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아시안컵이 열렸다. 결승전 후반 45분이 지난 시점, 1대 0으로 호주가 앞섰다. 호주 팬들은 일어나 자축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는 건가’ 하고 단념할 때쯤 기적처럼 손흥민 선수가 한 골을 넣었다.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다 이긴 걸로 생각한 호주팀과 팬들은 허탈해 했다. 벼랑 끝에서 살아난 한국팀은 경기에서 이긴 것처럼 기뻐했다. 경기 분위기는 반전 됐다. 아쉽게도 우승하지는 못했지만 2018년 러시아 월드컵에 대한 희망적인 기대를 안겨줬다.
경기(競技)는 심리(心理)다. 선수들의 심리는 행동으로 나타나고 경기 분위기를 좌우한다.
경기(景氣) 역시 심리(心理)다. ‘먹고 살기 힘들다’ , ‘요즘 경기가 안 좋잖아’ 주위에서 자주 듣는 말이다. 구체적인 수치는 얘기하지 않아도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소비자들의 심리와 분위기는 이미 ‘불경기’다.
지난 1월 28일 정보분석기업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작년 4분기 60개 나라 3만명 이상의 온라인패널을 대상으로 소비심리·경제 전망·지출의향 등을 조사한 결과 한국의 소비자 신뢰지수는 48로 59위에 그쳤다. 금융위기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탈리아가 45로 60위를 차지했다. 소비자신뢰지수가 기준 100을 넘으면 경제 상황에 대한 소비자의 낙관적 견해가, 반대로 100을 밑돌면 비관론이 더 우세하다는 뜻이다.
응답자의 87%는 현재 한국경제가 불황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소비의 바로미터인 향후 1년간 일자리 전망에 대해서도 ‘나쁘거나 좋지 않을 것’ 이라고 예상한 응답자 역시 87%에 달했다. 응답자의 71%는 “생활비 절감을 위해 지출 방식을 바꾸었다”고 밝혔는데, 이를 위해 외식비 축소(58%), 의류 구입 자제(53%), 저렴한 식료품 브랜드 구입(47%), 가스·전기 절감(39%), 생활용품 교체연기(28%) 등을 실천하고 있었다.
소비심리가 꽁꽁 얼었다. 심리적으로 불경기가 확실하다. 이런 소비심리 위축이 현상으로도 나타났는지 보자.
외환위기 직전인 1993~1997년에는 국민총소득(GNI)증가율과 민간소비 증가율이 각각 연평균 7.1%, 7.6%로 소득증가율보다 소비증가율이 더 높았다.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2000~2007년의 8년 동안에도 민간소비 증가율은 연평균 4.7%로 GNI증가율 4.5%을 약간 웃돌았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10~2013년을 보면 GNI증가율이 연평균 3.8%인 반면 민간소비 증가율은 2.8%로 역전됐다. 민간소비 증가율이 국민총소득(GNI) 증가율을 크게 밑돌면서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2011년부터 4년 연속 2~3%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민간소비’다. 2014년 기준으로 51%였다. 때문에 민간소비가 줄어들면 GDP성장률도 크게 줄어든다.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경제성장 동력인 민간소비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청년실업률이 15년 내 최대인 9.0%에 달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65년 이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의 31.4%가 퇴직 후 수입이 없어 기대에 못 미치는 생활을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청년층과 노년층에서 소비 활성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들을 부양해야 하는 중년층 역시 소비에 여력이 없다. 전세는 오르고 세금은 늘어나고 저금리라 금융소득도 줄었다. 퇴직 후에 마땅한 수익원도 없다. 미래가 불안하니 지금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한다. 그러니 불경기가 될 수밖에 없다.
경기를 살리려면 소비심리를 돌려야 한다. 안정적인 미래가 보장된다면 지갑을 닿을 이유가 없다. 경기회복을 위해 현 정부가 복지정책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