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당선> 미 대선 역사 새로 쓴 대장정
2년간 극적반전 거듭 `이변없는 이변의 역사' 일궈
(워싱턴=연합뉴스) 김재홍 특파원 = 민주와 공화 양당의 대선 후보들이 작년 1월 출마를 공식화하면서 시작된, 약 2년에 걸친 극적 반전이 연속된 대장정이 4일 오바마 후보가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막을 내렸다.
마치 대하드라마와도 같았던 이번 대선은 미국 역사상 최초로 여성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과 흑백혼혈인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이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도전장을 내면서 초반부터 역대 어느 선거보다 뜨거운 관심을 모았다.
그만큼 대선 후보를 선정하는 프라이머리(예비선거)와 코커스(당원대회) 참여율도 높았고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결과는 막판까지 승자를 가늠하기 어려운 피를 말리는 상황이 계속됐다.
민주당의 대선후보 경선과정은 성(性)과 인종이라는 벽을 넘어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었다는 점에서 미 대선사는 물론 세계 정치사에 길이 남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오바마가 민주당 대선후보가 되면서 대선판도는 미국 최초의 흑백대결이 펼쳐지는 더욱 극적인 구도로 바뀌었다.
이번 대선은 최초의 흑백대결이자 이념과 정책 면에서 진보와 보수로, 연령과 경륜에서도 40대 중반의 신예 정치인과 고희를 넘긴 70대 역전 노장 정치인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후보들 간의 대결이었다는 점도 유권자들을 투표소로 끌어 모으는 기폭제 역할을 하면서 역대 최대 투표율을 기록했다.
조지아 주의 경우 등록 유권자 570만명 중 35%인 200만명 이상이 조기투표를 했다는 것만 봐도 이번 선거의 열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 대선의 승자는 당선과 동시에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 경제위기로 침몰 직전까지 몰린 '미국호'(號)를 구조하는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미국인들의 절박한 인식이 흑백 인종을 넘어선 중대결단을 하도록 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유권자가 가운데 백인이 70%를 넘는 압도적 다수지만 이번만큼은 인종보다 경제적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변화와 희망을 제시하고 국민에게 다가설 수 있는 지도자가 그 어느 때보다도 필요했다는 것이다.
◇누구도 예상못한 흑백대결 구도
오바마는 지난 6월3일 몬태나와 사우스 다코타 주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 5개월간의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레이스에서 승리함으로써 미국 건국 232년 만에 양대 정당의 후보로서 미국 대통령에 도전하는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었다.
경선이 시작됐을 때만 해도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극적 반전이자 초유의 대 사건이었다.
노예로 굴종의 삶을 살아왔던 미국의 흑인들은 물론 아프리카의 흑인들에게까지 벅찬 감동을 줬다.
오바마의 경선 과정은 양대정당의 하나인 민주당의 최초 흑인 대선후보라는 의미만큼이나 극적 반전의 연속이었다.
오바마는 첫 대결이 펼쳐진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힐러리와 존 에드워즈 전 상원의원을 누르고 승리하면서 거센 돌풍을 예고했다. 그리고 공화당의 경선 과정에서 찻잔 속의 태풍에 그치긴 했지만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가 아이오와 코커스에서 1위를 차지하는 대이변을 연출하기도 했다.
뒤이어 열린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서는 힐러리의 눈물에 의외의 반격을 당했다.
힐러리는 뉴햄프셔 승리를 계기로 대세론에 불을 다시 지피며 최대 결전의 장인 `슈퍼 화요일'의 승리를 장담하면서 반격의 수위를 높였다.
또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나선 존 매케인 상원의원은 뉴햄프셔에서 `컴백키즈'로 불리며 화려하게 부활해 공화당 경선에서 유력한 주자로 본격적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오바마는 역대 대선후보 경선에서 사실상 승부를 결정해온 2월5일 슈퍼화요일 22개 주에서 벌어진 대결에서 절반이 넘는 13개 주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본선에서의 경쟁력을 과시했다.
힐러리도 대의원 수가 많은 주에서 오바마를 이겼기 때문에 절대 지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승부는 슈퍼화요일 이후 치러진 루이지애나와 네브래스카, 워싱턴, 메인, 워싱턴DC, 메릴랜드, 버지니아, 위스콘신 등에서 벌어진 예비선거에서 오바마가 거침없는 11연승을 거두며 경선 구도를 결정적으로 유리하게 가져갔다.
힐러리도 절대 만만치 않았다. 벼랑까지 몰렸지만 무서운 뒷심을 발휘하며 오하이오와 텍사스에서 승리함으로써 기사회생을 발판을 마련했고 4월22일 재개된 펜실베이니아에서 다시 한번 압승을 거둬 판세를 되돌리는 듯한 상황까지 몰고 갔다.
하지만, 오바마는 흑인 표밭인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대승을 거두고 인디애나에서 힐러리에게 지긴 했지만 선전함으로써 사실상 경선 승부를 결정지었다.
반면 매케인은 `미니 슈퍼화요일'로 불리는 3월4일 경선에서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일찌감치 본선 후보가 됐다.
매케인은 승리가 확정된 뒤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연설을 통해 "경쟁은 지금부터"라며 '단호하고 확신에 찬' 대국민 설득을 통해 11월 대선에서 대통령에 오를 것이라고 다짐했다.
매케인은 차기 미국 대통령은 어떻게 종파분쟁을 막고 중동의 안정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이라크 전쟁을 조속히 마무리 지을지를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침체위기에 놓인 미국 경제를 회생시켜야 한다며 고용 창출과 감세정책을 강화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본선 대결서도 반전 거듭..이변없는 이변 막 내려
민주와 공화당 전당대회를 계기로 대선 본선이 본격화됐다.
매케인이 부통령 후보로 미 역사상 두 번째로 여성을 선정하면서 극적 반전이 시작됐다.
오바마는 외교와 안보분야의 취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조 바이든 상원외교위원장을 부통령으로 지명한 데 비해 힐러리 패배로 낙심한 여성의 표를 공략하려고 매케인이 44세의 알래스카 여성 주지사 새라 페일린을 러닝메이트로 전격 지명했기 때문이다.
페일린은 부통령 후보에 지명되자마자 `하키 맘' 돌풍을 일으키며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면서 그때까지만 해도 관망하던 핵심지지층인 낙태반대와 총기소지에 찬성하는 공화당지지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이번 대선의 최대 변수로 부상했다.
그리고 매케인이 전국 지지도 조사에서 오바마를 제치며 대선 판세를 요동치게 만들었다.
6월부터 8월초까지 오바마와 매케인의 지지율이 45% 대 39%로 오바마가 매케인을 계속 앞질렀으나 페일린이 등장한 공화당 전당대회가 끝난 직후인 9월초 일부 여론조사에서 매케인이 오바마 후보를 지지율에서 2-3%포인트가량 앞서며 역전의 순간이 시작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대공황 이후 최대 금융위기라는 푹풍은 페일린 바람도 주춤하게 만들었다.
9월 중순 투자은행인 리먼브러더스가 파산보호신청을 하면서 다시 불거진 금융위기가 월스트리트는 물론 국제금융시장을 덮치면서 매케인에게 새로운 반전을 기회를 줬던 페일린 효과를 날려 버렸다.
매케인은 3차례 걸친 TV 토론에서 극적 반전을 노렸지만 오바마의 녹록지 않은 반격 때문에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대신 미 언론들은 오바마가 3대 0으로 판정승을 거뒀다는 평가를 내렸다.
매케인의 최대 공격무기인 외교와 안보 문제가 금융위기에 묻혀 빛을 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신, 오바마는 매케인에게 'KO'펀치를 날리지는 못했지만 금융위기를 부시 행정부의 지난 8년간 정책실패에 대한 심판이며 매케인은 부시 정권의 연장이라는 압박하며 의미 있는 공격 점수를 따면서 승세를 굳혔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따라 미 선거전문가들이나 여론조사에서는 미리부터 오바마의 낙선을 점쳤다.
결국, 여론조사에서 앞선 후보가 승리했다는 점에서 이변이 없었지만 미 최초로 흑인 대통령 당선이라는 이변을 낳은 `이변 없는 이변'으로 이번 대선은 막을 내렸다.
이와 함께 이번 대선은 두 후보가 쏟아부은 선거자금이 역대 최고인 10억달러(약 1조2천600억달러)에 달하는 등 각종 기록을 쏟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