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교구장 임명과 교회개혁
http://www.catholic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066
가뉴 지금여기 – 교회와 세상. 황경훈 입력 2021.12.15 14:49
수도회 출신 교구장과 노사제의 고언
최근 서울대교구장이 임명되었고 이어 착좌식도 끝났다. 코로나 감염병의 위세 아래서도 착좌식에는 상당수 성직자들이 대면으로 직접 참가하고 대부분의 신도는 온라인 중계로 새 교구장 탄생을 지켜보았다. 새로 임명된 교구장은 60대 초반의 젊은 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아빌라의 데레사와 십자가의 요한과 같은 수도회 및 교회쇄신 전통이 빛나는 가르멜회 소속 수도자라는 사실이 두드러져 보인다. 더욱이 한국 천주교회사상 첫 수도회 출신 서울대교구장이라는 점도 이번 신임 교구장 착좌의 의미를 새롭게 한다. 가난과 시대가 요구하는 영성을 직접 몸으로 살아내고자 했던 저 두 성인의 개혁정신을 따라 신임 교구장이 신자유주의와 성직주의에 깊이 침윤된 현 서울대교구와 한국 천주교회 전체를 치유하고 개혁하는 데에 앞장서기를 바란다. 아마도 이런 기대는 진정으로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를 아끼고 사랑하는 신도라면 누구든 품고 있을 바람이지 싶다. 이는 현 교회의 문제점과 가능한 대안을 적시하여 교황대사관에 전달한 한 노사제의 장문의 글에서도 생생히 읽힌다.1) 소개하고 싶은 대목이 많지만 글 전체를 일독하기 바라며, 여기서는 본 칼럼 관련해서만 얘기해 보기로 하자.
먼저 눈길이 가는 곳은 교구가 가난한 이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도록 돕는 데에 소홀할 뿐만 아니라 ‘교구 스스로 양극화의 경제 주체로 활동하고 있다’고 비판한 대목이다. 이어 그는 서울교구가 ‘수익 증대를 위해 신자유주의적이며 오랜 병폐인 재벌의 회사운영방식을 도입해 기관을 재편했다’고 지적하고 재벌의 문어발식 운영방식을 차용한 독점적 운영으로 방대한 규모의 여러 회사를 설립해 교구가 수익의 주체가 되었다고 고발했다. 그 내용이 새롭다고는 할 수 없지만2) 해당 교구의 사제가 제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더욱이 그러한 문제가 있음에도 ‘교구 책임 있는 사목자나 사제 등 누구도 해결방안을 제기하지 않는 현실’을 지적하는 대목은 문제의 핵심을 성직자 지배문화에서 찾는 성찰의 솔직함과 진정성이 엿보인다. 이는 언론, 미디어, 문화 전반 등 교회의 거의 모든 분야를 비전문가 사제가 독점하고 있는 ‘비효율적이고 권위적인 방식의 운용’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며, 또 이 둘의 관계는 일반 언론에서 교구나 교회 전체에 대한 보도를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현상과도 긴밀한 상관을 갖는 것으로 진단한다. 한마디로, 교회의 대 사회적 영향력이 과거보다 현격히 줄어든 것은 교구의 신자유주의적 운영방식 및 성직자 중심적 문화와 필연적 인과관계가 있다고 보는 것이다.
12월 8일 전임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신임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에게 목장을 건네고 있다. (사진 출처 = 서울대교구 홈페이지)
‘사목의 주체’로서의 평신도
노사제는 비판 뒤에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과거 가톨릭이 어떻게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오고 영향을 주었는가에 대한 불교와 개신교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면서, 그는 우리가 익히 들어온 바를 한 번 더 확인시켜 준다. 그에 따르면 그 비결은 교회의 적극적인 사회참여다. 교회가 사회 구성원의 하나로서 ‘고통받는 이웃과 함께하고 전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공공선 또는 공동선에의 투신이야말로 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 비결이라는 것이다. 투신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고 그것의 원인은 무엇인지 등에 관해 배우려는 자세와 실질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그는 이러한 배움과 연구 속에서야 비로소 시대에 맞는 선교나 복음화를 전망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적어도 한국에서는 고전적인 교회의 복음화 분야로 여겼던 교육, 복지, 의료 부문의 헌신과 투자를 요구하는 시대가 저물었으며 복음적 투신의 새 영역을 전망할 때라고 조언한다.
또한 타 종립 대학이나 개신교 신학교에 비해 가톨릭 신학교 교수사제들의 턱없이 부족한 연구실적 문제와 시대에 맞는 신학생 교육을 위한 교과과정 개편, 또 사제의 권위적 태도의 문제, 수도자와 사목을 공유하는 문제 등 교구 내 여러 문제를 지적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 글에서조차 평신도는 단지 사목의 대상으로만 그려지고 있는 점은 무척 아쉽다. 적어도 ‘사제들이 사목을 독점하지 말고 수도자와 함께 공유했으면 한다’는 대목에서는 ‘함께 하는 사목’의 파트너로서 평신도가 고려됐어야 한다고 본다. 2023년에 개최되는 시노드가 전체 하느님의 백성의 공동협력성(synodality)을 중심 주제로 하고 있고, 이를 위해 올해부터 교구와 국가, 대륙별 시노드에 평신도의 참여를 적극 권고하고 있는 마당이니 더욱더 그러하다. 앞에서 밝힌 대로 이 글이 교황대사관에 제출한 문서의 전반부만을 다루고 있기에 뒷부분에서는 평신도 문제를 논의하였기를 기대해 본다.
‘듣는 교회’는 교회개혁의 시작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회 있을 때마다 ‘듣는 교회’(listening church)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3) 듣는 교회는 교황이 ‘복음을 더 분명하게 증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서 “다른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우리를 복음화하도록 내어 맡겨야”( '복음의 기쁨' 121항) 한다고 촉구하는 데서 정점을 이룬다. 위계적 성직주의가 지배적인 현 교회에서, 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복음과 신앙을 새롭게 하는 것은 성직자가 아니라 수도자나 평신도, 심지어는 교회 밖의 사람들이라는 ‘다른 이’를 통해 가능하다는 말로 새겨지기도 한다. 특히 교회와 사회의 “가난한 이들을 통하여 우리 자신이 복음화되도록 하여야”(198항) 하는데, 그것은 “가난한 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를 복음화 시키기”4) 때문이다.
교황의 이런 절규에 가까운 외침은 ‘엘리트 교회’, ‘웰빙 교회’가 되어버린 한국 교회에 매우 낯설지만, 그것을 듣고자 하지 않는다면 회생할 다른 방도가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그렇기에 이 듣는 교회는 생존을 위해서라도 주변화된 사회의 모든 약자들과 가난한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며, 또 때로는 거북하고 고통스럽기까지 한 비판의 목소리라 하더라도 기꺼이 들어야 한다. 그 과정에 들어섰을 때에야 비로소 한국 교회는 듣는 교회로서 첫발을 내딛는 것이며, 저 두 성인의 ‘어둔 밤’과 ‘무(無)’를 통한 하느님과의 하나됨의 체험, 곧 자기를 비우고 밑으로, 밑으로 내려가 마침내 하느님과 일치하는 영적 성숙을 이뤄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신임 교구장이 수도회 출신이라는 사실은 교황을 비롯해 교회개혁을 위해 이 순간에도 고군분투하는 모든 이들의 열정과 간절함에 감응한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한국 교회가 또 한 번의 ‘카이로스’를 맞고 있다고 본다면 지나친 기대라고 할 것인가. 교회 일각에서 여전히 교회 내 단체나 기관을 인가 또는 비인가, 공식 또는 비공식으로 갈라 연대하고자 하는 ‘다른 이’의 손길을 배타적, 차별적으로 거부하는 행태가 여전하다. 하느님나라를 향한 여정을 함께 고민하고 동반하며 연대하고자 함에도, 환대가 아니라 끊임없이 그 자격을 논하며 계속 울타리 밖으로 밀어내는 배제를 당하는 심정은 단순하지 않다. 그것은 신발 깔개처럼 생을 살면서도 보상에 대한 아무런 기대 없이 자신을 순간순간 끊임없이 비워내는 자기비움(kenosis)의 여정, 인고의 과정 그 자체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얕은 감상이나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으면서 연대하고 협력하는 것이야말로, 어쩌면 오늘 한국 평신도에게 주어진 ‘공동합의적 교회상’(synodal church) 구현의 지난한 과제요 ‘함께 걷는 여정’의 한국적 실현의 길이 아닐까.
주
1) 함세웅, “정순택(베드로) 대주교님의 서울교구장 선임을 축하하며, 함께 ‘시대의 징표’를 읽고 기도합니다”, 기쁨과희망사목연구원·천주교정의구현전구사제단 편 '선포와 봉사' 140권(2021.11), 6-29쪽. ‘한국교회와 서울교구에 대한 사목적 성찰과 제언’이라는 제하의 이 문서는 작년 9월 교황대사관에 전달되었다고 해당 글의 각주에 표기되어 있다. 이 글은 문서 전체의 ‘전반부’에 해당한다고 밝히고 있음에도 이미 24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교구내 여러 문제를 비판적으로 살피고 실현 가능한 제안을 담았다.
2) 이미 10년 전에 다음과 같은 글에서 이 주제를 다뤘다. 한상봉, ''평화상조' 광고 팜플릿, 정진석 추기경과 주교들이 대거 홍보에 나서',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2011.10.20; 황경훈, '장사꾼 교회와 과부의 헌금', <갈라진 시대의 기쁜소식> 통권 995호(2011.10), 26-29.
3) Pope Francis, “Pope Calls for a ‘Listening Church’”, America (17 October 2015).
4) 프란치스코 교황, '제5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 2021.11.14. 2항.
황경훈
우리신학연구소 아시아평화연대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