에 싸인 삶을 산 오원 장승업이 1897년 타계했다는 사실, 신윤복의 본명이 신가권이라는 사실 등은 간송미술관이 간직해 온 유물을 통해 밝혀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12일부터 열리는 간송미술관의 올 가을 전시는 ‘보화각 설립 70주년 기념 조선서화전’이다. 최완수 연구실장은 “중국 성리학을 따르던 조선 전기엔 중국 화풍을 견지하다가 조선 성리학의 완성, 고증학과 실학 등 이념의 확립에 따라 겸재의 진경산수화,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으로 조선화의 완성을 본다”고 요약했다. 그는 “조선왕조 각 시기를 대표하는 서화를 내놓아 이것만 봐도 조선 서화의 변천사를 알 수 있도록 했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조선 전기 유자미, 안평대군, 사임당 신씨를 비롯해 진경산수화의 효시를 이뤘다는 조선 중기 조속의 까치도로 이어진다. 조선남종화를 확립한 현재 심사정, 진경산수화를 꽃피운 겸재 정선, 조선화를 절정에 올린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 등 쟁쟁한 대가들의 작품을 직접 보는 안복을 누릴 수 있다. 또한 짐승의 터럭 한올한올을 사실적으로 그려 변닭·변고양이라고 불렸던 변상벽, 나비 그리기가 장기라 해 남나비라 불린 남계우의 희귀작, 추사와 그 제자들의 작품도 나왔다.
특히 겸재가 70대 중반에 그린 ‘여산초당(廬山草堂)’은 소재는 중국 고사이되 솟구치는 우리 산세에 쭉쭉 뻗은 우리 소나무, 우리 초가 속 고즈넉한 우리 선비의 모습이 들어있다. 겸재와 함께 18세기 한양 화단의 쌍벽을 이룬 현재 심사정, 이 둘의 장점을 결합한 후대의 단원·혜원의 그림에 이르면 문화의 절정을 실감할 수 있다. 특히 간송이 여러 해 공들인 끝에 36년 일본서 비싼 값을 치르고 되찾아온 ‘혜원전신첩(惠園傳神帖·국보 135호)’ 30폭 그림 중 ‘단오풍정(端午風情)’‘주유청강(舟遊淸江)’‘월하정인(月下情人)’‘유곽쟁웅(遊廓爭雄)’ 등 계절별 풍속도 네 폭이 공개된다. 조선시대 여인 초상화의 으뜸으로 꼽히는 ‘미인도’도 만날 수 있다. 그림 뿐 아니라 글씨에서도 안진경체·왕희지체·동국진체 등 시대별 흐름을 볼 수 있다. 석봉 한호(1543 ~1605), 추사 김정희(1786 ~1856), 다산 정약용(1762~1836), 흥선대원군 이하응(1820 ~1898) 뿐 아니라 영조(1694 ~1776)가 83세에 쓴 글, 한글 궁체로 쓴 혜경궁 홍씨(1735 ~1815)의 편지도 나온다.
2년 전 봄 ‘간송 탄신 100주년 기념 특별대전’에는 모처럼 나온 국보급 문화재 100선을 보기 위한 행렬이 줄을 이었다. 이번에도 서둘러야겠다. 26일까지. 무료. 02-762-0442.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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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 시공을 담은 간송미술관 개방되다
성북동 간송미술관이 오랜만에 문을 열었습니다. 매년 5월과 10월에 두 차례 보름정도만 개방되는 간송미술관이 올 가을을 맞이해 10월 17일(일)부터 31일(일)까지 ‘화훼영모대전(花卉翎毛大展)’을 열고 있습니다.
매년 주제를 정해 국보급 작품이 공개되는 전시회는 올 가을엔 꽃(花)과 풀(卉), 새(翎), 짐승(毛)을 주제로 각 시대를 대표하는 동물과 식물 그림 100여 점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고려 공민왕(1310~1374) <이양도>, 겸재 정선(1676~1759) <추일한묘>, 단원 김홍도(1745~?) <황묘농접>, 공재 윤두서(1668~1715) <군마>, 오원 장승업(1843~1897) <초원지록>등 각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이 600년이라는 시공을 뛰어넘어 공개되고 있습니다.
올 가을 개방 시즌 첫 날인 17일 간송미술관은 휴일을 맞이해 내방객들로 붐볐습니다. 1936년 건축된 미술관(保華閣) 건물 1층과 2층 전시공간은 줄을 서서 관람차례를 기다리는 줄이 길게 형성되기도 했습니다. 전체적인 전시관 규모는 아담한 편입니다. 반면 이 작은 공간에 담겨진 문화재들은 대부분 국보급이나 보물로 그 질적인 면에선 국내 최고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 고미술의 진수를 맛볼 수 있던 전시관은 꽃과 새, 고양이와 나비, 쥐, 소나 말 등의 그림이 특히 아이들을 대동한 가족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자연풍경 속에 담긴 생명체를 세세한 붓 필치로 담아 낸 그림들이 수 백년 세월을 넘어선 현대에도 공감을 형성하는 것은 변함없는 자연의 이치나 그 모습을 그렸기 때문일 겁니다.
간송미술관은 한국 최초의 사립 미술관입니다. 일제시대 당시 우리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간송 전형필선생(1906~1962)이 평생을 거쳐 수집한 우리나라 전적, 서화, 도자기, 불상 등의 미술품과 국학 자료들을 1936년에 세운 보화각(현재의 미술관)에 보관해 왔던 곳입니다.
해방과 6.25전쟁을 거치며 보관만 해오던 미술품과 자료들은 후손들에 의해 1965년 가을부터 한국 고미술품 및 전적 정리작업을 시작으로 세상에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현재 국보 제 70호인 <훈민정음> 원본을 비롯해 수 많은 국보급 문화재와 보물급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1년에 단 두 차례. 5월과 10월에 각 보름정도만 일반인들에게 공개되는 간송미술관. 간송미술관에 보관된 미술품을 빼놓고는 한국 고미술을 논할 수 없고, 간송미술관에 보관된 미술품만으로도 한국 고미술을 논할 수 있다는 위상과 가치로 잘 알려진 간송미술관은 '유물의 전시보다는 한국 고미술품 등을 연구'하는 학술적인 연구공간으로 더 알려져 있습니다.
올 가을엔 오랜만에 개방되는 간송미술관 ‘화훼영모대전(花卉翎毛大展)’ 전시회에서 고려와 조선을 아우르는 명화가들의 작품을 만나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역 6번 출구로 나와 마을버스를 이용하는 방법(도보로는 약 20분)과 혜화동 로터리에서 서울과학고와 경신고를 지나 서울성곽이 보이는 성북동 삼거리에서 성북초등학교 입구로 올라가면 미술관을 찾을 수 있습니다.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 여는 날, 은둔하던 간송의 문도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