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코모 시에서 베로나 시로 이동하고 있다.
베로나시 까지 201km 다.
규정속도로 이동한다고 해도 2시간 20분이 소요될 것 같다.
밀라노 시 방향으로 직진하다가 A4번 고속도로로 진입하고 있다.
왼쪽은 알프스 산맥이 자리 하고 있고, 오른 쪽은 평야지대가 넓게 펼쳐져 있다.
하늘은 청명 하고 전형 적인 가을 날씨가 전개되고 있다.
베로나시 아디제 강
베로나 시를 걸으며
정오 햇살이 설익은 과일에게 생기를 공급하고 있어 삼라만상의 섭리에 감탄하고 있다
베로나시 까지 아직도 50여분이 남아있다.
베로나 시는 2번째 방문이다.
첫번째 방문 때 감명깊게 보았던 아레나 원형극장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되고 있다.
베로나시는 수 천년의 역사를 지닌 유서깊은 도시로 밀라노와 베네치아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성자 마테오의 집
베로나시는 인구 20만 안팎의 도시다.
하지만 유럽 에서 세번째로 큰 아레나 원형극장과 세계문화유산이 산적해있다.
사랑을 맺어준다는 줄리엣의 집이 청춘 연인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모으고 있다.
아디제 강 다리를 걸어 베로나 시내로 접근해가고 있다.
첫번째 방문시에도 아디제 강 위의 다리를 걸었다.
그래서 감명이 더 새롭다.
줄리엣 고택으로 이동
역사의 자취
벽화
주변 건물이 낯익고 익숙해서 5년 전의 기억을 되새기고 있다.
아디제 강이 도도하게 흐르고 있다.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 없다”라는 말이 새삼 가슴에 닿는다.
다리위를 걷고 있다.
좌우를 살펴보아도 예전 모습 그대로다.
로마시대 축조 했다는 성벽을 감상하면서 시청사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다.
화석
Verona Arena(원형극장)가 눈에 띄고 있다.
거대하고 웅장하다.
유럽에서 세번째 규모다.
아레나 원형극장을 모르고서는 이탈리아를 방문했다고 말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유명세를 띄고있는 것이 Verona Arena 다.
따라서 베로나시의 아이콘으로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역사적 자취와 상표
역사 발자취를 찾아서
베로나
2,000년 전에 축조 되었지만 엊그제 건립한 것처럼 보이고 있다.
건축된 시기로 볼 때 로마의 콜로세움보다 40년이나 앞선다.
이곳에서 격투기가 진행되고 맹수와 혈투를 벌이기도 했다.
설립목적은 로마인의 단합이다.
그러나 요행을 바라는 투기도 성행했다.
Verona Arena에서 Arena는 모래라는 뜻이다.
검투사와 맹수가 혈투를 벌인 후 바닥에 붉은 피가 고이기도 했다.
붉은 피는 전쟁과 폭동을 의미한다.
민심의 동요를 유발할 수도 있다.
그래서 재빨리 모래로 덮어야 했다.
이 모래가 Arena 다.
군상들
아레나 시청사와 원형극장을 우회하고 있다.
보면 볼수록 아름답다.
거대한 규모에 놀랍고 인간의 재능과 능력에 찬사를 보내고 싶다.
브라광장 앞으로 이동하고 있다.
광장은 사람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잡담 하는가 하면, 연인들과 키스하는 장면도 목격되고 있다.
Verona Arena(원형극장) 내부는 행사가 진행중에 있었다.
때문에 겉모습만 살펴보고 줄리엣의 집으로 이동하고 있다.
줄리엣의 집으로 이동하기위해서 Via Anfiteatro 거리로 접어들고 있다.
거리는 청춘 연인들과 남·여 노소가 장사진을 치고 있다.
오른 쪽에 있는 천주교성당을 구경하고 Via Anfiteatro 거리를 직진해가고 있다.
Julian Parveke(박물관) 사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줄리엣 집으로 이동하고 있다.
가족무덤
줄리엣 고택으로
gogo~
전방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뒤엉켜있다.
아마도 줄리엣의 집 앞일 것 같다.
아니나다를까 줄리엣의 집 앞 도로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전진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해서 뒤로 물러설수도 없다.
이탈리아 통일영웅
가리발디 돈상 앞에서
줄리엣 고택앞에서
집결하는
군상들
사람들 사이를 해집고 20m 전방까지 이동해 갔다.
그러나 줄리엣의 집으로 이동은 불가능했다.
전사처럼 사람들을 밀치며, 줄리엣 집 앞까지 전진해가고 있다.
줄리엣 집 앞 뜰은 청춘 남·여 들로 가득하다.
줄리엣 동상도 이미 연인들이 점령하고 있다.
줄리엣 집
줄리엣 동상과 발코니
운집한 사람들이 순환되어야 하는데 그럴 기미도 보이지 않고 있다.
줄리엣 동상을 에워싸고 있는 연인들은 점령군처럼 의기양양해하고 있다.
사랑의 메시지를 벽에 붙이는 연인들, 메시지를 남기기위해 사다리를 타고 벽으로 올라가는 청년들, 마치 전쟁터를 방불하게 하고 있다.
동상 옆에서 사랑을 확인해보고 싶은 연인들은 아직도 움직일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동상앞까지 이동은 불가능하다.
줄리엣 동상
줄리엣 집에 부착된
사랑의 메시지
집 사람과 줄리엣 동상 옆에서 사진을 촬영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영국이 낳은 세계적 극작가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는 1564년 4월에 영국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 마을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상업에 종사했다.
근면하고 부지런한 천성때문에 재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사다리를 타는
연인
아버지는 마을의 유지가 되고 읍장도 역임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몰락하고 말았다.
갑작스런 부친의 사망과 경제적 궁핍은 셰익스피어에게 고통을 안겼다.
문법학교를 끝으로 학업마져 포기해야 했다.
셰익스피어는 빈곤탈피를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경제적 몰락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베로나시 아레나(원형극장)
18세 때까지 상황은 혹독했다.
이러한 환경속에서도 8세 연상의 여인과 결혼해 1남 2여를 낳았다.
이후 상황은 알 수 없다.
그가 무엇을 하고있었는지, 또 언제쯤 런던으로 건너가 극단에 합류 했는지 기록이 없기때문이다.
하지만 1590년 대 초기에 이미 배우 겸 극작가로 알려져 있었다.
베로나 시
아레나 앞에서
그로부터 8~9년 후는 성공 가도를 달리기시작했다.
셰익스피어는 시와 희곡을 발표해 불후의 명작을 남기기도 했다.
그중 대표작이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줄리엣”은 “로미오와 줄리엣” 작품에서 주인공이다.
그런데 “줄리엣”이 이탈리아 베로나에서 부활하고 있었다.
산 마리노
티타노호텔
명문 가문인 몬터규 집안과 캐풀렛 집안 사이에 오랫동안 반목이 지속되고 있었다.
몬터규 집안의 후계자인 “로미오”는 친구에게 이끌려 캐풀렛 집안의 무도회에 참석했다.
그때 “줄리엣”을 목격하게되었다.
한눈에 반했다.
“줄리엣”도 자신에게 사랑의 눈길을 보냈다.
“로미오”는 “줄리엣”도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열렬한 사랑을 나눈 뒤 결혼을 약속했다.
이튿날 두 사람은 로런스 신부의 거처에서 비밀리에 결혼식을 올렸다.
그날 오후 “로미오”는 길거리에서 줄리엣의 사촌인 티벌트를 만났다.
티벌트는 로미오에게 결투를 신청했다.
하지만 “로미오”는 거절했다.
가리발디동상
앞에서
친구 머큐시오가 티벌트와 대신 싸우다가 사망했다.
“로미오”는 화가 나 티벌트와 싸워 그를 칼로 찔렀다.
티벌트가 사망한 것이다.
“로미오”는 그 죄로 시에서 추방 선고를 받았다.
“로미오”는 “줄리엣”과 하룻밤을 보낸뒤 유배지로 떠났다.
캐풀렛 부모는 “줄리엣”을 패리스 백작과 결혼 시키기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산 마리노 구시가지
고민에 빠진 “줄리엣”은 로런스 신부를 찾았다.
신부는 “줄리엣”에게 수면제를 주었다.
패리스 백작과 결혼식 전날 밤에 그녀는 신부가 준 수면제를 복용했다.
“줄리엣”은 수면에 빠졌다.
수면제 복용을 알 리 없었던 가족은 “줄리엣”이 사망했다고 생각했다.
산 마리노 성
입구
가족들은 “줄리엣”을 집안의 묘소에 안치했다.
로런스 신부는 “줄리엣”이 깨어나기를 기다렸다가 로미오에게 사람을 보냈다.
그러나 그는 불의의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로미오”는 줄리엣의 상황을 전혀 알 수 없었다.
푸블리코 궁전
나중에야 풍문을 통해 줄리엣의 죽음을 알게 되었다.
“로미오”는 즉각 독약을 소지한 채 “줄리엣”에게 돌아갔다.
묘소에 들어가려던 “로미오”는 패리스 백작의 저지를 받았다.
“로미오”는 패리스 백작을 죽인 후 자신도 줄리엣의 신체 옆에서 독약을 마시고 죽었다.
산 마리노성 등정
수면상태에서 깨어난 “줄리엣”은 죽어 있는 “로미오”를 발견하고 그녀도 칼로 자결하고 말았다.
극중에서 두 사람을 “비운의 연인들”로 소개되고 있다.
‘불운’ 또는 ‘비운’이라는 말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
두 사람은 원수 집안의 딸과 아들 이면서도 그런 줄도 모른 채 사랑에 빠져 버린 것이 가장 큰 불운이라고 할 수 있었다.
로런스 신부의 사자가 예정대로 도착하지 못한 것도 불운이며, 무덤에 도착한 로미오가 줄리엣이 깨어나기도 전에 독약을 마셔 버린 것도 불운이었다.
불운 속에서 두 사람이 끝까지 서로의 사랑을 관철 시키려 한 것은 지고 지순한 감정을 내포하고 있다.
이점이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관중 들로부터 사랑받는 이유다.
산 마리노 성
에르베 광장 서쪽 끝에 소설속 주인공인 “줄리엣”의 집이 있다.
줄리엣의 집이 영국에 있다면 이해가 될 것 같다.
그러나 청춘남녀가 이탈리아 베로나 시 “줄리엣”의 집으로 집결하고 있다.
낭만 적이지 않는가?
로미오와 줄리엣이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법한 아름다운 발코니가 분위기를 더해주고 있다.
사랑의 성취를 기원하는 쪽지가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염원하는 자물쇠도 나무에 매달려있다.
에베르 광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아레나 원형극장이 베로나 시를 상징하는 곳이라면 에베르 광장은 베로나 시의 마돈나로 불릴 만한 곳이다.
로마시대 에베르 광장은 재판이나 집회장소로 사용 되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설시장으로 변해있다.
베로나 시 관람을 마치고 산 마리노로 이동하고 있다.
A14번 도로로 진입해 산 마리노로 질주하고 있다.
산 마리노 까지 144km 다.
규정속도로 이동한다고 해도 1시간 40분이 소요될 것 같다.
A14번 도로는 이탈리아 볼로냐에서 바리까지 연결된 도로다.
우리나라 부산에서 함경북도 온성군 유덕면까지 연결되는 7번 국도와 유사하다.
동해안 해변도로와 마찬가지로 이곳 A14번 도로 주변은 황홀 할만큼 매혹적이다.
그런데 날씨가 점점 흐려지고 있다.
여기에 안개까지 자욱해 시야가 가려지고 있다.
산 마리노는 이탈리아영토 안에 있는 작은 나라다.
공식적인 국가 명칭은 가장 고귀한 공화국산 마리노다.
산 마리노는 외교권을 가지고 있으며, 헌법은 1,600년 경에 제정된 법을 기초로하고 있다.
로마 황제의 박해를 받은 유고지방 달마티아 출신 마리누스가 산 마리노로 피신했다.
그는 여기에서 신앙 공동체를 결성 했다.
이것이 산마리노의 모태다.
버스는 계속 산 마리노를 향해 이동하고 있다.
기온은 낮아지고 여우비가 흩날리고 있다.
가시 거리도 점점 축소되고 가로등만이 버스를 환영한 듯하다.
여기에 안개까지도 짙어지고 있어 마음이 심란하다.
버스는 산 마리노 국경을 넘고 있다.
하지만 검문소도 없다.
이탈리아의 통관 법에 의존 하겠다는 의미다.
도시 분위기도 어두워지고 있다.
가로등도 희미해지고 있다.
고도가 높아지고 있다.
도로의 폭도 좁다.
산 비탈의 도로를 우회해 산 마리노 주차장으로 진입하고 있다.
시간은 오후 9시가 넘어가고 있다.
호텔까지 200m가 남아있다.
남은 거리가 짧다.
그러나 언덕과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캐리어를 끌고 호텔까지 이동해야 하는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걱정은 괜한 것이었다.
호텔에서 캐리어를 호텔까지 운반해주었기때문이다.
호텔은 “TITANO”로 우리나라 모텔 급과 비슷했다.
그것도 감지덕지하다.
산 마리노의 생활 수준이 우리나라 2,000년대 수준 이었기때문이다.
식당으로 이동하고 있다.
식사는 3코스로 야채와 돼지고기, 아이스크림 정도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침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창문을 열고있다.
밖은 비가 내리고 있다.
밤새 지속될 것 같다.
내일 여행일정이 걱정이다.
그렇다고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모든 것이 신의 영역이기때문이다.
내일의 일은 내일로 미뤘다.
생각을 바꾸니 마음이 편했다.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에 단잠에서 일어났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어제 밤부터 대지를 적시기시작한 불청객은 소리없이 사라지고 안개가 시야를 가리고 있다.
지척에 위치한 산도 불투명하다.
건물도 희미하다.
잠에서 깬김에 호텔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피아자 델라 리베르 타에 위치한 광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곳은 푸블리코 궁전(공화국궁전)이 있는 곳이다.
외관은 아름답고 중세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푸블리코 궁전을 흩어보고 호텔로 돌아왔다.
아침식사를 위해서다.
조식 후 다시 푸블리코 궁전(공화국궁전)으로 이동하고 있다.
오묘하고 신비롭기 까지 한 산 마리노의 정체성을 확인해보기위해서다.
푸블리코 궁전(공화국궁전) 앞에 도착했다.
건강한 체구의 동상이 서있다.
주인공은 이탈리아 통일의 영웅 가리발디 장군이다.
가리발디 장군은 이탈리아 통일의 영웅이다.
19세기 중반 이탈리아 통일전투에서 패배해 산 마리노로 피신했다.
주민들은 가리발디 장군을 환대 하며 은신시켰다.
가리발디 장군이 산 마리노와 인연을 맺게된 동기다.
이후 이탈리아는 통일을 달성했다.
산 마리노가 이탈리아에 편입되지 않고 독립국가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다.
산 마리노 정부는 가리발디 장군을 기념하기위해 리베르타 광장에 동상을 건립하고 기념 우표를 발행했다.
산 능선에 구축된 성벽을 따라 구시가지로 이동하고 있다.
성벽을 따라 올라갈수록 지세가 험해지고 가파라지고 있다.
구시가지는 귀족과 평민들이 거주 했던 곳이다.
그곳에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안개가 자욱한 구시가지 고택은 어느 산사를 연상시키고 있다.
산 마리노 대성당으로 이동하고 있다.
San Marino 대성당은 San Marino를 상징하는 성당이다.
Piazzale Domus Plebis에 위치하고 있으며 10 센트짜리 동전에도 산 마리노 대 성당이 표기돼 있다.
대성당의 뒤쪽에 콘서트 홀과 행사에 사용 되는 Orti Dell'Arciprete가 있다.
반원형을 이루는 16 개의 코린트 식 기둥이 3개의 둥근 지붕으로 떠받들고 있다.
제단 아래는 1586 년 3 월 3 일에 발견 된 성자 유적의 일부가 보존돼 있다.
성인의 두개골도 성당 제단 오른쪽에 보존돼 있다.
이탈리아에 세 개의 나라가 있다.
이탈리아와 바티칸 시국, 산 마리노가 그것이다.
산 마리노는 유럽에서 세번째로 작은 나라다.
작은 나라인 만큼 문화유산이 얼마나 있을까 하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성벽 부터가 위압적 이어서 유물로서 역사적 가치가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