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기초교리ㅡ8
2) 사리불존자와 목건련존자가 부처님보다 먼저 열반
목련존자의 죽음
목련존자는 나이 70이 넘도록 많은 대중을 교화했고 특히 외도들을 많이 교화했다. 그래서 외도의 우두머리들은 목련존자를 눈에 가시처럼 미워했고 기회만 있으면 해치려고 하였다.
목련존자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특히 나형외도(裸刑外道)들을 목련존자가 불제자로 많이 교화했기 때문에 그들은 기회만 있으면 목련존자를 살해하려고 하였다.
그들은 목련존자가 혼자서 숲속에서 좌선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존자를 포위하였다.
그리고 돌을 던졌다. 크고 작은 돌들이 수없이 목련존자 머리위로 쏟아졌으나 목련존자는 날아오르는 돌을 피할 생각도 않고 그대로 앉아 무상삼매(無想三昧)에 들어 자신의 몸을 그들에게 내 맡기었다.
목련존자는 신통력으로 그까짓 돌이야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지만 자기의 정업(定業)을 알고 가만히 앉아 받아들인 것이다. 자신의 전생 업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은 과거세에 도살 업으로 많은 짐승을 잡기도 했고 또 어느 생에선 어부가 되어 많은 물고기도 잡기도 하였었다.
자신의 전생 업을 청산하기 위해 그들의 돌팔매질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목련존자는 날아오는 돌을 맞으면서도 조용히 앉아 움직일 줄 모르고 정(定)에 들어 있었다.
이윽고 무수한 돌이 꿈쩍도 않는 목련존자 위에 수북하게 쌓이게 된 것이다. 목련존자의 몸은 돌 더미 안에 파묻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마갈타국의 아자타사투왕은 항상 존경하던 목련존자가 외도들의 돌에 맞아 순교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슬픔과 분노를 참지 못해 군사들을 풀어 수천 명의 나형외도들을 모조리 붙잡아 들였다. 그들을 호통치고 야단을 쳤지만 왕의 분노는 풀리지가 않았다. 그들을 모두 성 밖으로 끌어내 불구덩이를 만들어 태워 죽이려고 했다. 이 사실을 아시게 된 부처님은 왕에게 인과의 법문을 하시었다.
"대왕이여, 저 어리석은 외도들을 용서해 주시오. 그들이 목련비구를 살해한 악독한 행위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들을 용서함으로써 원한의 악순환은 여기서 끝나게 되는 것이오.
만약 그들을 죽이게 되면 그들을 또다시 원한을 품게 되므로 다생동안 대왕과 원수가 되어 앙갚음을 하게 되어 끝없는 보복의 악순환이 거듭 될 것이오. 그러니 그들을 용서하시오. 그러면 그들도 진심으로 뉘우치게 될 것입니다.
목련비구는 비록 그들의 돌에 맞아 몸을 버렸지만 그는 이미 아라한과를 증득하였기에 조금도 그들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숙세의 자기 업을 청산한다는 기쁜 마음으로 이 세상을 떠나간 것이오."
그리하여 그들은 죽음을 면하게 되었다. 이런 소식을 전해들은 나형외도들은 부처님의 자비심에 감동되어 진정으로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고 부처님께 귀의하였다.
비구들이 목련존자의 죽음을 안 것은 얼마 뒤의 일이었다. 그들은 목련존자 같은 성자도 그런 최후를 마친데 대하여 큰 충격을 받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목련 존자 같은 신통력이 뛰어난 사람이 어찌 그런 최후를 마쳐야 합니까?"
"목련비구는 신통력으로 외도들에게 능히 대적하여 피할 수 있었지만 이미 자신의 과거세의 업을 살펴보고 피하지 않고 달게 받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는 그들의 원한을 풀어주지 않으면 원한 때문에 제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그들의 원한을 풀어주고 나의 제도를 받을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 것이니라.
어리석은 중생에게는 나고 죽는 일이 큰일이지만 깨달은 이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목련비구의 육체는 돌에 맞아 처참해 보일지 모르나 죽을 때 그의 마음은 결코 당황하지 않고 평화스런 마음으로 평온하게 무한한 아름다움과 환희의 열반에 든 것이니라."
이와 같이 목련존자는 최후의 순간까지 부처님의 법을 펴는데 힘쓰다가 마침내 당신의 목숨까지 바쳐서 많은 중생들을 제도하고 가신 것이다.
사리불존자의 죽음
특히 사리불 존자가 부처님을 대신해서 교리를 설하면 부처님께서 이를 추인하는 광경이 경전에서 더러 발견된다.
그래서인지 부처님께서는 사리불 존자를 부르실때 "나의 장자(長子)" 라 하셨다. 상수제자로서 칭송받던 사리불 존자는 그러나 애석하게도 목건련 존자와 함께 부처님 생전에 입적한다.
목련 존자가 외도들에게 맞아서 죽음을 맞게 되었을 때 사리불 존자는 부처님께 "목련과 함께 입멸을 맞고 싶다." 고 허락을 청했다.
사랑하는 두 제자를 떠나보내는 일은 분명 슬픈 일이지만 세상 인연이 다함을 보신 부처님께서는 사리불의 청을 기꺼이 허락하셨다.
부처님께 작별을 고한 사리불은 고향인 나아란다로 가서 마지막 가르침을 설하다가 사리불이 태어난 집에서 열반에 들었다.
사리불 존자의 유골은 탑으로 세워졌으며 2백 년 뒤에 아쇼카왕이 불교의 유적을 순례할 적에 기원정사에서 사리불의 탑에 공양하고 10만 금을 희사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옮겨온글
동하합장 ()()()♡
꽃사진ㅡ양명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