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方[7399]유항(柳巷)한수(韓脩)선생시-無題(무제) 二首중 1수
無題무제
한수(韓脩)
1首
水流有本何時盡。수류유본하시진
雲出無心旣雨歸。운출무심기우귀
漢上平生行樂處。한상평생행락처
復携童冠着春衣。부휴동관착춘의
水流有本 수류유본=흐르는 물 근원 있거니
何時盡하시진=어느 때 다하는고
雲出無心 운출무심= 구름은 무심히 나왔다가
旣雨歸기우귀= 비오고 나면 돌아가네
漢上平生한상평생= 한강 위는 평생
行樂處 행락처=향락하던 곳
復携童冠부휴동관= 다시 동관 이끌고
着春衣착춘의=봄옷을 입네
復携부휴=다시 이끌다.
童冠[동관]=소년과 젊은이들
水流=물 수. 흐를 류.
有本=있을 유.근본 본.
何時=어찌 하.때 시.
旣雨歸=이미기.비 우. 돌이갈 귀.
漢上=한강 한. 윗 상.
平生=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살아 있는 동안
行樂處=다닐 행.즐길 락. 곳 처.
復携부휴=다시 부. 잡을 휴.
童冠=아이 동. 갓 관.
着春衣=입을 착. 봄 춘. 옷 의.
한수韓脩
본관은 청주(淸州). 자(字)는 맹운(孟雲)이고, 호는 유항(柳巷)이다.
한수는 고려 후기에 동지밀직, 판후덕부사 등을 역임하고 『유항집』을 남긴 문신이다.
공민왕 때에 오랫동안 문한직을 맡았으며 우왕대에 공신으로 책봉되고
상당군, 청성군에 봉해졌다. 문장과 글씨에 모두 능해
많은 서예 작품과 시문을 남겼으며, 이색·염흥방 등과 시문으로 활발하게 교유하였다.
할아버지는 중찬(中贊)에 올라 상당부원군(上黨府院君)에 봉해진 한악(韓渥)이고,
아버지는 밀직(密直)을 거쳐 청성군(淸城君)에 봉해진 한공의(韓公義)이다.
어머니는 밀직사좌대언(密直司左代言)을 지낸 경사만(慶斯萬)의 딸이다.
일찍부터 문재(文才)가 뛰어나, 1347년(충목왕 3) 이곡(李穀)이 주관한 과거에서
15세의 나이로 합격하였다.
충정왕(忠定王) 때 정방(政房)의 필도치(必闍赤)에 임명되었으며,
충정왕이 왕위에서 쫓겨나 강화도로 갈 때 시종하여 따라갔다.
공민왕(恭愍王)이 다시 발탁하여 필도치로 삼았으며,
1365년(공민왕 14) 신돈(辛旽)이 집권하자, 왕에게 신돈이 바른 사람이 아니라며
멀리할 것을 아뢰었다가 예의판서(禮儀判書)로 밀려난 다음 곧 관직에서 물러났다.
1371년(공민왕 20) 신돈이 숙청되자 왕이 다시 불러 이부상서(吏部尙書)
수문전학사(修文殿學士)로 발탁하였으며,
곧 승선(承宣)에 임명되어 다시 인사행정을 관장하였다.
우왕(禑王)대에 밀직제학(密直提學), 동지밀직(同知密直) 등을 지냈으나,
공민왕 시해에 관여한 한안(韓安)의 친척이라는 이유로 일시 유배되었다.
1378년(우왕 4) 유배에서 풀려나 상당군(上黨君)에 봉해지고 공신호를 받았으며,
1380년(우왕 6)에는 청성군(淸城君)으로 새로 봉해졌다.
1383년(우왕 9)에 판후덕부사(判厚德府事) 우문관대제학(右文館大提學)
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에 52세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한수는 시서(詩書)에 뛰어나 많은 작품을 남겼다.
이색(李穡)·염흥방(廉興邦) 등과 교분이 깊어 수많은 시를 주고받았다.
또한 예서(隷書)와 초서(草書)에 모두 능해 당대의 명필(名筆)로 이름났다.
「노국대장공주묘비(魯國大長公主墓碑)」, 「회암사지공대사탑비(檜巖寺指空大師塔碑)」
등과 현존하는 「여주 신륵사보제선사사리석종비(神勒寺普濟禪師舍利石鐘碑)」는
한수의 필적이다. 그의 사후 아들인 한상질이 모은 그의 유고(遺稿)를 바탕으로
문생(門生)인 성석용(成石瑢)이 『유항집(柳巷集)』이라는 문집을 간행하였다.
원문=동문선 제21권 / 칠언절구(七言絶句)
東文選卷之二十一 / 七言絶句
無題
1首
水流有本何時盡。雲出無心旣雨歸。
漢上平生行樂處。復携童冠着春衣。
2首
浩蕩白鷗千萬里。斯須蒼狗古今雲。
何妨卽墨不求譽。無復張湯巧舞文。
ⓒ 한국고전번역원
무제이수(無題二首)
한수(韓脩)
흐르는 물 근원 있거니 어느 때 다하는고 / 水流有本何時盡
구름은 무심히 나왔다가 비오고 나면 돌아가네 / 雲出無心旣雨歸
한강 위는 평생 향락하던 곳 / 漢上平生行樂處
다시 동관 이끌고 봄옷을 입네 / 復携童冠着春夜
호탕한 흰 갈매기 천만 리인데 / 浩蕩白鷗千萬里
잠깐 동안의 푸른 개는 고금의 구름일세 / 斯須蒼狗古今雲
즉묵의 칭찬을 구하지 않음이 무엇이 방해 되랴 / 何妨卽墨不求譽
다시는 법문을 교묘히 환롱하는 장탕이 없어져라 / 無復張湯巧舞文
[주-D001] 동관(童冠) …… 입네 : 공자(孔子)의 제자 증점(曾點)이
춘복(春服)를 입고 관자(冠者) 5,6명과 동자(童子) 6,7명을 데리고
놀러 가겠다던 고사(故事)를 인용하였다.
[주-D002] 호탕(浩蕩)한 흰 갈매기 : 두보(杜甫)의 시(詩)에,
‘백구가 호탕한 데 빠지니 만 리에 누가 능히 깃들랴
[白鷗沒浩蕩 萬里誰能馴].’한 구절이 있다.
이것은 높은 선비가 세속을 멀리 떠나감을 말한 것이다.
[주-D003] 잠깐 동안의 푸른 개는 : 두보(杜甫)가 구름을 두고 지은 시에,
‘잠깐 동안에 푸른 개 모양으로 변화한다.’는 구절이 있다.
[주-D004] 즉묵(即墨) : 전국(戰國) 때에 제 위왕(齊威王)이
즉묵대부(即墨大夫)를 불러서 말하기를,
“네가 즉묵(即墨)에 부임한 뒤에 헐뜯는 말이 날로 들어오기에
내가 사람을 시켜 가 보게 했더니 치적(治績)이 대단히 좋았다.
이것은 네가 나의 측근자에게 뇌물을 쓰지 않은 까닭이다.” 하고
즉묵대부를 표창하였다.
[주-D005] 다시는 법문(法文)을 …… 없어져라 :
한 무제(漢武帝) 때에 혹리(酷吏) 장탕(張湯)이 법문(法文)을
교묘히 환롱(幻弄 舞文)하여 가혹하게 다스렸다.
ⓒ 한국고전번역원 | 김달진 (역) | 19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