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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생경 개작동화>
원숭이 왕의 지혜
박 정 숙
“대왕마마, 강가에 쳐놓은 그물에 이런 열매가 걸려 있었습니다.”
옛날 범여왕이 바라나시에서 나라를 다스리던 어느 날, 강가에 천막을 쳐놓고 목욕을 하며 즐기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갑자기 한 어부가 달려오며 커다란 열매 하나를 내보였습니다.
“생전 처음 보는 열매라, 하도 신기해서 갖고 왔습니다.”
“그래에? 아니 물병처럼 생긴 이런 큰 열매가 있다니? 이게 무슨 나무 열매냐?”
왕도 처음 보는 열매라 이리저리 살펴보며 어부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저희도 이 바라나시에서 처음 보는 열매라 잘 모르겠습니다….”
어부는 그저 황송하다는 듯이 고개만 수그린 채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럼 이 열매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단 말이냐?”
왕이 신하들을 둘러보며 큰 소리로 다시 물었습니다.
“대왕님, 그것은 저…여기의 산림을 잘 보살피는 산림관이 알 것입니다.”
“그럼 빨리 불러오너라!”
왕의 호령에 쏜살같이 달려온 산림관은 어부가 가져온 열매를 조심스럽게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었습니다.
“대왕마마, 이 열매는 암라나무의 열매입니다.”
“암라나무 열매? 그럼 이 열매는 어디서 나느냐?”
암라나무 열매라는 말에 왕의 궁금증은 더해 갔습니다,
“네. 이것은 설산의 항하 가에서 자라는 암라나무에서 열리는 열매입니다.”
시원스레 대답하는 산림관의 말에 왕은 흡족한 듯 얼굴이 환해지는 것이었습니다.
“허어! 이런 열매가 있었다니…그 열매의 맛을 볼 수 있게 할 수 있겠느냐.”
왕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산림관은 칼로 그 열매를 보기 좋게 잘라놓았습니다.
“산림관부터 하나 먹어 보거라.”
왕의 명령에 산림관이 조심스럽게 열매 조각 하나를 입에 넣었습니다. 왕은 산림관이 열매를 다 먹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나도 하나 맛을 봐야겠구나.”
산림관이 다 먹는 것을 본 왕이 그제야 안심하고 조각낸 열매 하나를 먹어보았습니다.
‘아니? 이런 맛있는 열매가 있다니? 내가 왜 여태 몰랐을까?’
왕은 입에서 사르르 녹는 듯한 맛이 온몸으로 스며드는 듯해 깜짝 놀랐습니다. 왕은 그 열매를 신기한 듯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기까지 했습니다.
“자, 대신들도 하나씩 맛을 보시오. 너희들도….”
왕은 그 자리에 있던 대신과 궁녀들을 바라보며 그 열매의 맛을 보게 하였습니다.
“이 열매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 또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왔는지 아는 대로 말을 해보거라.”
왕은 이렇게 맛있는 열매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안 것이 신기한 듯 산림관을 똑바로 바라보았습니다.
“네. 이 열매가 자라는 곳은 이 바라나시에서 멀리 떨어진 항하 가에 자라고 있는 나무입니다….”
산림관은 잠시 말을 머뭇거리었습니다.
“그래에? 그렇게 먼 곳에서 자라는 열매가 어떻게 이곳에…어서 말을 해보거라, 어찌 된 일인지…”
“네. 그곳이 설산 지방인데…많은 원숭이들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원숭이들이? 얼마나 많은 원숭이가 살고 있기에 그러느냐?”
“제가 들은 바로는 8만 마리의 원숭이가 살고 있다고 합니다.”
“허어, 8만 마리나….”
8만 마리의 원숭이가 살고 있다는 말에 왕도 놀란 듯했습니다.
“그래서.”
“거기에 있는 암라나무가 얼마나 큰지 우거진 가지들이 항하 가를 짙은 그늘이 되게 만들고, 잎도 아주 풍부해서 마치 산고개처럼 높이 솟은 것처럼 보인다고 합니다.”
산림관은 자기가 알고 있는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는 듯 열심이었습니다.
“이 원숭이들이 그곳에서 이 열매를 따먹으며 살고 있습니다. 지금 보신 것처럼 향도 좋고 맛도 좋아 원숭이들이 좋아서 그곳을 떠날 줄을 모른답니다.”
산림관은 조심스레 말을 천천히 이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 원숭이 중에 키도 크고 덩치가 큰 힘이 아주 센 보살이라고 하는 원숭이의 왕이 있다고 합니다.”
“원숭이의 왕이라…?”
산림관의 말을 귀담아 듣던 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그 많은 원숭이들이 열매를 먹다보면 한쪽 가지 열매는 땅에 떨어지기도 하고, 다른 쪽 가지 열매는 물에 떨어지기도 하니까 원숭이 왕의 생각이 달랐던 모양입니다.”
산림관은 자신이 알고 있는 내용을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가는 듯했습니다.
“다른 원숭이들과 이 열매를 먹는 건 좋은 데, 언젠가는 이 나무 열매가 물에 떨어지기 때문에…어쩌면 자기네들에게 큰 두려움이 닥쳐올 지도 모른다는 생각인지…꽃이 피고 열매가 조금 커졌을 때 물 위에 있는 가지 열매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먹거나 떨어트려 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암라나무 열매의 맛이 너무 좋아 혹해 있던 왕은 산림관의 말에 궁금증이 더해 갔습니다.
“아마, 이 열매가 그때 떨어진 게 여기까지 흘러온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럼, 설산 지방의 강가에 이 나무 열매가 많이 있다는 말이렷다.”
“네. 그러한 줄 압니다.”
왕은 산림관의 말에 더 이상 기다릴 것도 없다는 듯이 소리쳤습니다.
“여봐라! 어서 떼배를 바로 준비해라. 이 열매가 있는 항하 가로 갈 것이다.”
왕의 명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신하들은 떼배를 만들기에 바빴습니다. 하나 둘 갖고 온 굵은 통나무들을 떨어지지 않게 묶어나갔습니다.
“떼배를 튼튼하게 잘 만들어야 한다! 갈 길이 멀다.”
신하들은 떼배를 튼튼하고 커다랗게 만들기 위해 굵은 나무들을 꼭꼭 붙들어 맸습니다. 길게 이어진 떼배들은 보기만 해도 웅장해 보였습니다.
“음! 이만하면 됐다. 산림관이 앞장서 그곳으로 가자!”
왕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떼배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항하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떼배는 잔잔한 물살에 조금의 움직임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얼마나 가면 되느냐?”
항하를 한참 거슬러 올라가던 왕이 산림관에게 물었습니다.
“출발한지가 얼마 되지 않아…아직 가늠하기가…어렵습니다.”
산림관도 가보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떼배로 얼마나 걸릴지 잘 모르고 있어 대답에 힘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항하 강을 거슬러 올라간 지 며칠이 걸렸는지도 정확히 모를 때였습니다.
“대왕마마 이제 다 왔습니다. 저게 그 암라나무입니다.”
산림관이 가리키는 곳에 강물 위로 가지를 늘어트린 커다란 나무들이 무리지어 있었습니다. 강가로 길게 이어진 나무들은 숲을 이루듯 했습니다.
“음, 이런 곳이 있었다니…그럼 저 위에 자리를 잡도록 해라.”
왕은 암라나무가 있는 평편한 곳에 자리를 잡게 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신하들이 차려놓은 평상 위에 누워 암라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한낮엔 원숭이들이 열매를 먹으러 오지 않아서인지 조용했습니다.
날이 어둑어둑해지자, 평상 주위를 환하게 밝힌 불빛에도 암라나무 위에 보이는 것은 없었습니다. 밤이 깊어지자, 신하들도 잠이 들어 바람결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만 들렸습니다.
그러자, 원숭이들이 하나 둘씩 암라나무 가지 위를 뛰어다니면서 열매를 따먹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원숭이들이 가지에서 가지 위로 뛰어다니는 소리도 점차 크게 들렸습니다. 그 바람에 번쩍 눈을 뜬 왕은 급히 신하를 불렀습니다.
“여봐라! 저 열매를 따먹는 원숭이들이 하나도 달아나지 못하게 하거라.”
왕은 여기저기서 열매를 따먹는 원숭이들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어서 활꾼들을 불러 저 원숭이들을 모두 쏘아 죽여라. 내가 내일 저 열매와 원숭이 고기를 함께 먹겠다.”
왕의 호령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활꾼들이 나무를 둘러싼 채 원숭이에게 활을 겨누었습니다. 암라열매를 먹다가 그 광경을 본 원숭이들이 겁에 질려 벌벌 떨기까지 하였습니다.
“아, 안 돼…보살인 우리 왕에게 빨리 알려야 돼….”
원숭이들은 서둘러 원숭이 왕에게 달려갔습니다.
“저기 왕의 명령을 받은 활꾼들이 우릴 쏴 죽이려고 활을 겨누고 있어요. 우린 어쩌면 좋아요?”
원숭이들은 말을 하면서도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희들을 구해 줄 테니까, 아무 걱정도 마라.”
원숭이 왕은 나무 아래를 바라보며, 원숭이들을 안심시켰습니다. 그리고는 쭉 곧은 높은 나무 가지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래. 저기가 적당하겠구나.’
원숭이 왕은 항하 쪽으로 뻗은 가지를 바라보며 그곳으로 껑충 날아올랐습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이곳저곳을 살피던 원숭이 왕은 활꾼들이 쏠 백 개의 화살이 닿지 않을만한 항하 강가의 숲으로 뛰어 내렸습니다.
‘지금 여기는 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먼 거리이니, 원숭이들한텐 괜찮을 거야….’
원숭이 왕은 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대나무 하나를 밑동에서 끊어 잘 다듬었습니다. 그리고는 그것을 몇 겹으로 나무에 매달아 공중 높이 뻗쳐놓았습니다.
‘이 정도면 원숭이들이 이리로 피할 수 있겠지.’
원숭이 왕은 원숭이들이 피할 수 있도록 양쪽 장소의 거리를 재보았습니다.
‘됐어.’
원숭이 왕은 대나무의 한쪽 끝을 항하 가의 나무에 붙들어 매었습니다. 다른 한쪽은 자기 허리에 매었습니다. 그리고는 쏜살같이 화살 백 개의 거리에 있는 장소로 훌쩍 뛰어넘으려 했습니다.
‘아차!’
원숭이 왕은 한쪽 허리를 매어놓은 것을 미처 생각지 못해 원숭이들이 있는 나무까지 손이 닿지를 않았습니다. 원숭이 왕은 할 수 없이 두 손을 힘껏 내밀어 암라나무 가지를 간신히 잡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 어서 내 허리를 밟고 이 대나무를 조심해 건너가라!”
원숭이 왕은 두 손에 힘을 잔뜩 주고 원숭이들이 화살을 피해 갈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암라나무 위에서 열매를 먹던 원숭이들은 허둥지둥 원숭이 왕의 등을 밟고 무사히 그 자리를 모두 피할 수 있었습니다.
“으윽!”
원숭이 왕은 원숭이들이 떼를 지어 등을 밟고 서둘러 넘어갈 때마다 그 충격에 심장이 찢어지는 듯한 큰 고통마저 느꼈습니다.
그 광경을 모두 보고 있던 왕은 곰곰이 생각을 하였습니다.
‘저 원숭이 왕은 동물이면서도 제 생명은 돌아보지도 않고, 그 무리들을 안전하게 구해주다니….’
왕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무리를 구해주는 원숭이 왕의 모습에 탄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 저 원숭이의 왕을 죽이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내가 돌봐주어야겠다.’
왕은 날이 밝자, 원숭이 왕을 나무 위에서 조심스레 끌어내렸습니다. 그리고는 몇 번이고 깨끗이 목욕을 시키고 가사를 입혀 주는 등 정성껏 보살펴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죽 평상 위에 원숭이 왕을 눕게 하고는 자신은 그보다 낮은 자리에 앉아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너는 너 자신을 다리로 만들어
저 이들을 안전히 건너게 했다.
너와 저이들 사이에는
어떤 일이 있었는가, 큰 원숭이여.”
원숭이 왕은 이 말을 듣고 조용히 대답을 했습니다.
“나는 저이들의 임금이요,
또 나는 짐승들의 목사(牧師)이네.
조어자(調御師)여, 당신을 두려워해
그들은 슬퍼하고 괴로워했네.”
원숭이 왕은 잠시 숨을 돌리고는 계속 말을 이어갔습니다. 암라나무 열매를 가지러 온 왕이 신하들을 시켜 자기네 원숭이들을 활로 쏴 죽이려고 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구하기 위하여 원숭이 왕 스스로가 나무와 나무를 잇는 다리가 되게 하여 자신의 등을 밟고 지나갈 때의 고통도 들려주었습니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왕이 쏘는 화살이 닿지 않는 곳으로 원숭이들이 모두 피할 수 있었다며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들려주었습니다.
왕은 자신이 한 일을 하나하나 들려주는 원숭이 왕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원숭이 왕은 왕의 얼굴을 바라보며 차분히 말을 이어갔습니다.
“칡넝쿨의 질곡도 괴롭히지 못했고,
또 죽음도 나를 괴롭히지 못했네.
그리하여 내가 다스리는 저 백성들에게
그런 행복이 찾아온 것이니라.
이것은 대왕이여, 당신을 위한
참 이치를 가르친 비유이거니
나라와 군사
도시와 촌
그 모두에 행복 오기 원하여라.
당신의 참 통치 얻기 위하여.”
원숭이 왕은 이렇게 왕을 훈계한 뒤에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여봐라! 이 원숭이의 왕을 사람의 왕처럼 장례를 치르도록 해라.”
왕은 원숭이 왕이 숨을 거두자, 대신들에게 정중히 장례를 치러주도록 지시를 하였습니다.
“너희들도 붉은 옷을 입고 머리를 풀어 흩뜨린 채 횃불을 들어라. 그리고 이 원숭이 왕을 둘러싸고 화장장까지 가거라.”
왕은 궁녀들에게까지도 원숭이 왕의 장례를 잘 치를 수 있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왕의 명령을 받은 대신들은 백 대의 수레가 담을 수 있는 섶을 화장장에 쌓아놓고, 왕이 죽었을 때의 의식과 같이 원숭이 왕의 장례를 치렀습니다.
“여기 원숭이 왕의 두개골입니다.”
대신들은 화장을 끝낸 원숭이 왕의 두개골을 왕의 앞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그 화장장에 사당을 세우고 등불을 밝히도록 해라.”
왕은 원숭이 왕의 사당에 향을 피우고 꽃을 올려놓았습니다. 이와 같이 정성껏 장례를 치러준 왕은 황금을 칠한 원숭이 왕의 두개골을 창끝에 꽂아 바라나시 성문 안에 오랫동안 세워놓았습니다. 그곳에서 왕은 원숭이 왕의 두개골을 다시 사리로 받들어 사당에 잘 모셔놓고 일생동안 향과 꽃을 올리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왕은 그 후, 원숭이 왕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백성들을 아끼고 사랑하며 슬기롭게 나라를 다스려 천상으로 갈 수 있는 몸이 되었습니다.
이때의 원숭이 왕이 부처님이셨습니다.
(제 407화 큰 원숭이의 전생 이야기)
<생각 키우기>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습니다. 또한 배우고자 하는 마음에도 끝이 없습니다. 나만을 아끼고 나만을 생각하는 혼자만의 마음이 있었다고 해도, 참된 삶의 모습을 생활을 통해 배워나갈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서로가 사랑하고 감싸주는 마음들이 하나로 어우러져 있으면 누구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으니까요. 이 원숭이 왕의 지혜로움이 자신을 희생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참마음을 오롯이 전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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