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고 싶었습니다
♣ 동우인터뷰 ⓶ 김종수 원로회원
“더 높은 목표와 이상의 큰 그림을 그리자”
1958년 봄 어느 날, 강원대학교의 전신인 춘천농과대학 농학과 2학년 김종수 군은 대학 총무과에 볼 일이 있어 대학본관에 들렀다가 우편함에 꽂힌 전국 유수의 대학에서 보내온 신문들을 보고 가슴 속에서 뜨거운 무엇이 솟구치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 대학에도 신문다운 신문이 있어야겠구나!”
당시 춘천농대에는 학생회 격인 학도호국단이 문예반과 함께 만든 교지 수준의 소식지가 있었지만 대학신문의 틀을 갖춘 것은 아니었고, 김종수 선배님은 바로 서무과장으로 근무하던 반옥 교수와 이춘근 교수를 찾아가 지원을 호소하여 강대신문의 전신인 춘천농과대학보를 편집 제작하게 되었다.
“편집실이나 학생기자랄 것도 없이 거의 혼자서 취재하고 원고도 받고 해서 신문을 만들었지요. 그에 비하면 지금은 종합일간지가 부럽지 않을 정도인데, 다만 신문을 만들든 학업이나 어떤 일을 하든 좀 더 큰 목표를 가지고 그걸 이루도록 모든 노력을 쏟아 부었으면 해요.”
반세기 이상 지난 당시의 일을 회상하면서 강대신문 현직기가나 후배들에게 전해 줄 말씀이 있느냐는 질문에 ‘큰 그림을 그리라’고 답하시는 김종수 선배님. 그런데 우연일까? 선배님 자택 거실 벽면 곳곳에 수준 높은 동양화 여러 점이 걸려있다. 그리고 현관 쪽엔 ‘山谷有心’이란 편액이 걸려있는데 선배님께서 쓴 힘찬 휘호였고, 유려한 그림은 사모님께서 그린 동양화 작품이다.
“요즘은 몸이 불편하셔서 붓을 잡은 지 오래 되셨어요. 저도 이런저런 핑계로 취미 생활을 더는 못하겠더라고요.”
아프신 선배님을 살갑게 챙겨주시는 사모님의 눈길이 참 따뜻하면서도 맑고 깊은데, 두 분은 딸 둘과 아들, 이렇게 3남매를 잘 뒷바라지 하셔서 아들은 삼성종합기술원의 전문연구원으로 근무 중이고, 두 딸은 미국으로 건너가 살고 있는데 둘째 딸은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 있는 대학 연구 조교수로 재직 중이라 했다.
“명년 초 동우회 총회 때 꼭 가볼게요.”
비록 한 달에 서너 차례 병원에서 진료를 받으시는 불편한 몸이지만 동우회만큼은 꼭 가보겠다고 약속해 주시는 선배님, 거실 장식장 안에 <자랑스런 강대신문인> 기념패가 그 약속을 헛되이 않겠다는 듯 반듯하게 잘 모셔져 있었다. 【송호필 / 25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