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방서예자료[931]竹泉金鎭圭(죽천김진규)5언절구夜景(야경)
원문=竹泉集卷之三 / 詩
夜景(야경)
竹泉金鎭圭(죽천김진규)
輕雲華月吐。芳樹澹烟沉。
夜久孤村靜。淸泉響竹林。
輕雲華月吐 (경운화월토)
달을 토해내는 가벼운 구름
芳樹澹烟沈 (방수담연침)
꽃다운 나무에 잠기는 맑은 연기.
夜久孤村靜 (야구고촌정)
밤이 깊어 고요한 외딴 마을
淸泉響竹林 (청천향죽림)
맑은 샘물이 대숲을 울리고
원문이미지=竹泉集卷之三 / 詩
김진규
김진규의 글씨, 〈근묵〉에서, 성균관대학교 도서관 소장
노론의 대표적 정객으로 송시열(宋時烈)의 입장을 고수했다.
본관은 광산. 자는 달보(達甫), 호는 죽천(竹泉).
아버지는 광성부원군(光城府院君) 만기이고,
어머니는 한유량(韓有良)의 딸이다.
누이동생이 숙종비 인경왕후(仁敬王后)이다.
송시열의 문인으로 1682년(숙종 8) 진사시에,
1686년에는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좌랑 등을 지냈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하자 거제도로 유배되었다가,
1694년 갑술환국으로 남인이 제거당하자 지평에 기용되었다.
노론과 소론의 대립이 깊어지면서, 소론 남구만(南九萬)으로부터 척신으로서
월권행위가 많다는 탄핵을 받고 삭직되었다. 1699년에는 동부승지로서
송시열과 입장을 달리한 윤증(尹拯)을 공박하여 소론과 대립했다.
대사성과 이조참판을 거쳐 1706년 병조참판에 있을 때 소론이 집권하자
2년간 귀양살이를 했다. 그뒤 대제학·공조판서·좌참찬을 지냈다.
문장에 뛰어나 반교문·교서·서계 작성을 많이 했으며,
전서·예서 및 산수화·인물화에도 능했다.
문집으로 〈죽천집〉, 편저로 〈여문집성 儷文集成〉이 있다.
거제 반곡서원(盤谷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