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은 바이러스나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 병원체에 의해 발생한다.
바이러스는 스스로 증식할 수 없기 때문에 숙주 세포 안으로 들어가 살아간다. 세포 안으로 침투한 바이러스는 숙주 세포의 물질과 기구를 이용해 자신을 복제하고, 수많은 새로운 바이러스를 만들어낸다.
바이러스가 다른 생명체와 뚜렷이 구별되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끊임없이 변이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일부 바이러스에서는 서로 다른 바이러스 사이에 유전자 재조합이나 유전체 재편성이 일어나 새로운 특성을 가진 바이러스가 출현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새로운 바이러스가 끊임없이 나타날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런데 이렇게 변화한 바이러스가 기존의 숙주를 넘어 다른 종의 생물로 옮겨가는 경우가 있다.
새로운 숙주는 그 바이러스에 대한 충분한 면역 방어 체계를 갖추지 못했을 수 있다. 이때 바이러스가 새로운 숙주의 몸에 성공적으로 적응하고, 다시 다른 개체로 지속적으로 전파될 수 있게 되면 새로운 감염병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생긴다. 바이러스의 입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숙주에서 증식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다시 새로운 숙주로 옮겨가야 한다.
정착-전염-정착.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바이러스와 숙주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끊임없이 변화해 간다.
병마病魔로 진화하는 미생물의 공격적인 모습
박테리아는 지구상에서 가장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미생물 가운데 하나다. 흙과 물, 공기뿐 아니라 생명이 존재하기 어려울 것 같은 극한 환경에서도 살아간다.
인간의 몸 역시 예외가 아니다. 입안과 장, 피부를 비롯한 우리 몸의 여러 공간에는 엄청난 수의 미생물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 가운데 대부분은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며, 오히려 우리 몸의 정상적인 생명 활동과 건강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간에게 질병을 일으키는 미생물은 그중 일부에 불과하다. 이렇듯 인간은 거대한 ‘미생물의 바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따라서 인간이 미생물과 완전히 분리되어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동안 인류는 많은 감염병에 맞서 미생물 병원체를 제거하기 위해 끊임없는 전쟁을 벌여 왔다. 백신과 항생제, 위생 환경의 개선은 수많은 생명을 살렸고 감염병으로 인한 피해를 크게 줄였다. 그러나 미생물의 적응 능력 또한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특히 박테리아의 경우 항생제를 사용하면 그 약에 약한 세균들은 죽지만, 우연히 내성을 가지고 있던 세균들은 살아남는다. 살아남은 세균은 다시 증식하고, 경우에 따라 내성과 관련된 유전 정보가 다른 세균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결국 인간이 새로운 약을 개발하면 미생물 가운데 일부는 그 환경에서 살아남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마치 인간의 공격에 맞서 새로운 생존 전략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그 결과 기존의 항생제로는 쉽게 제압하기 어려운 더욱 강력한 내성균이 등장하고, 인간은 다시 새로운 치료법을 찾아야 한다. 이런 모습을 보면 미생물이 마치 교묘한 돌연변이와 혁신의 재주를 가지고, 인간의 공격에 대응하여 다시 일을 벌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미생물이 인간에게 복수하거나 의도적으로 공격하는 것이 아니다. 살아남은 개체가 다시 번식하는 자연선택과 적응의 과정이다.
인간이 미생물을 공격하면 미생물도 그 환경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향으로 변화한다. 그리고 인간 역시 새로운 질병과 미생물에 대응하면서 면역 체계와 의학 기술을 발전시켜 왔다. 그래서 인간과 미생물의 관계는 단순히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완전히 제거하는 전쟁으로만 볼 수 없다. 또한 모든 미생물을 인간에게 해로운 적으로 보고 박멸하려는 생각도 생명계의 실제 모습과 맞지 않는다. 인간의 몸과 자연환경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미생물이 공존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 상당수는 생명 유지에 없어서는 안 될 역할을 하고 있다.
인간은 미생물 없이 살아갈 수 없고, 미생물 또한 인간을 비롯한 수많은 생명체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결국 인간과 미생물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변화해 왔다.
한쪽이 변하면 다른 쪽도 변한다. 새로운 공격이 나타나면 새로운 방어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방어가 등장하면 다시 그것을 넘어서는 적응이 일어난다.
이 끝없는 상호작용 속에서 인간과 미생물은 함께 변화하고 있다.
바로 공진화共進化다. 미생물과 인간의 관계는 단순한 ‘박멸의 전쟁’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가 서로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끊임없는 진화의 역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