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암사동 빗살무늬토기 / 유인채(우수상, 시)
강 언덕 야산에 우거진 졸참나무 숲은
이 항아리에 모두 담겼다
그때 누군가의 뒤주였을 토기
도토리와 물고기 뼈 화석이 보여주는 그들의 밥상이 소박하다
갈판에 도토리껍질을 벗길 동안
산으로 강으로 내달린 돌창은 하루치의 끼니를 겨냥했을 것
움집에 걸어들어 온 재티 묻은 저녁이
화덕에서 거뭇거뭇 익어갈 동안
목젖에 갇힌 말도 함께 부풀었을 것이다
항아리 아가리에 빗살무늬로 찍힌 육천 년 전의 말
밋밋한 거죽에 나뭇가지와 대나무와 생선가시가 스쳐갔다
그릇에 옷을 입힌 투박한 손
그때부터 우리는 무늬를 숭배했던 것일까
긁히고 파이며 흙은 제 몸의 상처를 무늬로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내가 받아들인 상처는 어떤 무늬로 남았을까
나는 가끔 마음의 무늬가 딱딱해서 미간을 찡그린다
연신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는 양미간의 표정
조각조각 이어진 재생 토기는 순하고 고운 무늬를 지녔다
이 투박한 마음이
해안가 구릉 깊이 묻혔다가 불쑥 드러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근원적인 맨몸의 언어를 읽기 위해
이 질그릇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심사평 : 우수작 시<암사동 빗살무늬 토기>는
세련된 언어구사,
상황은유의 적절성 등,
시적 완성도가 높다.
------------------------------------------------------------------------
움집 / 이명우(대상, 시)
암사동 유적지에 들어서자마자 개울물이 돌의 지층을 긁어내리면서 기어이 햇빛을 들어 올리고 달빛을 게워놓고 공기도 꺼내놓는다
제 몸을 쪼개고 쪼갠 돌은 판화처럼 물에 박히고 물은 모래알을 덮기도 하고 넘기기도 한다 얽히고설킨 그 물의 문장을 나는 읽을 수가 없다
개구리들의 울음소리에 부락은 먹구름이 내려앉는다 바람을 타고 내려오는 구름 관에 짐승들도 꼬리를 감춘다 빗줄기는 땅에 못을 박아놓고 며칠 동안 삽질을 하면서 산 채로 그들을 묻는다
안개가 움집들을 돌아다니자 고요는 부풀어 올라 무덤은 능선을 잇고 이파리들은 지붕을 덮고 공기는 집요하게 부락을 찾는다
한강이 범람하자 죽었던 마실 귀퉁이가 조금씩 조금씩 열리고 사람들은 부락을 집요하게 깨낸다
움집은 죽었어도 집터는 다친 곳이 없다 검게 타들어갔던 돌들은 불을 움켜쥐고 있고 옹기에 담긴 도토리 몇 알도 쪼그려든 주름살을 풀어놓지 않는다
사람들이 기둥을 세우자 죽었던 바람이 지붕에 걸린다
햇빛이 빗줄기의 창살을 걷어내도 병든 사냥도구들을 바람이 습기를 도려내도 공기가 옆집의 소문을 펴다 날라도 허공에 걸린 주인은 끝끝내 돌아오지 않는다
햇빛이 움집을 지키고 있다
허공에 떠돌던 원자인 빗줄기는 개울물을 따라 돌고 돌아다니면서 바다에 다다른다 원어인 파도는 구억 구천구백 년 동안 말을 내뱉고 있다
*심사평 : 대상에 선정된 시<움집>은
주제를 향한 집중성과
인간의 역사와 시간에 대한 사유에 깊이가 있다.
-------------------------------------------------------------------------------
터 전 / 박사무엘 (대상, 소설)
1. 집터가 되는 땅.
2. 자리를 잡은 곳.
3. 살림의 근거지가 되는 곳
4. 일의 토대.
움바는 가만히 자신의 발가락을 간질이는 물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며칠이나 하늘에서는 물이 쏟아졌고, 이제 한 없이 불어나 탁해진 물길은 움바의 소중한 터전을 대부분 삼켜버렸다.
몸의 움직임에 따라 찰팍이는 물소리를 들으며, 움바는 불어나버린 물길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물의 차가운 기운이 허리까지 느껴지자, 움바는 몸이 굳어버린 것 마냥 가만히 서서 물길의 기운을 따르고 있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자, 이질적인 움바의 몸을 밀어내려던 물길은 이내 모든 것을 포기한 듯 움바의 몸을 타고 흐르기 시작했다. 그건 흐르는 물이 바위를 거스르지 않는 것과도 같은 이치였다.
물 한가운데 멈춰선 움바는 이내 자신의 숨소리를 천천히 죽여 갔다. 물길이 움바의 몸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순간 물길을 타고 온 작은 물고기들은 그의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움바는 이미 수 없이 많은 경험을 통해 그 사실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움바가 자신의 다리 사이를 스쳐지나가는 물고기들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윽고 물고기들의 움직임이 한 곳으로 쏠리자, 굳어 있던 움바의 몸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움바는 물에 들어오기 전부터 등 뒤로 들쳐 맨 어망을 하늘 높이 던졌다. 간만에 맑게 갠 하늘 아래에 촘촘한 어망이 활짝 펼쳐진 순간, 어망 끝에 달린 작은 돌들은 물 속, 아주 깊은 곳까지 어망을 끌어 당겼다.
물길의 바닥까지 가라앉은 어망을 천천히 걷어가며, 움바는 어망 속에 갇힌 물고기들의 수를 헤아려갔다. 손끝에 생각보다 많은 움직임이 느껴지자, 움바의 입가에는 자연스러운 미소가 감돌았다. 어망을 조금씩 조여 간 움바는 단번에 물고기들을 물 위로 건져 올렸다.
어망 안에 가득한 고기들을 본 움바는 기쁜 듯 소리를 질렀다. 작살질과 어망을 사용하는 실력만큼은 부족내의 젊은 남자들도 움바를 따라오지 못했지만, 그래도 오늘만큼 한 번에 많은 물고기를 잡은 일은 드믄 일이었다.
물 밖으로 나온 움바는 자신이 먹을 수 있는 양의 물고기에서 조금 더 많은 수를 남겨놓고 나머지 물고기들을 물속에 돌려보냈다. 움바는 그 날 처음으로 하늘에서 지겹게 쏟아 붓는 물이 꼭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움막 안으로 돌아온 움바는 화덕 주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화덕의 따뜻한 기운이 움바의 젖은 몸을 말려주자, 추위에 반응하던 몸의 떨림도 천천히 멎어갔다.
움바는 이른 아침 숲에서 모아 온 도토리와 방금 잡은 물고기를 화덕에 익혀 허기를 채웠다. 물에 잠깐이라도 들어갔다 나오는 날이면 이상하게도 허기가 심해졌다.
“움바, 움바.”
어느 정도 배가 차오르자 움바는 스스로의 이름을 불러봤다. 한때는 부족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부르던 소리였지만, 이제는 더 이상 누구도 그를 움바라 부르지 않았다. 움바는 하루에도 몇 번씩 허공을 바라보며 자신의 이름을 불렀는데, 이는 스스로의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기 위함이기도 했지만, 지독한 외로움을 버텨나가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기도 했다.
한동안 하늘에서 물이 쏟아지고, 움바의 부족이 자리 잡은 터전 앞의 물길은 점점 부락의 움집들을 침범해왔다. 결국 부족의 사람들이 어렵게 저장해둔 곡식과 기르던 작은 동물들마저 불어난 물길에 떠내려갔고, 몇몇 부족민들은 다른 터전을 찾아 떠나자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은 멈출 줄 몰랐고, 모두가 함께 일구어놓은 곡식들까지 물에 잠겨버렸다. 결국 그 잠겨버린 곡식은 부족의 구성원 모두가 터전을 떠나기로 결정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움바만큼은 이곳을 떠날 수가 없었다. 움바의 형제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자신들과 함께 다른 터전을 찾아 떠나자며 몇 번이고 움바를 설득했지만, 움바는 늘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움바에게는 이곳을 떠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결국 끝까지 움바의 고집을 꺾지 못한 그들은 움바를 남겨둔 채 부락을 떠나버렸고, 그런 연유로 움바는 이 커다란 부락에 혼자 남게 된 것이었다. 물론, 커다란 부락이라는 것도 옛말이었고, 이제는 그 많던 움집들도 움바의 움집을 포함해 몇 개 남아있지도 않은 상태였다.
움바는 자신이 먹고 남은 물고기 몇 마리를 화로 옆, 땅에 거꾸로 박혀있는 토기에 던져 넣었다. 불에 익혀놓은 물고기는 요즘처럼 차가워진 날에는 며칠이나 상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앞으로 다가올 추운 날들을 생각하면 물고기보다 더 오랜 기간 먹을 수 있는 도토리와 곡식들을 모아야만 했다.
움바는 화로의 불길을 따라 그림자가 일렁이는 빗살무늬 토기를 바라보았다. 떠나 버린 형제들에게는 전할 수 없었지만, 움바가 이곳에 남은 이유는 바로 그 빗살무늬 토기와 관련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그 토기를 만들었던 그의 아내가 움바가 아무도 남지 않은 이곳에 홀로 남은 이유였다.
움바의 아내는 부족 내에서 상당한 미인이었다. 젊었을 때, 움바는 아내를 차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싸움을 벌였는지 모른다. 심지어 그 상대 중에는 움바의 형제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부족에서 가장 힘이 좋은 움바는 모든 싸움에서 이겼고, 아내는 움바의 움막으로 들어왔다.
움바가 부족 내에서 가장 힘이 세고, 물고기를 잘 잡는다면, 움바의 아내는 부족의 모든 여자들 중에서도 가장 손재주가 좋았다. 그녀가 만드는 토기들은 하나같이 튼튼하고 아름다웠으며, 만들어낸 어망들은 질기고 촘촘해 아주 작은 물고기라도 그 틈을 빠져나가지 못했다. 움바가 나이를 먹었어도 부족 내의 젊은이들보다 물고기를 더 잘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아내가 만들어준 그 어망 때문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해가 짧아지고 어둠이 길어지던 때, 움바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그녀를 잃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날로부터 몇 번이나 해가지고, 다시 떠올랐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한 오래 전 일이지만, 움바는 그 날의 그 순간만큼은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 할 수 있었다.
움바의 아내는 이유를 알 수 없이 시름시름 앓는 날이 많아져갔고, 그 날들이 길어지는 만큼 약해져만 갔다. 움바는 아내를 살리기 위해 부락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만 자라는 귀한 풀들과 매서운 동물들을 몇 번이고 잡아왔지만, 아내의 몸은 좀처럼 좋아질 줄 몰랐다.
자신의 몸이 아픈 것도 참아가며 움바의 사냥도구들과 채집도구들을 만들던 아내는 결국 앉아 있지도 못할 만큼 상태가 악화되었고, 나중에는 손가락 하나도 들어 올리지 못하는 상태로 움막 안에 누워 겨우 숨만을 몰아 쉴 뿐이었다.
며칠이나 아내의 곁을 지키던 움바가 움막 밖으로 나온 날, 움바의 아내는 그 작은 움직임마저 멈추고 말았다.
움바는 몇 번의 경험을 통해 그것이 죽음이라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고, 그녀가 다시는 전처럼 움직이거나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못할 것임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움바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자신을 낳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보낸 것과 같이 그녀를 떠나보냈다.
아직 젊은 사내들과 견주어도 지지 않을 정도의 힘을 가진 움바에게는 새로운 여자들을 선택할 기회가 남아있었지만, 움바는 그 중 누구도 자신의 움막으로 들이지 않았다. 이미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움바의 모습을 부족의 모든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겼지만, 움바는 그렇게 옛 기억을 떠올리는 시간들이 좋았다. 움바에게는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들을 떠올리며 느끼는 기쁨이 지금 당장의 즐거움과 비교해보더라도 전혀 뒤처지지 않았다.
그녀와 함께 지내던 움막, 그 안의 모든 물건들에는 그녀의 손길이 닿아 있었고, 그녀와 함께 하던 움바의 기억들이 남아 있었다. 그런 소중한 기억들은 그녀를 떠나보낸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욱 빛이 났고, 그 기억들을 떠올릴 때의 즐거움과 그리움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렇게 그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던 움바는 점점 더 오랜 시간이 지난 일들을 기억해내기 시작했다.
움바는 이제 갓 걸어 다니기 시작하는 형제들의 아이를 보며, 자신과 형제들이 처음 달리기 시작한 날들과, 그 모습을 바라보는 자신의 부모님의 웃는 얼굴을 기억해냈다.
예전의 기억들은 그 기억을 끄집어낼수록 점점 선명하고 또렷하게 떠올랐고, 이제는 움바가 자라 온 부락의 모든 물건들에 그만의 기억들이 자리를 잡아 버렸던 것이다.
그 때문에 움바는 형제들의 권유에도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아니 떠날 수가 없었다. 어찌 떠날 수 있었을까! 움바는 모든 물건에 즐거운 기억이 가득한 이곳이 아니라면 그 어떤 곳에서도 지금처럼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움바는 점점 불어나는 물길에 잠겨버린 움집들을 바라보았다. 몇몇 움집들은 벌써 물길의 흐름을 못 이겨 떠내려가 버렸고, 탁한 물속에는 깊게 파인 움집의 터들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물길에 떠내려 간 것은 그저 움집이었지만, 움바에게는 자신의 소중한 기억이 떠내려가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건 마치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다시는 그 물건들을 보며 기억을 떠올리지 못함을 뜻했고, 나아가 언젠가는 그 기억마저 희미해질 것이라는 걸 의미했다.
움바는 자신의 움집까지 침범해버린 물길에 꺼져버린 화덕을 바라보며 이곳만큼은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이고 둥근 토기로 물을 퍼내고, 또 퍼내었지만 움바 혼자의 힘으로는 불어나는 물길을 막을 방법이 없었다. 움바가 물을 퍼내기를 멈춘 것은 움집 안에 있는 자신의 허리까지 차오른 물길과 자신의 다리를 스쳐지나가는 물고기의 움직임을 느꼈을 때였다.
결국 아내를 떠나보낸 것과 같이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움바는 그때부터 자신이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물 위에 떠오른 아내의 토기를 발견한 움바는 당장 그 일들을 시작했다.
움바는 자신의 집에 있는 모든 물건들을 물길이 미치지 않는 곳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나 둘씩 옮기던 것들도 몸에 익자, 한 번에 여러 개를 옮기는 것이 가능했다.
움바는 아직 물길에 가라앉지 않은 다른 움집들에서도 자신의 기억이 담긴 물건들을 옮겼다. 이미 몇 개의 물건들은 부족 원들이 급히 이곳을 떠날 때 부서져버렸고, 움바는 그 부서진 물건을 제외한 것들을 높은 곳으로 옮겨갔다. 대부분의 물건들을 옮긴 움바는 미처 옮기지 못한 물건들과 깨어진 파편들마저 물길에 떠내려가지 않도록 흙으로 묻기 시작했다.
모든 움집이 물길 아래 잠긴 것은 움바가 남아있던 모든 물건들을 흙으로 덮어 놓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물길이 미치지 못하는 언덕에 앉아, 움바는 불어나버린 물길을 바라보며 자신이 보내온 시간들을 떠올렸다. 이제 다시는 보지 못할지도 모를 부락의 터전을 바라보며, 움바는 그렇게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며칠이나 꼼짝 없이 앉아있을 뿐이었다.
움바는 물 밖으로 겨우 고개를 내밀고 있는 자신의 움집의 꼭대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쩌면 떠나버린 형제들이 언젠가 다시 이곳을 찾아오더라도 이곳을 기억하지 못할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움바는 그것이 두려웠다. 자신과 자신의 아내, 그리고 형제들과 자신이 살아가던 이 터전이 그들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사라질지 모른다는 그 사실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움바는 기억되고 싶었다. 그리고 자신과 같은 기억을 가진 형제들과 그것을 나누고 싶었다. 어쩌면 이것은 움바가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아가며 처음으로 갖게 되는 꿈이었으며, 욕심이었는지도 모른다.
움바는 죽는 것 보다 잊혀 진다는 것이 더욱 두려운 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다시금 그를 움직이게 만들고 있었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앉아있었는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움바의 몸은 비명을 지르듯 두둑이며 소리를 질러댔다.
움바는 다른 이들이 자신을 기억해주길 바랐지만, 막상 그 것을 위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움바가 기억하는 한 먹는 것과 자는 것, 그리고 모든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제외하고는 어떤 누구도 무언가를 소망한 적이 없었다. 기억되길 바라는 움바의 소박한 꿈은 생존만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부족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거창하고도 불필요한 것이었다.
움바는 일단 자신이 서 있는 땅을 파기 시작했다. 점점 불어나는 물길은 금방이라도 세상의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더 이상 저 지독한 물길에 기억들을 떠나보내지 않으리라 결심한 움바는 전처럼 물건들을 땅속 깊숙이 묻기로 했다.
자신이 파 놓은 웅덩이 안에 조심스럽게 물건들을 옮긴 움바는 천천히 흙을 덮어갔다. 평평하게 다시 메운 땅 위에서 움바는 자신이 묻어놓은 물건들의 위치를 기억할 무언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움바는 자신의 근처를 굴러다니는 작은 돌멩이 하나를 주워들었다. 움바는 그 돌멩이로 흙 위에 작은 그림을 그려보았지만, 만약 물길이 이곳까지 흘러든다면 흙 위의 그림이야 금방 지워지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움바는 자신의 손에 있는 돌멩이를 다시금 바라보았다. 이것보다 더욱 커다란 돌이라면 물에 쉽게 떠내려가지는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만약 떠나버린 형제들이 이곳으로 돌아왔을 때, 특이한 모습의 돌이 있다면 분명 그들은 호기심에 이끌려 이곳으로 돌아올 것이 분명했다.
움바는 일단 커다란 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거센 물길에도 떠내려가지 않고 굳건히 버틸 수 있을 정도의 커다란 돌. 움바는 급히 자신의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 정도 크기의 돌은 보이지 않았다.
움바는 천천히 기억을 더듬어갔다. 그 동안 사냥을 하기 위해 돌아보던 부족 근처의 모든 숲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떠올려 갔다. 그리고 이내 자신이 원하는 정도의 큰 돌이 있던 숲을 기억해냈다.
움바는 다시 근처에 있는 작은 돌멩이 두 개를 더 집어 들었다. 돌 하나로는 형제들의 시선을 붙잡을 수 없었다. 거대한 돌만으로는 물에는 떠내려가지 않을지 몰라도, 형제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는 없었다.
움바는 손에 들린 길쭉한 돌 두 개를 땅위에 기대어 세웠다. 서로의 무게를 지탱한 돌들은 제법 특이한 모습으로 땅위에 서 있었지만, 작은 흔들림에도 쉽게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움바는 땅위에 돌을 세운다면 부족의 형제들이 멀리서도 볼 수 있는 모양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그리고 더욱 튼튼하게,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는 모양으로 돌을 세워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상당히 오랜 시간동안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돌을 세워보던 움바는 손가락으로 움푹 파낸 땅에 돌을 박아 넣으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렇게 세운 두 개의 돌 위에 다른 길쭉한 돌 하나를 얹어 놓는다면 그리 쉽게 무너지지도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땅에 반쯤 박힌 두 개의 돌 위에 하나의 돌을 얹은 그 모양은 충분히 멀리서도 볼 수 있었고, 더욱이 땅속에 묻어 놓은 물건들을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로부터 보호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움바는 곧장 자신이 기억하는 숲으로 걸어갔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결정한 움바의 걸음은 빨랐고, 망설임이 없었다.
움바가 기억하는 숲은 부락에서도 상당히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곳은 움바의 부락 근처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특이한 과실과 풀들이 자라고 있었고, 그만큼 위험한 맹수들이 나타나는 일도 있었다.
움바는 최대한 민첩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숲을 헤쳐 나갔다. 다른 형제들과 함께라면 갑작스러운 맹수의 습격에도 맞서 볼 만 했지만, 움바 혼자서는 아무래도 무리가 따랐다.
얼마나 걸었을까, 움바는 자신이 기억하는 커다란 바위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마치 움바를 위해 준비해 둔 것처럼 알맞은 크기의 바위들이 즐비했고, 움바는 그 중 자신이 집어 들었던 돌멩이들과 가장 비슷한 바위들을 찾아갔다.
움바는 바위들을 찾으며, 기억이라는 것이 상당히 편리하다고 생각했다. 부족의 형제들 또한 자신들이 찾은 과실의 위치를 기억하고 다시 그 자리를 찾긴 했지만, 움바처럼 먹지도 못하는 것들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는 자는 없었다.
알맞은 바위 세 개를 고른 움바는 이제 그 바위를 물건들을 묻어 놓은 곳으로 옮겨야 했다. 자신의 키만큼 커다란 바위를 옮긴다는 것은 힘이 좋은 움바에게도 상당히 곤혹스러운 일이었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움바는 힘을 주어 바위를 밀었다. 처음에는 땅에 박힌 것처럼 꼼짝도 않던 바위는 조금씩 움바의 힘에 밀려 땅에 깊은 자국을 내며 움직이고 있었다.
움바는 간혹 바위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풀과 땅에 박힌 돌들을 제거해가며 바위를 밀거나 끌어갔다. 움바는 밤이 되면 바위 위에 올라 잠을 잤고, 허기가 질 때면 주변의 풀들과 열매로 배를 채웠다.
결국 움바가 자신의 부락이 있는 곳으로 바위 하나를 옮겨온 것은 꼬박 며칠이 지나고 나서였다.
움바는 앞으로도 두 개의 바위를 더 옮겨와야 했고, 그러기위해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움바의 생각과는 달리 두 번째 바위를 옮길 때는 첫 번째 바위를 옮겼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빠른 시간 내에 부락 근처로 도착할 수 있었다.
그건 아주 우연한 발견이었다. 움바가 두 번째 바위를 옮길 때, 바위 아래 작고 둥근 나무가 끼었었고, 움바는 크기가 작은 나무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나무를 빼낼 생각 없이 그냥 바위를 밀었던 것이다.
움바는 바위 아래 끼어버린 나무 때문에 평소보다 더 힘을 주었지만, 바위는 허탈할 정도로 쉽게 움직였다. 커다란 바위는 둥근 나무의 표면을 타고 미끄러지듯 움직였고, 움바는 그 신기한 현상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움바는 움직인 바위를 타고 나온 둥근 나무를 다시 바위 앞쪽으로 옮겨 놓았고, 또 한 번 힘을 줘 바위를 밀었다. 그러자 움바의 몸만큼 커다란 바위는 나무가 없을 때와는 달리 너무 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움바로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는 신기한 현상이었지만, 움바는 그 현상을 이용할 정도의 영리함은 지니고 있었다. 움바는 바위를 밀기에 앞서 먼저 바위 아래에 둥근 나무들을 받쳐 놓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움바가 부락의 근처로 두 번째 바위를 밀고 온 것은 처음 바위를 옮겨 왔던 시간의 반도 되지 않는 시간이 지난 후였다.
세 번째 바위를 옮길 때, 움바는 걱정하던 매서운 맹수를 만나 등 뒤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다. 추운 날들이 다가올 때의 맹수들은 사나웠으며, 혼자뿐인 움바에게 그런 맹수들은 목숨이 왔다 갔다 하기에 넘치고도 남는 위협이었다. 어쩌면 움바가 살아서 돌아온 것 자체가 기적이었으며 아내가 만들어준 날카로운 돌칼이 아니었다면 그나마 기적조차 바라기 힘들었을 것이었다.
움바는 등 뒤에 느껴지는 고통도 잊은 채 자신이 모아 온 커다란 바위들을 바라보았다. 이제 이 바위들을 자신이 생각한대로 세우기만 하면 언젠가 이곳을 지날 형제들이 다시 돌아올 것이다.
등의 고통은 더욱 심해져만 갔고, 날은 더욱 추워져갔지만, 움바는 자신의 생각을 확신하며 다시 빠르게 움직였다.
바위를 세우기 위해 움바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구덩이를 파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막무가내로 바위를 세워보려 안간힘을 쓰던 움바는, 겨우 바위를 일으켜봐야 자신에게는 바위를 땅 속에 박아 넣을 힘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움바는 먼저 땅에 구덩이를 파고 그 위로 바위를 세우는 방법을 선택했다. 모두가 떠나고 혼자 남은 움바는 그 혼자라는 불편함을 보완하기 위해 머리를 썼고, 그 결과 더욱 편리한 방법들을 생각해내기에 이르렀다.
땅에 먼저 구멍을 내 놓은 움바는 그 구멍의 옆으로 바위를 옮겼다. 구멍의 반대편에서 바위를 들어 올린 움바는 예상대로 바위를 더욱 쉽게 들어 올릴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움바가 들어 올린 바위의 반대편은 자연스럽게 구멍 아래로 빠져들었고, 움바는 물살에 몸을 맡기던 것처럼 그 힘을 거스르지 않고 이용했다. 푹 꺼진 땅속으로 빠져든 바위는, 반대편에서 움바가 살짝 힘을 주는 것만으로도 꼿꼿하게 세워져 버렸다.
하나의 바위를 성공적으로 세운 움바는 곧바로 두 번째 바위를 세우지 않았다. 대신 움바는 기둥이 될 두 바위의 덮개가 될 길쭉한 바위를 이미 세워둔 바위 옆으로 옮겨왔다. 그리고 그 바위의 길이를 기준으로 땅을 파내기 시작했다. 움바는 그렇게 해야만 덮개가 될 바위를 지탱할 두 바위간의 거리를 정확하게 알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위에 올라갈 바위를 기준으로 다시 하나의 바위를 더 세운 움바는 큰 고민에 빠졌다. 덮개가 될 남은 바위 하나를 두 개의 다른 바위 위로 올릴 힘이 자신에게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이건 작은 돌멩이로 미리 표식을 만들어 볼 때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문제였다.
움바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움바는 자신의 기억 속에서 지금까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어려운 일들을 극복해온 사실을 떠올렸다. 뭐든지 하면 못할 것이 없었다. 오랜 시간 고민하던 움바는 작은 나무들만 있다면 언덕 위로도 바위를 밀어 올릴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움바는 주변에서 흙을 모으기 시작했다. 바위를 들어 올릴 수 없다면, 밀어서라도 높게 치솟은 바위 위로 올리면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움바는 그를 위해서 새로운 언덕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충분한 양의 흙을 모아온 움바는 자신이 세워둔 바위 두 개를 흙으로 덮어갔다. 그건 자신의 키를 조금 넘을 정도의 작은 언덕을 만드는 일이었고, 혼자뿐인 움바에게 그 일을 한다는 것은 또 많은 시간들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묵묵히 포기하지 않고 계속 흙을 덮어간 움바는 결국 커다란 언덕 하나를 만들어냈다. 그건 움바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상당히 커다란 크기였고, 나무를 이용해 바위를 위로 올리기 위해서는 완만한 경사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움바는 웃으며 마지막 바위를 밀어 올렸다. 온몸의 근육이 끊어질 듯 아파왔기만, 움바는 멈추지 않았다. 지금 멈추면, 겨우 밀어 올린 바위가 자신의 몸을 짓이기며 굴러 내려갈 것이라는 사실을 움바는 알고 있었다.
겨우 자신이 만든 언덕의 꼭대기까지 바위를 옮겨놓은 움바는 바위 위에 올라 기뻐하며 춤을 췄다. 그건 춤이라기보다 그냥 몸을 움직이는 것에 불과했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사실이 움바의 기분을 그 어떤 때보다 상쾌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움바는 자신이 흙으로 만들었던 언덕을 조금씩 치워갔다. 그건 움바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 가운데 가장 조심스러웠고, 그 때문에 더욱 오랜 시간이 걸렸다. 움바는 기둥이 될 두 바위를 감싸 안은 흙들을 모두 걷어내면 바위들이 무너져 내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 보는 일이었으며, 그 누구도 해보지 않은 일이었기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움바가 자신이 만든 언덕의 흙을 반쯤 걷어냈을 때 비로소 기둥이 되는 바위의 모습이 드러났다. 움바는 흙 사이로 드러난 바위를 몇 번 당겨보다 다시 밀어보기를 반복하고 나서야 다시 흙들을 걷어내는 일을 시작했다.
움바는 자신의 생각보다 바위가 튼튼하게 서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자 일에 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다. 금세 반대쪽 기둥 바위의 모습이 흙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이제 움바가 할 일은 바위와 바위 사이에 남은 흙들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두 개의 바위가 튼튼하게 서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였지만, 모든 흙들을 치워내고 난 후에도 두 바위가 위에 올라가 있는 덮개 바위를 잘 지탱해 줄 것이라고는 확신하지 못하는 일이었다.
움바는 자신이 만들어 놓은 바위기둥에 가득 찬 흙들의 윗부분부터 조심스럽게 흙을 치워나갔다. 움바가 반쯤 흙을 퍼냈을 때, 두 개의 바위 위에 올라간 바위가 조금 흔들리는 일도 있었지만, 움바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모든 흙을 치우고 웅장한 모습으로 서 있는 바위를 바라본 움바는 오랜만에 이까지 들어내 웃음을 지었다. 상당히 멀리 떨어진 곳까지 한달음에 달려간 움바는 그 먼 곳에서도 자신이 만든 바위가 잘 보인다는 사실에 흡족했다.
다시 바위로 돌아온 움바는 자신이 만든 기괴한 모양의 바위를 바라보며 옛날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마치 움집의 지붕과 같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을 막아주는 바위 아래에는 움바의 기억이 깃든 물건들이 간직되어 있었다.
움바는 덮개 바위를 받치고 있는 한쪽 기둥에 바위 아래에 물건들이 묻혀있다는 사실을 그림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돌에 새겨진 그림은 흙에 그린 그림처럼 쉽게 지워지지는 않을 것이었다. 결국 모든 그림을 다 그린 움바는 반대쪽 바위에는 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자신이 기억하는 아내의 모습을 그렸다. 그래야만 그의 형제들, 아니 혹여나 움바를 모르는 다른 부족의 사람들이 이곳을 발견하더라도, 움바와 그의 아내가 이곳에 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자신이 할 일을 모두 마친 움바는 다시 하늘에서 쏟아지는 물을 피해 바위 아래로 숨어들었다. 하늘에서 퍼부어대는 물줄기에도 다행히 바위는 끄떡없었지만, 물에 젖어버린 움바의 몸은 애처로울 정도로 떨리고 있었다.
이미 추운 날들은 다가와 있었다. 움바가 이 바위를 만드는 동안, 부족의 다른 사람들은 아마 이 추운 날들을 견디기 위해 식량을 모았으리라. 움바에게는 모아 놓은 식량도, 따뜻한 화로가 있는 움집도 없었으며, 등 뒤의 상처의 고통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다.
움바는 하늘에서 천천히 떨어지는 얼어버린 물방울들을 바라보며 힘없이 바위에 등을 기대었다. 다른 형제들을 찾아 가기에는 움바에게 남은 힘이 없었고, 맹수에게 당한 상처는 움바의 작은 움직임조차 방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움바는 아마 자신의 몸이 멀쩡하다고 해도 이곳을 떠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움바는 자신이 만든 이 돌들이 좋았고, 그 아래 소중하게 보관해 놓은 물건들과 떨어질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움바는 하얗게 변해가는 세상을 바라보며 천천히 눈을 깜빡였다. 점점 차가워지는 바람에 몸은 크게 떨렸고, 숨을 들이키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움바는 희미해지는 자신의 의식을 간신히 붙잡고 있었다.
의식이 완전히 끊어지기 전까지 움바는 끝없이 생각했다. 눈을 한번 깜빡일 때 마다, 흘러가버린 시간들이 떠올랐고, 그 기억은 지금과 달리 너무도 따뜻했다.
움바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 아내와 그의 곁을 지키고 선 형제들, 그리고 그 형제들과 자신이 있게 한 부모님. 움바는 마지막 그 순간에도 자신이 기억할 수 있는 부족의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고, 그들의 웃은 얼굴을 마주하며 웃고 있었다. 모든 것이 하얗게 뒤덮여진 그 바위 아래에서 움바는 그렇게 웃으며 자신의 마지막 숨길을 내뱉었다.
온 세상을 얼려버릴 것 같던 추위는 지나가고, 하얗게 변한 세상은 언제 그랬냐는 듯 녹색으로 물들어갔다. 움바는 자신이 만든 바위에 아직도 그대로 기대어 앉아있었고, 더 이상의 조그만 움직임도 없었다.
움바의 바람덕분일까, 녹색으로 물든 대지 위로 몇 명의 사람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생에 처음 마주하는 특이한 모습의 바위를 따라 이곳으로 이끌려 왔고, 그 바위 아래에서 웃고 있는 움바를 발견했다.
“움바”
그들 중 누군가가 미소를 짓고 있는 움바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그제야 그들은 이곳이 예전 자신들이 떠난 삶의 터전이라는 것을 기억했다. 그들은 움바의 형제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터전을 떠나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긴 여정을 계속하고 있었다. 추운 계절은 움바의 형제들 중 몇몇을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끌고 갔고, 그래서 그들은 이곳을 떠날 때보다 그 수가 많이 줄어있었다.
추운 날들 끝에 그들의 부락을 침범해왔던 물길은 다시 원래의 자리를 찾아갔다. 움바의 형제들은 다시 수면 위로 드러난 자신들의 터전에서 움바가 묻어 놓은 물건들을 찾을 수 있었다.
움바의 형제들은 움바가 바위에 남겨놓은 그림들을 보았고, 자신들과 떨어져 있던 움바의 마지막 순간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움바를 위해 그가 가장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에 그를 데려다 놓기로 했다. 그리고 움바의 형제들이 생각하기에 움바가 가장 편히 쉴 수 있는 곳은 그가 만든 돌의 바로 아래였다.
움바는 자신의 형제들의 도움으로 자신이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던 물건들과 영원히 함께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움바의 바람대로 다시 돌아온 그의 형제들은 예전 그 터전에 다시 자리를 잡아갔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르고, 움바에 대한 기억을 가진 부족의 모든 이들이 세상을 떠났다. 그들의 후손은 결국 다른 터전을 찾아 바위 곁을 떠났지만, 그 후로도 바위 근처에는 다른 부족들이 몇 번이고 자리를 잡았다 떠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더 오랜 시간이 흘러 움바가 만든 바위는 결국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움바가 만든 바위가 무너지기 전까지 바위를 발견한 많은 부족들은 움바의 그림 속에 담긴 이야기를 보았으며, 자신들도 움바와 같이 누군가에게 기억되기를 원했다. 그들은 움바가 만든 바위와 똑같은 것을 만들었고, 죽은 자를 그곳에 묻어 추억했다.
그리고 그 모든 부족들의 이동에 따라 그 바위의 모습은 남과 북으로 점점 전해져갔다. 그리고 바위의 모습은 지역에 따라 그 모습이 여러 가지로 변해갔다. 움바가 만들었던 것보다 더 커다란 것을 만들기 위해 함께 힘을 모으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은 자나,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준 자들의 무덤은 점점 커져만 갔다. 반면 그렇지 못한 자들은 작은 무덤조차 만들지 못했다.
움바가 만들었던 돌들이 모두 무너진 뒤에도 시간은 계속 흘렀고, 무너져 버린 바위들은 바람과 비에 깎여 작은 돌멩이에서 또 먼지로 변해 사라져갔다. 그 때, 더 이상 움바에 대한 기억을 가진 이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하지만 커다란 무덤들은 그 모습이 변하지 않고 아직 많은 수가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몇 개의 기둥에 덮개처럼 덮여진 돌 하나가 올라있는 그 것들을 고인돌이라 불렀다.
움바가 살아가던 터전에는 더 이상 고인돌의 흔적은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 곳에는 더욱 발전된 문화를 가진 이들이 무리를 지어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들이 밟고 있는 그 땅 아래에는 아직 움바의 형제들이 살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으며, 그들은 움바가 만들기 시작한 고인돌과는 다른 방식으로 죽은 자를 추억해가며 살아갔다.
너무나도 짧은 인간의 삶에 비하면 움바의 의지는 무척이나 기나긴 시간을 전해져 내려 왔는지 모른다. 그 오랜 시간이 지나고, 그가 살던 터전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놀라운 모습으로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움바의 터전을 빼앗아갔던 물길이 이번에는 그의 소망을 들어주듯 움바가 살던 터전의 모습을 다시 세상에 드러나게 만들었다.
움바의 터전이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그때는 이미 움바가 살던 시대를 기억할 것들이 남아있지 않았을 정도로 모든 것이 변해버린 후였다. 그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움바의 아내가 만든 토기와, 그가 사용하던 어망과 같은 도구, 그리고 그들이 살던 터전의 모습들을 연구하며 몇 천 년 전 인류의 생활을 엿볼 수 있었다.
움바는 누군가에게 기억되기를 바랐고, 그의 소박한 바람은 몇 천 년이라는 긴 세월을 뛰어넘어 그의 머나먼 후손들에게 전해졌다. 그렇게 그의 기억은 아직도 살아 숨 쉬고 있다.
-終-
*심사평 : 대상에 선정된 소설 <터전>은
서사적 완결성과
간결하고 단정한 문장이 돋보였다.
--------------------------------------------------------------------------------------
빗살무늬 두더지 / 김완수(우수상, 동화)
‘두두두! 두두두! 두두두! 두두두!’
오늘도 어김없이 두두가 암사동 놀이터에 모습을 보이려나 봐요. 소심하지만 참을성 많은 두더지 두두가 나타날 때면 이렇게 지진이 일어난 듯 땅이 흔들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곤 했지요. 그런데 오늘따라 두두의 등장 소리가 더 크고 빠르게 들리는 걸 보면 오늘 두두에게 무슨 좋은 일이 있는 게 분명해요. 두두는 땅굴 파기의 도사인데, 평소 햇빛을 싫어하는 두두가 이렇게 밤중이 아닌데도 호들갑을 떨며 나타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었지요. 착하지만 장난기 많은 털복숭이 강아지 컹컹이는 땅속이 파헤쳐져 흙무더기가 만들어진 곳에 쪼그리고 앉아 두두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어요. 순간 땅속이 잠시 잠잠해지더니 이윽고 뻥 뚫린 구멍에서 흙빛의 몸빛을 띤 두두가 제 길고 뾰족한 주둥이를 쑥 내밀었어요.
“컹컹이가 와 있었구나?”
해 질 녘이었지만, 아직 남아 있는 햇빛 탓에 작은 눈을 가늘게 뜬 두두가 컹컹이를 보며 반가워했어요. 그런데 컹컹이는 두두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두두의 발밑에 웬 낯선 물건이 삐죽 불거져 나와 있었던 거예요. 컹컹이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건을 내려다보자 두두가 뿌듯한 미소를 지었어요.
“아, 이거? 내가 어제 집을 고치려고 땅속을 깊이 파 들어가는데, 뭔가 발에 걸려서 자세 히 봤더니 이게 나오지 뭐야. 아이, 피곤하다.”
두두가 하품을 늘어지게 했어요.
“근데 이걸 어디에 쓰려구?”
“처음엔 그냥 놔둘까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내게 꼭 필요할 것 같더라구. 그동안 내가 땅 위에서 너희들과 놀 시간이 별로 없었잖아. 근데 안이 텅 빈 이것을 보니까 내가 안에 들어가 있으면 너희들과 실컷 얘기를 하며 놀 수 있겠더라구. 그래서 너희들에게 한 번 보여 주려고 가져와 본 거야.”
두두가 말을 마치자마자 허리를 구부려 삐죽 나온 물건의 모서리를 잡고 힘껏 끌어 올렸어요. 컹컹이가 도와주자 두두의 말대로 곧 아랫부분이 갸름하고 안이 깊숙이 들어간 항아리 같은 물건이 보였지요.
“어유, 무거워서 혼났네.”
두두가 물건 앞에 털썩 주저앉고는 한숨을 쉬며 땀을 닦았어요. 컹컹이는 낯선 물건에 다가가 코를 들이대며 냄새를 킁킁 맡아 보다가 다시 한 발짝 떨어져서 물건을 꼼꼼히 살펴봤어요.
“금이 좀 갔지만, 신기하게 생겼다……근데 이건 뭐지? 겉면에 무슨 무늬 같은 것이 있는 데?”
하지만 두두는 별 관심을 안 보이고 마냥 행복한 표정만 지었어요.
“앙큼이가 좋아하는 생선뼈 같기도 하고 물결 무늬 같기도 한데, 참 희한하다. 너도 한 번 봐 봐!”
그제야 두두는 고개를 돌려 물건을 힐끗 바라봤어요.
“땅속에 오래 있어서 돌 같은 것에 긁힌 거겠지. 햇빛만 가리면 되니까 나한텐 아무 상관없 어.”
두두가 건성으로 말하고는 제집 드나들듯 신나게 물건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했어요. 컹컹이는 물건을 바라보며 계속 고개만 갸웃거렸지요.
“이거 혹시 부적이 아닐까? 승리의 V자 같이 생긴 걸 보면 분명 무슨 부적이 틀림없어. 봐, 아랫부분에 이상한 구멍도 숭숭 뚫려 있잖아!”
“정말?”
물건 안에서 막 빠져나와 다시 들어가려던 두두가 구멍이라는 말에 냉큼 컹컹이의 곁으로 와 물건을 살펴봤어요.
“이건 분명 땅속에 사는 거인이 싸울 때 이기려고 구멍 사이를 끈으로 묶어서 목걸이로 사용했을 거야.”
“땅속에 거인이 어떻게 산다고 그런 무서운 말을 해? 그리고 아무리 거인이라도 이렇게 무거운 것을 목걸이로 사용할 수 있겠어?”
두두가 큰소리를 쳤지만, 어느새 얼굴은 겁에 질려 잔뜩 굳어 있었어요.
“그럼 이따가 앙큼이가 돌아오면 물어보자. 좀 엉뚱하긴 해도 앙큼이는 밖을 많이 돌아다 녔으니까 이게 뭔지 알 수 있지 않겠어?”
“그래, 그럼 나는 그동안 땅속에서 잠시 쉬다가 나올게……아니다. 그냥 이 안에서 한숨 자고 있을 테니까 이따가 깨워 줘.”
두두가 갑자기 땅속으로 들어가기를 주저했어요. 두두는 재빨리 자기가 뚫고 나온 구멍을 흙으로 메우고는 냉큼 물건 안으로 들어갔지요. 컹컹이는 그런 두두를 보고 피식 웃었어요.
엉뚱하지만 영리한 고양이 앙큼이가 사냥을 나갔다가 밤늦게서야 돌아올 때까지 두두는 물건 안에서 단잠을 자고 있었어요. 앙큼이는 물건을 보자마자 꼬리를 살랑거리며 호기심을 보였어요.
“두두가 정말 이렇게 신기하게 생긴 것을 땅속에서 발견했단 말야? 어, 이건 내가 좋아하 는 생선뼈 같은데?”
앙큼이가 물건 겉면에 새겨진 무늬에 입을 가져가며 말했어요. 그런데 컹컹이에게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했어요.
“그건 물결 무늬야!”
“뭐? 그걸 왜 이제 말해!”
앙큼이가 순간 흠칫하며 뒤로 물러섰어요. 그때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깬 두두가 눈을 비비며 물건 안에서 나왔어요.
“앙큼이 왔구나? 네가 보기엔 이게 뭐 같니?”
고개만 갸우뚱하던 앙큼이는 조심스럽게 다시 물건 쪽으로 다가가더니 날카로운 발톱으로 물건의 겉면을 긁기 시작했어요.
“뭐하는 거야?”
두두와 컹컹이가 동시에 소리쳤어요.
“누군가 그린 그림일 수도 있잖아! 나도 한 번 그려 볼까 하구.”
그런데 두두와 컹컹이가 앙큼이의 엉뚱함에 아무 말도 못할 적 갑자기 저만치서 땅이 요란하게 파헤쳐지더니 꼬리는 짧은데, 기다란 귀와 뒷다리를 가진 동물이 커다랗게 뚫린 구멍에서 모습을 드러냈어요. 세 친구는 깜짝 놀라 뒤로 자빠졌어요.
“거, 거인이다!”
두두가 벌벌 떨자 컹컹이와 앙큼이도 잔뜩 겁을 집어먹었어요. 낯선 동물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몸을 탈탈 털고는 벌건 눈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두 귀를 쫑긋 세운 채 세 친구를 바라보며 입을 씰룩거렸어요.
“거인?……난 땅속에서 화석으로 살던 토끼라고 해. 아주 오랫동안 깊은 잠을 자고 있었는데, 아까부터 땅이 울려서 잠을 잘 수가 있어야지.”
“나는 오늘 너를 처음 보는데?”
두두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어요.
“그거야 당연하지. 너와 난 사는 층수가 다른데. 어, 근데 그건 빗살무늬 토기 아냐?”
세 친구는 토끼의 말에 서로의 얼굴만 빤히 쳐다봤어요. 두두는 혹시라도 토끼가 자기의 물건을 탐내지는 않을까 걱정돼 가슴이 조마조마해졌어요. 토끼는 물건 쪽으로 껑충껑충 뛰어가더니 물건을 쭉 훑어봤어요.
“와, 정말 오랜만에 토기를 보는구나. 이 귀한 걸 어디서 구한 거니?”
두두는 경계의 눈을 뜨고 물건 옆에 바짝 붙어 섰어요.
“땅속에서 구한 건데, 땅 위에서 지낼 집으로 쓰려고 가져온 거야.”
“집? 너희들은 이게 뭔지 알고 그러는 거야?”
세 친구는 토끼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몰라 눈만 멀뚱멀뚱 떴어요.
“이건 신석기시대라는 먼 옛날에 살던 사람들의 도구야. 빗살무늬 토기라고 해서 그때 사 람들이 물가에 집을 지어 농경 생활을 하면서 주로 식량을 저장하기 위해 쓰던 것이지.”
“토기? 네 이름과 비슷하구나? 근데 거인이나 우리 두더지 조상들이 쓰던 게 아니라 사람 들이 쓰던 거라구?”
두두가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어요.
“그러엄! 흙으로 만든 그릇이란 뜻인데, 사람들이 불에 굽고서 시문구라는 도구로 무늬를 새기는 것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거든.”
“와, 정말? 부럽다. 그럼 네 나이는 도대체 몇 살인 거야?”
컹컹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어요.
“지금 토끼들의 조상이고 너희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지만, 너희들과는 그냥 친구로 지내 면 좋겠어.”
토끼가 껄껄 웃었어요.
“궁금한 것들이 있는데, 물어봐도 돼?”
앙큼이가 나서서 토끼에게 묻자 토끼가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어요.
“이 토기는 왜 밑이 뾰족한 거야? 또 어떤 무늬길래 이렇게 예쁘게 그려져 있는 거야?”
“넌 참 호기심이 많은 친구구나? 그런데 그 이유는 너희들이 곧 알게 될 거야.”
세 친구는 눈만 끔뻑거렸어요.
“오랫만에 세상으로 나왔더니 피곤하다. 나는 이제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야겠어. 그럼 또 보자. 안녕!”
토끼가 갑자기 세 친구에게 인사하고 구멍 쪽으로 껑충껑충 뛰어가더니 아까 모습을 나타낼 때처럼 순식간에 구멍 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어요. 세 친구는 토끼가 사라진 곳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다가 토기 앞에 옹기종기 모였어요. 잠시 골똘한 생각에 잠겨 있던 앙큼이가 먼저 입을 열었어요.
“토끼가 왜 답을 안 알려 주고 갔을까?”
“난 꼭 무슨 귀신을 본 것 같아. 아무래도 부정 탈 것 같은데, 땅속에 도로 갖다 놓는 건 어때?”
컹컹이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말하자 두두가 한참 만에 입을 열었어요.
“아냐, 난 낮에도 이 안에서 세상 구경을 하며 너희들과 놀 거야.”
그때 앙큼이의 눈이 반짝였어요.
“우리 이것을 세워 보는 것은 어떨까? 이 근처에 강이 있는데, 물가의 부드러운 땅이라면 세울 수 있지 않겠어?”
앙큼이가 강 쪽을 가리키며 말하자 두두의 얼굴이 심각해졌어요.
“그러면 내가 이 안을 드나들기 불편할 것 같은데?”
“앙큼이 생각대로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무서운 것들이 어디서 갑자기 나타나서 널 괴롭 힐 수도 있잖아. 또 강가도 구경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두두는 컹컹이의 말에 잠시 무서운 생각이 들어 몸을 움츠렸지만, 곧 얼굴이 환해졌어요.
“좋아, 대신 이것을 강가까지 옮기는 데 너희들이 좀 도와줄 수 있겠니?”
“물론이지. 내일 해가 질 때쯤 다시 여기 모여서 함께 끌고 가 보자.”
컹컹이와 앙큼이가 선뜻 대답하자 두두는 고마운 마음에 빙그레 미소를 지었어요. 그리고 세 친구는 내일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어둠 속으로 뿔뿔이 헤어졌어요.
“영차! 영차!”
세 친구는 토기 밑부분에 난 구멍들을 끈 하나로 묶어 양 끝을 밖으로 길게 늘어뜨리고는 힘을 합쳐 끈을 잡아당기며 토기를 강가까지 끌고 갔어요. 모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강가에 이르자 세 친구는 흐뭇한 얼굴로 강가에서 땀을 시원하게 씻어 냈어요. 물을 무서워하는 앙큼이는 손에 물을 살짝 묻혀 고양이 세수를 했지요. 세 친구는 다시 토기 쪽으로 가 끈을 풀어냈어요. 두두가 토기 밑부분이 묻힐 만큼 무른 땅을 파내자 컹컹이와 앙큼이는 기합을 넣어 가며 힘껏 토기를 일으켰어요. 그리고 컹컹이와 앙큼이가 양쪽에서 토기를 붙잡고 있는 사이에 두두가 재빨리 흙을 메워 토기를 고정시켰지요. 토기가 반듯이 서자 세 친구는 동시에 환호성을 지르며 펄쩍펄쩍 뛰었어요. 그런데 토기 앞에 서 있던 두두가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처럼 토기를 힘껏 껴안았어요.
“지금 뭐 하는 거야?”
컹컹이의 눈이 동그래졌어요.
“토끼 말대로 사람들이 쓰던 거라면 뭔가 특별한 뜻이 있지 않겠어? 내 가슴에 무늬가 새겨 질지 모르니까 꼭 껴안고 있어 보려구. 혹시 알아? 내 가슴에 빗살무늬가 새겨지면 나도 너 희들처럼 낮에도 땅 위에서 맘껏 뛰놀 수 있을지.”
컹컹이와 앙큼이는 두두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자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가을밤이라 주위에 제법 한기가 돌기 시작했어요. 몸이 으스스해진 세 친구는 궁리 끝에 토기 앞에서 불을 지피기로 마음먹었어요. 여전히 토기를 껴안은 채 서 있는 두두를 위해서이기도 했지요. 컹컹이가 주위에 있는 낙엽들과 나뭇가지를 모아 입으로 물고 오자 앙큼이가 두 손으로 나뭇가지를 열심히 비벼댔어요. 얼마 안 있어 거짓말처럼 불꽃이 일더니 드디어 불이 피워지기 시작했어요. 세 친구는 또 환호성을 질렀지요. 불길이 점점 세져 온기가 감돌자 모두 행복한 미소를 지었어요. 불기운으로 두두의 엉덩이가 발그레해졌지만, 두두는 환한 달밤 아래서 토기를 꼭 껴안은 채 제 가슴에 따뜻한 빗살무늬를 새겨 갔어요.
*심사평 : 우수작 동화<빗살무늬 두더지>는
뛰어난 상상력을 바탕으로
글을 재미나게 이끌어가는 힘이 있다
--------------------------------------------------------------------------------------
*심사평 : 우수작 소설<도토리(양진영)>는
매끈한 전개와 탄탄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
*심사평 : 우수작 수필<아난의 풋잠(정정성)>은
사유의 활달함과 진정성으로 일궈내는 감동을 준다.
--------------------------------------------------------------------------------------
첫댓글 우선 선생님의 시를 먼저 읽었습니다.세심한 관찰력과 깊은 내면적 상상력에 감동했습니다.
정말 장하십니다. 한때의 행운이 아니요 앞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기대하면서 늘 기도 하겠습니다.저도 영광입니다.정도병
감사합니다. 저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유리함에 만물을 낯설게 보는 힘을 길러 제 속에 잠재된 가능성을 확산시키기 위해 집중하려합니다. ^-^
무심코 지나 다니던 암사동 유적지. 시를읽고서, 교수님 죄송해요. 캬- 감동감동^^ 읽고 또읽고 5번 읽었어요.
이명우님시. 개울 물? 개구리가 울어? 비가많이 오면 광나루 강물이 차 오르기는 했어요. 하여간 우리 교수님 시가 더
좋으네요.
나를 사랑하시니 내 시가 더 좋은 거예요. 허긴 심사위원들도 생각하기 나름이긴 하지만요. 그러나 제가 봐도 대상 대웠어요. 현장감이 있고 시의 깊이가 느껴졌어요.
환 한 미소와 함께 축하의 박수를 전합니다.큰 울림에서의 전달과 표현을 가까운 곳에서 흠뻑 취할수있어 감사합니다.
흐르는 강물처럼 연신 문질르고 구르고 달달 내면을 뽁아도보고 표현하고,관찰하고,귀 담아듣고,별짖거리 다 해서
원 체험으로 되 돌려 노력코져 합니다.늘 고맙게 생각합니다. 다시금 축하 드림니다.
모든 분들께 감사하고 특히 반장님의 노고에 고개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