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강. 지성적 회심: 악의 기원에 대한 해답과 성육신 (고백록 7권 강해)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는 데 있어 가장 까다롭고 오래된 난제는 바로 '악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선하시고 전능하시다면, 도대체 이 세상의 악과 고통은 어디서 왔는가? 하나님이 악을 창조하셨단 말인가?" 고백록 7권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지성을 오랫동안 괴롭혀온 이 치명적인 질문과 정면으로 마주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기독교 역사상 가장 탁월하고 명쾌한 신학적 해답을 도출해냅니다. 5강에서는 지적 교만의 산을 넘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는 위대한 지성적 회심의 현장으로 들어갑니다.
첫 번째로 아우구스티누스가 깨달은 위대한 진리는 '악은 실체(Substance)가 아니라 선의 결핍(Privatio Boni)이다'라는 사실입니다. 과거 마니교에 빠져 있을 때 그는 선과 악을 동등한 두 세력의 싸움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신플라톤주의 철학서를 읽으며 그의 지성에 빛이 비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은 본질적으로 선합니다. 그렇다면 악은 무엇입니까? 악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어떤 물질이나 창조물이 아닙니다. 어둠이 빛의 결핍이고, 질병이 건강의 결핍이듯, 악은 피조물이 마땅히 지녀야 할 '선의 결핍'이자 '질서의 파괴'입니다.
목회자 여러분, 이 통찰은 우리의 목회 현장에서 엄청난 능력을 발휘합니다. 성도들이 고난과 죄악 속에서 "왜 하나님이 이런 악을 만드셨습니까?"라고 물을 때, 우리는 분명히 대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악을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악은 선하신 하나님을 향해야 할 인간의 자유의지가 피조물을 향해 왜곡되고 타락할 때 발생하는 부패 현상일 뿐입니다. 사탄은 하나님과 대등한 악의 창조자가 아니라, 선하게 창조되었으나 스스로 선을 져버린 타락한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악은 영원하지 않으며, 궁극적으로 선하신 하나님의 통치 아래 완전히 정복될 수밖에 없는 껍데기임을 강단에서 선포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세상 철학의 한계와 지적 교만'을 날카롭게 지적합니다. 신플라톤주의 철학은 그에게 하나님이 영적이시고 부패하지 않는 선한 분이라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 나오는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계시니라"라는 진리까지는 철학의 힘으로 도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습니다. 철학은 산꼭대기에 있는 평화로운 진리의 고향을 멀리서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곳으로 올라가는 길은 결코 알려주지 못했습니다. 진리를 안다는 지적 교만만 부풀릴 뿐, 정작 죄의 사슬에 묶인 영혼을 구원할 능력은 철학에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지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성경의 교리를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신학적인 논쟁을 즐깁니다. 하지만 머리로는 진리를 안다고 하면서도 삶에서는 여전히 은밀한 죄와 정욕을 이기지 못해 무너지는 지성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인간의 이성은 진리를 향한 이정표는 될 수 있어도, 우리를 구원하는 구명정은 될 수 없습니다. 참된 회심은 머리가 이해하는 것을 넘어, 자아가 깨어지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세 번째로, 철학이 결코 줄 수 없었던 단 하나의 위대한 진리, 바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성육신(Incarnation)의 복음'이 등장합니다. 플라톤의 철학 책 어디에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라는 구절은 없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은 교만한 철학자들에게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우구스티누스는 깨달았습니다. 인간의 교만이라는 가장 치명적인 질병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해독제는 바로 '그리스도의 겸손'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영혼을 살리는 것은 고상한 철학적 논증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 복음뿐입니다. 우리는 지성으로 하나님을 찾는 이들의 질문에 치열하게 답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추면 안 됩니다. 그들의 지성을 설득한 후에는, 반드시 성육신하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발앞에 그들의 교만한 자아를 무릎 꿇게 만들어야 합니다. 위대한 선생이 아니라 나를 대신해 죽으신 구원자가 필요함을 처절하게 깨닫게 할 때, 비로소 강팍한 지성은 무너지고 참된 생명의 역사가 시작될 것입니다.