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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15일 한길교회(http://cafe.daum.net/hgpch) 주일오후예배 설교문
십계명(18) - 제2계명(4)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예배에 있어서의 규정적 원리
설교본문낭독: 요한복음 4장 23-26절
신조 낭독: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96문답;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51문답;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제21장 1,5절
발단
요한복음 4장 24절에 대한 오해
저를 비롯해서 많은 분들은 오늘의 본문 24절을 이런 식으로 많이 외우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개역한글판)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개역개정이 아닌 개역한글판에서 그렇게 번역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가지고 우리가 예배를 드릴 때는 신령하게 드려야 한다고 배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 시간에 딴 짓하면 안되고 신령하게 드려야 한다고 배워왔을 것입니다. 또 예배는 진심으로 드려야 한다고 배웠을 것입니다. 그냥 대충 드리면 안되고 마음을 다해서 진심으로 드려야만 하나님이 받으신다 라고 배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종종 예배 시간에 딴 짓하면 어른들로부터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지!!”라는 말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별로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24절만을 놓고 봤을 때에 “하나님은 영이시니”라고 이유를 달고는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라고 했는데, 하나님이 영이신 것과 우리가 예배를 신령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드리는 것은 별로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각을 해 보십시오. 만약 하나님이 영이 아니시라면 우리의 예배는 신령하지 않아도 되고 진심이 아니어도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영이신 것과 예배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한다는 것은 서로 별로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차라리 “하나님은 거룩하시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라고 하면 말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영이신 것과 신령과 진정은 별로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예배드릴 때에 신령과 진심으로 드려야 한다는 그 말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 신령하게 하고 진심으로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우리는 예배할 때에 신령하게 드려야 합니다. 우리의 진심을 다해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이 영이신 것도 맞는 말이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도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영이시다” 라는 말과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라는 것은 서로 연결이 되지 않습니다.
제2계명의 관점에서
그렇다면 이 본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 그것은 바로 제2계명의 관점에서 읽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아마도 그동안 제2계명 설교를 들으면서 많이 들었던 말을 통해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은 영이시니”라는 말입니다. 요한복음 4장 24절의 앞부분에 있는 이 말은 제2계명의 기초를 이루는 말입니다. 제2계명의 근거는 하나님이 영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하나님은 영이시니”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으니 이것은 이 본문이 제2계명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추측할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좀 부족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영이시라는 것을 무조건 전부 다 제2계명과 연결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한 가지 더 보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으로 예배할지니라”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본문이 제2계명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말입니다. 왜 그럴까요? 출애굽기 20장 4-5절에 보면 제2계명이 나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4절에서는 “하나님을 형상화하지 말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5절에서는 뭐라고 하느냐?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절하지 말라” 라는 말이 다르게 표현하면 “예배하지 말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섬기지 말라”라는 말도 NIV 성경에 보면 “shall not worship”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배하지 말라” 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2계명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을 형상화하지 말고, 그것으로 예배하지 말라” 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오늘 본문 요한복음 4장 24절도 역시 제2계명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라는 표현과 “~~으로 예배할지니라”라는 표현이 오늘 본문이 제2계명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습니다.
바른 번역
이렇게 제2계명의 관점에서 이 본문을 읽으면 어떻게 되느냐? 저와 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는 개역개정판이 제대로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바꿔서 번역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그렇습니다. 본문은 우리가 신령하게, 진심으로 예배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고 말합니다. 영어로 하면 더 분명해 집니다. NIV성경에 보면 “God is spirit, and his worshipers must worship in spirit and in truth.” 라고 되어 있습니다. 번역하면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자는 반드시 영 안에서 그리고 진리 안에서 예배해야 한다” 입니다. 이것이 이 본문의 진짜 의미입니다.
제2계명의 긍정적인 표현으로서의 본문
우리가 계속 보았듯이 십계명은 “~~하지 말라”라는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하지 말고, ~~하라”라는 명령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에 제2계명에서는 부정적으로는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을 형상화하지 말고, 그것들로 예배하지 말라.”인데, 긍정적으로는 “그 대신에 영 안에서 진리 안에서 예배하라”라는 말입니다. 그 긍정적인 명령을 바로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영 안에서, 그리고 진리 안에서 예배할지니라” 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전개
성령 안에서 드리는 예배
먼저, “예배하는 자가 영으로 예배하라” 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을 원문에 충실하게 말하면 “성령 안에서 예배하라” 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이 무슨 말이냐? “성령 안에서”라는 말은 우리의 예배가 오직 성령님께 의존하여서 드려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영이시니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예배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이신 것과 신령하게 예배하는 것은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이지만 하나님은 영이시니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으로 예배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는 오직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참된 예배는 구속함을 입은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지해서 성령님 안에서 삼위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반대로 말하면, 예배는 인간의 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공로만 힘입어 예배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령 안에서” 경배한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입니다.1)
그렇기에 사실상 예배라는 것은 성령 안에서 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것은 아주 기본적인 것입니다. 여러분들 가운데에 지금 예배하는데 여러분 속에 성령님께서 계시지 않고, 여러분이 성령과 전혀 상관없이 예배한다면 그것은 예배가 아닌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배하는 자들은 영으로 예배할지니라(must)”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이 아무리 열심히 기도하고 아무리 열심히 찬송을 부른다 할지라도 성령이 없는 자들은 예배의 자리에는 있지만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 드리는 예배
그 다음으로 봐야 할 것은 “예배하는 자가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하는 것입니다. 이 말도 제대로 번역하면 “예배하는 자가 진리 안에서 예배해야 한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진리가 무엇입니까? 2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진리는 곧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보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로 예배하라는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배하라 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5절에서도 사마리아 여인이 이렇게 말합니다.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예수님이 진리로 예배하라고 했는데, 그 진리가 바로 그리스도 이신 예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리로 예배하라” 라는 것은 하나님을 형상화한 것으로 예배하지 말고 하나님의 형상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예배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통해서 예배합니다. 그렇지 않고는 예배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예배 순서 가운데에 죄의 고백을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앞에서 우리의 죄를 고백함으로 참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에 “예배하는 자들은 성령 안에서 그리고 진리 안에서 예배해야만 한다”는 것은 그렇지 않고는 제대로 예배를 드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범죄하여 타락한 인간은 결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스스로 나아갈 수 없고 예배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 함을 받고 오직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고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말이, 바로 성령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예배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바 대로
그런데 이 ‘진리’라는 것은 그리스도 말고도 또 다른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무엇이겠습니까? 진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7장 17절을 찾아보겠습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진리(眞理)’라고 하면 말 그대로 참된 이치입니다. 이것은 시대를 불변하고 동일한 가치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만고불변의 진리다” 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늘 동일합니다. 수천년 전에 진리이면 지금도 진리여야 합니다. 그것을 진리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최고의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고후 6:7). 왜냐하면 성경이야 말로 변치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것은 오직 유일합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성경도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앞으로 2000년 후에도 동일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리 안에서 예배하라” 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진리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대로 예배하라” 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오늘 보게 될 가장 중요한 내용입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은 “하나님은 영이시니 진리로 예배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영이신 것과 진리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하나님은 영이시니 하나님은 불변하십니다. 진리도 불변합니다. 그러므로 서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예배하는 자는 진리로 예배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예배하는 방법은 늘 동일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불변하시며 진리도 불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영이시니 진리 안에서 예배할지니라”라는 말은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불변하시니 마찬가지로 변하지 않는 진리 안에서 예배하라”라고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예배는 성경대로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제2계명은 하나님을 예배함에 있어서 하나님이 나타내신 뜻대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2) 참된 예배라는 것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진리의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신 방식대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드리는 예배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3)
그렇다면 성경대로 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 말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서 말하는 예배의 요소만을 사용하고, 성경적 근거가 없는 것들은 모두 제거하고 하나님께 경배해야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4) 다시 말하면 성경의 방법을 따라 예배하라는 것입니다.
규정적 원리
이렇게 성경이 말씀하는 대로 예배해야 한다는 것을 가리켜서 ‘예배에 있어서의 규정적 원리’(Regulative Principle of Worship)라고 말합니다.5) 이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교회의 소개문에서 언급하고 있고, 현재 진행 중인 평일모임에서 이미 배운 바 있습니다만, 개혁교회 혹은 장로교회가 예배에 있어서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리입니다.
이 원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예배는 아무렇게나 드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바에 따라 예배드려야 하며, 예배에는 질서가 있고 순서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배는 어떤 규정된 순서나 규정된 요소들로 짜여진 일정한 형태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의 근거는 성경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방법에 대한 규범은 인간적인 창의성이 아니라 성경이 되어야만 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예배해야 하는 지를 말해주는 최고의 규범입니다. “오직 성경”이라는 원리가 예배에 적용되어야 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96문답 &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51문답
이처럼 제2계명의 중요한 가르침은 “하나님의 말씀이 명하는대로 예배해야 한다”입니다. 제2계명은 ‘예배에 있어서의 규정적 원리’(Regulative Principle of Worship)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96문답은 제2계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습니다.
96문: 제2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어떤 형태로든
하나님을 형상image으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고,1)
하나님이 그의 말씀에서 명하지 아니한 다른 방식으로
예배하지 않는 것입니다.2)
1) 신4:15-18; 사40:18-19,25; 행17:29; 롬1:23-25 2)레10:1-2; 신12:30-32; 삼상15:22-23; 마15:9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51문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51문: 제2계명에서 금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제2계명에서 금하는 것은 형상images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거나,1) 자신의 말씀으로 정하여 주시지 않은 다른 방법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2)
1) 신4:15-19; 출32:5,8 2) 신12:31-32
적용 - 예배의 필수요소
그렇다면 여러분~!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예배하는 것일까요?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말씀에서 명하지 아니한 다른 방식으로 예배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것을 위해서 우리의 예배는 무엇보다도 성경중심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개혁파 장로교회의 예배는 설교를 비롯하여 말씀의 선포가 항상 중심이 되었습니다.6) 설교는 기독교 예배의 핵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리 안에서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없습니다.7) 한 때 중세시대에 교회가 타락했을 때에 설교가 등한시 되었습니다. 그 흔적이 지금도 가톨릭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설교를 예배의 핵심으로 말합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들은 기독교 예배의 핵심에 설교를 회복시켰습니다. 예배 시간에 설교자는 오직 성경을 설교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에 참여하는 회중들은 설교자의 설교에 귀기울여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이외에 다른 것이 선포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더욱 하나님의 말씀만을 사모해야 합니다. 진리의 말씀이 순수하게 선포될 때에 비로소 우리의 예배는 진리 안에서 드리는 예배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진리 안에서 예배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합니다. 그렇다 보면 나중에는 설교자도 회중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서 설교 안에 이상한 것들을 집어넣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로 제2계명에 충실하려고 한다면 진리 안에서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신실한 말씀만이 설교되어야 합니다. 전하는 자는 순수하게 전해야 하고, 듣는 자도 순수한 말씀만을 사모해야 합니다.
그 밖에 성례가 있어야 합니다. 예배 시간을 통해서 세례와 성찬이 시행됩니다. 그 외의 시간에는 해서는 안됩니다. 세례는 오직 공적인 예배시간에 이루어집니다. 성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헌금이 있어야 합니다(고전16:2). 예배 시간에 이 일을 하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으로 하지 않습니다. 오늘날 온라인 헌금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예배 중에 이 일을 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찬송과 기도가 있어야만 합니다. 이것은 예배 이외의 시간에도 해야 하지만 무엇보다도 예배 시간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초대교회부터 모든 성도들은 다른 모든 시간보다도 예배 시간에 찬송과 기도에 힘썼습니다. 또한 죄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성령으로만 예배드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노력과 정성으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과 그리스도 예수의 피를 힘입어 예배하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들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그 누구도 마음대로 뺄 수 없는 것들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진리 안에서 예배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절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배의 형식이 뭐가 중요하냐? 정신이 중요하지.”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예배는 중요하지 않아.” 과연 이 말이 맞습니까? 하다 못해 불신자들이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에도 방식이 있습니다. 올려야 할 음식도 정해져 있습니다. 불교나 이슬람교도 나름대로의 방법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의 방법에 대해서 불만을 갖지 않습니다. “형식이 뭐가 중요하냐? 정신이 중요하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우리의 정신만 받아 주세요. 우리 마음대로 예배할께요.” 라고 말해야 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예배의 방식도 정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이 이 사실을 강조합니다. “진리 안에서 예배할지니라”(You must worship in truth).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고백
이 사실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1장 1절과 5절에서도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8)
제 21 장 종교적 예배와 안식일에 관하여
Of Religious Worship and the Sabbath-day
1. 본성의 빛the light of nature은 만물에 대한 주권lordship과 통치권sovereignty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분은 선하시며 만물에게 선을 행하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인간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그를 경외해야 하며 사랑해야 하며 찬양해야 하며 찾아야 하며 신뢰해야 하며 섬겨야 한다.1) 그러나 참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합당한 방법the acceptable way은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해 주신 것으로, 그분의 계시된 뜻에 의하여 한정된다limited by his own revealed will. 그러므로 인간의 상상imaginations이나 고안devices 또는 사탄의 제안suggestions에 따라 눈에 보이는 사물visible representation을 사용하거나 성경에 지시되어 있지 않은not prescribed 다른 방법으로 하나님을 예배해서는 안된다may not.2)
1) 수 24:14, 시 18:3,31:28,62:8,119:68, 렘 10:7, 막 12:33, 행 17:24, 롬 1:20,10:12. 2) 출 20:4-6, 신 4:15-20,12:32, 마 4:9-10,15:9, 행 17:25, 골 2:23.
5. 하나님께 드리는 통상적인 예배에는 여러 가지 요소들이 존재한다. 거기에는 경건한 성경낭독과17) 건전한 설교,18) 그리고 분별력과 믿음과 경외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성실하게 들음으로써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자세를 가진 성도들이 있어야 한다.19) 그들은 마음에서부터 은혜로 시편을 노래해야 하며singing of psalms with grace in the heart,20) 그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성례가 합당하게 시행되어 성도들이 그에 온전히 참여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이 모든 요소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통상적인 예배에 있어야할 내용들이다.21) 이 밖에 특별한 경우에는 신앙적인 맹세와22) 서약,23) 엄숙한 금식,24) 특별한 감사25) 등이 예배의 요소에 포함될 수 있다. 이런 요소들과 더불어 예배를 드릴 경우에도 절차에 따라 경건하고 신앙적인 방식으로 행해져야 한다.26)
17) 행 15:21, 계 1:3. 18) 딤후 4:2. 19) 사 66:2, 마 13:19, 행 10:33, 히 4:2, 약 1:22. 20) 엡 5:19, 골 3:16, 약 5:13. 21) 마 28:19, 행 2:42, 고전 11:23-29. 22) 신 6:13, 느 10:29. 23) 전 5:4-5, 사 19:21. 24) 에 4:16, 욜 2:12, 마 9:15, 고전 7:5. 25) 에 9:22, 시 107편. 26) 히 12:28.
이러한 고백에 따라 역사상 존재했던 경건한 정통 개혁파 장로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예배의 요소만을 사용하려고 했습니다. 예배 안에 마음대로 다른 것들을 집어 넣지 않았습니다. 오직 성경의 원리에 따랐습니다. 예배에 있어서의 규정적 원리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리하여 무엇보다도 성경낭독과 설교를 강조했습니다. 그것을 잘 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한 성례와 찬송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적으로 근거가 없는 것들은 모두 제거하고 예배하는 원칙에 매우 충실했습니다.9)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지금 드리는 이 방식대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마음대로 정한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대로 정한 것입니다.
한국장로교회의 현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장로교회는 “전통적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을 우리의 신조로 한다”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이 부분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도 그렇듯이 대부분이 십계명에 대한 가르침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보니, 모두가 자기들 마음대로 예배의 형식을 꾸미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해 주신 그 뜻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마음대로 자기가 기분 좋은대로 예배하는 것이 오늘날의 시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리면서 왜 이렇게 드리는 지에 관심도 없고 그 근거를 찾으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제2계명이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제2계명은 오늘날도 여전히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 하나님이 정하신 방식에 따라 예배하라.” 그러므로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우리의 예배가 예배되는 것은 어떤 외적인 것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하는 장소, 예배시간의 길이, 예배에 사용되는 물건들의 가격, 우리가 드리는 헌금의 액수가 예배의 예배됨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는 화려한가 아닌가 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따라 하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습니다.
참된 예배란
참된 예배란 외형적인 것을 통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배 가운데 참된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는지, 그리고 진리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 그것을 성도들이 어떻게 듣는지, 비록 적은 헌금이라 할지라도 그 헌금이 헌금의 성격대로 드려지고 또한 사용되는지가 예배의 예배됨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진리대로 예배가 이루어졌느냐 하는 것에 따라 영이신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영이 아니시라면 예배는 진리를 따라가 아니라 외적인 것에 의해 좌우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진리를 따라 할 때에만 참으로 받으실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느끼기에는 예배를 드린 것 같은지 아닌지 잘 모른다 할지라도 그것과 상관 없이 성령으로,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렸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른 예배인 것입니다. 우리가 기분이 좋고 우리가 느끼기에 적당하다고 여겨지는 그런 방법이 아니라 오직 성경이 말하는 방식대로 하는 예배, 그것이 바로 제2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결말
제2계명의 2가지 측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96문답)
이처럼 제2계명은 우리에게 2가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너희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을 형상화하지 말고, 그것으로 예배하지 말라”입니다.10) 그러므로 우리가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형상화하지 않는 것입니다. 절대로 하나님을 형상화하려고 해도 안되고, 예수님 그림도 중요하게 여기면 안됩니다. 아마 여러분들 중에 그렇게 하려고 마음 먹은 사람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역사와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 그러한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도 가톨릭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여전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실을 꼭 기억하고 그런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나머지 한 가지는 무엇이냐? 오늘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예배할 때에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당신의 진리인 성경에서 말씀하신 방법으로 예배하라”입니다.11)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대로 예배해서는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대로 예배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과 진리 안에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개혁주의 예배의 회복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의 예배는 영과 진리 안에서 드리는 예배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좋아하는 방식의 예배입니까? 과연 여러분들은 진리 안에서 드리는 예배를 추구하십니까? 예배가 예배되는 것은 인간의 어떤 열광적인 열정이나 어떤 진정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크게 소리 질러야 받으시고, 화려한 악기를 사용해야 예배가 예배되는 것이 아닙니다.12) 성경이 말하는 예배,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 개혁주의 예배는 진리 안에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우리교회가 지향해야 할 예배는 바로 이러한 예배입니다. 그래서 우리교회의 소개문에는 “우리는 삼위 하나님께 예배드림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명령하고 있는 것만을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적 원리에 충실해야 함을 믿는다. 따라서 한국교회에서 관행적으로 행해지는 각종 예배는 시행하지 않는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 교회에 속한 모든 이들의 고백이 되어, 우리교회가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방법대로 예배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리라”(요4:23).
1) 이승구, “성경적 공예배를 지향하며”, in 『한국교회가 나아갈 길: 기독교 세계관적 교회론 탐구』(서울: SFC, 2007), 42. 침례교 신학자인 웨인 그루뎀은 “성령 안에서”라는 의미보다는 “영적인 세계에서, 영적인 활동으로”라고 본다. Wayne Grudem, Systematic Theology: An Introduction to Biblical Doctrine (Grand Rapids: Zondervan, 1994), 노진준 옮김, 『조직신학(하)』(서울: 은성, 1997), 259. 그러나 이러한 해석은 썩 바람직하지 않다.
2) Jochem Douma, De Tien Geboden: Handreiking voor het Christelijk leven (Kampen: Van den Berg, 1992), trans by Nelson D. Kloosterman, The Ten Commandments: Manual for the Christian Life. (Phillipsburg: P&R, 1996). 35.
3) Bruce Milne, The Message of John: Here is your King (Leicester: IVP, 1993), 정옥배 옮김, 『요한복음 강해: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울: IVP, 1995), 113.
4) 이승구, “성경적 공예배를 지향하며”, 43.
5) Robert L. Reymond, A New Systematic Theology of the Christian Faith (Nashville: Thomas Nelson, 1998), 869.
6) Milne, 『요한복음 강해』, 115.
7) 최근에 번역된 책 가운데 설교를 다루는 다음의 책에서는 이 부분을 아주 잘 강조하고 있다. R. Albert Mohler, Jr., He is Not Silent (Chicago: Moody, 2008), 김병하 옮김, 『말씀하시는 하나님』(서울: 부흥과개혁사, 2010), 34.
8) Frame은 2계명을 설명하면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벡서 제21장 제1절을 언급한다. John M. Frame, The Doctrine of the Christian Life (Phillipsburg: P&R, 2008), 465.
9) John Murray, “Worship”, in Collected Writings of John Murray, vol 1: The Claims of Truth (Edinburgh: The Banner of Truth Trust, 1976), 박문재 역, 『조직신학 Ⅰ』(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1991), 166; Institutes, Ⅳ, ⅹ, 30.
10) John I. Durham, Exodus, WBC, (Waco: Word, 1987), 손석태 역, 『출애굽기』(서울: 솔로몬, 2000), 475.
11) Frame, The Doctrine of the Christian Life, 464.
12) Stephen Charnock, Discourses upon the Existence and Attributes of God (Grand Rapids: Baker, 1853, 1996),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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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위 설교문은 우리 한길교회의 소개문에 나오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예배에 있어서의 규정적 원리'(http://cafe.daum.net/hgpch/L8PZ/27)를 설명하고 있는 설교문이기에 여기에 올려둡니다.
'예배에 대한 규정적 원리'(regulative principle of worship)에 대해서는 본 카페에 있는 http://cafe.daum.net/hgpch/MDME/14 의 글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