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 이석훈 주연 : 황정민, 엄정화, 이한위, 정성화 개봉 : 2012년 1월 18일 관람 : 2012년 1월 18일 등급 : 12세 관람가
이 모든 것이 내가 [댄싱퀸]을 보기 위한 운명이었다.
며칠전 저는 [결정적 한방]이라는 영화를 봤습니다. 정치 코미디라는 우리 영화계에서는 조금은 낯선 장르를 취한 [결정적 한방]은 조금은 엉뚱하지만 청렴결백한 장관 이한국의 좌충우돌 활약상과 그의 가족사를 담아 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 한방]은 정치 코미디라는 장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드러난 우리나라의 정치 현실은 고속도로 공사를 위해 뒷돈을 받는 여당의 최고의원의 비리에 의해 소심하게 그려졌고, 이를 향한 이한국의 '결정적 한방'은 어이가 없기만 했습니다. 그 다음날 저는 [Mr. 아이돌]을 봤습니다. 우리나라를 휩쓸고 있는 아이돌 열풍에 기댄 이 영화는 아이돌의 탄생을 그려 나가는 영화였습니다. 하지만 캐릭터는 부실했고, 에피소드는 난데없었으며, 결말은 뻔했습니다. 제가 갑자기 이 두편의 영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댄싱퀸]을 봤기 때문입니다. 인권 변호사인 정민(황정민)이 얼떨결에 서울 시장 후보가 되고, 하필 그와 비슷한 시기에 그의 아내 정화(엄정화)는 섹시한 성인돌 가수로 데뷔를 앞두면서 벌어지는 소동극입니다. 묘하게 [결정적 한방], [Mr. 아이돌]과 소재가 겹치는 영화라는 사실입니다.
얼떨결에 민주화 투사가 되고, 얼떨결에 용감한 시민이 된 정민은 그 덕분에 서울 시장 후보가 됩니다. 하지만 기존 정치인들은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그가 반갑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그에게 흠집을 내기 위해 달려들고, 그러한 가운데 정민은 많은 것을 깨닫습니다. 이러한 정민의 이야기는 [결정적 한방]과 맞물립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정적 한방]의 정치 이야기는 영화에서 겉돌기만 할 뿐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는데, [댄싱퀸]의 이야기는 영화를 보는 제가 푹 빠져들었을 정도로 정교하게 정치 드라마, 혹은 정치 코미디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냅니다. 젊었을 적 신촌 마돈나로 불리우며 한 인기했던 정화. 이제는 아줌마가 다 되었지만 젊었을 적 꿈인 가수가 되기 위해 다시 의욕을 불태웁니다. 그러한 정화의 이야기는 어쩌면 [Mr. 아이돌]과의 접점을 찾는다는 것이 무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화가 처음엔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던 팀 동료들과 화합하고, 자신의 꿈을 위해 눈물겨운 노력을 하는 장면은 병원 순회 공연으로 스타가 되었다는 [Mr. 아이돌]의 성공담과 비교해서 더욱 현실적이었습니다. [결정적 한방]과 [Mr. 아이돌]을 보며 만족하지 못했던 저는 [댄싱퀸]을 보면서 정민의 이야기에, 정화의 이야기에, 웃고, 눈시울을 붉히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극장을 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당신의 꿈은 무엇이었는가?
어쩌면 제가 [결정적 한방]과 [Mr. 아이돌]에 공감하지 못하고, [댄싱퀸]에 공감을 했던 것은 꿈이라는 이들의 이야기를 한데 엮는 장치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시골에서 서울로 전학온 꼬마 정민은 자신을 소개하는 자리에서 '내 꿈은 대통령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합니다. 이 장면은 정민과 정화의 첫 만남이라는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장면임과 동시에 정민이 어린 시절의 꿈이 대통령임을 밝힘으로서 정민이 정치인인 친구 종찬(정성화)의 꾐에 넘어가 무작정 서울 시장이 되겠다고 나선 것만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가 잊고 살았던 꿈은 결국 정치인이었던 것이죠. 정화의 꿈은 이들이 대학생이 되어 다시 재회한 후에 밝혀집니다. 신촌 마돈나로 불리우며 나이트클럽의 죽순이였던 정화. 그녀는 유명 기획사 사장에게 가수 제의를 받지만 뜻하지 않은 시위에 휩싸이고 자신을 구해주다 머리에 부상을 입은 정민과 결혼하기에 이릅니다. 결혼과 함께 그녀의 꿈은 자연스럽게 묻혀 버린 것입니다. 이석훈 감독이 영리한 것은 바로 이러한 부분입니다. 그는 정민과 정화의 과거 장면을 통해 그들의 인연을 설명함과 동시에 그들에게 어떤 꿈이 있었는지, 그들이 결혼하면서 잊고 살았던 꿈이 무엇이었는지 보여줍니다. 이러한 방식은 이후 정민과 정화가 자신이 꿈을 위해 달려나가는 장면에서 제 공감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댄싱퀸]을 보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 어렸을적 꿈은 무엇이었지?' 분명 회사의 회계담당자는 아니었을텐데 말입니다.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면 저도 다른 아이들처럼 대통령이 되고 싶었고, 만화가도 되고 싶었으며, 고고학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면서는 영화감독, 소설가가 되고 싶었고, 나름 노력도 했었습니다. 어쩌면 제가 블로그에 이렇게 영화 이야기를 올리면서 즐거워하는 것도 그런 중학교 시절의 꿈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비록 저는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월급 봉투에 희망을 안고 실아가는 평범한 직딩이지만, 가슴 속 깊이 묻어둔 중학교 시절의 꿈은 제게 마치 본능처럼 영화를 찾아서 보게 하고, 영화를 보고나면 이렇게 글을 쓰게끔 저를 이끌고 있으니까요. 정민과 정화의 꿈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바쁜 생활 속에서 그들의 꿈은 가슴 속 깊이 묻혀져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계기를 통해 그들은 기회를 얻었고, 그것은 마치 본능처럼 그들에게 꿈을 향해 달려나갈 수 있는 에너지를 전해주는 것이죠. 정민과 정화에게 역경이 찾아오고, 그들은 자신의 꿈으로 인하여 위기를 맞이하지만 그래도 그들을 꿋꿋히 버틸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그러한 가슴 속 깊이 숨어있던 본능과도 같은 꿈의 에너지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꿈에는 귀천이 없더라.
[댄싱퀸]에서 가장 공감이 가는 장면은 정화로 인하여 서울 시장 후보로서의 위기를 맞이한 정민이 정화를 찾아와 가수를 포기하라고 말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 역시 서울시장이라는 정민의 큰 꿈을 위해서 가수라는 정화의 작은 꿈은 포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정화가 정민에게 말합니다. 당신의 꿈만 끔이냐고, 내 꿈은 꿈이 아니냐고... 그 순간 영화 속의 정민 표정처럼 저 역시 한방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정민의 대사처럼 정화의 말은 반론의 여지없이 구구절절하게 맞는 말이었거든요. 가끔 우리는 꿈의 귀천을 따집니다. 어린 아이가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하면 '그래, 꿈이 커서 좋구나.'라고 활짝 웃어주지만, 평범한 아빠가 되고 싶다고 하면 꿈은 크게 가져야지 그게 뭐냐며 윽박을 지르곤 합니다. 꿈은 크게 가져야 한다? 어찌보면 맞는 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꿈의 크기가 아닐 것입니다. 자신이 진정 그것을 원하느냐의 문제인 것이죠. 정화가 정민에게 항의하는 것은 바로 그것입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서울시장의 꿈과 비교해서 가수는 작고 초라합니다. 하지만 정화는 항변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고... 정화의 항변에 정민이 한마디도 못하는 것은 그런 이유입니다.
결국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향해 나갈 것을 선언합니다. 정민은 서울 시장의 길을, 정화는 섹시 가수의 길을... 그런데 문제는 이 두가지가 융합되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이죠. 그러한 사실을 잘 알기에 [댄싱퀸]의 결말은 제게 감동적이었습니다. 서울시장 후보가 되기 위한 전당 대회에서 야유를 받고 계란 세례를 받는 정민은 그제서야 깨달은 것입니다. 자신이 정화에게 했던 말이 당사자에겐 끔찍한 비수가 된다는 것을... 정화의 꿈을 무시하고, 그냥 자신이 이룬 꿈에 묻혀 살라는 것이 정화에게 아픈 상처가 되는 것임을 정민은 깨달은 것입니다. 꿈? 정말 중요하죠. 하지만 소중한 사람이 함께 하지 못하는 꿈이라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 걸까요? 몇 년전 저는 회사를 관두고 잠시나마 영화담당 기자가 되겠다고 몇 군데의 신문사에 이력서를 제출한 적이 있습니다. 그 중 한 군데에서 최종 합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기자에 대한 경력이 전무했던 저는 1년 동안 수습 기자로 월급을 거의 받지 못한다는 현실에 제 꿈을 포기했습니다. 제겐 가정이 있고, 그 가정을 지켜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구피에게 모든 짐을 떠맡기고, 나의 꿈을 향해 달려나갔다면 과연 저는 행복했을까요? 사랑하는 가족에게조차 응원받지 못할 꿈이라면 차라리 없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서울시장 후보를 사퇴하려 했던 정민이 다시 힘을 얻은 것은 바로 정화의 응원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영화의 엔딩은 감동스러웠습니다.
영화적 재미가 충분하다.
[댄싱퀸]은 꿈에 대한 메시지 말고도 영화가 갖추어야할 재미에도 충실히 제 몫을 해냅니다. 우선 코미디 부분인데요... 정민이 얼떨결에 용감한 시민이 되는 과정, 인권 변호사로서의 에피소드, 그리고 절대 고쳐지지 않는 사투리로 인한 웃음 등 [댄싱퀸]은 코미디 영화로서도 꽤 만족스러운 완성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정치 드라마적인 부분도 최소한 [결정적 한방]보다 낫습니다. 낮은 당의 지지도를 인지도가 있는 당외 인물을 끌어들여 만회하려는 민정당의 대표는 '정치는 쇼다'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위기가 있을 때마다 전(前) 대통령의 딸을 내세워 시민들의 관심을 끌어 들이고, 그러한 쇼가 끝나면 다시 원위치로 돌아가는 모 정당의 행태만 봐도 민정당 대표의 말은 충분히 수긍이 갑니다. 이건 영화에서의 이야기가 아니고 현실 정치 그대로의 모습인 셈입니다.
정화의 남편이 민정당의 유력한 서울 시장 후보라는 사실을 알고 연예 기획사 사장은 정화의 방송을 그대로 밀어부치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야기합니다. 이거 관중의 관심좀 끌겠다고... 연예인을 상품화해서 그를 이용해 돈을 벌면 되는 기획사에게는 정민과 정화의 위기는 오히려 좋은 돈벌이가 될 수있는 것이죠. 그러한 모습에서 [댄싱퀸]은 [Mr. 아이돌]보다는 현실적인 연예계의 뒷모습을 담아냅니다. 우리 눈 앞에 펼쳐진 호화찬란한 연예인의 삶과 그에 감춰진 추악한 뒷모습은 연예인의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장치가 없어도 충분히 설명이 된 셈입니다. 오버하지 않은 코믹 장치, 적절히 정치계와 연예계를 풍자하고, 마지막에 가서는 찡한 감동까지 안겨주는 [댄싱퀸]. 일단 설 연휴에 개봉하는 한국 영화의 출발이 꽤 상큼하네요.
나는 블로그를 통해 내 꿈을 이뤄나간다. 그래서 나는 참 행복한 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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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 그 일상의 향기속으로.. 원문보기 글쓴이: 쭈니
첫댓글 저도 너무 재미있게 보았습니다.
기분 전환도 됐구요.요즈음 영화는
재미있는 것이 많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