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book에서 따온 사진
크리스텐덤인가 크리슨덤인가??
Christendom...
쉽게 말하자면 기독세계, 혹은 기독왕국...
Chris·ten·dom
/ˈkris(ə)ndəm/
noun
the worldwide body or society of Christians.
the Christian world
https://www.google.com/search?q=christendom+definition&oq=
(이 링크에서 발음도 들을 수 있음.)
첨부된 사진은 한국에서 출판된 책...
읽어보지 못한 건 당연하고...
나는 Christendom을 크리슨듬 크리슨듬 했는데...
나보다 못할 거 없는 유력자의 유력저작 유력출판사 책에서 크리스텐덤이라 하니,
마치 언젠가 교포 기독교 TV 방송에서 지역 유력 목사가 요한복음은 22장이라고 두 번이나 말하는 바람에, 그리고 그 후에도 수정 발언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그동안 21장으로 잘못 알고 있었나보다 하는 황급한 생각에 성경책을 펼쳐 확인해본 적이 있었던 것처럼...
이 글을 쓰는 순간 다시 한 번 요한복음이 몇 장까지인지 확인해보니.. 휴~~~~ 21장 맞구나.
말실수는 흘러가지만 글 실수는 남아있어서 그게 참 조심스럽다.
어쨌거나...
한국에서는 카스코(Costco)를 코스트코라고 하는 것처럼...
영어 크리슨듬을 한국에서는 크리스텐덤이라 하나보다 라고 생각할 밖에...
하긴 카스코의 경우 차라리 코스트코가 정확한 발음이 아닌가 싶어서
아마도 크리스텐덤이 더 정확한 발음인가 해서 나도 따라할까 싶지만...
그냥 하던 대로 크리슨듬으로 만족하련다.
그거야 뭐 그냥 그렇다는 거고...
크리슨듬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기독교의 신조와 생활이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대다수 주민 일상의 생각과 삶이 이를 따르는 세상을 일컬음이다.
예를 들자면, 교회 건물이 각 지역 생활의 중심이 되며 주일에는 운동이나 오락, 또한 상거래가 거의 중지되는 정도?
부활절이나 성탄절 등의 절기는 당연히 더더욱...
그래서 포스트 크리슨듬이라면...
기독교의 전성기 이후라는 것이니 쇠퇴기라고 할 수 있을까?
포스트는 상당히 “문화적으로 세련되게” 들리는데 쇠퇴기라고 하면 너무 참혹한가?
“쇠퇴기를 맞은 한국기독교”..... 좀 그렇긴 그러네. 너무 노골적?
만일 책 제목의 포스트 크리스텐덤 대신에 쇠퇴기라고 했다면 그 전, 즉 전성기는 부흥기? 양적 팽창기? 시대작명에 역사학자들의 특권이 있을 것이고..
어차피 포스트 크리스텐덤이라고 제목에 썼으니 크리슨듬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시대적 상황 그 이후, 즉 주류사회의 생각과 삶을 지배하던 전성기가 지난 그 후라는 얘긴데...
이 제목을 보면서 내가 읽어보지도 못한 이 책과 어떤 연관은 없겠지만 씨잘떼기 없는 생각이 가지를 친다.
그게 뭐냐면...
과연 한국에는 크리슨듬이 있었던 것인가 하는....
내가 아는 한, 한국기독교는 한 때 25%의 복음화율을 자랑한 적이 있었다.
근데 또한 많은 사람들, 혹은 실질적인 통계가 저 25%는 과장된 것임을 보여주기도 했다.
예를 들면 어느 지방에 각 교단, 혹은 각 교회 교인의 합이 그 지역주민 총수보다도 많은 경우도 있었다 하니...
뭐 이게 사실이건 아니건, 그만큼 과장이 많았다는 것은 교인 수뿐 아니라 행사참석인원 통계에서도 종종 볼 수 있었던, 그리고 요즘에도 의심스런 부분인 것은 사실 아닐까?
(내가 90년대 뉴저지에서 호산나청소년연합집회를 주관할 때엔 참석 학생들의 숫자를 정말 세었다. 그리고 일부 신문기자들이 약 삼백여 명 모인 것을 오백 명으로 하자고 하면 그러지 말라고 했다. 그때 처음엔 눈이 많이 와서 많이 못 모였지만 자리 잡히면서 매 집회에 천여 명씩 모였었다. 티넥고등학교의 천 석 강당이 꽉 찼었으니까... 흐흐 괜한 소릴.. 그래서 괄호에 넣었음.)
어쨌거나 25%였었다고 치자.
이 숫자가 한국의 선교史로 미뤄, 혹은 세계 선교역사로 보더라도 대단한 기록이었음은 사실일 것이다.
그렇지만 우선 숫자적으로도 대다수가 아닌 것이 사실이며...
질적으로는 어땠나?
영향력으로는 어땠나?
과연 한국기독교가 질적, 영적 주류세력으로 사회를 이끌고 나가던 적이 있기나 했었나?
기독교인인 내 입장에서 보더라도 한 가지 분명한 건 있는 거 같다.
시끄럽기로 치면 한국기독교... 그 어느 단체 못지않게 집단이기주의의 선두를 다퉈오지 않았을까?
물론 한국교회 과거와 현재의 교계에 훌륭한 기독인, 정말 좋은 교회가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세상이 떠들썩하도록 시끄럽게 뻘짓 해대는 몇몇 때문에.... ㅠㅠ
세계사 속에서 크리슨듬을 논함에 있어서, 기독교의 흥과 쇠는 지역마다 다르기 때문에 결국은 서구냐, 한국이냐, 아니면 다른 어느 곳이냐에 따라서 그 연대표가 달라질 것이다.
아니, 어느 지역에 기독교가 전파되고 흥과 쇠가 이뤄졌다고 해서 그 지역에 과연 크리슨듬이 존재하기나 했느냐 하는 그 자체에도 일괄 대답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과연 한국에 크리슨듬이 있었던가?
물론 한국기독교의 역사가 있다.
선교초기, 부흥기, 쇠퇴기 등...
교회사학자들은 각 기간 특징의 성경적 역사적 사회적 세계적 의미를 규명해야 할 것이다.
어떻게 어디에서 누구에 의해 선교가 이뤄졌는지 그 사실과 의미를...
어떻게, 왜, 누구에 의해 부흥이 주도됐는지...
수적 부흥이 질적 영적 상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쇠퇴하고 있다면 어떻게, 왜 그렇게 됐는지....
그리고 앞으로의 전망 등...
책 제목 하나에 괜한 잡념인가 싶기도 하면서...
과연 사역 일선에서 내가 추구하고 도모하는 것은 무엇이어야 하는 것인지...
그럼으로써 어떻게 헛된 뻘짓을 피할 것인지...
어떻게 성경적 목표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인지...
그것을 말씀(Text)과 상황(Context) 가운데 숙고할 뿐이다.
짓: “어떤 일”을 낮춰 하는 말
뻘짓: “짓”을 낮춰 하는 말, 그래서 “쓸 데 없는 일”이라는 뜻...
그러니 위의 “헛된 뻘짓”이라는 말은 “헛된 쓸 데 없는 일”이라는, 표현이 중복되는 말인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