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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최태호 교수 (덕향문학 심사위원, 중부대학교 교수)
덕향문학 편집국
최태호
경기 여주 출생
점봉초, 성남서중, 성남고 졸업
단국대학교 한문교육학과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 한국어교육학과 졸업 (교육학석사)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문학박사)
현. 한국대학교수협의회 공동대표
현. 한국대학교수연대(노동조합) 공동위원장
현. 중부대학교 교수
저서 : 『한국문학이 제양상』 외 40여 권
논문 : 「구지가고」 외 다수
<우리말 바로 알기> 머리말
『한국어문화문법』이라는 책을 낸 지 5년이 지났다. 그동안 한국어 ‘문화문법’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여 한국어 어휘와 관련된 것, 이해하기 힘든 것 등의 우리말을 신문에 게재해 왔다. 그리고 그동안 쓴 글을 정리하니 A4 용지로 500장이 넘었다. 이 이상 미룰 수가 없어서 이번에 2편을 내고, 곧이어 3편을 내려고 한다. 이번에 출판하는 것은 주로 <프레시안>과 <국민투데이>, <데일리안>에 연재했던 것을 중심으로 하고, 카카오톡으로 아침마다 지인들에게 보낸 ‘헷갈리는 우리말’과 ‘토요일엔 한자놀이’를 정리하였다.
아침마다 보내는 카톡 소리에 잠을 깬 독자들이 많을 것으로 안다. 나이 먹으면 새벽잠이 없어진다고 하는데 참으로 맞는 말인 것 같다. 새벽 다섯시면 일어나서 운동 좀 하고 만 보 걷기 중 일부를 마치고 들어와서 지인들에게 카카오톡으로 문자를 보낸다. 가끔은 “이 방에 어울리지 않으니 나가달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7년 가까이 거의 매일 아침에 지인들을 힘들게 했다.
이번에 <한국어문법2>라는 연작물의 형식으로 ‘우리말 바로 알기’라고 엮어 보았다. 늘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조금 더 잘 쓸 수 있었는데 하는 안타까움은 언제나 따라다닌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다. <프레시안>의 김규철 국장님을 비롯해서, <국민투데이>의 이귀선 대표님께 특별히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의무적으로 쓰게 만들어서 오늘의 책이 완성되었다. 특히 아침마다 시달리며 기다려준 SNS의 독자들에게 감사한다. 한국어(과거에는 국어라고 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이 공부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원래는 한국어라고 하는 것이 맞고,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를 양성하는 것이 한국어학과의 목적임)라는 길을 개척하여 오늘까지 함께 동역자가 되어 준 안 성인숙 교수에게도 감사하고, 20년 가까이 필자를 보좌해주는 박정태 교수, 편집에 교정까지 보살펴 준 이대현 교수에게도 고마움을 전한다.
출판사의 사정도 어려운데 흔쾌히 출판을 허락해준 개미출판 최대순 대표님께도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2022년 1월
최태호 識
1. 돼지 막창이 뭐여?
이순신(1545~1598 ) 장군의 시조에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하는 차에 /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청구영언>라는 것이 있다. 참으로 우국충절과 기개가 넘치는 시다. 이순신 장군의 기개와 전장에 들리는 피리소리(一聲胡笳)가 가슴을 여미게 한다. 종장에 유난히 우국의 정이 묻어난다. 여기서 많은 독자들이 ‘애’가 무엇인지 궁금할 것이다. 흔히 ‘애가 탄다’, ‘애간장이 녹는다’, ‘애를 썩인다’등의 표현이 그것이다. 여기서 ‘애’라고 하는 것은 ‘창자’를 순우리말이다. 창자를 끊는 것 같은 아픔이 전해진다는 뜻이다. ‘애를 끊는 것 같은 아픔’이 있으니 우국의 충심이 이보다 강할 수는 없다. 오래 전의 칼럼에서 필자는 ‘양’에 대해서 논급한 적이 있다. 밥을 먹을 때 “양이 작아서 많이 못 먹는다.”고 해야 맞지 “양이 적어요.”라고 하면 틀린 문장이라고 했다. 제자들과 식당에 가면 필자는 종종 “양껏 먹어.”라고 한다. 여기서 양은 ‘위장(밥통)’이라는 우리말이다. 각자 위장(밥통)의 크기만큼 먹으라는 말이다.
흔히 하는 말 중에 ‘밸(배알)이 꼴리다’는 표현도 많이 쓰는 표현 중의 하나다. 북한에서는 ‘소의 작은창자’를 곱밸이라고 하고 우리 남한에서는 ‘곱창’이라고 한다. 여기서 ‘밸’도 창자를 의미한다. 사전을 찾아보면 ‘배알이 꼴리다 =비위에 거슬려 아니꼽다.’라고 나타나 있다. 하지만 배알은 비장이나 위장을 일컫는 말이 아니고 창자를 지칭하는 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창자가 꼴리고 뒤틀린다는 말이다. 이는 다시 ‘환장(換腸)하겠네’라는 말로도 쓰인다. 환장은 장(창자)이 뒤집힌다는 뜻이다. 서로 다른 듯 하면서 비슷한 용어인데 요즘은 조금 다른 의미로 쓰인다. ‘곱밸’이라는 말은 북한에서 사용하는 말로 ‘곱이 붙은 배알’을 말한다. 흔히 곱창이라고 한다. 여기서 곱은 지방덩어리를 의미한다. 구불구불해서 곱창이 아니고 ‘곱이 많이 붙어 있는 작은 창자’다. 곱창을 보면 지방덩어리가 많이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을 곱이라고 한다. 이 물질이 굳어서 된 덩어리를 곱이라고 한다. 눈곱(눈에서 나오는 진득진득한 액 혹은 그것이 말라붙은 것), 발곱(발톱 밑에 붙어 있는 때), 손곱(손톱 밑에 끼어 있는 때), 손꼽장난(소꿉놀이를 하며 노는 장난의 경기 방언) 등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이를 통해서 보면 곱밸은 곱이 많이 붙어 있는 창자라는 뜻이고, 우리나라의 곱창과 같은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전적으로 보면 배알이 꼴리는 것과 비위가 상하는 것이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지만 사실상 배알은 작은 창자이고, 비위는 비장과 위장을 말하는 것이니 속뜻은 다르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말은 이와 같이 오장육부에 비유한 것이 많다. ‘담력이 좋다. 쓸개빠진 놈’ 등과 같은 말도 결국은 쓸개가 용기와 관련이 있다는 말이다. ‘담력(膽力)’을 쓸개의 힘이라고 번역하는 사람은 없다. ‘겁이 없고 용감한 기운’이라고 풀어야 제맛이 난다. 아마도 한방(韓方)에 쓸개에 배짱과 관련된 역할을 하는 기운이 있는 모양이다. ‘쓸개 빠진 놈’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줏대 없는 사람을 낮잡이 일컫는 말’이다. ‘하는 짓이 줏대가 없고 온당하지 못한 사람을 비난하는 말’이다. 요즘 쓸개 제거 수술한 사람이 많은데 걱정이다.
오늘은 창자 이야기로 시작했으니 계속해서 장기이야기로 진행해 보고자 한다. ‘부아가 난다(노엽거나 분한 마음)’는 말에서 ‘부아’는 허파를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 화가 나면 사람들은 화를 참으려고 숨을 한껏 들이마신다. 그래서 허파가 커지는 것이다. ‘싹이 난다, 풀이 난다’할 때 ‘난다’는 말은 커진다는 뜻이다. 화(火)가 나면 화를 참으려고 숨을 크게 들이켜야 한다. 그것이 부아가 나는 것이다. 막창은 또 어디를 일컫는 말일까? 역시 사전에 의하면 소나 양 같이 되새김질하는 동물의 네 번째 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로 양, 벌집위, 천엽에 이어 맨 마지막 위를 주로 고기로 이를 때 쓰는 말로 홍창이라고 한다. 결국 막창도 양고기(소의 위장)와 비슷한 부위인데, 제일 끝에 있는 네 번째 밥통의 고기인 것이다. 흔히 막창이라고 하면 제일 끝에 있는 창자를 생각하여 항문 부위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전혀 그렇지 않다. 돼지는 되새김질을 하지 않기 때문에 막창이 없다. 그런데 시장에 가면 돼지 막창집이 많으니 어지된 여운인지 모르겠다.
순수한 우리말이 자꾸 변질되고 있음이 안타깝다. 언어는 성장하고 소멸하는 것이지만 그래도 그 의미를 바로 알고 사용하는 민족이 되어야 한다.
2. '염두’와 ‘엄두'
한국어 중에는 한자어에서 유래한 단어들이 많다. 그중에는 한자어가 완전히 한글처럼 변한 것도 있고, 발음이 변해서 다른 의미로 쓰이는 것도 있다. 예컨대 ‘장난꾸러기’라고 할 때의 ‘장난’은 ‘작란(作亂)’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어지럽게 만들어 정신없게 하는 일’을 ‘작란(作亂)’이라고 하는데, 여기서 유래하여 어린아이들의 놀이같이 ‘해칠 생각이 없이 즐겁게 노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변했다. 장난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1.아이들이 재미로 놀이함2.짓궂게 다른 사람을 놀리는 못된 일을 함 3.하찮게 일을 실없이 하거나 심심풀이 삼아 함”(<다음사전>)이라고 되어 있고, ‘작란(作亂)’은 ‘장난의 비표준어’라고 나타나 있다.
이렇게 우리말에는 한자어와 관련된 것이 많은데, 그중에서 ‘염두’와 ‘엄두’가 어원이 같고 의미가 다른 특이한 경우다. 예를 들어 “염두에 두다”와 “엄두가 나지 않는다”를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평소에는 아무 생각없이 “엄두가 나지 않아.”라고 말해왔는데, 그 의미가 어디에서 유래하였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결국 염두(念頭)에서 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시작은 같은 말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는 긍정적인 면으로 사용하고, 또 하나는 부정어와 어울려서 쓰고 있음이 특이하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우리말처럼 된 ‘엄두’가 부정어와 호응하는 것이다. 과거에도 우리말을 낮추어 보는 경향이 있었다. ‘노인’보다는 ‘늙은이’가 낮춤말 같이 느끼고, ‘감사합니다’보다는 ‘고맙습니다’가 낮춤말 같다. ‘여자’들에게 ‘계집’이라고 하면 화를 낼 정도니 순우리말보다는 한자어를 선호한 것이 사실이다.
‘염두(念頭)’는 “1.마음의 속 2.생각의 맨 처음”이라는 말이다. 예문으로는 “장마철 산행은 길이 미끄럽고 힘이 든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철저한 준비와 함께 떠나야 한다.” 혹은 “나는 글을 써도 사실성을 늘 염두에 둔다.”와 같이 쓴다. ‘마음속’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경우에는 “그날 우물가에서 본 슬픈 광경 하나가 염두를 떠나지 않는다.”(김소운, <일본의 두 얼굴>)를 들 수 있다.
‘엄두’는 흔히 부정적인 말과 어울려 쓰며, “감히 무슨 일을 하려는 마음”의 뜻이다. 예문으로는 “김천댁은 그 집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쭈뼛쭈뼛 기웃거리고 망설이기만 하였다.”, “선생님의 무서운 얼굴을 보니, 돌이는 감히 잘못했다는 말을 할 엄두조차 내기 어려웠습니다.”, “2020년 7월 도시공원 일몰제가 시행될 예정이지만, 사유지 매입에 따른 지방비 부담 때문에 공원 개발에는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고려대, <우리말샘>)와 같다. 이상의 예문에서 보는 바와 같이 ‘엄두’는 항상 부정어와 함께 다니고 있다.
우리는 염두(念頭)에서 엄두로 변하는 현상을 변음이라고 하기도 하고 단모음화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단모음화가 된 경우 의미가 같거나 비슷해야 하는데, ‘엄두’와 ‘염두’는 부정적인 의미와 긍정적인 의미로 변했다. ‘낡다’나 ‘늙다’는 모음의 변화를 주어 약간의 의미 변화를 준 것인데, 이에 비해 엄두와 염두는 사용법이 지나치게 변했다. 모음변이와 단모음화의 차이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을 느낀다. 그러니 결국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순우리말과 한자어에 대한 근본적인 사고방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즉 한자어로 된 것은 그대로 어원을 간직하며 의미의 변화가 없는데, 우리말화된 엄두는 부정적인 말과 결합하는 것으로 변질되었다고 본다. 같은 말이라 할지라도 한자로 된 것을 높게 보는 시각은 이제 바꿀 때가 되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 그것이 두뇌에 각인되어 왔기 때문에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언어는 서서히 바뀌는 것이다. 점진적으로 순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찾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에게 “늙은이 어디 가세요?”하고 물으면 화낼 것 같다. 오호, 애재라!
3. 충청도 말과 문화문법
필자는 자주 학생들에게 “한국 사람이 가장 잘하는 것을 외국에 팔아야 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필자는 한국어를 참 잘한다. 다른 한국인들보다는 조금 잘한다. 순수한 우리말도 조금 더 알고(예를 들면 ‘온’, ‘즈믄’, ‘골’ 등), 한자도 일반인들보다는 쬐끔(?) 더 안다. 학부에서 한문교육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한국어를 공부했더니 다른 친구들에 비해 비교적 쉽게 한국어교육학을 공부했다. 우리말 중에는 한자에 바탕을 둔 단어가 많기 때문이다.
14년 간 서울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가 박사학위를 받고 충청도로 이사 왔다. 고향이 여주인지라 충청도 방언에도 익숙해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가끔 당황스러웠던 일이 있었다. 한국어임에도 불구하고 소통의 문제가 생긴 것이다. 예를 들면 “내일 10시에 만나요”라고 했을 때 두 가지 답변이 있다.
하나는 “알았슈!”와 또 하나는 “그류”다. 서울 사람들은 상대가 “알았슈!”라고 하면 내일 나타날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오산이다. “알고 있다”는 뜻이지 “내일 오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므로 내일 나타날 수도 있고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기다리다가 전화를 해서 물어보면 “알았다고 했지, 언제 나간다고 했느냐?”는 반문을 받을 수 있다. 반드시 “그류”라고 해야 약속 장소에 나타난다.
요즘은 웬만한 것은 번역기가 있어서 통·번역을 잘해준다. 필자도 구*번역기를 자주 사용하는 편이다. 그러나 아무리 진화를 거듭해도 신조어나 방언 등은 통역할 수는 없다. 사람처럼 완벽하게 번역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 아니 기계는 도저히 사람의 통·번역을 따라갈 수가 없다. 이것은 사람만이 지닌 특성이다.(그래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통역은 사람이 해야 한다.)
사람의 다양한 언어문화를 기계가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은 문화문법이라는 용어가 생겼다. 유럽에서는 몇 년 전부터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단어다. 필자는 2016년에 <한국어문화문법>이라는 책을 발간했다. 여기서 주로 다룬 내용이 한국문화와 외국문화의 차이에서 겪을 수 있는 에피소드나 어려움을 서술하였다.
예를 들면 “고무신 바꿔 신는다”는 말을 영어나 자국어로 번역해 보라고 한다. 한국의 군사문화를 알지 못하는 외국인들은 100% “체인지 슈즈(Change shoes)”라고 한다. 남자 친구가 군대에 가 있는 동안 여자 친구가 변심한 것이라고 설명하려면 한참 걸린다. 한국 남자는 반드시 입대해야 하고, 그 동안 여자 친구는 기다려 줘야 한다는 등등의 설명을 보태야 한다.
남자 화장실에 가면 “남자가 흘려야 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죠”라고 쓴 글이 있다. 외국인들은 이것이 무슨 말인지 잘 모른다. “남자한테 좋은데, 참 좋은데, 뭐라 할 말이 없네…”라는 광고를 보면 짜증을 낸다. 도대체 어쩌라는 말이냐고 흥분한다. 외국인들은 한국인과 의식구조가 다르다. 직설적인 독일인과 은유적인 표현을 즐기는 한국인과는 차이가 많다. 그래서 한국인은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했다. 한국어의 무궁한 표현법을 외국인들이 이해하기에 너무 어렵다.
필자가 인도네시아의 아체에 갔을 때 일이다. 창피하지만 독자들을 위해 고백해 본다. 부지사 초청 만찬에 갔는데, 하루 종일 피곤하던 터라 식탁에 있는 사발의 물을 보자마자 단숨에 들이켰다. 안내하던 부지사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필자를 바라보았다. 그 어색함은 지금도 오금이 저릴 정도다. 인도네시아는 손으로 밥을 먹기 때문에 반드시 식탁에 손 씻을 물을 올려놓는다. 마실 물은 병에 담겨 있었다.
각 나라의 문화에 맞는 어법이 있다. 이에 맞춰 해석을 달리 하는 것을 문화문법이라고 한다. 같은 하늘 아래 사는 사람들도 때로는 “알았슈!”와 “그류”를 이해하지 못하여 오해가 생긴다. 그러니 외국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한국문화를 이해하게 하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단순히 문자나 어휘를 가르친다고 해서 교육이 끝난 것은 아니다. 조화로운 삶을 이루기 위해서는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4. 부인(夫人)과 부인(婦人)의 유래 찾기
아주 오래 전에 ‘땡전 뉴스’라는 것이 있었다. KBS 9시 뉴스를 시작할 때 “땡땡땡! 전두환 대통령은…” 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붙은 별칭이다. 그래도 그때는 집값이 오르거나 기름값이 오르는 것같은 이야기는 없었다. 경제를 모르기 때문에 경제는 전문가에게 맡긴다는 것이 그분의 정책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가 집권한 동안에는 집값이 별로 오르지 않았는데, 요즘은 집 사기, 결혼하기, 취업하기 등을 포기하는 이른바 3포 세대라는 단어가 등장하였다. 슬픈 현실이다. 그 당시에는 우리 세대가 제일 불쌍하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 그것이 아닌 것같아 미안스럽기도 하다. 우리 아버지(선친) 세대는 일제강점기와 6‧25를 겪어야 했고, 우리는 살기 위해 앞만 보고 달려왔고, 지금 세대는 하고 싶어도 못하는 ‘포기세대’가 되었다.
이 ‘땡전 뉴스’를 시작으로 우리말 중에 이상하게 변질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영부인(令夫人)’이라는 개념이다. ‘남의 부인을 높여 부를 때’ 사용하는 말이 ‘영부인’이다. 그런데 그 시절에는 대통령의 부인을 영부인으로 부르는 것으로 오해한 사람들이 많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요즘은 사전에 “지체 높은 사람의 부인을 높여 부르는 말”이라고 나타나 있다. 예문으로는
역대 대통령의 영부인의 위상과 역할은 시대에 따라 변해 왔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다른 사람의 부인을 높여 이르는 말인 영부인이 한 개인에게 특수화되어 쓰이는 현상은 잘못된 것이다.<고려대 한국어대사전>
와 같다. 지금은 ‘영부인(令夫人)’이 마치 ‘대통령의 부인’만을 지칭하는 것처럼 되어 버렸다. 원래의 의미는 퇴색하고 이상하게 변질된 것이다.
부인(夫人)이라는 단어는 ‘남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이고, 부인(婦人)이라는 말은 ‘결혼한 여자’를 일컫는다. 물론 남의 부인이 되려면 결혼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한자로 썼을 때 각각의 의미는 다르다. 이에 대한 글로 가장 오래 된 것으로는 <주례(周禮)>라는 책이 있다. 그 책에 의하면 ‘천자가 임명한 제후의 아내는 부인(夫人), 제후가 임명하는 대부의 아내는 유인(孺人)이며, 그 아래의 무사집단을 구성하는 사(士 : 선비라는 뜻 외에 무사, 군사라는 의미도 있음)의 아내는 부인(婦人)이며, 벼슬이 없는 서민의 아내는 처(妻)’이다.(이재운 외 <알아두면 잘난 척하기 딱 좋은 우리말 잡학사전>에서 발췌함) 그러므로 부인(夫人)과 부인(婦人)은 의미상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러다가 나중에 황실에서도 부인(夫人)이라는 용어를 통용하게 되었다. 그것이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정1품과 종1품 관리의 아내는 정경부인(貞敬夫人), 정2품과 종2품의 아내는 정부인(貞夫人), 정3품의 아내는 숙부인(淑夫人), 종3품의 아내는 숙인(淑人)으로 분화되었다. 4품의 아내는 영인(令人), 5품의 아내는 공인(恭人), 6품의 아내는 의인(宜人), 7품의 아내는 안인(安人), 8품의 아내는 단인(端人), 9품의 아내는 유인(孺人)이다.(위의 책 참조) 그러니까 우리가 지방을 쓸 때 ‘현비유인 000씨(顯妣孺人 00 0氏)’라고 쓰는 것은 돌아가신 분을 예우하여 9품의 아내로 진급(?)시켜 주는 것이다. 품계 중에서 가장 낮은 것을 부여하여 지방에 쓰다 보니 요즘에 와서는 일반적인 호칭(?)처럼 되었다.
과거에 선비의 아내를 가리키던 부인(婦人)과 서민의 아내를 지칭하던 처(處)가 지금은 자신의 아내를 낮추 부르는 것처럼 바뀌고 말았다. 언어라는 것은 변하기 마련이지만 그 원래의 의미를 알고 있어야 실수를 하지 않는다. 결혼한 여인을 칭할 때는 부인(婦人)만 쓰는 것이 맞고, 부인(夫人)은 직급을 이르는 말인 만큼 현대사회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만 영부인(令夫人)은 ‘다른 사람의 아내를 높여 부르는 말' 이니 바르게 사용하도록 해야겠다.
5. 어머니, 아버지, 어버이
‘어머니’라는 단어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다. 하느님이 천사를 대신해서 어머니를 보냈다는 말도 있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분이 바로 어머니다.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설레고 그리움으로 벅차오른다. 세상의 언어를 두루 살펴보면 어머니에 관한 단어는 대부분이 [m] 계열로 비슷하다. 우선 어머니를 필두로 [엄마, 마미, 맘, 마더]등이고, 아버지는 [p] 계열이 많다. 아버지를 비롯해서 [파더, 빠삐, 파, 파파] 등으로 치어는 거의 비슷하다고 본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세상의 언어가 원래는 하나였다는 ‘바벨탑기원설’이 맞는가 보다. 세상의 언어가 원래는 하나였는데, 사람들이 바벨탑을 쌓으면서 하늘에 오르려 하니 하나님이 이들의 언어를 혼란스럽게 해서 지금처럼 언어가 다양하게 되었는다는 것이 바벨탑 기원설이다.
우리말에서 어머니는 우선 ‘어미 모(母)’(<훈몽자회>), ‘어마 모(母)’(<청구영언>), ‘어마니(母)’(<염불보권문>), ‘어마님(母)’(<월인천강지곡>) 등과 같이 다양한 형태로 전해 온다. 여기에 나오는 후행어들이 ‘미, 마, 마네, 마니, 마님, 머님, 머니’ 등으로 이것을 나누면 ‘어+머니=어머니’의 형태임을 알 수 있다.(서정범, <새국어어원사전>) 일본어에서도 ‘me’가 여자를 뜻하는 명사다. 현대어 사전에는 “1.자기를 낳은 여성을 가리키거나 부르는 말 2.자기의 어머니와 나이가 비슷한 여자를 친근하게 가리키거나 부르는 말 3.극진히 보살펴 주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나타나 있다. 대부분의 필자 연배의 사람들은 친구의 어머니를 부를 때도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이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친구와 나를 동일시하기 때문에 친구의 어머니가 나의 어머니가 된다. 이제는 그분들도 대부분이 하늘에 계시기 때문에 ‘불러도 대답 없는 이름’이 되고 말았다.
아버지는 ‘아버’와 ‘지’의 합성어다. 옛문헌에는 ‘아비 父’(<훈몽자회>), ‘아바(아비)’(염불보권문>), ‘아바님(아버님)’(<용비어천가>), ‘아버님’(계축일기>) 등으로 나타나 있다. 위의 용례로 볼 때 ‘아바+지=아버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도 이북 방언에서는 ‘아바지(아바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지’는 사람을 가리키는 인칭어이다. 예를 들면 ‘거지(거러지)’에 나타난 ‘지’와 의미가 같고, 후대에는 ‘치’로 변한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이지, 그치, 저치’ 할 때의 ‘치’가 사람을 일컫고 있음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유아어인 ‘아빠’나 ‘엄마’는 ‘ㅂ’과 ‘ㅁ’이 첨가된 것으로 ‘아바>압바>아빠’와 같은 과정으로 거쳤다고 본다. ‘엄마’ 또한 ‘어마>엄마’로 변한 것이다. 다만 현대에 와서 유아어와 성인의 언어가 구별이 되지 않고 있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도 친정어머니는 “엄마!”라고 부르고 시어머니는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경향이 있다. 즉 나이가 많아도 치어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는 말이다. 가능하면 언어의 의미를 그대로 살려 쓰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시대의 흐름이 노유의 구별이 없어지고 있으니 이에 관해서는 필자도 뭐라 할 말이 없다.
6. 은행(銀行)과 돈
돈은 항상 부족하게 되어 있나 보다. 월급으로 26만 원 받았던 초임 교사 시절에도 부족했고, 교단에 근 40 년을 근무해 온 지금도 쓰다 보면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씀씀이가 커진 것도 사실이지만 살아오면서 항상 돈의 결핍을 느끼며 살아왔다. 매번 은행에서 융자 얻어 집을 사고 융자금 갚느라 정신없이 살아왔다. 그나마 우리 세대는 집이라도 장만했지만 지금 세대는 3포 세대라고 해서 다 포기하고 살아야 하는 것 같아 선배로서 미안하기도 하다.
은행(銀行)은 “1.금융 기관의 하나 2.어떤 때에 갑자기 필요해지거나 일반적으로 부족한 것 등을 모아서 등록하여 보관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이용할 수 있도록 편의를 도모하는 기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지금은 은행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모두가 이용하는 시설이 아닐까 한다. 지금은 스마트 폰으로 은행 업무를 대신하지만 과거에는 적금을 들었다가 타는 재미도 있었고, 월급을 봉투로 받아서 돈을 세어 보는 재미도 있었다. 통장에 월급이 입금되면서부터 그런 재미는 지구상에서 사라져 버렸다. 월급날 교문 앞에서 기다렸다가 납치해 가던 선배들이 그립다. 돈을 모아 두는 곳이면 금고(金庫)나 금행(金行)이라고 하든지, 돈행 혹은 전행(錢行)이라고 하지 왜 굳이 은행(銀行)이라고 했을까 궁금하다. 우선 그 연원을 살펴보기로 한다. 철기문화 이후 화폐의 주류를 이루었던 것이 바로 은(銀)이다. 그러므로 금보다는 은이 화폐의 근본으로 여기게 되었고 돈을 다루는 기관을 은행이라고 불렀다.(이재운 외 <알아두면 잘난 철 하기 딱 좋은 우리말 잡학사전>)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은 뒤에 행(行)이라는 글자를 덧붙였을까 의문이 간다. 원래는 ‘은항’이라고 발음해야 한다. 왜냐하면 ‘행(行)’이라는 글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첫째는 우리가 흔히 아는 ‘다닐 행’ 자이고, 다른 의미 중 하나는 ‘거리 항’이라는 것이 있다. 서열을 말할 때도 ‘항’이라고 발음한다. 우리가 가족의 서열을 말할 때 ‘항렬(行列)’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필자는 항렬이 낮아서 고향에 가면 온통 아저씨들뿐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해서 은행은 원래의 발음이 ‘은항’이라고 해야 맞는다. 즉 은(銀돈)을 주로 다루는 가게(行항)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두 은행이라고 부르다 보니 그것이 표준발음으로 굳었다. 한자로 銀行이라고 쓰니 생각 없는 사람들이 무심코 은행이라고 읽으니 그것이 표준어로 되었다.
한편 돈이라는 단어는 어원을 찾기가 상당히 어렵다. 돌고 돌아서 ‘돈’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도(刀)에서 유래한 것으로 과거 칼처럼 생긴 명도전(明刀錢)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혹은 예쁜 돌(보석)을 화폐 대신 사용하던 시절에 ‘돋’에서 유래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어차피 금도 흙에서 나오는 것이니 ‘돌>돋>돈’의 변화를 거쳤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서정범, <새국어어원사전>) 과거에는 조개로 화폐를 대신한 적도 있다. 한자어 중에서 조개 패(貝) 자가 들어간 글자는 거의 돈과 관련이 있음이 이를 대변해 준다. 재화(財貨), 재물(財物), 화폐(貨幣) 등의 글자를 보면 모두 패(貝) 자가 들어 있음이 이를 대변한다.
돈으로 사용된 여러 가지의 예를 보면 패전(貝錢 : 조개 껍질 모양의 화폐), 구전(龜錢 :땅처럼 든든하고 거북처럼 장수하고 상서롭고 귀한 재물이란 뜻으로 귀전 혹은 구전이라고 불렀으며 엽전에 거북이 모양이 그려져 있다.), 어전(魚錢 : 고기 모양을 본떠서 만든 돈), 천포전(泉布錢), 도전(刀錢), 백전(帛錢), 맥전(陌錢), 공방전(孔方錢)(정시유, <돈의 어원> 참조) 등을 볼 때 다양한 것이 화폐를 대신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모양을 본떠서 만든 이름도 있고, 쓰임새에 따라 붙인 이름도 있다. 공방전이라는 말은 둥근(圓) 모양으로 된 엽전의 가운데를 네모나게(方) 구멍을 뚫어 이르게 된 명칭이다.
화폐의 많은 이름들이 돈이라는 한 명칭으로 통일되어 부르게 된 것은 언중들의 힘이다. 다만 은행이라는 단어는 글자의 뜻으로 보아 ‘은항’이라고 읽는 것이 맞는데, 부르기 편하다고 해서 은행으로 된 것은 자못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돼지고기 볶음이 원래는 ‘저육(猪肉)볶음’인데, 언중들이 제육볶음이라 해서 표준어로 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밖에 없다.
7. 부채와 에어컨(air-conditioner)
날씨가 더워도 너무 덥다. 오늘은 매미란 놈의 심술 때문에 새벽 5시 반에 기상했다. 열대야로 인해 거의 밤잠을 설쳤는데 이 철없는 매미가 결국 단잠을 깨우고 말았다. 그냥 일어나 주변 공원에 가서 ‘만 보 걷기’로 하루를 시작했다. 더워서 육천 보밖에 못 걷고 들어왔지만 찬물로 샤워하고 나니 개운하기는 하다. 혈압도 130 정도로 안정되고, 당뇨 수치도 108이니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 매미 덕분(?)에 일찍 일어나기는 했지만 하루 종일 졸릴 것같은 예감이 든다. 쥘부채(접었다 폈다 하게 만든 부채)를 펴서 힘껏 흔들면 시원하기는 하지만 금방 또 더워진다. 에어컨을 틀기에는 이르고, 선풍기 바람은 싫고 할 수 없이 또 부채를 흔들어 댈 수밖에……
부채는 “손으로 흔들어 바람을 일으키는 물건”을 말한다. 대오리로 살을 하고 종이나 헝겊 따위를 발라서 자루를 붙여 만든다. 태극선, 미선, 합죽선, 부들부채, 까치선 등이 있다. 이 부채라는 말은 신라시대부터 써 왔던 말이다. 송나라 사람이 쓴 <계림유사>(1103)라는 책에 보면 ‘孛采’라는 것이 나오는데, 우리말로 읽으면 ‘패채’나 ‘발채’가 될 것이나 중국식으로 발음하면 우리의 ‘부채’와 발음이 비슷할 것이다. 이 <계림유사>라는 책은 우리말(신라어)을 중국어(한자의 음)로 표기한 것이니, 부채로 보아 무방하다. 한 예로 아들을 ‘丫怛(아달)’이라고 표기하는 것과 같은 방법이다. 예전의 부채는 깃털로 만들었다. 그래서 한자로도 부채 扇(선) 자에 깃털 羽(우) 자가 들어가 있다. 15세기에는 ‘부채’와 ‘부체’가 같이 쓰였다. 서정범(<새국어어원사전>)은 ‘부채’는 ‘부’와 ‘채’의 합성어로 보았다. ‘부’는 ‘불’의 말음(ㄹ)탈락형으로 고어에서 바람을 뜻하고, ‘불다(吹)’의 명사형으로 보았다. 그리고 ‘채’는 명사로서 파리채, 골프채, 의 ‘채’와 같이 도구를 이르는 말이라고 보았다. 한편 조항범(<우리말 어원이야기>)은 동사 어간 ‘붗-(부치다)’에 명사를 만드는 접미사 ‘애’가 결합된 파생어로 보기도 하지만 15세기 표기에 ‘붗게(당시표기로는 붓게)’로 나타나야 정상인데, 이런 모습이 보이지 않아서 의심스럽다면서 또 다른 설을 주장하였다. 즉 동사의 어간 ‘붗-(부치다)’과 명사 ‘채(鞭)’가 결합된 합성어로 보기도 하였다. 필자가 보기에는 ‘바람을 일으키는 채’라는 의미로 본다면 ‘붗 + 채’에서 말음(ㅊ)이 탈락한 현상으로 보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한동안은 ‘부채’와 ‘부체’가 함께 쓰이다가 20세기 초 <조선어사전>(1920)이 편찬되면서 ‘부채’가 표준어로 선정되었다.(조항범, <위의 책>)
한편 ‘에어컨’은 콩글리시(konglish)의 대표적인 것이다. ‘피이팅’이나 ‘런닝머신’ 등과 같이 본토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말인데,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영어도 아닌 것 같은 영어다. 올여름도 엄청나게 더워서 전력 수요가 역대 최고치를 넘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필자가 볼 때도 그렇다. 실내는 어디를 가든지 항상 시원한 바람이 불어 와서 백화점이나 서점에 가서 서성이는 것도 피서의 한 방법이다. 필자도 어제 대형 서점에 가서 보들레르의 <악의 꽃>이라는 책을 찾으면서 일부러 이곳저곳 다니며 필요한 책이 더 없나 두리번거렸다.
미국에서는 ‘fighting’이라고 하면 ‘싸우는’이라는 의미기 때문에 혼자서 독립적으로 쓰일 수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뭔가 힘을 내자고 할 때 “파이팅!”이라고 외치곤 한다. 요즘은 외국인들도 이것을 따라 한다고 하니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지고 있다. 역시 국력이 강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런닝머신’도 ‘기계처럼 뛰는 인간’을 뜻한다. 육백만 불(弗=달러)의 사나이처럼 달리는 사람을 말하는데, 우리는 뜀뛰기 틀을 이렇게 부른다. ‘에어컨’ 역시 ‘Air Conditioner’라고 해야 바른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리모콘(remocon = remote control)’처럼 마구 줄여서 표기하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현재 에어컨은 “실내 공기의 온도 및 습도 따위를 조절하는 기계 장치”라고 등재되어 있다. 비표준어로는 ‘에어콘’이라고 나타나 있으니 완전히 외래어로 굳어진 형태라고 하겠다. 콩글리시가 표준어가 되고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줄여서 표기하는 것이 대세임은 인정하지만 뜻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줄이다 보면 다시 주석을 달아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지나치게 긴 것이 아니라면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8. ‘찧다’와 ‘찢다’
경기도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중등교사로 14년을 서울에서 근무하다가 충남으로 이사했다. 경기도에도 사투리가 있어서 서울에서 약간의 촌놈(?) 소리를 듣기는 했지만 심하지는 않았다. 단지 문화의 차이가 있었을 따름이었지만 당시는 누구나 다 못살던 시절이라 언어에 관해서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각자의 삶에만 충실했다. 우리 고향의 사투리를 예로 들자면 가장 심한 것이 ‘씻다’라는 동사이다. 원래는 규칙동사인데 우리 고향에서는 ‘ㅅ’탈락현상을 적용했다. 그래서 “손 좀 씻어라.”를 “손 좀 씨어라.”라고 발음했다. 우리는 “손 씨어!”가 늘 귀에 익었지만 서울에서는 안 통했다. 다시 충청도에 오니 “씻거라(손 씻거!), 씻쳐라(손 좀 씨치라니까!)”로 발음이 바뀌고 있었다. ‘빻다’를 ‘빵구다’라고 하기도 하고, ‘돌’을 ‘독’이라고 발음하기도 했다.
아주 심하게 잘못 발음하는 것 중의 하나가 ‘찧다’이다. 그리고 ‘찢다’와 구분이 어려웠다. 우선 ‘찧다’는 “잘게 부수거나 가루로 만들기 위해 절구통이나 확에 넣고 공이로 내리치다.”라는 뜻이다. 발음은 [찌타]라고 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에 오니 ‘ㅎ’음의 발음이 없어지고 [찌서]라고 하는 것을 많이 들었다. ‘찧어’는 [찌어]라고 발음해야 한다. 우리말에서 종성에 ‘ㅎ’이 오면 뒷말이 자음이면 거센소리로 발음하고, 모음이 오면 ‘ㅎ’이 탈락하고 그냥 무음으로 발음한다. 과거에 우효광이라는 중국 배우가 우리말을 할 때 항상 [조하]라고 하는 것을 들었다. ‘좋아’는 ‘ㅎ’이 탈락하기 때문에 [조아]라고 발음해야 함에도 그는 항상 [조하]라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자막도 그렇게 표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찧다’라는 단어도 마찬가지다. 뒤에 자음이 오면 거센소리로 발음하여 [찧다=>찌타]로 발음하고, 뒤에 모음이 오면 [찧어=>찌어]로 발음해야 한다. 그래서 발음교육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발음을 잘못하면 의미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마치 필자가 중국어를 하면 중국학생들이 잘 알아듣지 못하는 것과 같다. 우리말은 높낮이가 없어서 보통 평성로 발음하는데, 중국어는 평상거입(平上去入)이라는 네 가지의 성조로 발음하니 필자에게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찢다’는 “잡아당기거나 힘을 가하여 갈라지게 하다.”라는 뜻이다. 이 단어와 ‘찧다’는 발음상 확실한 차이가 있다. 앞의 것(찢다)은 [찌따]이고 뒤의 것(찧다)은 [찌타]라고 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똑같이 발음하고 있음을 본다. ‘찢다’의 예문으로는
나는 책상 정리를 하면서 필요 없는 서류들을 하나하나 찢어서 휴지통에 버렸다.
그들 형제는 왕국의 영토를 남북으로 찢어서 각기 다스리기로 했다.
(<다음사전>에서 재인용)
충청도에서는 ‘빻다’를 ‘빵구다’라고 지역 특색있게 발음하는 것처럼 ‘찧다’도 [찌서]라고 발음하는 사람들이 있다. 좁은 나라인데 쉬운 단어조차도 서로 다르게 발음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향토적이고 토속적이라고 그대로 두자는 사람들도 많은데, 나라에 헌법이 있듯이 국어에도 한글 맞춤법이라는 것이 있다. 가능하면 공통된 발음으로 하는 것이 편하고 좋기 때문이다. 표준어는 시대에 따라 다르다. 아마 신라시대에는 경주 방언이 표준어였을 것이고, 고려시대에는 개성방언이 표준어였을 것이다. 임금이 하는 말이 표준어라고 본다면 그렇게 보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향가는 경주말로 풀어야 하고, 보현십원가는 개성말로 풀어야 한다. 별 것이 아닌 발음의 차이가 의미를 다르게 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서 가능하면 바른 발음을 하는 것이 모두에게 편하다.
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9. ‘잠식(蠶食)’과 ‘걸식(乞食)’현재위치
어린 시절의 추억을 돌아보면 슬펐던 기억이 더 많았던 것 같다. 먹고 살기 힘든 시대라 그럴 수도 있지만 멱감고 참외 서리하던 즐거운 추억은 그리 많지 않고, 뽕잎 따고 목화 따던 힘들었던 일들이 더 많이 생각난다. 그중 아주 힘들었던 일 중의 하나가 뽕밭을 없애고 일반 밭으로 만들었던 기억이다. 몇 살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몹시도 추운 겨울에 할아버지의 명령으로 뽕밭을 없애게 되었다. 뽕나무는 뿌리가 강해서 쟁기가 잘 부러지기 때문에 뿌리까지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 4형제였지만 막내는 너무 어려서 필자까지만 동원됐던 것 같다. 나무를 톱으로 베고, 삽으로 판 다음 뿌리를 제거하는데, 언 땅이라 하나 제거하는데 하루 종일 걸릴 정도였다. 할아버지께서는 “그까짓게 뭐가 힘들어! 쓱쓱 잘라서 툭툭 치면 되는 것을……” 하고 말씀하시는데 얼마나 서러웠는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지금은 모두 추억이 돼서 형님과 그 시절 그 노래를 되새기면서 쓴웃음만 짓는다.
누에를 치면 따뜻한 방은 잠실로 변한다. 지금 강남에 있는 ‘잠실’도 아마 누에를 많이 치던 곳에서 유래한 것이 아닐까 한다. 필자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그곳은 텅 빈 땅에 땅콩농사 짓는 사람들이 많았으니 누에 치는 사람들도 많았을 것임이 틀림없다. 누에는 하루 종일 먹기만 한다. 여러 마리가 사각사각 먹는 소리가 옆에서 들으면 우레소리(?) 만큼 커서 잠도 자기 힘들다. 하루 종일 먹으니 빨리 성장하고 빨리 고치를 만든다. 잠식(蠶食)이라는 단어는 여기서 유래했다. 야금야금 먹는 것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어느 순간에 돌아보면 나뭇가지가 줄기만 달랑 남아 있다. 그러면 다시 싱싱한 뽕잎으로 갈아 주곤했다. 누에가 갈아먹듯이 별것 아닌 것 같은데, 금방 다 먹어 치운 것이 ‘잠식(蠶食)’이다. 이것이 변해서 지금은 “눈치 못채게 조금씩 침범해서 어떤 이익이나 영역을 차지하는 것”을 말한다.
예문으로는
①에어컨은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서 선풍기가 차지하고 있던 가정 냉방 용품 영역을 빠른 속도로 잠식해 가고 있다.(<다음 어학사전>에서 인용)
②외국 자본은 국내 시장을 잠식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상동)
등이 있다.
한편 걸식(乞食)이라는 단어는 불교에서 유래하였다. 요즘은 걸인(乞人)들이 별로 없지만 40년 전까지만 해도 길거리에는 거지들이 많았다. 깡통에 밥을 얻으러 다니던 아이들도 상당히 많았는데, 요즘은 그나마 노숙자(露宿者)만 보일 뿐이다. 노숙자들은 거지와는 다르다. 이들은 돈만 구하지 밥을 구하지는 않는다. 돈으로 구걸하여 술을 사 먹는 경우는 있지만 밥을 달라고 깡통을 들고 다니지는 않는다. 걸식은 불교의 걸사남(乞士男), 걸사녀(乞士女)에서 근원을 둔 말이다. 스님들은 걸식(乞食)하는 것을 수행의 하나로 여겼다. 지금도 태국에 가면 아침마다 걸식하기 위해 도로를 누비는 스님들을 볼 수 있다. <좌전>에 의하면 “乞食于野人(야인에게 밥을 빌다)”라고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걸인(乞人)이 ‘거지’로 변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불교에서 번역할 때 산스크리트어를 중국어로 옮기고, 중국어(한자)를 다시 우리말로 옮길 때 ‘보시한 음식을 먹는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단어도 걸식이라고 했다.(서정범, <새국어어원사전>) 걸식하는 수행승인 비구, 비구니에서 걸식이라는 단어가 나왔다는 말도 일리가 있다. 걸사남, 걸사녀가 자신의 색신(色身: 육체)을 구하기 위해 먹을 것을 다른 사람에게 비는 것도 청정한 생활이라고 한다. 우리 옛 속담에 “가을 중 쏘다니듯 한다.”는 말이 있다. 가을에 열심히 탁발해야 겨울을 편안하게 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가 변하여 인터넷이나 카드로 모든 것을 해결하는 세상이 되었다. 어영부영하다가 아프카니스탄처럼 탈레반에게 잠식당하지 않도록 하고, 걸식하게 되기 전에 정신차리고 나라 사랑하는 정신을 길러야겠다. 수행으로 걸식하는 것은 좋지만 나라 잃고 걸식하게 되면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