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시대 사람 이름을 살펴보면 고구려 을지문덕(乙支文德), 연개소문(淵蓋蘇文), 백제 목협만치(木劦滿致), 조미걸취(祖彌桀取) 등은 당시 일본사람 소가노우마코(蘇我馬子), 모노노베노모리야(物部守屋) 등과 비슷한 구조인데 그 이유는 모르겠다. 한편 6세기 신라사람 거칠부(居柒夫), 심표부(心表夫)는 이름만 있고 성은 없으며, 7세기 김유신(金庾信), 김춘추(金春秋)는 현대인과 똑같은 구조로 한성화 된 이름 체계를 가지고 있어서 신라인이 6~7세기부터 한성화 된 성을 사용했다는 것이 증명된다.
을지문덕에서 을지가 성이고 문덕이 이름인지, 아니면 을지문덕 전체가 이름 혹은 성인지 알 수 없다. 연개소문은『삼국사기』에 당고조 이연(李淵)을 피휘(避諱)하여 아들 연남생(淵男生)을 천남생(泉男生)으로 바꾸었다고 하므로 연(淵)이 성 같지만, 자료가 부족하다. 그러나 신라인 거칠부나 심표부는 금석문에서 확인되는 이름으로 같은 금석문에 성씨 적을 자리에 부[1]가 적혀 있어서 신라에는 성이 없고 부를 대신 사용한 것이 증명된다.
을지문덕이나 거칠부 같은 성명 체계에서 김춘추, 김유신 같은 성명 체계로 바뀌는 것을 한성화(漢姓化)라고 한다. 현재 모든 한국인은 한성화된 성을 사용하고 있으므로 혹시 을지문덕이나 연개소문이 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성은 오늘날 한성화되고 개성화된 한국성과 연결된다고 볼 수는 없다.
한국성이 한성화 된 배경에는 당나라 유학생(留學生)이 있다. 지금도 미국 유학생이나 주재원(駐在員)은 한국 이름 외에 영어로 미국 이름을 만들어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국 이름은 미국인이 발음(發音)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당나라 빈공과[2]에 급제하여 관리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성도 없고 발음도 어려운 신라 이름보다는 당나라식 이름이 훨씬 편리하고 또 위화감(違和感)도 없으므로 대부분 당나라식 이름을 지어서 사용했을 것이다.
당나라식 이름은 반드시 성이 있어야 했으므로 당나라 성을 인용할 수밖에 없었는데 기왕 인용하는 김에 널리 알려진 저성(著姓)을 인용했으므로 한국에는 중국 고대 저성이 많다. 유학생은 대부분 귀족이기 때문에 아들, 손자가 계속 유학생이 되었고 아버지, 할아버지가 사용하던 당나라 성을 이어서 계속 사용하므로 인해 결국 인용한 성이 그 가문의 성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유학생은 그렇다고 하지만 고려 초 개성화(皆姓化)할 때 왜 모두 중국성을 인용한 것일까? 비슷한 사례를 아프리카에서 찾을 수 있다. 아프리카인들은 유럽 식민지 시절 유학생들이 유럽 성을 인용한 것을 모방했기 때문에 지금은 모든 아프리카 사람이 유럽 성과 같은 성을 사용하고 있다. 고려에서도 개성화할 때 당나라 유학생을 모방하여 모두 중국 성을 인용하게 된 것인데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베트남에서도 발견되는 사례다.
성(姓)을 영어로 흔히 패밀리네임(family name) 이라고 한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서 한국성은 패밀리네임이 아니다. 대부분 외국에서는 여성이 혼인하면 남편성(男便姓)으로 바꾸기 때문에 모든 가족이 같은 성으로 통일되어 패밀리네임 즉 가족이름으로 되지만 한국에서는 여성이 혼인하거나 이혼한다 해서 성이 바뀌지 않고 태어날 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성을 그대로 유지하기 때문에 한 가정에서 남성은 모두 성이 같지만, 여성은 할머니, 어머니, 딸이 모두 각각 다른 성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한국성은 『설문해자』에서 “성은 그 사람이 태어난 곳을 나타낸다.”는 정의(定義)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데, 한국과 중국 정도에서만 유지되는 전통이다. 일본은 물론 중국성을 함께 사용하는 타이완(台灣), 홍콩(香港), 마카오(澳門)는 물론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 한인(漢人)들도 모두 여성이 혼인하면 남편과 같은 성으로 바꾼다. 즉 여성은 자신의 성을 선택할 수 있다. 여성이 혼인으로 성이 바뀌면 여권(旅券)이나 학술논문(學術論文) 등에서 미혼 때와 기혼 때 기록이 연결되지 않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므로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성에서 이혼한 남편의 성까지 모두 순차적으로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
* 각주 ------------------
[1] 部. 자신이 사는 고을 이름. 고대에는 사는 고을로 신분(身分)을 구분했다.
[2] 賓貢科. 당나라에서 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했던 과거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