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경육대요령[寶經六大要領]
개요
원불교 초기교서의 하나로서 1932년(원기17)에 발행되었다. 《육대요령》이라고도 약칭한다. ‘보배경전’이라는 존명(尊名)이 부여된 데에서 알 수 있듯이 보배로 삼을 만한 가치가 있는 매우 귀중한 초기교서이다. 《육대요령》을 통해서 원불교의 가장 핵심적인 교리가 구조와 체계를 갖추어서 처음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전에 《불법연구회규약》(1924, 1927)ㆍ《수양연구요론》(1927)ㆍ《불법연구회 통치조단규약》(1931) 등이 저술 활용되었으나 교리를 체계적으로 수록한 최초의 교서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육대요령》이다.
간행과정
《육대요령》은 4×6판 양장본이고 총 100쪽이다. 처음에는 국한문 혼용으로 발행했고 후에 한글 전용으로 인쇄되었다. 다시 말해서 1932년(원기17) 4월 1일에는 식자들을 대상으로 한 국한문 혼용판을 발행했고, 동년 5월 1일에 한글판이 간행되어 겨우 문맹을 면한 대중들의 환영을 받았다. 《육대요령》의 판권사항을 살펴보면 인지 대신에 ‘인도혁신(人道革新)’이라는 글을 새겼으며, 경성 수송동 27번지 선광인쇄소에서 인쇄했다.
형식상 편집 겸 발행인은 이공주이며, 실제적인 편찬은 공의에 따라 전음광이 1년여에 걸쳐 영광에서 전념한 결과 소태산대종사의 친감으로 발행되었다. 《육대요령》을 비롯한 초기교서들의 판권사항에 편집과 발행을 제자들의 이름으로 한 것은 당시 일제의 감시 상황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제자들로서는 소태산의 신분을 보호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양연구요론》의 서론과 《육대요령》의 총론 등에 ‘소태산 지(識)’라는 글이 쓰인 이상, 재론의 여지가 없다.
구성
《육대요령》은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리의 강령을 “1장 인생의 요도 사은사요, 2장 공부의 요도 삼강령 팔조목, 3장 훈련편, 4장 학력고시편, 5장 학위등급편, 6장 사업고시편”으로 집약하여 제시한 최초의 기본 교리서라는 특징이 드러난다. 곧 소태산의 대각에 의한 포부와 경륜을 그대로 반영한 경전이라는 중대한 의의가 있다. 당시 출가 재가 교도들이 대개 유가 출신들이었기에 이를 감안하여 불법의 근본진리를 다 포함하면서 가능한 한 불교의 전문용어를 피한 것 같고, 교단 초창기였기에 교리와 훈련법과 중요한 제도까지 포함시켜 놓은 것이 주목된다.
특히 사은사요, 삼강령 팔조목은 이미 1920년(원기5) 전북 부안군 봉래정사에서 천명하신 교리강령을 더욱 구체화 한 것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자면 《육대요령》의 초안은 원기5년(1920)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아울러 그 내용은 《수양연구요론》에 대부분 실려 있기도 하다. 그 목차를 따라서 주요교리를 살펴보면 속표지 표제 좌우에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라는 개교표어가 있고, 다음 쪽에는 소태산의 진영이 기름을 먹인 종이에 정중하게 가려져 있다. 이는 소태산을 원불교의 교조로서 정중하게 모셨음을 뜻하며, 진영을 오래 보존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개교표어는 《수양연구요론》에 수록된 ‘통만법 명일심(通萬法明一心)’에 이은 두 번째 표어이다. 다시 말하자면 불법연구회의 “자타의 간격성(間隔城)을 타파하고 널니 보고 널니 들어 엇더한 법이든지 올흔 것만 잇으면 다 취해다가 나의 법을 삼으며 또 잘못하난 일을 보아 각자의 후일을 감계(鑑戒)하라”(《월말통신》 제18호, 1929년 2월호)는 지도강령이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로 계승 발전된 것이다. 다음으로 ‘총론’은 현행 《정전》에 수록된 ‘개교의 동기’와 거의 유사한 체제로 구성되어 있어서 원형이라고 할 수 있다.
총론의 일부 단락이 생략되거나 부분적 용어에 차이가 있을 뿐, 대체적인 흐름이 《정전》의 개교의 동기와 거의 같기 때문에 원문이라고 보는 데에는 무리가 없다. 아울러 주목해야 할 바는 ‘교리도’가 처음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육대요령》의 ‘교리도’는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 및 훈련의 조목으로 나누어 신앙 수행 훈련의 세 방면으로 《육대요령》의 교리를 그대로 수록하여 하나의 도표로 제작했다. 여기서 공부의 요도와 훈련법은 인생의 요도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이며, 인생의 요도를 가장 중요시하여 ‘교리도’의 최상단에 자리 잡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육대요령》은 불법연구회 정식 교과서로서 새롭게 출발하려는 의지가 드러난다. 정식 교서의 내용과 체제를 갖춤은 물론이요, 소태산의 진영과 개교표어, 교리도가 상징적 의의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이러한 격식과 형식을 갖춘 것은 불법연구회가 소태산을 중심으로 더욱 강화되고, 교리가 체계화되는 중요한 과정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태산은 각지에 있는 분회 및 출장소의 임원들로 하여금 《육대요령》에 의거하여 각 회원을 장려하는 동시에 성적을 본부에 보고하게 했다.
따라서 불법연구회의 정식 교과서로 영향력이 본격적으로 발휘되었으며, 회원들은 음강(音講), 의지연습(意旨練習), 강연 등 다양한 방법으로 훈련을 시작했다. 《육대요령》의 발행 이후부터 교리형성에 박차가 가해지며, 1932년(원기17) 4월 10일에 《월말통신》의 복간(復刊)에 이어 동년 6월 1일 제호를 바꾼 《월보》의 발간 및 1933년(원기18) 8월 1일에 《회보》의 창간과 함께 교도들의 공부가 매우 활발해졌다. 여기에는 소태산의 법설은 물론이요, 교리해설ㆍ교도들의 감각 감상ㆍ교단소식 등을 실어 교도들의 교리 훈련과 수행에 기여했다.
또한 ‘회설’과 ‘경해(經解)’ 등이 있어서 교리의 체계화와 해석 등이 함께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제1장 인생의 요도’를 살펴보면 《불법연구회규약》에 있어서 본회의 취지 설명에서는 극히 단편적으로만 보이던 천지ㆍ부모ㆍ동포ㆍ법률의 은혜에 대한 간략한 언설이 《육대요령》에서는 인생의 요도 사은으로 체계화되었다. 여기에는 사은 피은의 강령, 피은의 조목, 보은의 강령, 보은의 조목, 배은, 우(右)에 의한 의두해석의 형식으로 나타나 있다. 아울러 여기에 사요를 덧붙이고 있으니 ‘인생의 요도 사요의 내역’에는 ‘남녀권리동일(男女權利同一)ㆍ지우차별(智愚差別)ㆍ무자녀자타자녀교양(無子女者他子女敎養)ㆍ공도헌신자이부사지(公道獻身者以父事之)’로 밝혀져 있어서 오늘날 사요의 구체적인 원형으로 들 수 있다.
다음으로 ‘제2장 공부의 요도’에는 삼강령과 팔조목이 나열되어 있다. 전자는 요지 및 목적으로 설명되어 있고, 후자는 진행조건과 사연조건으로 구분하여 내역을 밝히고 있다. 나아가 ‘삼강령 팔조목으로 공부한 효력’과 ‘인생의 요도와 공부의 요도의 관계’가 제시되어 있다. 여기에서 주목할 바는 정신수양과 사리연구, 작업취사에서의 두 요지가 각각 나뉘어서 설명되고 있다는 점이다. ‘정신의 요지와 수양의 요지, 사의 요지와 리의 요지, 작업의 요지와 취사의 요지’가 그것이다. 이어서 ‘제3장 훈련편’에는 ‘공부의 요도 정기훈련 과목’과 ‘공부의 요도 상시훈련과목’이 구분되어 있고, ‘정기훈련법과 상시훈련법의 관계’가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최초법어’, ‘솔성요론’, ‘삼십계문’이 정리되어 있다.
우선 공부의 요도 정기훈련과목을 보면 삼강령의 정기훈련과목에 대한 해석이 있으며, 공부의 요도 상시훈련과목에서는 상시응용주의사항, 공부인이 교무부에 와서 하는 책임, 상시응용주의사항 각 조의 해석, 상시응용주의사항 각조의 대의, 공부인이 교무부에 와서 하는 책임 각조의 해석, 상시응용주의사항 6조와 교무부에 와서 하는 책임 6조의 관계 등이 열거되어 있으니 교리의 체계화된 모습이 잘 나타난다.
한편 최근에 원불교인의 공부 방법으로 주목받고 있는 일기법을 네 종류로 구별하는 것도 참고할 바가 된다. 각자의 처지에 따라서 선택하여 시행할 공부방법일 뿐인 것이다. ‘제4장 학력고시편’에는 연구과 일기부, 연구과 정기 전문부, 연구과 최고부, 수양과, 취사과 등이 설명되어 있다. 그리고 ‘제5장 학위등급편’에는 보통부, 특신부, 법마상전부, 법강항마부, 출가부, 대각여래부가 있어 오늘날 법위등급과 같은 양상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바는 대각여래부의 승급조항 중에 “동하야도 분별이 착이 없으며 정하야도 분별이 절도에 맞는다”는 내용이 훗날 《불교정전》이 성립될 때 무시선법이라는 새로운 교리로 체계화된다는 것이다. 이어서 ‘제6장 사업고시편’에는 본회 창립한도, 전곡(錢穀)에 대한 등급, 본회 창립요론이 설명되어 있다.
의의
《육대요령》의 특징을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육대요령》은 원불교 교리가 체계적으로 수록된 최초의 교과서이므로 교리의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둘째 《육대요령》은 원불교 교리를 여섯 가지로 정리함으로써 기본구조를 정립함은 물론이요, 체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셋째 대부분 종교의 경전들이 교조의 열반 후에 결집된 사실에 비하여 《육대요령》은 소태산이 친찬했기 때문에 교조의 포부와 경륜이 그대로 반영되었다.
넷째 《육대요령》의 성립과정에 있어서 일제의 특별한 간섭이 없이 이루어짐으로써 소태산의 사상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종합하여 말하자면 소태산은 ‘통만법 명일심(通萬法明一心)’의 견지에 입각하여 유ㆍ불ㆍ도 삼교에 유의하면서 원불교 교리를 제정했으며, 그 내역은 《육대요령》에 잘 나타나고 있다. 그것은 “도덕은 동일하나 그 교리의 주체는 각각 다르다”는 소태산의 법설에서도 확인된다.〈高元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