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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지맥 1구간
2011. 5. 1 (일)
산길 : 견내량~금산치
거리 : 14.8km
구간거리
견내량~0.8~시래산~1.9~폐왕성~3.0~거치~3.0~개금치~1.7~백암산~2.6~팥골재~1.8~김형령재
(탈출) 심적사 1.3km (25분)
Cartographic Length 17.9km Total Time: 07:20
신구 거제대교와 견내량마을
토, 일 이틀간 거제로 출퇴근 하려했는데, 토요일 회사 체육대회에 또 이 몸이 간택 되었다. 그것도 축구 후보선수로. 다행인지 불행인지 비가 오는 바람에 축구는 취소되고 실내에서 족구 피구 줄다리기 등으로만 진행되었는데 관중석에서 고함만 질러대다가 막판에 운좋게 경품하나 당첨되었으니 일당은 한 셈이다.
일요일은 비는 그쳤지만 올 들어 최악의 황사예보가 내렸다. 비가 안온게 한편으론 다행스럽지만 섬 산행의 백미라 할 바다 조망이 막히니 썩 재미있는 산행이 못되었다. 폐왕성에서 보는 산방산의 형상이 아주 멋질 것 같은데 뿌연 윤곽만 바라본게 못내 아쉽다. 다음번엔 조은날 골라서 떠나야겠다.
거가대교가 개통이 되니 부산에서 거제는 1시간이 안 걸린다. 사상터미널에서 6,700원 주고 표를 끊었는데 가다가 지하철 1호선 신평역 앞에 한번 선다. 알고 보니 신평에서 고현까지는 5,700원이더라. 미리 알았더라면 오매가매 2,000원을 절약할 수 있었는데.
고현터미널 내려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고현터미널은 시내-시외버스 같이 있다) 우연히 ‘오빠’를 만난다. 예맥에서 춘천지맥 같이 한 후 처음인가. 거제산줄기는 이미 다 떼고 오늘은 대금산에 두릅따러 간단다. 40번 시내버스를 타고 30여분 달려 신거제대교 다음 정류장인 오량초등학교 앞에 내렸다.
06:40 사상터미널
07:50 거제터미널
08:30 오량초등학교
08:59 은성암
09:15 시래산(始來山)
10:15 ×330(폐왕성)
10:48 ×434m (산불초소)
11:37 거치(巨峙)
12:27 개금치
13:43 백암산 (495m)
15:00 팥골재
15:35 금산치
15:53 심적사
15:57 14번국도 (수창아파트)
견내량(見乃梁)
“다음 내리실 곳은 오량초등학교입니다” 방송에 얼른 빨간 버튼을 눌렀다. 거제시 사등면 덕호리 14번국도다. 내려서 보니 건너편에 있는 버스정류장 명칭이 ‘견내량’이다. 견내량은 산경표 교도들에게는 거제지맥이 육지의 산줄기를 이어받는 곳이라는 의미와 함께 역사적으로는 한산도대첩이라는 불멸의 정신이 스민 곳이다.
한산도 대첩
1592년(선조25년) 7월18일 이순신 장군은 견내량에 집결해 있던 왜장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가 이끄는 73척의 함대를 한산도 넓은 앞바다로 유인해 내고, 학익진(鶴翼陣)을 펼쳐 왜군을 몰살시켰다. 세계 해전사상 유례가 없는 대 해전이다. 왜선 59척이 침몰하고 9천여 명의 왜군이 전사했다. 이 해전 이후 (1593년8월)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해군참모총장)에 오르고 본영을 한산도로 옮겼다.
지난 주 KBS역사스페셜에서 ‘학익진’에 대하여 심도있게 재조명 하는걸 관심있게 봤다. 학이 넓게 날개를 편 듯한 진(陣)인데. 학익진 자체가 우수한 진법이라기보다는 그에 따르는 치명적인 결점을 보완한 이순신 장군의 뛰어난 기술과 전략이 승패를 가르는 핵심이었다. 회전이 용이한 판옥선에 포의 연속적인 발포를 위하여 배 사방으로 포를 배치했고, 근거리 육박전에 강한 왜놈들을 우리 배에 쉽게 오르지 못하도록 한 조선기술과 전술 등. 세계 해군사에 길이 연구과제로 남아 오히려 우리보다 외국에서 더 깊은 연구가 이루어 지는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외국 대학에서도 교제로 채택한 "Nanjung Ilgi",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나. 깊이 새겨볼 일이다.
개 눈에는 똥밖에 안 보인다고, 양쪽 대교 사이에 시래산에서 내려온 능선이 마루금을 이루는 고개가 보인다. 해발은 30m 밖에 안되는 곳이다만 올라가니 ‘견내량주유소’. 마침 신호가 오길래 개방화장실을 잠시 이용했다. 똥 누고나면 생각이 바뀐다고, 이제 커피 생각이 동하지만 점잖은 화장으로 감지덕지하자. 무리한 요구는 화를 불러 올 수가 있느니.
고개 너머 우측은 대덕사(태고종), 왼편에는 전원주택단지와 [은성사] 간판이 있다. 전원주택단지로 올라가면 되는데, 혹시나 싶은 눈치가 보여 옆 샛길을 통해 들어가니 전원주택을 통해 올라 온 시멘트길과 만나고 계속 올라가면 은성암이다.
[은성사]
은성암
은성암 (160m)
법당 하나에 요사채 한 채가 전부인 자그만 암자다. 아래쪽 국도변에 요란하게 연등을 내건 대덕사에 비하면 초라할 정도다만 오히려 더 절다운 절이다.
[시래산 등산로 0.52km] 팻말이 붙어있고 길은 활짝 열려있다. 고요한 적막을 감히 건드리지 못하고 산길로 올라가면 원두막 한 채가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신, 구 거제대교를 좌우에 두고 가운데 견내량 마을과 해협이 잘 보인다. 강(?) 건너 마을은 통영 신촌마을이다.
시래산을 향해 오르는 길은 우측으로 비켜나더니만 두 봉우리 사이의 안부로 올라선다. 시래산은 좌측이고 갔다가 내려와야 될 모양이다.
시래산 (始來山 264m △충무421)
처음 始 올 來 시래산. 육지로부터 처음 이어진 산이라. 거제지맥이 여기서 시작됨을 이름으로 말하고 있다. 운동기구와 삼각점이 있는데 자그만 정상석 하나 놓았으면 더 좋겠다. 견내량 바다 한번 더 내려다보고 되돌아 내려간다.
시래산 남봉(×257m)
안부에서 살짝 올라서면 견내량이 잘 보이는 전망바위를 지나고, 운동기구와 돌탑 2개가 있는 시래산 남봉이다. 여기서 둔덕면계를 접하면서 면계를 따라 왼쪽으로 내려간다.
안부로 푹 꺼졌다가 다시 솟은 폐왕성과 왼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역광으로 윤곽만 드러나고 아스라이 철탑이 있는 봉이 계룡산인지 온 하늘이 황사로 뒤덮혀 뿌옇기만 하다.
시래산
견내량
시래산 남봉
임도 (97m)
남봉에서 내려가는 길은 숲 사이로 겨우 열린 좁은 길이라 거미줄이 막 걸린다. 새잎 나기 무섭게 거미줄도 따라 나온다. 철탑을 지나 내려서면 잔자갈이 깔린 임도다. 오량에서 거림으로 넘어 가는 깨끗한 임도인데 지도에는 점선으로 표시되어 있다. 고도 100이 채 안되니 새로 산행을 시작하는 기분이다.
오르막은 순하다. 옻나무순과 두릅순이 비전문가인 내 눈에는 같은 놈으로 보인다. 새로 난 여린 이파리의 색감이 참 곱다. 뚜렷한 길을 따라 오르면 능선마루금에서 우측으로 조금 비껴난 사면으로 길이 나 있다가 왼쪽으로 능선을 넘어가고, 곧장 왼쪽 사면으로 들어간다.
그대로 길을 따르면 앞봉우리 생략하고 질러가겠는데, 평소 같으면 얼씨구나 할 일이다만 ‘폐왕성’이 뭔지 안 가볼 수가 있나. 우측으로 능선에 올라서고 잠시 나아가니 이제는 우측으로 치우친다. 이것도 아니다 싶어 다시 왼쪽으로 나뭇가지를 밀어내며 마루금을 찾아 올라서보지만 길이 없다.
나중에 확인해본 바로는 우측으로 치우쳐 가는 길은 별학산, 안치봉으로 가는 길이었다. 찾아 올라선 마루금에는 길이 있는둥 마는둥 하다가 성벽이었던지 돌담이 이어지는데 그 돌담을 따라 올라갈 수밖에 따로 길은 보이지 않는다. 이어 쏟아 부은 듯한 너덜이 나오고 올라서니 폐왕성 성벽 위다.
폐왕성에서 보는 시래산
×330m (폐왕성 廢王城)
정중부의 난(1170)에 의해 폐위된 고려 의종(毅宗 1146~1170)이 거제도로 유배를 와 살았던 곳이란다. 지맥은 왼쪽(동)이지만 가지런히 정비된 성벽이 나있는데 아니 둘러볼 수가 있나. 우측 아래로 나있는 길을 따라 내려가면 성을 한 바퀴 돌게되고, 그 가운데 폐왕성 집수지(연못)가 있다. 성벽에 앉아 떡 한 조각 먹고 간다. 뫼산(山)자 형상이라는 산방산의 윤곽이 희미하게 나타난다.
폐왕성 집수지
폐왕성지
×434m (우두봉)
임도 [둔덕 거림]
사등면 오량리와 둔덕면 거림리를 연결하는 비포장 이지만 상태가 양호하다. 잘 닦인 등산로 따라 올라간다. 돌아보면 폐왕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434m (우두봉)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무인감시탑에 카메라가 돌아간다. 산방기간이 끝났음인지 근무자는 없고 초소 앞에 TV안테나를 꽂아놓고 안에는 전기장판, 라디오에 TV도 들여놨다. 여기 근무자는 산꼭대기에서도 문화생활을 영위한 모양이라.
초소 외벽에 [우두봉]이라 써있고, 앞쪽 바위 위에 비석이 있어 가보니 [우국지사 현풍곽씨 우두봉 제성바위 上座]라 새겨져 있다. 거제시지에 나오는 우두봉이 여긴가.
세찬 바람에 몸이 밀린다. 황사먼지 섞인 바람이라 몸을 내밀기 겁난다. 통신탑 울타리 뒤로 돌아가면 활공장 흔적이 있고 건너편에 볼록솟은 봉은 ×195봉이다. 억새 능선길로 이어진다.
황사에 묻힌 산방산
폐왕성지
우두봉
×428봉에는 바위에 매직으로 ‘할미봉411.2m’ 써놨다. 산방산으로 눈길이 자주간다. 깨끗한 모습을 못 보는게 못내 아쉽다. 이어지는 ×411봉에도 역시 매직으로 ‘할미봉411.2m’라 쓴 돌을 바위에 세워놓았다. 순탄하고 부드러운 능선길을 각시붓꽃, 양지꽃, 제비꽃들이 수를 놓았다. ×273봉에는 '황봉276.5m'라 적혀 있고, 33번 송전철탑을 지나고는 한참동안 고도를 떨군다.
거치(巨峙 215m)
우측이 둔덕면 시목리인데 이 임도는 개금치까지 이어진다. 거림리로 내려가는 길이라 거치가 되었나. 건너편 묘가 들머리이겠다만 하늘도 뿌옇기만 하고, 일단은 임도 분위기가 맘에 들어 ‘임도탐구’에 나서기로 한다.
산방산
임도탐구
황토길 임도를 따라 10분을 가니 아랫마을로 내려가는 삼거리가 나오고, 여기부터는 비탈길이 되면서 시멘트 포장길이다. 노출된 시멘트 길을 걷노라니 임도를 택한게 후회도 된다만 아직은 갈길이 멀다. 삼거리에서 20분 후 임도가 마루금에 바짝 붙는곳이라 능선에 올라섰다. 폭신한 흙이 역시 좋다.
×338봉에는 송전철탑이 있고, 12시 시보가 이미 울렸지만 적당한 자리가 보이지 않는다. 왼쪽 열린 골짜기를 통해 사등저수지와 바다가 보이고 건너편 산이 희미한데 방향을 맞춰보니 앵산(508.2m)이다.
임도 삼거리
임도에서 마루금으로
돌아앉는 산방산
사등저수지
개금치
개금치(285m)
사등면과 둔덕면을 잇는 2차선 도로에 꾸준히 차가 넘어 다닌다. 길 건너편 우측 아래 철망이 사람이 지나다닐 만하게 열려있고 로프도 메여있다. 능선에 올라서고 아래쪽 도로가 보이는 곳에 앉아 점심을 먹고 간다.(12:35~12:55)
앞에 세모꼴로 솟은 봉우리가 백암산인가 싶었더니 오르고보니 ×452봉이다. 성터가 있었던지 돌담이 이어지다가, 문득 예상못한 삼각점이 나온다.
점심
×452봉
난데없는 삼각점
거제309 2002재설
삼각점 △거제309 (2002재설)
고도는 350m쯤 되는 봉우리라 할만한 데도 아니고, 지도에는 표기가 없는 삼각점이다. 삼각점에 음각된 글씨가 다소 짝퉁냄새가 난다 싶었는데 잠시 후 오른 백암산의 삼각점과 번호가 동일하다.
아래쪽에서 삼각형으로 보이던 ×452봉에 올라서면 지나 온 산줄기와 양쪽으로 휘도는 개금치 도로가 잘 보인다. 다소 희미하던 길은 우측에 철탑 길을 만나면서 넓어진다.
백암산 (495m△거제309 1986복구)
사등-둔덕-거제면이 갈라지는 삼면봉이다. 숲이 둘러싸 조망은 없고 정상석도 없다. 삼각점 번호가 452봉 아래에서 본 그것과 동일하다. 재설, 복구년도는 다르지만 도엽명과 번호가 동일한 이런거는 처음 본다. 둘 중 하나는 잘못된게 분명하다. 혼자 구시렁거리고 앉아있는데 남쪽에서 사람들이 올라온다.
오늘 처음 올라선 시래산 이후 능선을 따라 돌담과 축대가 계속해 이어지는데 이는 모두 왜놈들이 쌓은 왜성일 것이다. 고려시대부터 우리나라를 침범한 외적들이 성을 쌓고 장기간 항전을 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특히 남쪽 해안지방에 분포한 성들은 거의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기간 동안 왜놈(일본)들이 근거지를 확보하기 위하여 축조한 성의 흔적 들이다.
울산에서부터 부산 거제 남해안을 따라 순천까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왜성이 있었다하니 거저 놀랍기만 하다. 우리 입장에서야 아픈 기억이니 굳이 찾아내 보존하고 싶지도 않겠기에 애써 공식화 하지 않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만, 거제도에도 기록 또는 현재 유적지로 남아 있는데가 장문포왜성, 송진포왜성, 영등포왜성 등이다.
장문포왜성(長門逋倭城)
장문포는 장목의 옛 이름이며 이 항구의 지형은 좁고 길게 생긴 모양 때문에 장문포라고 불렀다. 당시 왜군은 이곳에 성을 쌓고 이순신 장군과 일전을 벌렸다. 난중일기의 기록에 '전선을 이끌고 장문포에 진격하니 왜군은 달아나 숨어서 나오지 않더라"고 나오는데, 바로 장문포왜성을 말함이다. 송진포왜성, 영등포왜성도 장목에 있다.
임진왜란 발발 초기 1~2년 이후에서 부터 정유재란이 터지기까지 상당기간 잠복기가 있는데 이 기간동안 왜놈들은 왜성에서 대치하고 있었을 것이다. 전체 7년의 기간중에 이 기간이 족히 3~4년은 될것인데 이 동안은 저들의 본국에서 물자수급도 그리 원활하지 못했을 것이므로 약탈이나 자급자족으로 살았을까?. 경우에 따라서는 혹, 조선시대의 빨치산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너무 ‘오바’한 것일까? 발에 밟히는 돌담에서 그들의 흔적을 그려낸다는건 내겐 너무 너무 어려운 일이다.
든든한 길잡이
백암산
(거제309 1986복구)
올라 선 방향에서 보면 앞에서 Y자로 갈라지는데 우측은 산방산(옥산치)에서 올라온 길이고, 지맥은 왼쪽으로 내려간다. 잠시 내려오다가 ×452봉 오르기 전 우측 열린쪽으로 송전탑이 있고 리본이 걸려 있는데 아마도 옥산마을로 내려가는 길로 보인다.
송전철탑이 연이어 나오고 1시방향 멀리 공사로 파헤쳐진 봉우리가 보인다. 지맥은 그 뒤쪽이겠다. 다 내려선 안부는 펑퍼짐한데 주황색의 둥근 바가지 같은게 있다. 어구인가 싶어 보았더니 송전선에 매달린 둥근 공이 떨어진 모양이다.
×404봉에는 거대한 돌무덤 형태로 둥글게 쌓았는데 뚫린 구멍으로 안을 들여다봐도 보이지는 않는다.
깨진바위를 우측으로 돌아 지나고, ×398봉 계단길따라 내려가서는 우측 아래로 떨어진다. 능선이 맞나 싶을 정도의 비스듬한 사면길이다. 돌담이 이어지다가 넓은 묘터에서는 왼쪽으로 돌담을 넘어가는 길을 못보고 정면 숲에서 잠시 우왕좌왕 했다.
73번 철탑을 지나면 임도가 우측 가까이 붙었다가 멀어진다. ×226봉을 지나면 숲길이 다소 거칠어진다. 이리저리 구불구불 돌면서 내려가면 김해김공 묘터이고 아래 아스팔트 도로다.
골프장 조성공사
팥골재 = 옥산고개
팥골재 (130m)
사등면과 거제면의 경계 삼거리에 버스정류장 명칭은 ‘옥산고개’라 붙어있고 교통량도 상당하다. 남은거리를 가늠해 보니 계룡산을 넘기 어렵다면 여기서 끊는게 여러모로 좋겠다마는 아직 해는 중천에 있고 귀가에 대한 걱정이 없는지라 조금이라도 더 가보자 싶다.
우측으로 두 갈래 갈라지고 건너 정면으로 들어가는 길 역시 아스팔트다. 입구에 [계룡산4.4km] 팻말이 있다. 팻말에 적힌 ‘임도2.2 + 등산로2.2’ 하면 4.4가 되는데, 임도는 금산치까지를 말하는 모양이다. 지난 산행기들을 보면 동물농장 출입구라는데 그런거는 보이지 않는다.
아스팔트 깔린 임도를 10분 가면 삼거리다. 왼쪽은 자갈길 우측은 아스팔트도로에, 지맥은 가운데 능선이다. 정면 산길을 살펴보니 나무마다 번호표가 달려있고 비닐테프를 둘러놓고 [위험 발파중] 간판에 어수선해 올라서기가 망설여진다. 우측도로로 들어간다.
분묘이장 안내문을 들여다보니 “거제 다원대중골프장 조성사업을 하니 조은말 할 때 묘를 옮기라”는 내용이다. 알고보니 여기도 골프장일쎄... 좁은 길에 덤프트럭이 오르내리고 양 옆에 굵직한 편백나무는 모두 쓰러졌다.
금산치
금산치(262m)
예전 동물농장 건물은 공사 현장사무소로 변했고, 지형도의 △356.2봉과 옥산동물농장이 표기된 봉우리는 이미 다 밀려 속살을 벌겋게 드러내고 있다. 마루금에 올라서니 시멘트길이 김형령재쪽으로 올라간다. 더 올라가봐야 하산할 거리만 멀어지니 여기서 내려가자. 왼쪽 숲을 통해 내려가니 바로 아래 편백나무 울창한 숲길 임도다.
심적사계곡 (물 맞는 약수골)
이 임도는 김형령재(김실령고개)로 연결이 되니, 더 진행했어도 여기로 내려오게 되어있다. 한 구비 돌아가니 왼쪽아래 개울에 심적사 산신각이 있고 [물 맞는 약수골] 이란다.
심적사
하늘 위를 지나는 고가도로 아래로 내려오니 심적사 앞이고, [계룡산 일반등산로 심적사코스] 안내도가 있다. 얼떨결에 탈출한 길이 계룡산 일반등산로였다. 수창프라임시티 아파트를 돌아 내려가면 14번 국도다.
14번국도
4차선 대로변에 버스정류장은 [수창아파트], 버스를 기다리고 있노라니 택시 하나가 실실 눈치를 보며 다가온다.
고현터미널까지 2.6km에 3,300원 나왔다.
김형령재로 가는 길
산림욕장
계룡산 일반등산로다
심적사
14번 국도 [수창아파트]
사상에서 거제
거제에서 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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