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이름, 지워지지 않은 역사 (26.10.13.불의날)
1. 오현단 — 돌에 새겨진 이름, 그 이름을 남긴 사람들
오늘날에는 훌륭한 업적을 남기거나 사회에 공헌한 사람에게 상장이나 상패를 수여한다. 조선시대에는 그 공적을 오래도록 기억하기 위해 비석을 세웠는데살아 있는 사람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비석을 세웠다. 비석은 누군가에게는 존경과 감사의 표현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업적을 후대에 남기는 수단이기도 했다. 제주시 원도심에 자리한 오현단은 조선시대 제주에 유배되거나 관리로 부임했던 다섯 인물을 기리는 곳, 충암 김정(1486~1521),규암 송인수(1499~1547),청음 김상헌(1570~1652),동계 정온(1569~1641),우암 송시열(1607~1689) 이들을 '오현(五賢)'이라 부른다. 이렇게 다섯 사람은 제주에 온 이유도, 머문 시간도, 남긴 발자취도 서로 달랐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은?
과연 이 다섯 사람은 모두 제주를 위해 큰 공적을 남겼기 때문에 오현으로 모셔진 것일까?
특히 송인수의 경우 어떻게 제주를 대표하는 다섯 현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기억되었을까,
조선시대에는 개인의 학문과 인품뿐 아니라 가문, 학맥, 정치적 관계도 중요하게 작용했기에 오현 가운데 마지막으로 송시열은 서인과 노론을 대표하는 학자였기에... 1695년 송시열이 귤림서원에 추가로 모셔지면서 송인수까지 오늘날의 오현이 완성되지 않았을까? 학문적 존경 뿐 아니라 당시 유림의 정치적 관계와 영향력도 작용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해석이 있다. 물론 이러한 사실이 다섯 인물의 학문적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나 역사 속에서 누가 존경받는 인물로 선택되고, 누구의 이름이 오래도록 기억되는가 하는 문제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그 인물이 왜 훌륭한 사람으로 기억되었는지 질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2. 오현단의 다섯 현무암 - 무엇을 후대에 남겨야 할까?
오현단은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은 아니었다. 1578년 김정을 기리기 위한 충암묘에서 시작해, 이후 다른 인물들이 함께 배향되면서 귤림서원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귤림서원은 철거된 이후 1892년 제주 유림이 다섯 인물을 기리기 위해 제단을 마련하고, 위패를 대신하는 다섯 개의 조두석을 세웠다.
오현단에서 정작 눈여겨봐야 할 것은 바로 이 다섯 개의 작은 돌이 아닐까, 제주의 현무암으로 만들어진 조두석은 화려하지도, 웅장하지도 않다. 가을이면 잎이 선명한 붉은색으로 물들어 아름다운 단풍나무로도 알려진 검양옻나무 아래 그저 낮고 소박한 모습으로 나란히 서 있을 뿐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다섯 돌에 오현의 이름이 새겨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름 대신 다섯 인물을 상징하는 돌을 세워 그들을 기억하고 제사를 지냈던 것이다. 오랜 세월 비바람을 견디며 자리를 지켜 온 이 작은 돌에는 그 시대 제주 사람들의 손길과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한편 오현단에는 후대에 세워진 크고 뚜렷한 기념비들도 있다. 그 가운데 거대한 비석은 방문객의 시선을 먼저 사로잡는다. 물론 새로운 기념비를 세워 역사를 알리고 인물을 기리는 일도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앞에서 문득 생각하게 된다.
더 크고 화려한 비석이 역사를 더 잘 전해 주는 것일까?
작고 소박한 현무암 다섯 개는 그 자체로 오현단이 지나온 역사의 일부다. 반면 새롭게 세운 기념비는 후대 사람들이 과거를 기억하고 해석하는 방식이기도하다. 제주의 현무암은 오랜 세월 제주 사람들의 삶과 함께해 왔고, 돌담이 되고 집의 기초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누군가를 기억하는 비석이 되었다. 그 투박하고 소박한 모습에 오히려 제주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 우리가 문화유산을 보존한다는 것은 단순히 오래된 것을 새것처럼 꾸미는 일이 아닌 그 시대의 흔적과 본래의 모습을 가능한 한 온전히 지켜 다음 세대에 전하는 일이다. 새로운 기념물을 세우는 데 관심을 기울이는 만큼, 이미 남아 있는 '조두석' 작은 유산의 의미를 제대로 알리는 일에도 마음을 써야 하지 않을까.
가장 오래 마음에 남는 것은 거대한 비석이 아니라, 말없이 이름없이 나란히 서 있는 다섯 개의 작은 현무암이었다.
3. 조천진성 — 바다를 지키던 돌, 그리움을 품은 사람들
오현단에서 제주의 학문과 인물들의 이야기를 만났다면, 조천진성에서는 제주의 바다와 그곳을 오가던 사람들의 삶을 만나게 된다. 요즘은 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남짓이면 육지에 도착하지만, 당시에는 배를 타고 바람이 거세거나 파도가 높으면 며칠씩 출항을 기다려야 했고, 한 번 떠나는 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긴 여정이 되기도 했다.
조천포구를 지키기 위해 설치된 조천진성은 군사적 방어 기능과 행정적 역할을 함께 수행했던 곳으로, 성문이 남쪽에 단 하나만 설치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제주 진성 가운데 유일하게 정자인 연북정이 남아 있다. 연북정의 옛 이름은 '쌍벽정(雙碧亭)'이다. 푸른 바다(산)와 푸른 하늘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광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특별한 이름을 가진 정자 하나 연북정(戀北亭)은 '북쪽을 그리워하는 정자'라는 뜻이다. 여기서 북쪽은 임금이 있는 한양을 의미한다.
누군가에게 이곳은 임금의 명을 받아 제주에 들어오는 길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진상품을 실어 보내는 분주한 포구였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낯선 유배지로 들어서는 길목이었을 것이다.
같은 바다였지만, 그 바다를 건너는 사람들의 사연은 저마다 달랐을 것 같다.
4. 조천 비석거리 — 칭송과 원망이 함께 새겨진 역사
조천진성에서 100미터 남짓 조천 비석거리가 있다. 이곳에 비석에는 새겨진 글에 관리의 이름과 직책, 그가 베풀었다고 전해지는 공적이 담겼다. 그러나 모든 비석이 백성들의 자발적인 존경과 감사로 세워진 것은 아니지 않았을까.조선시대에는 백성들을 괴롭히고 재물을 빼앗으면서도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려 했던 탐관오리들도 존재했으니, 일부 관리들은 자신의 공적을 내세우기 위해 백성들에게 송덕비를 세우도록 부담을 주기도 하고, 고통을 안겨 주었던 관리가 비석에는 훌륭한 인물로 기록되는 모순이 생기기도... 그렇다면 그 비석을 바라보는 백성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탐관오리가 임기를 마치고 떠난 뒤, 원망을 품은 백성들이 비석에 새겨진 이름이나 성씨 부분을 돌로 쪼거나 쳐서 훼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당시 관리와 백성들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누군가에게는 존경의 대상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원망의 대상이었을 수도!!
비석에 새겨진 글이 언제나 그 시대를 살아간 모든 사람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에는 이름을 남긴 사람도 있지만, 이름을 남기지 못한 채 그 시대를 살아낸 수많은 사람도 있다.
비석거리의 돌들을 바라보며 그 이름 없는 사람들의 삶까지 함께 떠올려 본다.
5. 비석치기 - 어른들의 원망이 아이들의 놀이로 전해졌다는 이야기
어린 시절 친구들과 비석치기 놀이를 해 본 기억이 있다. 납작한 돌을 세워 놓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다른 돌을 던져 쓰러뜨리는 놀이였다. 돌을 손에 올리거나 발등에 얹고 균형을 잡으며 상대방의 돌을 맞히고, 특별한 장난감이 없어도 돌 몇 개만 있으면 친구들과 한참을 웃고 뛰어놀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 가문과 이름이 지닌 의미가 컸다는 점에서, 비석의 성씨를 훼손하는 행동은 단순히 돌을 깨뜨리는 것 이상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지 않을까. 어른들에게는 억울함과 원망을 표현하는 행동이었을지 모르지만, 아이들에게 돌을 맞히고 쓰러뜨리는 일은 그저 신나는 놀이가 되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어른들의 복잡한 세상과 달리 아이들은 돌 하나에도 웃고, 넘어뜨리고, 다시 세우며 즐거움을 찾는다.
세월이 흐르면서 어떤 행동은 본래의 의미를 잃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어린 시절 아무 생각 없이 던지던 작은 돌 하나가 역사 속 사람들의 마음을 돌아보게 한다.
6. 마무리 - 이름은 지워져도 역사는 남는다
오현단에서 시작해 조천진성과 비석거리를 둘러보며 서로 다른 모습의 돌을 만났다.
오현단에는 학문과 정신을 기리기 위한 돌이 있었고, 조천진성에는 바다와 사람들의 삶을 지키던 돌, 비석거리에는 관리들의 이름과 공적을 새긴 돌이 남아 있었다.
같은 제주의 돌이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저마다 다르고 어떤 돌은 존경을 위해 세워졌고, 어떤 돌은 삶을 지키기 위해 쌓았고, 어떤 돌에는 칭송과 함께 원망의 이야기가 전해진다.특히 오현단의 작고 소박한 다섯 현무암 조두석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다. 화려하지 않아도, 이름 하나 새겨져 있지 않아도 그 돌은 자신이 지나온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우리는 때때로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더 크고 화려한 기념물을 세우려 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기념물의 크기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역사적 진실과 의미일 것이다.
누구의 이름을 남길 것인지, 누구의 이야기를 기억할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후대에 전할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돌에 새겨진 이름은 세월에 닳고, 때로는 누군가의 손에 지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과 흔적까지 쉽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이름을 남긴 사람만을 기리는 일이 아니라, 그 시대를 묵묵히 살아낸 이름 없는 사람들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일 인것 같다.
그리고 우리가 오래도록 지켜야 할 것은 돌에 새겨진 이름만이 아니라, 그 이름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일 것이다.
첫댓글 🍂보슬비 내리는 가을 아침, 오현단에서 조천진성, 비석거리까지!
시원한 바람과 가을 하늘, 무심코 지나쳤던 제주 돌과 지워진 이름 속에서 제주의 역사를 다시 생각해 보는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교수님의 깊이 있는 설명에 배움은 더하고,
19기 동기들과 함께한 웃음에 즐거움은 두 배! 😄
아주 훌륭한 리뷰 한 편을 작성하셨군요.
문장 한줄 한줄, 단락 마다
내용과 의미, 제목까지
명문, 명문장을 남기셨어요.
훌륭합니다, 수고하셨어요^^
문제 -
연북정에 유배인도 올라 갈 수 있었을까용? ㅎㅎ
ㅎㅎ 역쉬 교수님 예리하십니다! 😎
연북정에 유배인이 자유롭게 갈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
같은 바다를 건넜어도 저마다의 처지와 사연은 달랐을 거라는 의미를 담고 싶었습니다. ㅎㅎ
그 부분은 수정보완했습니다~! 😄👍
오~멋진 리뷰 잘 읽었습니다~
시원한 바람과 가을하늘 아래
함께하는 좋은 시간 감사합니다~
질문과 질문에 대한 생각을 기록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
글을 오늘 찬찬히 읽었습니다. 마지막 정리 글이 참 잘 와닿네요. 정리도 잘해주셨는데 깊은 생각들을 잘 남겨주셔서
한 번 더 생각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감사합니당!!!
감사히 잘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